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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지 않는 기도(골1:9-17) 2017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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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7-06-25 21:44 조회 18,181 댓글 0
 
그치지 않는 기도(골1:9-17)             2017. 6. 25

오늘은 6. 25 67주년이 되는 주일이다. 1950년 6월 25일도 주일이었다.
6·25전쟁(1950. 6. 25- 1953. 7. 27)은 3년 1개월간 계속되었다.
 
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민간인을 포함하여 약 450만 명에 달한다.
그 가운데 남한의 인명피해는 민간인 약 100만 명을 포함한 약 200만 명이며, 공산진영의 인명피해는 100만 명의 민간인을 포함하여 약 25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군인 전사자는 한국군이 22만 7,748명, 미군이 3만 3,629명, 기타 UN군이 3,194명이며, 중국인민지원군과 북한군의 정확한 전사자수는 아직까지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다. 전쟁 기간 중 한국은 43%의 산업시설과 33%의 주택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대하여 아는 것은 직접 저들을 만나 보아서가 아니다. 단지 전해들은 내용을 갖고 감사하며 기도한 것이다. 1장 4절에 보면 “들었음이요”하고 들은 내용에 대하여 칭찬하고 감사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모든 성도들 간에 서로에 대한 사랑을 들었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여전히 들은 바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9절에,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라고 말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대하여 들은 후에 기억에서 잊어버린 것이 아니다. 그는 들은 그 날부터 골로새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해 왔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는 어떤가. 누구에게 위하여 기도하겠다고 말로는 약속하고 실제 기도 생활 중에는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시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5)
무슨 말씀인가. 우리가 누군가를 위하여 잊지 않고 끊임없이 그치지 않는 기도를 드리는 것은 상대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심정을 갖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무슨 중보 기도를 드리며 그치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고 했는가. 이번 토요일이 7월 1일이다. 우리는 해마다 7월이 시작되면 새벽 마다 모여서 열흘씩 기도하고는 하였다. 벌써 여덟 번째 헐몬산 새벽 기도회가 시작된다. 올해도 열흘 동안 계속될 헐몬산 새벽 기도회에 그치지 않는 기도를 드렸던 사도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새벽마다 모여서 함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기도회 기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치지 않는 사도 바울의 기도 내용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대개의 세상 사람들은 제 뜻대로 살아간다. 제 좋은 소견대로 살아가길 원한다. 남들이 나에 대하여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싫어한다. 사사시대가 그런 시대였다. 사사기 마지막인 21장 25절에 보면,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고 하였다. 사람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자기 좋은 대로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며 자기 주관과 자기 욕망과 자기감정을 따라서 살아가는 모습을 말하지 않는가.
창세기 6장에 보면 노아의 때에도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갔다. 노아 홍수 시대 직전의 세태를 성경은 무어라고 말하고 있나.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6:5)라고 했다.
세상이 그때만 악한가. 요즘은 어떤가. 층간 소음 문제로 위층에 사는 사람을 쫓아 올라가 살해한 30대 남자에게 30년 형이 확정되었다. 이게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이웃 간에 사람을 죽인다. 그 결과가 자신에게 어떤 벌로 주어질지를 몰라서 그렇게 행동하겠는가.
저녁때에 두 천사가 소돔 성을 찾아 갔다. 성문에 앉아 있던 롯이 두 천사를 영접하고 지극히 정성스럽게 대접하였다. 집 안에 모셔 드리고 씻을 물을 주고 식탁을 차렸다. 무교병을 굽고 융숭하게 저녁을 대접했다. 그런데 소돔 성에 낯 설은 남자들이 왔다는 소문을 들은 소돔 성 남자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여 들어서 롯의 집을 에워싸고 소돔 성에 들어 온 두 남자를 이끌어 내라고 아우성이었다.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고 소리쳤다. 이 말은 그 밤에 그 낯 설은 두 남자를 불러내서 동성연애 하겠다는 말이다.
당황한 롯이 문 밖의 무리들에게 나갔다. 뒤로 문을 닫으며 무리를 설득하려 했다.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내게 결혼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으니 차라리 내가 두 딸을 너희에게 이끌어 내겠다.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행하지 말라.” 소돔 성 남자들은 막무가내였다. “너는 물러나라. 너도 우리 성에 들어 와서 거하는 주제에 우리의 법관이 되려고 하느냐”고 말하며 그들은 롯을 밀치며 롯의 집의 문을 부수려고 달려들었다.
