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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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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기도(골1:1-8) 2017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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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7-06-19 23:56 조회 17,326 댓글 0
 
감사하는 기도(골1:1-8)                   2017. 6. 18


갈라디아 교회나 에베소 교회나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직접 선교 현장에서 전도하여 세운 교회이다. 그러나 로마 교회와 골로새 교회는 바울에게서 복음을 받아 들인 그 누군가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들이다. 골로새 교회는 누가 세웠을까. 물론 주님께 은혜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그 누군가가 세웠을 것이다. 1장 7절의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라는 내용을 보면 아마도 에바브라에 의해서 시작된 교회일 가능성이 제일 크다. 에바브라는 골로새서 4장 12절에 보면 골로새 출신이다. 빌레몬서 23절에 보면 에바브라는 사도 바울과 함께 옥에 갇힌 적도 있다. 골로새라는 도시가 에베소에서 160km 거리에 있는 상업이 발전했던 도시인데 골로새의 상인들 중에서 그 누군가가 사도 바울을 만나서 복음을 영접하고 골로새에 돌아가서 세운 교회가 아닐까하고 여기기도 한다. 아마도 에바브라가 그런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나라의 서상륜(徐相崙, 1848-1926)이 그런 인물이다. 그는 평북 의주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13살 때에 부모를 잃었다. 만주를 드나들며 홍삼 장사를 하다가 그 곳에서 31살 때에 장티프스에 걸려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그 때에 스코틀랜드 출신의 선교사 멕킨타이어를 만났다. 그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그 후에 로스 목사를 만나서 세례를 받고 그의 어학 선생 역할을 하였다. 그 뒤에 이성하, 이응찬, 백홍준 등과 함께 신약성경 누가복음을 번역하여 1882년에 발간하였다. 이는 1885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제물포에 도착하기 3년 전의 일로 기독교 한국 전래의 역사적인 일이다. 그 다음 해에 마태복음, 1887년에는 “로스번역성경”이란 이름으로 신약 성경을 모두 한글말로 번역하여 <예수셩교전셔>라는 이름으로 발간하였다. 그는 성경을 갖고 조선에 입국하다가 붙잡혀서 1883년에 의주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다. 거기서 복음을 받아들인 김효순의 도움으로 탈출해서 고향인 의주로 돌아 갔다. 동생 서경조와 함께 황해도 장연군 솔내 마을로 이사를 갔다. 거기서 교회를 세우고 전도 활동을 계속하였다. 솔내교회는 한국 최초의 교회이다. 그 4년 후인 1887년에 서울 세문안 교회를 세울 당시에 설립 교인 14명 중에서 13명이 서상륜의 전도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동생인 서경조는 나중에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었다. 서경조의 원 이름은 서상우이다. 그는 1907년에 평양 신학교 1기 졸업생이다. 길선주, 이기풍, 김익두 등과 함께 7명의 한국 최초로 목사가 된 이들 중의 한 사람이다. 황해도 장연과 옹진 등에서 샤프 선교사를 도와서 2년 동안 전도 목사로 일했다. 나중에는 언더우드가 세운 새문안교회에서 1910년부터 협동 목사로 일했다. 고양, 시흥, 파주 등지를 다니며 순회 전도 목사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나중에는 상해로 망명해서 조국의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로마 교회나 골로새 교회는 그가 직접 방문해 본 적이 없이 세워진 교회라서 애착이 더욱 컸다. 그러므로 로마서를 읽어 보면 복음의 주요한 내용들이 잘 정리된 것을 알 수 있듯이 골로새서도 또한 그러하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지, 교회란 무엇인지, 구원이란 무엇인지, 성도들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무척 소상하게 교훈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곁에 있는 디모데와 함께 골로새 교인들에게 문안하였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하였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이라고 불렀다. 이는 매우 중요한 표현이다. 그렇다. “성도들은 어디에서 살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된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다.” 여기서 중요한 강조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말씀이다. 성도는 피부색, 인종, 언어, 문화, 풍습, 신분을 막론하고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 된 자들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실한 자들이다. 신실하다는 말은 신앙과 인격 모두를 말하는 것이다. 믿음이 있고 믿음이 좋은 것 같은데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신뢰가 가지 못하면 신실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신실하다는 말은 모든 면에서 여러 가지 면에서 골고루 갖추어진 신앙인격을 말한다.

