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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푯대를 향하여(빌3:10-14) 2017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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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7-10-12 09:55 조회 18,646 댓글 0
 
                                                      푯대를 향하여(빌3:10-14)                                                                  2017. 10. 8

볼 수도 없었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했으나 정상인 이상의 삶을 살았던 헬렌 켈러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희망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만질 수 없는 것을 느끼고 불가능한 것을 이룬다.”
(Hope sees the invisible, feels the intangible, and achieves the impossible.)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그렇게 해서 한 분야에 성공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한 우물을 파야 물이 나온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아도 성공하는 사람은 뭔가 남들과 다르다.
 
미국 뉴욕 시에는 큰 공항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존 에프 케네디 공항이다. 또 다른 하나는 라과디아 공항이다. 라과디아는 뉴욕시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가 판사로 재직하던 1930년 명 재판 일화는 유명하다. 어느 날 그의  재판정에 허름한 복장의 남루한 행색을 한 노인이 피고인석에 앉았다. 죄목은 남의 빵 가게에서 빵을 훔쳐 먹다가 들켰다는 것이다. 피오렐로 라과디아(Fiorello Henry La Guardia. 1882-1947) 판사는 그 노인에게 왜 남의 가게의 빵을 훔쳤느냐고 물었다. 여러 날 제대로 먹지 못하고 너무 배가 고프다 보니 그랬다고 대답했다. “이와 같은 배 고픈 노인이 뉴욕 시에 함께 살아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라는 설명과 함께 라과다아 판사는 그에게 벌금 10불을 벌과했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같은 금액인 10불을 벌과하였다. 그리고 재판정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50센트씩을 벌과하였다. 재판을 마친 그는 자기 지갑에서 10불을 꺼내서 모자에 담았고 그 모자를 재판정 안에서 돌렸다. 모자 안에는 57불 50센트가 모금되었다. 라과다아 판사는 그 돈을 그 노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나중에 뉴욕 시장에 당선되었다. 뉴욕 시내의 마피아를 소탕하고 오늘 날의 뉴욕시로 발전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만나기 전에도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이 있던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알고 믿고 확신하기에 아니라고 여겨져서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했었다. 그는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박해하는 일에 열심이었다. 그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가 다메섹의 체험과 주님의 부르심 이후에 부활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는 이방 전도자의 삶을 살았다. 그는 자신의 복음 전파 사역을 ‘달음질’에 비유하였다. 달리기는 모든 스포츠의 기본이다. 100미터 달리기와 마라톤 달리기는 올림픽 경기에서도 최고의 관심사이다. 각종 운동 경기가 많지만 달리기가 기본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동안 열심을 다해 전파해온 복음 전파 사역을 달리기에 비유하였다.
 
빌립보서 3장 12절부터 14절의 말씀은 그런 바울의 심정을 너무나도 잘 표현해 주고 있는 편지이다. 공동번역성경으로 읽으면 이렇다.

“나는 이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달음질칠 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붙드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그것을 이미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면서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를 부르셔서 높은 곳에 살게 하십니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며 내가 바라는 상입니다.”
빌립보서 2장 16절을 먼저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의 달음질은 “생명의 말씀”을 밝히 전하는 일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사도 바울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목표는 분명하다. 그는 공부를 좀 더 한다든지, 학위를 더 받는다든지, 돈을 더 번다든지, 더 크고 넓은 집을 마련하여 이사한다든지, 더 좋은 자동차를 한 대 더 산다든지, 더 많은 주식에 투자한다든지, 사회적이 지위가 더 높아지길 원하는 그런데는 관심이 없었다.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또 다른 종교적인 지위나 힘을 얻고자 하지도 않았다.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하면 더 예뻐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피부가 더 고와 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들딸들을 더 좋은 대학에 진학 시킬 수가 있을까 그런데도 별 관심이 없었다.
 
사도 바울의 마음에 꽉 찬 생각은 오직 한가지였다. “어떻게 하면 한 사람에게라도 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언제나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하는 한 가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는 편지를 쓴 것이다.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빌2:16)
 
바울은 분명한 인생관과 확고한 삶의 태도를 갖고 있었다. 바울은 그의 달음질이 헛되지 않기를 바랬다. 달음질에도 규칙이 있다. 그 규칙에서 벗어나면 실격이다. 약물을 복용한다든지 룰을 어기면 아무리 빨리 달려도 소용없다. 그의 수고도 헛되지 않기를 소원하고 있었다. 바울이 말하는 수고란 장막을 만들고 깁는 일이다. 그렇지 않나. 장막 하나를 만들어도 완제품을 만들어야지 불량품을 만들면 상품 가치가 없다. 불량품이 되고 만다.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은 온전한 성도의 삶을 기대하신다.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손길에 우리 각 사람의 생을 위탁하고 주님의 정교한 토기장이의 손길로 우리의 삶을 빚어 작품을 만들어 주시길 소원해야 한다.
 
