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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사40:27-31) 2017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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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7-01-01 22:43 조회 17,413 댓글 0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사40:27-31)             2017. 1. 1.



독수리는 하늘의 왕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새들 중에 독수리만한 새가 없다. 물론 멀리 날기로는 기러기를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독수리의 위용을 대신 할 수는 없다. 독수리류는 그들의 강한 힘 때문에 바벨론 시대 이후로 힘과 권위의 상징이 되어왔다. 역사적으로 동서고금에 군대의 상징이나 국가나 도시나 대학의 상징 중에 독수리 형상이 참 많다. 독수리류는 일부일처 현상을 보인다. 암컷과 수컷이 평생 짝을 바꾸지 않고 살아간다. 독수리는 일생 동안 한 마리와 짝을 짓고 매년 같은 둥지를 사용한다. 다른 그 어떤 동물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둥지를 치며 몇 개의 알을 낳아서 6~8주간 품는다. 부화된 어린새끼는 천천히 자란다. 완전히 자라나는 데 3~4년이 걸린다. 부채머리독수리는 멕시코 남부에서 브라질까지 분포되어 있다. 몸의 길이는 약 1m 정도이다. 독수리 종류 중에 가장 크다. 머리에 검은 깃털로 이루어진 관우가 있다. 윗부분은 검은색을 띠며 아랫부분은 검은 가슴 띠를 제외하고는 희다. 멋이 뛰어나기는 흰 머리 독수리가 아닐까.

하나님은 여호와를 앙망하며 살아가는 자의 모습을 독수리에 비유하여 말씀하셨다. 여호와를 앙망하며 살아가는 자는 새 힘을 얻게 해 주신다고 하셨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소년이라도 피곤할 때가 있다.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쓰러질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공급해 주신다.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해 주신다.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얻은 인생의 모습은 마치도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게 해 주신다. 아무리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하지 아나하게 해 주신다. 아무리 먼 길을 걸어가고 또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게 해 주신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공급해 주시는 은혜 안에 살아가는 자의 모습이다. 

<주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라는 찬양이 있다. 

“주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새 힘을 새 힘을 얻으리로다
독수리 같이 날개를 치며
높이 (높이) 높이 (높이) 
푸른 하늘 날으며 
뛰어가도 고단치 않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네
주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새 힘을 새 힘을 얻으리로다
독수리 같이 날개를 치며 (우-)
높이 (저 하늘) 높이 (더 높이)
푸른 하늘 날으네
뛰어가도 고단치 않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네

이와 같이 날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얻는 새해의 출발이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은 “야곱아, 이스라엘아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고 질문하시며 그 질문에 대답하신다. 시편 103절 5절에도 보면,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느니라.”고 하셨다. 예레미야 14장 22절에 보면 인생이 주를 앙모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주께서 비를 내리시고 소나기를 내려 주시는 공급자이시라고 선포한다. 그렇다.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은택을 덧입혀 주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사야 40장 전체의 내용은 희망과 위로와 격려와 회복의 약속을 선포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이렇게 시작하고 있지 않나. 이스라엘, 남 유다 백성들이 우상 숭배와 타락으로 하나님을 멀리하다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 바벨론에 끌려간 백성들을 연단하신 후에 버리지 않으시고 용서하시며 장차 다시 예루살렘에 되돌아가게 하실 하나님의 회복과 자유와 해방의 날을 예비하시는 사랑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러나 여전히 답답한 날들을 보내며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다.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고 탄식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고 설명해 주신 말씀이 본문이다. 하나님 여호와가 누구신지 다시 생각하여 보고 깨닫고 믿고 나아가라는 말씀이시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 속에 갇혀서 살아간다. 물론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서 비행기도 발명되고 우주선도 발명하였다. 핵 에너지의 사용은 놀랍다. IT과학의 발전은 신비롭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분명하게 고백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왜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리게 되는걸까. 인간이 바다와 땅과 하늘 위에서 그 어느 순간에나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지 아니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1912년, 타이타닉 호의 길이는 2700미터였고 너비가 28미터였다. 2200명의 승무원과 승객이 타고 있었다. 그 당시 최고로 호화롭고 최대로 큰 유람선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가.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하시고, 오직 하나님만이 전능하시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 안에서 ‘영원’을 깨달아 알고 믿는 생활이다.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것이다(벧후3:8). 