그 때 집 안에 있던 두 천사는 급하게 손을 내 밀어 롯을 집 안으로 끌어 들였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두 천사는 집 밖에 있는 무리의 노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했다. 그들은 문을 찾느라 더듬거리며 헤매기 시작했다. 롯의 살던 그 당시의 소돔 성의 실상을 보게 하는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두 천사들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비와 같이 유황과 불을 내리셔서 소돔 성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을 전했다. 롯은 부랴부랴 두 딸과 결혼하게 될 두 사위 감들에도 이 사실을 전했다. 그러나 이 두 사위 감들은 장차 장인 될 롯을 통해 전해지는 천사의 말을 농담으로 여기고 따르지 않았다. 롯 부부와 두 딸은 소돔 성을 빠져 나갔고 하늘에서는 비와 같은 유황과 불이 내려와서 소돔 성과 고모라 성을 불태웠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두 천사의 말을 어기고 뒤를 돌아  보았고 그녀는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다. 그 말씀을 계속 읽다 보면 중요한 말씀이 나온다.
창세기 19장 29절이다. 한 번 찾아서 같이 읽자.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우리가 누군가를 위하여 그치지 않는 중보의 기도를 드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도하면 주께서 들으신다. 기도하면 주께서 응답하신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Call to me and I will answer you and tell you great and unsearchable things you do not know.')(렘33:3) 그 앞 절에 보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This is what the LORD says, he who made the earth, the LORD who formed it and established it -- the LORD is his name:)라고 했다. 그렇다. 이는 사람의 말이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해 주신 말씀이시다. 왜 기도해야 하는지를 하나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교훈이시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악한가. 컴퓨터 앞에서 사이버 주식 거래를 하던 남자가 인터넷을 수리하려고 자기 완룸을 찾아 온 수리공에게 태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흉기를 휘둘러서 죽였다. 경남 양산에서는 아파트 외벽에 페인트 공사를 하며 핸드폰으로 시끄럽게 음악을 듣는 것이 낮아 잠을 청한 주민에게 방해가 된다고 시비를 걸던 중에 아파트 12층 높이의 외벽에 직경 1.8cm 밧줄에 몸을 매달고 작업 중이던 인부를 지탱하고 있는 줄은 옥상에 올라가서 공업용 카터 칼로 끊어서 추락사하게 했다. 왜 세상이 이렇게 악하게 돌아가는가. 600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한 히틀러만 악한가. 하나님께 제사 드린 후에 동생의 제사는 받고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하나님 앞에서의 불만을 형 가인은 동생 아벨을 쳐 죽이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다. 이와 같은 인간의 악의 뿌리가 아담의 가정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깊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가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라고 기도한다고 했다.
그렇다. 신앙으로 살아간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이 판단, 이 결정, 이 말, 이 행동, 이와 같은 일상생활 속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그 대답을 찾아 가는 신앙인의 모습이 있느냐는 말이다. 사도 바울은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지혜와 총명의 바탕을 신령한 것에 두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제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지혜와 총명을 의지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는 지혜와 총명은 그런 정도의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근거한다. 이는 모든 지혜와 총명이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주어지는 산물이라는 강조이다.
사도 바울은 언제나 모든 성도들이 언제 어디에서 살아가든지 이와 같이 성령의 신령한 지혜와 총명 가운데 살아가기를 소원하였다. 고린도 전서 12장 1절에 보면,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라고 말했다. 여기서 신령한 것이란 영적인 것 즉 성령에 관한 것이다.
이전 교회 사역 때에 대학교수인 새 가족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믿어 보려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려 하지만 잘 받아드려 지질 않고 믿어지질 않는다고 고민을 털어 놓았다. 나는 그와 신앙적인 대화도 많이 하려  하였지만 나중에는 리 스트로벨(Lee Patrick Strobel, 1952-)의 <특종 믿음 사건>(The Case for Faith)이란 책도 선물해 주고 정독할 것을 권하고는 하였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나게 말했다. “목사님 이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제는 제가 성경의 모든 말씀들이 일일이 다 믿어 질 뿐만 아니라 요즘 나의 일상생활 중에도 하나님의 살아 도우시는 손길이 느껴집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하심도 그 때 그 때마다 실감나게 깨달아 집니다.”하며 신이 나서 자신의 신앙생활의 변화와 활력 있는 믿음에 대하여 간증하는 말을 들어 본 기억이 새롭다.