이것은 죤 웨슬리 목사님이 말씀한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면 ‘성화의 길’이며 ‘영화로운 삶’을 향한 순례자의 긴긴 여정인 것이다.
 
그 이유는 “생명의 말씀”(the word of life)을 밝히 전파하여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생명을 말씀을 밝힌다는 표현은 불을 밝혀서 어둠이 사라지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나. 신앙생활이란 어두움에서 벗어나서 빛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최근에 일어난 미국 라스베가스 총기 난사 사건을 보라. 그 범인이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주의 자녀가 되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으로 세상에 빛이 되는 삶을 살고자 한 인생이었다면 그런 참담한 범행을 저질렀겠나.
 
왜 우리는 기독교 교육을 강조하나. 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엄마의 태중에서부터 시작해서 엄마의 품에 안겨 주님을 믿고 말씀을 따르며 주님을 찬양하는 인생으로 자라나기를 소원하는 것인가. 그렇게 자라나도 십대 시절을 보내는 것이 쉽지 않고, 십대 청소년기의 사춘기를 쉽게 통과하기가 여의치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생명의 말씀”안에서 세상에 빛이 되어 세상을 밝히고 주변을 밝히는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나. 빌립보서 2장 16절에서 말씀하는 ‘그리스도의 날’이 언제인가. 바울은 부활 신앙뿐만 아니라 하나님 우편에 승천하여 만유를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사모하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바울의 곁에는 디모데나 에바브로디도 같은 훌륭한 동역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는 빌립보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의 길지 않은 이 짧은 편지 가운데서 몇 번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1장 15절, “투기나 분쟁”으로 하지 말라. 2장 3절,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 2장 14절, “원망과 시비”로 하지 말라고 꼬집어서 강조하고 언급하고 있다. 3장 2절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자들을 삼가라.”고 하였다.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라고 편지하는 바울의 강조는 무엇인가. 바울이 말하는 푯대를 향한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바울은 과거가 화려한 사람이다. 그는 출생 신분, 신앙 배경, 사회적인 지위,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인지도 등등 그와 비교할 사람이 없을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는 그 당대의 최고의 석학이었던 가말리엘에게서 개인적으로 배운 문하생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로마의 시민권자였다. 그는 율법을 따르는 생활에 흠이 없다고 자처하던 유대주의자였다. 그가 예수를 만나기 이전에는 교만할 만도 했다. 빌립보서 3장 5-6절에서 그런 내용을 짧게 언급하였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기 시작한 후에도 대단한 생을 살았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복음 전파의 사람이었다. 고린도 후서 11장에서 그는 자신의 그런 모습을 조심스럽게 간증하고 있다.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11:22-30)
 
그런 바울이 말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3:12)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예수체험과 부르심과 성령 충만 이후로 계속해서 복음 전파의 사람답게 온갖 고난과 역경과 시련을 참고 견디고 이기고 극복하며 앞을 향해 달려온 전도자요 이방의 선교사였다. 그를 지치지 않게 하는 힘은 부활 복음이었다. 10절과 11절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우리 예수사랑교회의 성도들과 모든 예배자들이 사도 바울과 같은 이런 신앙 자세를 갖고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 교회가 11월 말이면 벌써 여덟 살이다. 세월만 가고 그냥 늘 제자리걸음만 하며 다람쥐 체 바퀴 돌 듯 하는 교회 생활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과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할 줄 아는 성도다운 성도의 모습을 회복하길 소원한다. 어른이나 어린이나 젊은이나 노인이나 누구나 다 마찬가지다.  10절과 11절에서 말씀하는 부활 신앙은 우리 모두의 신앙의 바탕이요 힘이어야 한다. 늘 강조하지만 부활 주일 새벽과 부활 주일 낮 예배와 부활 주일 오후에 삶을 달걀 몇 개 들고 길거리에 나서고 나면 일 년이 다 가는 그런 신앙생활 말고 말이다.
 