오늘 새벽 2시에 몽골의 김석환 선교사에게서 사진 20여장이 카톡으로 날아 들었다. 성탄절과 송구영신 예배와 눈 치우는 사진들이었다. 요즘 영하 45도라고 한다. 

몽골 역사의 13세기의 위대한 장군이며 전쟁에 능한 전략가였던 징키스칸(A. D. 1155?-1227)도 영원히 살지는 못했다. 몽골 통치 21년째에 전쟁을 벌이다가 전쟁터에서 병으로 죽고 말았다. 이 땅 위에 영원한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우리 인간이 올바르게 사는 길은 영원하신 하나님 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만 참으로 가치 있고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젊음, 재주, 재물, 권력, 명예 등 그 무엇도 절대로 영원한 것이란 없다. 하나님의 영원성이 깨달아져야 하나님의 영원불변하시는 말씀도 늘 가까이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사야 40장에 선언하는 유명한 선언의 말씀이 읽지 않은 앞부분에 소개 되어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사40:6-8)

우리 성경에 ‘앙망(仰望) 한다.’고 번역된 표현을 영어 성경에 보면 ‘소망 한다.’는 ‘hope'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그렇다. 앙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바라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삶을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믿음이다.  

로마서 5장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1-4)고 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일찍부터 이 말씀을 참으로 좋아하면서 지내 왔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소망을 이루는 길이 무엇인가. 여기 로마서의 말씀에 보면 공식처럼 교훈하는 가르침이 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이 공식을 삶에 적용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환난⇨ 인내⇨ 연단⇨소망”의 공식이 우리 각 사람의 삶 속에 믿음의 공식으로 작용해야 이 험한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 앞의 시작되는 말씀으로부터 보면 “의롭다 하심⇨ 화평⇨ 믿음⇨ 은혜⇨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는 신앙생활의 분명한 공식이 있다.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앙망하며 살아가는 은혜가 있어야 하겠다. 


땅 끝까지 창조 하신 여호와.
오대양 육대주를 누가 창조하셨나. 해와 달과 별들을 누가 창조하셨나.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구석구석을 보면 참으로 하나님의 창조가 놀랍고 놀랍지 않나.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놀라움에 대하여 성경의 다른 곳의 말씀을 대할 것이 없이 오늘 말씀인 이사야 40장의 앞부분만 읽어 보아도 그 놀라우신 창조의 광대하심에 대한 시적인 표현들이 쏟아져 나온다. 11절에,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12-13절을 읽어 보면 하나님의 창조에 대하여 인간을 잠잠케 하는 말씀이 계속된다. “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으랴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인간이 어리석고 몰라서 우상 앞에 절한다. 그러나 우주 삼라만상의 창조의 질서를 깨닫고 보면 이 땅 위에 그 무엇 하나도 우연히 된 것이 아닌 놀라운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인 것을 알게 되지 않나. 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하나. 왜 우리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서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나. 이게 창조주 하나님을 앙망하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의 모습인 아닌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요 명철이다. 잠언 1장 5절 말씀에 보면,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 

새 해를 맞이한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지혜와 명철을 복으로 받아 누리는 자녀로 성장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잠언 3장 13절에는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고 했다.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 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사40:15-17) 이 같은 말씀들을 대하면서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조주이시면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앙망하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특별한 인간일 것이다. 