성도라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신실하다고 서로에게서 인정받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형제자매들에게 문안하고 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내용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로 인한 감사의 기도이다.  그 내용이 무엇인가.


믿음과 사랑의 소문.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그러한 감사 기도의 첫 내용이 무엇인가. 4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의 믿음과 성도들 간의 사랑에 대하여 들었기 때문이다. 믿음과 사랑은 신앙생활의 두 기둥과 같다. 여기서 말씀하는 믿음이란 단순히 인간적인 신뢰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성도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다. 또한 사랑도 인간적인 사랑의 차원이 아니다. 믿음에 바탕을 둔 거룩한 사랑 즉 아가페(agape)적인 사랑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이 믿음도 돈독하고 서로 간에 성도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믿음의 사람답게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좋은 소문을 듣고 감사하며 기도드리고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무엇인가. 자기 자신에게 질문해 보라. 내게 있어서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또한 성도들 간에 나는 어떤 마음가짐과 어떤 태도로 서로를 대하며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가 말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신 동안의 모습을 보라.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과 함께 가는 곳마다 각색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 쫓고 배고픈 무리들을 배부르게 먹이셨다. 바람과 풍랑이 이는 갈릴리 한 가운데서 불안에 떨고 있는 제자들의 곁으로 다가 가셔서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시니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졌다. 그와 같은 일들을 보여 주시면서 의심하지 말고 믿음 있는 자들이 되기를 기대하셨다.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리셨다. 어린아이를 품에 안으시고 천국에 대하여 교훈해 주셨다.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증거 하시는 사랑의 통로로서의 생을 사셨다. 예수님의 수많은 기사와 이적의 바탕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해야 하는 것도 믿음과 사랑이다. 신앙생활의 바탕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죄를 멀리하고 악을 경계하면서 사랑을 서로 간에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Henry Ford,1863-1947)는 80세 생일 잔치자리에서 이런 소감을 말했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나는 허황된 계획을 꾸민 적도 있었고, 실현 불가능한 꿈을 가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한 번도 불평을 하거나 의심하지도 않았고 언제나 나를 믿어주었습니다.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나를 믿어준 아내의 덕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가장 큰 기쁨 중의 하나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믿고 신뢰하기만 해도 남편에게 힘이 될 수 있다. 하물며 우주와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인생의 호흡을 주관하시며 섭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귀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믿음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가 말이다.

가족이나 친구나 주변 사람이 나를 믿어 주어도 힘이 되거늘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간다는 것은 주님도 나를 신실한 믿음의 자녀인 성도로 인정해 주시고 믿어 주신다는 든든한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서로 간에도 신뢰할 뿐만 아니라 서로 간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마음을 갖고 진심으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다. 스코틀랜드의 숲 속 한 동네에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 강아지는 너무도 더러웠고 못생겼다. 오랫동안 길을 잃고 헤맸던지 강아지는 굶주림에 거의 죽어 가고 있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강아지 목에 달린 이름표를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아마도 주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렵게 수고해서 그 강아지를 붙들었다. 그들은 이름표를 보았다. 그 개의 이름은 "밥스"였다. 그리고 그 밑에는 작은 글씨가 새겨 있었다. "나는 이 나라 왕에게 속했다." 사람들은 놀랐다. 왕의 강아지였던 것이다. 곧 경찰에 보고되었고 잘 보호되어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왕의 부부가 에딘버러 성에 휴가를 왔다가 그를 잃은 것이었다. 강아지는 왕궁으로 돌아갔고 무서운 숲속을 헤매던 악몽 같은 날들을 뒤로 하고 왕과 왕비의 사랑을 받으며 살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신실한 성도라는 점은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만날 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의 울타리와 보호하시는 은혜 가운데서 도울 자를 예비하시는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강아지가 왕에게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다. 강아지가 왕에게 무슨 대단한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다. 강아지는 왕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왕의 즐거움이요 왕의 기쁨이었다.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기대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교회는 성도들 간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서로를 향한 사랑을 끊임없이 나누는 곳이다.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소망.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늘에 쌓아 둔 소망” 때문이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성도들의 세 가지 요소이다. 성도인 우리가 아무리 믿음이 있다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간다고 하여도 주님을 향한 분명한 소망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그 믿음 생활은 단지 세상적인 선이나 인격 수양 정도 밖에는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진리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후에 성도들이 장차 누릴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쌓아 두고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생활의 모습인지 모른다. 

사도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고 말했다. 베드로 사도는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5:10)고 편지하였다. 