날마다의 생활 중에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할 수 있어야 한다.
안수현(1972-2006)은 고려대 학부, 대학원 의학과를 졸업하고 석사를 마치고 박사 과정 중이었다. 청년 의사 안수현,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 불렀다. 자기 것을 챙길 줄 모르는 그에 대한 답답함과 미안함이 담긴 말이었다. 그는 자신의 돈과 시간의 대부분을 남을 위해 썼다. 돈이 없어 검사를 받지 못하는 조선족 할아버지의 검사비를 대신 내 주었다.
손에는 늘 책과 찬양 테이프를 가지고 다녔다. 교회 후배, 병원 동료, 환자들, 심지어 환자들의 가족들에게까지 가리지 않고 그들에게 필요하다 싶은 책과 찬양 테이프를 선물했다. 그는 밤이면 병실을 돌며 맡은 환자들을 붙잡고 조용히 기도했다.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며 실의에 빠진 암 환자들을 찾아가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2003년 군의관으로 입대한 후에는 병사들의 친구로 지냈다. 군대 교도소인 영창을 방문해 일일이 책을 선물했다. 군의관 신분상 유격 훈련 등을 하지 않아도 됐지만, 병사들과 함께 행군을 하고 그들과 어울렸다. 그러던 중 예기치 못한 병이 그를 찾아왔다. 유행성출혈열로 갑자기 쓰러진 후 약 한 달 만인 2006년 1월 5일, 청년 의사 안수현은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세 살 이었다. 그는 이 땅에서 33년을 살았으나 남들이 70-80년 혹은 그 이상의 삶을 살면서도 다 행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다가 갔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별명을 ‘스티그마’ 즉 예수님의 흔적이라고 별칭을 붙이며 살다가 홀연히 주님 앞으로 돌아갔다.
 
그의 장례식장에는 4,000명이 넘는 조문객이 빈소를 찾았다.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의 장례 이후 영락교회 역사상 가장 많은 조문객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그 중에는 의사들, 간호사들, 병원직원들, 교회선후배들, 군인들, 병원 청소하시는 분, 식당아줌마, 매점 앞에서 구두 닦는 분, 침대를 미는 도우미, 병원 매점 아주머니, 피고름 뭍은 환자복과 세탁물을 정리하던 병원 청소부 아주머니, 방사선 기사 등 모두 청년 의사 안수현에게서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늘 글쓰기를 좋아 하던 그가 남긴 글들이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 청년 바보의사>라는 책이다. 이 책은 예수님의 흔적을 따라 '참 의사'로 살다가 예수님과 같은 나이에 문득 생을 마감한 한 청년의사의 삶과 사랑에 관한 기록이다. 몇 해 후에는 <그 청년 바보의사 그가 사랑한 것들>이란 책도 나왔다.
 