<특종 믿음 사건>, <예수는 역사다> 이란 책을 쓴 리 스트로벨은 예일 법과대학을 졸업한 노련한 신문기자다. 그가 추적해가는 예수의 신성에 대한 최고의 변증서가 바로 이 책이다. 그는 역사상 가장 흥미진진한 사건 즉 예수의 죽음과 장사지낸 이후의 삼일 그리고 부활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여정을 소설보다 더 흥미 있게 추적해서 책을 썼다. 자기 자신이 무신론자에서 신앙인이 되기까지 자신의 신앙여정을 털어 놓았다. 시카고 트리뷴지의 법률 담당 기자였던 리 스트로벨은 케임브리지, 프린스턴, 브랜다이즈 같은 대학의 박사들로 구성된 각 분야 13명의 권위 있는 전문가들의 반대 신문을 총동원해서 예수의 탄생, 죽음, 부활 승천 사건을 변증해 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믿어지지 않던 예수 사건이 믿어지고 증거하는 예수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이 책은 <더 케이스 포 크라이스트>(The Case for Christ)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 영화의 특징은 흔한 예수 관련 역사 영화 중의 하나가 아니라 책의 내용이 그러하듯이 예수의 생애를 불신자의 눈으로 역 추적하여 예수의 탄생과 삶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역사성을 입증하는 변증학적인 내용의 영화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 가는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 -- 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롬12:2)
세상을 바람 부는 대로 수양버들처럼 되는 대로 흔들흔들 살아가지 말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알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김일성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남한을 향해 쳐들어 내려 올 때에 전쟁을 벌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고 전쟁을 시작했겠는가. 아간이 자신이 아이 성 전투 현장에서 시날 산의 외투를 훔쳐 감추고 금 덩어리와 은 덩어리를 감출 때에 그런 행동들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판단하고 그렇게 했겠나. 사울 왕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겨서 사무엘 선지자를 무시하고 그렇게 교만하고 어리석게 불순종하는 행동을 하였겠나. 가롯 유다가 예수를 배반하고 팔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알고 그런 행동을 했겠나. 아니지 않은가. 그러면 대답은 분명해 진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알아 가는데 영적 지혜와 총명을 총 동원하고 집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도 바울의 골로새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그치지 않는 기도의 첫 내용은 그것이었다.
“하나님 골로새교회의 성도들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해 주십시오.”
 
 
 
주께 합당하게 행하는 것.
사도 바울의 그치지 않는 기도 제목 중의 또 하나는 “주께 합당하게 행하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울의 기도 내용에 그런 기도 제목이 자세하게 담겨 있다.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게 해 주세요.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해 주세요.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해 주세요.
하나님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해 주세요.
기쁨으로 모든 고난을 견디고 오래 참을 수 있게 헤 주세요.
그렇다. 오늘 날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매 순간 범사에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고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라고 찬양하지 않나.
그렇다면 그런 삶을 하나씩 하나씩 실천해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 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겸손히 내 마음 드립니다. 나의 모든 것 받으소서.
나의 맘 깨끗케 씻어 주사 주의 길로 향하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우리가 이처럼 모여서 끊임없이 예배드리고 계속하여 기도하고 늘 주님 앞에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이 아름답고 좋은 모습이다. 그러나 예배를 마치고 세상에 나가서 살아가는 일주일 동안의 매 순간마다 범사에 주님의 기쁨이 되는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살았으나 자기만 위하고 자기 배만 신처럼 섬기다 이 세상을 떠났다면 누구 후대에 그런 이들을 주께 합당하게 행하며 살아다 간이들이라고 하겠는가.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 1850-1927)같은 이를 보라. 월남 이상재는 1887년에 박정양이 초대 주미공사관으로 미국에 갈 때에 그는 37살에 1등 서기관의 직책으로 동행하였다. 그 때 그가 둘러 본 미국이란 나라는 서구 문명과 국제 정세에 눈을 뜨게 해 주었다. 1902년 6월 정부의 무능을 규탄하는 상소(上疏)를 올렸다가 국체개혁의 음모를 꾸몄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당하였다. 그 때 아들 승인(承仁)도 함께 체포되어 부자간에 심한 고문을 당했다.
이상재는 옥중에서 기독교를 접하게 되어 53살 때인 1903년 기독교 신자 되었다.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국사범들이 풀려 날 때에 함께 석방되었다. 그 후에 연동교회에 입교하고 신앙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황성 기독교청년회(YMCA)에 가입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 나라가 어수선하던 때에 고종의 부탁으로 의정부참찬에 임명되고 YMCA 교육부위원장 직도 맡았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기독교 신앙운동과 교육운동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YMCA를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청년 운동에 앞장섰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배후인물로 활약하다가 검거되어 3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김활란, 김필례(金弼禮)등이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YWCA)를 만드는 것을 적극 후원했다.