그렇다. 올림픽에 출전할 준비를 하는 선수들은 장차 다가 오는 세계의 선수들과의 경기를 위해서 지금이란 시간을 아껴서 사용하고 분명한 목표를 위해서 쓴다. 왜 그런가. 장차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순간을 마음속에 상상하며 아무리 훈련이 고되고 힘들고 지치고 어려워도 참고 이기고 견디는 것이다. 

성도들의 소망은 그 정도와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장차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 영광과 상급을 생각하고 현재의 고난과 시련과 질병과 역경과 환란을 극복하며 살아갈 줄 알아야한다.

우리가 늘 묵상하는 창세기의 요셉은 달랐다. 다니엘이나 그의 세 친구들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믿음도 달랐다. 저들은 장차 누리게 하실 하나님 안에서의 분명한 소망을 갖고 매 순간의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며 살아갔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믿음과 소망이 분명하였다. 

덴마크의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
1875)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미운 오리 새끼〉, 〈성냥팔이 소녀〉, 〈백설공주〉, 〈눈의 여왕〉, 〈벌거숭이 임금님〉, 〈인어공주〉등의 작가 말이다. 본래 글쓰기를 좋아하던 그는 열 한 살 되던 해 처음으로 희곡을 써서 마을의 여러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나 반응이 냉담하였다.어떤 이웃의 아주머니는 "이걸 글이라고 썼니?"라면서 핀잔을 주었다.안데르센이 크게 실망하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알렸을 때 어머니는 꽃밭으로 그를 데려 갔다. 그리고 “보아라. 아들아. 이제 막 돋아난 잎 새는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언젠가는 크게 자라 예쁜 꽃을 피우고 열매도 맺게 될거야.너도 마찬가지야.”라고 격려해주고 용기를 북 돋워 주었다.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의 내용은 대략 이런 것이다. 시골 아름다운 농장에 태어난 오리새끼들 중에는 유난히 크고 못생긴 한 마리 새끼 오리가 있었다. 그래서 모든 동물들로부터 구박과 멸시를 받다가 끝내 견디지 못하고 낯 설은 먼 길을 떠났다. 미운 오리 새끼는 사냥개를 만나 죽을 고비도 넘겨야 했다. 여기저기 떠돌던 미운 오리 새끼는 우연히 아름다운 새들을 보게 되었다. 한 번만이라도 저 아름다운 새들과 인사를 하고 싶었던 미운 오리 새끼의 바람은 온갖 어려움을 딛고 긴 겨울이 지났을 때 이루어졌다. 연못에 비친 미운 오리 새끼는 더 이상 못생긴 오리가 아니라 그렇게도 자신이 동경하던 아름다운 백조로 변신해 있었다.
영국 스코틀랜드 출시능로 아프리카 선교에 평생을 바친 데이빗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1813-1873)은 30년간 남부·중앙·동부 아프리카에서 펼친 그의 여행과 그리스도교 선교활동은 아프리카에 대한 서구의 태도에 전례 없이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지리적, 기술적, 의학적, 사회적 발견은 다양한 지식을 제공했다. 그는 진정으로 아프리카가 근대사회로 발전할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믿었다. 그런 의미에서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서의 유럽 제국주의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민족주의의 선구자였다. 그는 21살 때 의료 선교단이 되기로 결심하고 27살 때 아프리카로 떠났다. 이후 평생 아프리카 대륙을 다니면서 선교와 탐험에 힘썼다. 

그는 60살이 되어서 늙고 쇠약해졌다. 그러나 그는 나일강의 근원을 찾고 노예무역을 폐지하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병마로 1873년 5월 그는 오늘 날 잠비아에 해당하는 일랄라 지역 치탐보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 아프리카 하인이 그를 찾아냈을 때 그는 침대 곁에서 기도하는 것처럼 무릎을 꿇은 채 죽어 있었다. 그의 시체를 썩지 않게 보존하기 위해 심장과 내장을 제거한 뒤 아프리카 땅에 묻었다. 그 뒤 사람들은 9개월의 힘든 여행 끝에 그의 시체를 해안까지 운반해 영국으로 옮겨가서 성대한 빅토리아 풍의 장례식을 행했다. 1874년 4월 18일 데이빗 리빙스턴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었다. 그 해에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마지막 일지>( The Last Journals of David Livingston)가 출간되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그런데 유독 몹시 슬퍼하며 우는 노인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그는 과거에 데이빗 리빙스턴의 친구 윌리엄이었다. 친구가 아프리카에 선교하러 간다는 결정을 듣고 미친놈이라고 놀렸다. 데이빗은 아프리카 선교에 평생을 바쳤고 친구 윌리엄은 런던에 남아서 돈을 벌었다. 그는 큰 부자가 되었고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고 세계를 여행하며 살았다. 그는 늘 돈, 돈, 돈 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그는 여리고 성의 세리장 삭게오처럼 아무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 그가 옛 친구 데이빗 리빙스턴의 장례 장면을 지켜보며 후회하는 슬픔의 눈물을 흘린 것이다. 그는 “나는 소망이 없는 세상즐거움 만을 즐기며 살아 왔으니 내가 가장 불쌍한 자로다.”하며 울었다. 