그는 갑작스런 질병으로 죽어가면서 이런 글들을 남겼다.
“과연 나는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내게 환자로 오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을까.
여러 논리에 밀려 위로 받지 못하고 충분히 돌봄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제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합니다. 누구보다도 위로 받아야 할 사람들, 병원에서 도움이 될 길과 하나님 앞에서 자유 할 수 있는 길을 위해 기도하면서 병원에 남는 길을 택했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 각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자기만의 지정곡이 있다. 일평생을 통해 우린 각자의 곡을 연주해 나갈 것이다. 하늘의 천군천사와 구름 같은 허다한 증인들이 그 연주회의 청중이 되어 줄 것이다. 주님께서 정하신 생의 마지막 날, 최선을 다한 나의 연주가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때 갈채를 받기에 부끄럼이 없을, 최선을 다한 연주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고 싶다.
우린 무엇인가를 움켜잡으려고, 또는 그 움킨 것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주님은 그 움켜쥔 손이 펴지기를 기다리신다. 그 손을 펼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주실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달을 때 비로소 꼭 쥔 손을 펴고 그분으로부터 오는 것을 받을 수 있다. 그분을 향해 손을 펴자. 눈과 귀를 열어 주님을 만나자. 그 음성을 듣자. 풍랑은 잠잠해질 것이며 우리는 물위를 걸어 주님께 다가갈 것이다.
아들 예수를 잃고 어머니 마리아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장례식장에서 울음을 참느라 잇몸이 다 무너져 내렸던 어머니는 그래도 있는 힘을 다해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큰 절망 가운데 있더라도, 아무리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절름거리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사랑하는 아들이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선배 한 사람은 후배 의사 안수현에 대하여 이런 글을 남겼다.
“그 청년은 학과 성적이 그렇게 뛰어난 의대생은 아니었습니다. 본과 4학년 때는 유급을 한 번 당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인턴이 되어 본격적으로 환자를 돌보던 그에게는 ‘빛’이 났다고 그의 의대 선배는 말했습니다. 그 청년이 레지던트 1년 차 때 돌봤던 한 난소암 말기 할머니는 ‘이 어린 의사가 날 살렸다.’라며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 그는 헨리 나우웬의 말대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격려의 말을 해주며, 안아 주었습니다. 손을 꼭 잡아 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주거나, 더 이상 도울 능력이 없다는 말이라도 해주었습니다.”
늘 과묵하고 주변 사람들을 잘 배려할 줄 알았던 그의 부모는 80세가 넘은 원로 장로와 원로 권사로 사당동에 살고 있다. 하도 말이 적던 아들이 살아 있었다면 아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몰랐을 텐데 세상을 떠나고 나니 그의 컴퓨터 안에서는 평소에 그가 써 놓았던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1등을 한 적은 없지만 그의 성적은 항상 좋았다. 재수해서 의대에 진학했지만 공부보다는 늘 신앙이 우선이었다. 재수를 할 때에도, 의대에 진학해 시험을 앞둔 전날에도 예배를 빠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병원 일을 하면서도 영락교회 청년부 활동을 하며 주일을 지키려고 동료들과 시간을 바꾸어 가며 야간 당직을 서기 일쑤였다. 의약분업 사태로 의사들이 파업을 할 때, 그는 왕따를 당하면서 끝까지 병원을 지켰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자를 돌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성장기와 청년 의사로서의 일상을 추적하여 책을 쓴 이기섭 작가는 그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공부를 잘해서 의사가 됐지만, 그는 보이는 직업으로 자신의 삶이 축복받은 인생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철저히 봉사하는 삶을 살았고, 자신이 번 돈을 남을 위해 사용했다. 그가 죽은 후 통장에는 자동차 할부금과 신용카드 대금을 제외하고 0원에 가까운 잔액이 찍혀 있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랑을 베풀고 실천하고 내 주위에서부터 사랑의 물줄기가 흘러가는 것이 신앙이라.”고 믿고 그런 삶을 실천하며 살았던 젊은이가 청년 의사 안수현이었다. 안수현은 오늘날 청년들이 지나친 성공주의에 매몰돼 내 것만 챙기는 사회 현상에 신선한 충격을 남기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갔다. 늘 주기만 하던 청년 바보 의사 안수현! 그는 바보가 아니라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다가 우리 곁은 떠난 신앙의 표상이 되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푯대를 향한 신앙이 무엇인 것 같은가.
바울은 말한다.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그렇다. 내가 그리스도를 붙잡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주님이 나를 붙들고 계신 것을 의식할 수 있어야 하고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오늘의 섬김이 보람이 있고, 지금 충성할 수 있는 것이 자랑스럽고, 이제도 헌신 할 수 있는 것이 복되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바울은 입으로만 복음을 전하던 값싼 전도자가 아니었다. 그는 삶으로 예수의 부활 신앙을 증거하는 삶을 살던 힘이 있는 전도자였다. 그래서 가는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빌3:17)고 감히 편지 할 수 있었다.
 

잊어버리고 달려가노라.
바울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회상하며 벽장 가득하게 그 동안 받은 상패를 진열해 놓고 벽마다 그 동안 받은 상장과 훈장들을 줄줄이 걸어 놓고 지난 날 화려했던 자신의 과거의 사회생활의 지위나 역량을 자랑하며 추억에 갇혀 지내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둘러  앉기만 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왕년에 이런 사람이었노라고 자기의 옛날이야기를 하느라 하루해를 다 보내고 날마다의 시간을 보내는 그런 허세 속에 사는 이가 아니었다. 바울을 잘 준비된 노년의 경제 안정으로 인해서 자신의 과거를 자랑하며 으스대며 지내는 그런 사람도 아니었다.
 
바울은 분명하게 말한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빌3:13)
 
바울이 사용한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것은 ‘디오코’라는 단어인데 이는 사냥개가 토끼를 붙잡으려고 추격하는 것을 묘사한 말이다. 바울은 과거 지향적인 생을 산 인물이 아니다. 그는 늘 앞을 바라보며 앞만 향하여 달려간 정열의 사도요 열정의 전도자요 지칠 줄 모르는 이방의 선교사였다.
 