로렌 커닝햄(Loren Cunningham)의 <열방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책>(The Book  that Transforms Nations)에 보면 예수전도단의 설립자인 그는 세계의 238나라를 모두 다 다녀 보았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400개 이상의 속령과 태평양 상의 작은 섬 하나까지라도 다 다녀 보았다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로렌 커닝햄이 강조하는 분명한 확신이 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귀하게 여기는 나라와 민족마다 모두 다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받았다는 거다. 이웃 나라인 일본만 빼놓고 말하지만 일본도 사실은 우리나라보다 더 먼저 들어간 기독교 복음이 일본 사람 특유의 정직 문화와 함께 나라를 발전시키는 핵심 요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주변 국가들 중에서 일본, 중국, 몽골 등 그 어느 나라의 어느 민족이든 모두 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하시고 삼라만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은총을 믿는 민족으로 회개 하고 나아오도록 기도하며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이다. 

예레미야 51장 1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라고 했다. 또, 욥기 11장 7절에 보면,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고 했다. 시편 147편 5절에는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고 했다. 이 모든 말씀들이 강조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의 믿음생활이란 하나님의 그 신묘막측 하신 창조의 섭리와 지혜로우심과 명철 앞에서 잠잠히 주를 믿고 따르고 경배하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능력과 명철이 한이 없으신 여호와.
몽골은 어디에 가나 소, 양, 염소, 말과 같은 짐승이 많아서 인지 파리도 많다. 비행기 안에도 파리가 함께 날아 들어와서 날아다니는 걸 보았다. 자동차에는 말할 것도 없다. 파리가 공중을 날수는 있지만 감히 어떻게 수천 미터 상공을 스스로의 힘으로 날수 있겠는가. 그러나 파리가 비행기에 타는 손님의 잔등이나 어깨에 살짝 붙어서 타면 아무리 감식기로 식별해도 일순간에 승객의 몸에 붙어서 비행기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비행기 삯도 내지 않고 먼 다른 나라에 까지 가서 내릴 수 있게 된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내 힘만 의지하면은 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의 전능하신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능력과 그 힘을 의지하여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무한한 능력을 인간에게 공급해 주시는 것이다. 인생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소년이라도 피곤하고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질 때가 있다. 오늘 말씀 그대로다. 그러나 오직 여화와를 앙모하는 자는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인생들에게 권능을 주시고, 새 힘을 주시길 기뻐하시는 전능하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몽골은 그렇게 지하자원이 많은 나라라고 한다. 땅 위에는 온갖 짐승들이 널려 있고 주인이 잠을 자고 일어나는 동안에고 그 새끼들이 얼마나 번성해 가는지 모른다. 가는 곳마다 수백 수천의 양떼, 염소 떼가 야곱의 받았던 축복의 양과 염소 떼처럼 많다. 땅 위에는 온갖 짐승, 땅 아래에는 온갖 광물이 넘쳐 난다. 그런데 왜 그렇게 가난하게 살까. 물론 국제적으로 외교적으로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직 하나님의 말씀이 골고루 들어가지 못해서 그렇다. 이제 300만도 채 되지 않는 저들의 땅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저들의 삶의 태도를 바꾸고 변화 시켜 나가기 시작하면 은혜 받은 백성이요 축복 받은 백성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복음이 역사하기 시작하면 변하게 될 것이다. 