나치 독일의 처참한 유대인 수용소에 살아남아 자유의 몸이 된 빅터 프랭클(Viktor Emil Frankl, 1905-1997) 박사는 <삶의 의미를 찾아서>라는 그의 책에서 수용소의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마음으로 포기한 사람은 몸도 곧 쇠약해졌다. 그러나 소망을 가진 사람은 어려운 처지에 상관없이 자신은 물론 절망에 허덕이는 다른 사람들까지 격려하여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해져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는 빈 의과대학의 신경정신과 교수였다. 미국 인터내셔널 대학에서 의미요법인 ‘로고테라피’(Logotherapy)를 가르쳤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3년 동안 강제수용소가 있는 아우슈비츠에서 보냈다. 이때의 경험을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으로 엮어 1946년에 출판하였다. 그의 27권의 책들은 세계 19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팔려 나갔다.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 살아가는 날마다의 일상과 과정이 다르다. 더군다나 하늘에 소망을 쌓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은 매 순간마다 그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소망이 세상 사람들과 분명히 다르다.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의 제 1절 가사는 이렇다.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주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을 갖고 이런 찬양을 부르며 살아가는 이의 소망은 분명히 다르다. 

사도 바울은 “복음진리의 말씀”(the word of truth, the gospel)이란 반복적인 표현을 사용하였다. 복음, 진리, 말씀 이 세 가지는 한 가지의 내용을 세 가지로 구분하여 강조한 표현이다. 그렇지 않나. 복음이란 구약 성경에서 예언된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것이다. 진리란 세상의 초등 학문이나 거짓된 가르침들과 다른 상대적인 것이다. 말씀이란 성경에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선지자들과 복음 전파자들을 통하여 이 세상에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다.

이번에 집회한 교회의 목사님이 20년 전의 간증을 해 주었다. 대전 극동 방송국에서 방문해 달라는 초청을 받고 방송국에 갔다. 방송국에는 자기 교회의 미용실을 하는 여자 청년이 목사님과 의논도 하지 않고 방송국 편성 담당자를 만나서 미리 약속을 한 상황이었다. 미용실에서 하루 종일 일하다 보면 극동 방송을 틀어 놓고 여러 목사님들의 설교 말씀을 듣는데 자기교회 목사님의 설교만 방송에 안 나오는 것 같아서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매달 선교 헌금을 후원할 테니까 자기 교회 목사님의 설교도 방송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극동방송 설교는 오늘 날까지 20년을 이어 오게 되었노라고 간증하였다.

바울 사도가 감사 기도를 드리는 내용 중의 하나가 이것이다. 과거에 골로새 도시의 시민들 중에서 “복음진리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성도들이 하늘에 소망을 쌓아 두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의 좁은 베란다에라도 씨앗을 심거나 묘목을 심으면 상추나 들깨나 파나 쑥갓이 자라나는 것처럼 심으면 때가 되면 자라나게 마련이다. 어제도 구파발 역에 나가서 전도하는데 60대 중반쯤 되는 남자 분이 ‘여호와의 증인입니까’하고 물으면서 전도지를 받아 들었다. ‘아닙니다. 감리교입니다.’하고 대답했더니 ‘나도 감리교인입니다.’하고 대답하면서 지하철 입구 계단을 부지런히 내려갔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라는 말씀이 무엇인가. 에바브라를 비롯한 복음 전파의 사람들이 골로새 도시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유다에서 사마리아로, 사마리아에서 땅 끝까지 복음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였기 때문에 누군가가 복음을 영접하고 복음의 사람이 되게 된 것이 아닌가.