이와 같은 진지한 태도로 평생을 살았던 사도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 편지인 디모데 후서에서 이와 같이 고백하였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6-8)
 
그렇다. 바울은 부활 신앙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갖고 그 믿음을 선포하였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다운 삶의 모범을 위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일상을 살았다. 바울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복과 장차 받게 될 분명한 하나님 나라의 약속과 소망 가운데서 살아갔다.
 
사도 바울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다. 바울은 그 은혜에 힘입어 평생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전도자의 삶을 살았다. 바울은 지난날의 영화와 자랑과 지위와 명예와 권세를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하여 살고자 하였다.
 
빌립보서를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 보면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바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게 된다.
 
가령 3장의 시작은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했다.
3절에서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라고 말합니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으면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하며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가 참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라는 내용이다.
7절,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유익하게 여기던 모든 것들을 다 해로 여긴다.”고 말하였다.
그는 예수 외에는 모든 것을 해로 여기며 살았다. 이게 무슨 말인가. 사람이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며 자기가 배에 싣고 가던 것들을 챙길 수 있나. 오직 목숨 하나를 구하기 위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지 않나. 이는 마치 그와 같은 태도를 말씀하는 것이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의 부르심을 체험한 후로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다. 그는 오직 예수 한 분밖에는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그 아무 것도 없는 생을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님 앞에 가는 순교의 순간까지 그런 태도에 변함이 없었다.
 
<나는 행복해요>라는 김석균 작사 작곡의 복음성가가 있다.
주님 한분 밖에는 아는 사람 없어요
가슴 깊이 숨어 있는 주를 사랑하는 맘
주님 한분 밖에는 기억하지 못해요
처음 주를 만난 그날 울며 고백하던 말
나는 행복해요 죄 사함 받았으니
아버지 품안에서 떠나 살기 싫어요
나는 행복해요 사랑이 샘솟으니
 이 세상 무엇이든 채우고도 남아요

바울은 그런 복음의 사람으로 살았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신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라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이 세상에 상을 싫어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린이나 어른이나 상은 좋은 것이다. 최근에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자랑스럽지 않나. 신앙생활도 그런 것이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라.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갈렙, 기드온, 사무엘, 다윗 모두가 다 상 받을 만한 신앙생활을 한 신앙의 선조들이 아닌가. 성령 받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바돌로매 도마 마태 모두 다 부름의 상을 향하여 달려간 사도들이 아닌가.
 
히브리서 12장 1절 이하에 말씀하지 않나. “이러므로 우리에게 그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신앙생활이란 이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나.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 하면서 이와 같은 신앙의 태도를 이렇게 편지 하였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9:24)
 
그렇다. 마치도 상 받을 그 한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인 것처럼 그런 태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달려가야 한다. 그래야 상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이 부르심을 받은 부름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다.
 
제 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을 상대로 강력한 프랑스를 이끌었던 프랑스 제 9대 대통령은 레몽 프엥카레(Raymond Poincaré, 1860-1934)이다. 그의 대학교 은사인 라비스 교수가 교육 50주년 기념식을 하게 되었다. 레몽 프엥카레 대통령도 축하하려고 기념식에 참석했다. 라비스 교수가 답사를 하려고 단상에 올라갔는데, 갑자기 이분이 객석으로 내려와서 뒤쪽으로 달려갔다. 대통령이 앞자리 내빈석이 아닌 학생석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라비스 교수가 대통령을 앞자리에 모시려고 하자 그가 말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제자입니다. 저는 대통령 자격으로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제자로서 온 것이니, 여기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선생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라비스 교수는 할 수 없이 단상으로 돌아가서 답사를 시작했다. “이렇게 훌륭하고 겸손하신 대통령이 나의 제자라니 꿈만 같습니다. 여러분, 이런 대통령을 모셨으니,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 프랑스는 더욱 살기 좋은 나라로 발전하고 부강해 질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레몽 프엥카레 대통령보다 얼마나 더 겸손하셨던가. 사도 바울은 어떤가. 그는 세상의 열락을 뒤로 하고 오직 하나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그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생을 살았다. 그의 신앙은 분명하였다. 사도 바울의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된 부활 신앙과 천국 복음으로 가득 찬 삶을 달려갔다.
 
8-9절에서 바울은 변증하고 있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당신은 어떤가. 가만히 깨닫고 보면 혹시 그 배설물과 같은 알량한 것에 집착해서 주를 믿는 복음의 푯대를 향한 신앙생활에 진보와 변화가 없이 발목이 붙잡혀 있지는 아니한가.
오늘 말씀에 은혜와 깨달음과 결단이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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