고당(古堂) 조만식(曺晩植, 1883-1950)도 마찬가지다. 그는 8살 때부터 한학자 장정봉의 문하에 들어가 한학을 배웠다. 16세 때부터 상업을 시작했는데 포목상과 지물상을 경영해 이미 20대 초반에 상당한 재산을 모으고 사업가로 이름을 날렸다. 23살 되던 해인 1904년에 친구이며 동업자였던 한정교의 전도를 받고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이듬해에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평양의 숭실중학교에 입학해서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졸업 후에 일본 도쿄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 입학해서 3년간 유학하였다. 거기서 인도 간디의 무저항주의와 민족주의 사상을 배웠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독립운동의 거울로 삼기로 결심했다. 나라를 살리는 길은 실력을 키우는 길 밖에 없다고 여기고 한일 합방 후에 일본 명치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준비했지만 길이 열리지 않았다. 귀국해서 남강 이승훈을 만나 그의 초빙을 받고 정주의 오산학교 교사로 취임해서 젊은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후 오산학교 교감과 교장을 지냈다. 1919년 2월에 3·1운동을 준비하기 위해서 오산학교 교장 직을 사임하고 총력을 기울여서 젊은이들을 위해서 민족교육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3·1운동 직후 붙잡혀서 1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평양 감옥에 갇혀서 다음해 1월까지 감옥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다시 오산 학교 교장, 숭실학교 강사, 평양 기독교청년회(YMCA) 총무 직을 맡아서 1932년까지 활발하게 사회 운동과 독립 운동을 펼쳤다. 1932년, 49살 때에 평양 산정현교회의 장로가 되었다. 1922년 오윤선과 함께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하고 회장이 되어 국산품 장려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세상 사람들은 그를 '조선의 간디'라고 불렸다. 조선일보사 사장에 취임해 민족 언론의 방향을 잡아 나가는데도 힘썼다. 일제 말기에는 산정현교회가 신사참배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폐쇄 당하자 낙향했다. 해방과 함께 평안남도 건국준비위원회·인민정치위원회의 위원장으로 활약했다. 같은 해 소련 군정청(軍政廳)에서 북조선 인민정치위원회를 설치하고 그에게 위원장직을 제안했다. 그러나 소련의 한국공산화정책인 것을 알아채고 이를 거부했다. 민족주의자들을 결집해 조선민주당을 창당하고 당수가 되어 공산당을 반대하고 동시에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 반대운동에 앞장섰다. 결국 그는 소련군정에 대한 비타협적인 태도와 신탁통치 반대로 인해 1946년 1월 5일 이후 평양 고려 호텔에 감금되었다. 제자들은 조만식 에게 남한으로 월남할 것을 권했지만 끝까지 거절하다가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 10월 18일경에 공산당에 의해 학살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며 살아가길 원하는 골로새 교인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그치지 않는 기도 내용이 무엇인가. 다시 반복하여 골로새서 1장 10-11절을 보자.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게 해 주세요.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해 주세요.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해 주세요.
하나님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해 주세요.
기쁨으로 모든 고난을 견디고 오래 참을 수 있게 헤 주세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
골로새서의 앞부분의 말씀이 사도 바울의 감사 기도의 내용이듯이 골로새서 1장 12절에 나오는 중보 기도의 내용 또한 감사하는 기도이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1:12)
사도 바울은 무엇을 감사한다고 했나.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골로새 교회의 구성원이 된 이방 교회의 성도들조차도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한다고 했다.
이게 무슨 내용인가. 그렇지 않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의 형편을 뒤 돌아 보면 누가 저들을 바로의 압제로부터 끌어내어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고 출애굽하게 했나. 광야  40년 동안 20살 이상의 남자만도 60만 명이 넘는 그 많은 백성들을 누가 광야에서 먹이고 마시게 주었나. 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단 건너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이끌었나. 누가 여리고 성을 창과 칼과 활을 사용하지 않고 점령하게 하였나. 누가 헤브론과 누가 12지파에게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멸하고 하나님의 성막을 옮겨 가는 성막 중심의 민족으로 자리 잡게 해 주었나. 누가 다윗을 왕 삼아 그렇게 하나님을 잘 섬기는 왕 되게 하셨나. 다윗이 그렇게도 성전을 아름답게 지어 봉헌한 마음을 갖게 한 것이 누구의 은혜인가. 돌아보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나. 뿐만 아니라 이미 광야 생활 중에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과 언약을 확증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한 속죄 제물이 되게 해 주신 구원의 은총이 얼마나 크고 감사한 일이냔 말이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이란 이 표현이 기가 막힌 축복의 말씀이며 감사의 말씀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 우리를 한 영혼 한 영혼 어둠 가운데서 불러 내셔서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것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일이냔 말씀이다.
히브리서 9장 15절에 보면,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다.
성도된 우리는 노예 상태의 히브리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서 언약 백성의 열매를 거두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이 이방인인 우리들도 한 사람씩 죄악된 세상에서 불러 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그 풍성하신 열매를 누리는 자로 불러내시고 자녀 삼아 주신 것이다. 할렐루야. 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총이며 축복인가.
13절부터 23절까지는 그치지 않는 중보 기도를 드린 사도 바울이 감격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과연 성도된 우리들에게 있어서 어떤 분인가. 누구신가를 변증하는 주옥같은 말씀이다. 그 남은 내용은 헐몬산 기도회 첫날 새벽에 묵상하도록 하겠다.
다만 13절부터 17절까지를 함께 읽도록 하자. 그치지 않는 기도 생활 가운데 응답의 간증이 풍성한 나날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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