지난 20세기의 소련 공산주의가 몽골의 남성들을 우민화 하는 정책으로 인하여 몽골 남성들의 눈동자의 동공이 풀려 버리고 술에 취하는 밤 문화에 젖어서 긴긴 세월을 살아오다 보니 온 나라가 무기력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몽골의 구리 매장량은 세계 매장량의 40%정도라고 한다. 무궁무진한 지하자원 중에는 석유, 석탄, 흑연, 인산염, 유황, 인화암, 다양한 소금, 텅스텐, 몰리브덴, 철, 구리, 납, 금, 은 및 기타 희귀 금속들이 몽골의 엄청난 재산이다. 또한 석류석, 벽옥, 옥, 자넷, 황옥, 면옥, 마노, 남동광 등 보석 등도 적지 않다. 이 외에도 화강암, 석회석, 대리석, 석고, 현무암 및 기타 건축 자재들이 발견되고 있다. 몽골의 지형적인 구조에 의하면 몽골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대륙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유로 몽골에는 광물 자원이 매우 풍부하며 양질의 석탄, 구리, 몰리브덴, 형석, 금, 철광석, 납, 인산염, 주석, 우라늄, 텅스텐 등이 산출된다. 약 80여 개의 각종 광물이 6000곳 이상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땅 위의 짐승 떼와 땅 속의 광물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아는 믿음이다. 하나님을 떠난 민족은 역사에서 그 힘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 앞으로 진실하게 회개하고 돌아오는 민족은 복을 받았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뉘어 있던 때에 남 유다의 14대 임금인 므낫세는 55년 동안을 하나님을  멀리 떠난 불행한 임금으로 살았다. 그의 아들 아몬이 임금이 되었지만 2년 만에 신복들에게 암살되고 말았다. 아몬 역시 그 아버지 므낫세의 대를 이어서 하나님을 멀리 떠난 우상 숭배와 악한 정치를 했다. 그러나 아몬의 아들 요시야는 달랐다(대하34-35장). 하나님의 성전에서 율법 책을 발견하고 유월절을 회복하고 앗수르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애를 많이 썼다. 하나님께로 돌아 와야 한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앙망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능력 있게 새 힘을 얻는 생활의 시작이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을 한 시간 가량 둘러 볼 기회를 가졌다. 주라가 공원이란 영화에서 보던 그 거대한 공룡의 화석을 발견해서 뼈를 조립해서 세워 놓은 엄청난 크기의 공룡의 모습들을 보면서 지구의 오랜 역사와 함께 그 당시에 활동하던  초식 공룡과 육식 공룡을 비롯한 각종 희귀종의 동물의 화석들을 통해서 자연의 역사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었다. 그 한 층에서 거대한 독수리의 박제를 보았다. 정말  큰 독수리였다. 한쪽 날개가 1미터 50센티는 넉넉히 되어 보였다. 두 날개를 펴면 땅에 그림자가 질 정도의 큰 독수리였다. 저는 그 독수리의 거대한 박제 앞에서 오늘 말씀인 이사야 40장 31절 말씀을 잠시 묵상하였다. 아마 이사야가 보았던 그 독수리도 이런 거대한 독수리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이 먹이를 구하며 저녁 석양빛에 재잘대며 떼 지어 날아다니는 참새 떼와 같은 인생으로 살아가길 원하시질 않는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이 독수리와 같은 인생이 되길 원하신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40:30-31) 

참으로 좋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신다.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해 주신다. 인도 선교의 선구자였던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1761년 영국의 노텀턴 근교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특별히 할머니를 통해서 사랑, 경건, 예배 출석, 성경 읽기 훈련을 철저히 받으면서 자라났다. 16살에 그는 구두 만드는 일의 견습을 받던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반명하게 믿게 되었다. 어느 날 국가 기도회에 참석했다가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13:13)는 말씀에 큰 은혜를 받고 평생 선교사의 서원을 하게 되었다. 학교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십대에 이미 6개 언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었다. 나중에 그는 인도의 캘커타에 있는 폴트 윌리엄 대학에서 동양 언어학 교수가 되었다. 세람포르에 대학의 출판부는 300백만 명의 사람들을 위해 성경을 40개의 언어와 방언으로 번역했다. 그는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위해서 수십 개의 학교를 세웠다. 그는 인도의 가정, 종교, 교육, 문화, 예술, 언론, 경제, 정치의 변화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탁월한 선교의 사람이었다. 윌리엄 케리! 그는 실로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과 같은 여호와 하나님만 앙망하고 소망하는 믿음의 거장이었다. 오늘 날까지 우리에게 매우 잘 알려진 유명한 말이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같은 강조를 빼어 놓지 않았고 스스로 그런 자의 삶을 살았다. 무슨 일을 만날지라도 오직 여호와만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의 주인공이 모두 다 되어야 하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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