 
열매를 맺어 자라나게 하는 은혜.
예루살렘의 120여 성도들에게 임한 성령의 역사는 사방으로 번져가고 펴져 갔다. 지난 2,000년 동안 구라파로, 북미의 미국과 캐나다로, 호주와 아프리카로 번져  갔다. 태평양을 건너 온 복음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도 구석구석까지 전파되었다. 우리나라에도 도시와 농촌, 산골 마을과 어촌 마을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전파되었다. 

1907년에 평양 신학교를 졸업한 이기풍(1865-1942) 선교사는 그 다음해에 목사 안수를 받고 제주도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오늘 날도 배를 타고 제주도까지 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제주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간다는 것은 아주 먼 나라에 선교하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1908년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이기풍 목사는 1908년부터 전도를 시작하여 4년 후인 장로교 총회록에 의하면 제주도의 이곳  저곳에 410여명이 신자가 생겨났다. 1917년까지 많은 복음의 씨를 뿌렸다. 제주도 성안교회를 비롯하여, 금성, 삼양, 성읍, 조춘, 모슬포, 한림, 용수, 세화 등의 교회를 개척하였다. 전남 광주, 벌교, 여수, 제주도를 오가며 목회하고 순회 선교한 이기풍 목사는 1938년 일제의 신사참배에 완강히 거부하며 반대 투쟁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심한 고문을 받고 병보석으로 출감하였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1942년 6월 20일 우학리 교회 사택에서 사망하였다.

전도지의 표지 사진 중에 민들레 홑씨가 바람에 흔들리는 장면이 있다. 민들레 씨는 아주 미세한 바람만 불어도 바람을 타고 멀리 멀리 날아간다. 이번 우루무치에서는 선교사 부인들이 쌉 싸름한 민들레 나물을 무쳐서 식탁에 올렸다. <약용식물사전>에 보면 “민들레는 위장을 튼튼하게 하고 이뇨 작용이 좋으며 소화불량, 변비, 간장병, 황달, 천식, 부인병, 식중독에 좋다.”고 나와 있다. 
 
민들레의 작은 씨가 온 들판은 노란 꽃이 피어나는 민들레 들판을 만드는 것처럼 복음이란 그런 것이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 당하고 환란으로 인하여 흩어진 무리들 중에서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에 예수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다. 믿는 자가 많아졌다. 소문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가서 그 많은 성도들이 물로 세례 받은 것처럼 성령 세례 받기를 기도하고 안수하였다. 그 때에 성령이 모든 사람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였다. 빌립 집사 또한 성령의 충만함과 인도하심을 따라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 맡은 관리인 내시를 만나 이사야서의 말씀을 설명해주고 그의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목격하였다. 물가에서 그 관리인 내시는 세례를 받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복음을 사방에 전파하였다.  성령은 주의 사자를 통해서 빌립을 아소도의 여러 성과 가이사랴 지역에까지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도록 사용하였다. 

씨앗을 땅에 뿌리면 더러 좋은 땅에 떨어져서 100배로 열매 맺는 것처럼 복음 전파도 마찬가지다. 작은 겨자 나무 씨앗과 같은 것이 뿌리 내리면 자라고 자라나서 새들이 깃 들 만 한 큰 나무로 자라나는 법이다. 이것이 복음 전파의 원리다. 

이번에 대전에 집회한 교회도 32년 전에 상가 2층의 26평의 작은 공간에서 시작한 교회였다. 그런데 상가에서 옮겨서 넓혀 가고 땅을 마련하여 예배당을 건축하고 지금의 예배당과 교육관과 부속 건물들은 15년 전에 더 크게 건축하고 이전하는 교회의 800평 땅과 예배당과 교육관과 부속 건물 모두를 인수해서 리모델링하고 부흥해 온 교회였다. 

작은 불꽃이 큰 불을 일으키듯이 복음에는 온 천하에 전파되어 열매를 맺게 하는 성령의 힘이 있다. 골로새 교회가 탄생하고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이 믿음과 사랑과 소망과 은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한 인물은 7절에서 말씀하는 에바브라이다. 사도 바울은 에바브라에 대하여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다.
그는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다.

라고 칭찬하고 있다.

올해도 벌써 이렇게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골로새 교회의 중심에 에바브라가 있었듯이 우리도 에바브라처럼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성령 안에서 성도들의 사랑을 서로 전하는 복음진리 말씀의 역군으로 살아가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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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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