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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 바울(Ⅱ)(행21:1-7) 2018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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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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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8-07-30 22:33 조회 14,182 댓글 0
 
                           전도자 바울(Ⅱ)(행21:1-7)          2018. 7. 29


오늘 본문에는 무려 10곳의 지명이 나온다. 지도를 보면서 설명을 나누려고 한다. 

바울과 그의 선교 일행은 밀레도에서 밀레도의 신자들과 에베소 장로들을 초청하여 함께 시간을 갖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작별하였다. 사도행전에서 대하게 되는 바울 사역과 바울의 간증과 설교의 최고 백미와 같은 은혜로운 내용과 장면이 사도행전 20장 중 후반부에 담겨 있다. 역시 바울은 바울이다. 

21장의 본문은 ‘우리가’라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우리’라고 소개하는 그들은 누구들일까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다. 어떤 성경 해석학자는 '우리'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바울, 누가, 드로비모, 아리스다고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도행전 20장 4절에서 부로의 아들 소바더,  아리스다고, 세군도, 가이오, 디모데, 두기고, 드로비모에 대해 언급한 이후 지금까지 그들 중 누구와도 헤어졌다는 언급은 없다. 그러므로 저들을 포함한 적지 않은 수의 선교단 일행들이 바울 사도와 일정을 함께 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사도 바울 일행이 배를 타고 향한 곳은 고스Kos였다. 고스는 밀레도 남쪽 68km 지점에 있는 작고 비옥한 섬이다. 그 당시에 명주, 솜, 고약의 산지로 유명하였다. 그 곳은 의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B. C. 460-377)의 고장으로 이미 바울 이전 400년 전부터 규모가 큰 의학교가 있었다. 

거기서 이튿날 로도Rhodes에 도착하였다. 로도는 소아시아 대륙에서 19km 정도 떨어져 있는 온 섬에 장미가 만발하는 아름다운 섬이다. 그곳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 태양의 상징 ‘아폴로 신상’이 크게 서 있었는데 바울 당시에는 세월이 흘러서 신상이 땅에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다시 바다라Patara로 이동하였다. 베니게Phoenicia로 가기 위해서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야 했다. 베니게는 가이사랴 북쪽의 두로와 시돈 지역을 일컫는 명칭이다. 바울 일행을 실은 배는 지중해 상에서 왼편에 섬 구브로Cyprus를 바라다보며 수리아Syria로 향하였다. 두로Tyre에 상륙하여 거기서 일주일간을 머물며 배의 짐을 푸는 동안 기다려야 했다. 두로는 시돈과 함께 예수께서도 지적하셨듯이 대표적 이교도들의 도시로 번영과 우상숭배가 심한 부패(腐敗)의 표본이었다.(눅 10:13)

그런데 이미 바울 사도 당시에 두로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 있었다. 사도행전 11장 19절에 보면 스데반 집사가 순교 당한 후에 이어지는 핍박과 환난을 피하여 흩어진 성도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베니게와 섬 구브로와 안디옥에까지 이르러서 동족들인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는 하였다. 

사도 바울 일행은 두로에 사는 기독교인들을 찾아서 만났다. 찾았다는 표현은 두로에 예수를 믿는 신자들이 흔하지는 않았음을 입증하는 표현이다. 바울의 선교 일행은 두로에 살면서 예수 믿는 이들을 찾아서 만나 볼 수 있었다. 그들을 제자(弟子)라고 표현하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의 장래에 대하여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제안할 정도의 믿음 생활을 하던 이들이었다. 이미 여러 차례 사도행전은 사도 바울이 장차 겪을 고난에 대하여 예언하였다. 그런데 두로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고 따르는 제자인 성도들조차도 성령의 감동으로 한 결 같이 말하였다.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의 앞에는 큰 고난이 다가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사도 바울은 자신이 앞으로 겪을 고난과 환난에 대하여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감당할 결심과 신앙적인 각오가 되어 있었다.

두로 항구에서 배 짐을 다 하역한 후에 향한 곳은 돌레마이Ptolemais를 거쳐서 도착한 곳은 가이사랴Caesarea였다. 지난주일 말씀에 이어서 ‘전도자 바울’의 선교 행적이 교훈하는 말씀들을 좀 더 자세히 살피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한다. 


무릎을 꿇은 작별 기도(祈禱).
바울 사도 일행은 두로에 일주일간 머물러 있으면서 그곳의 제자들을 찾아서 만났다. 성도의 교제를 나눈 사도 바울 일행이 두로를 떠날 날이 다가 왔다. 일주일 만에 적지 않게 정이 든 두로의 신자들은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두로의 성문 밖 바닷가에게 까지 나아가서 바울과 그의 선교단 일행을 전송하였다. 5절에서 대하는 ‘처자와 함께’라는 표현은 성경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매우 소중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한 사도 시대에 어린이에 대한 언급은 그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역시 사도행전의 기록자인 의사 누가는 바울의 행적을 매우 꼼꼼하고 섬세하게 추적하여 다루고 기록한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두로의 제자들이 바울 사도와 그 선교일행을 전송할 때에 부인과 아들딸들까지 모든 가족을 총동원한 것을 보면 그 당시에 두로에 아직은 매우 적은 수의 신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바울과 선교 일행은 두로 항구의 바닷가에서 작별할 때에 그냥 서서 악수하고 헤어진 것이 아니라 둘러 앉아 무릎을 꿇고 함께 기도하였다. 우상 숭배가 심한 이방 도시에서 바울을 비롯한 기독교 신자들의 그런 행동은 예사로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사도행전 20장 36절에 보면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초청하여 옛날의 선교 현장의 추억을 회상하고 저들에게 바울 자신의 평소의 신앙관과 복음적인 기대를 전한 후에 작별할 시간이 되었다. 바울 사도와는 이렇게 헤어지면 이 세상에서는 다시 만나 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바울 자신도 앞날에 대한 그런 예감을 분명하게 하고 있었다.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하는 말로 작별을 고하던 밀레도의 해변가에서 바울과 그의 일행인 선교단과 밀레도의 성도들과 에베소의 장로들은 둘러 앉아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그리고는 서로 다 크게 울었다. 일일이 한 사람씩 사도 바울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그리고 몇 날 후에 일주일간 머물던 두로에서 만난 주의 제자들과 짧은 기간이지만 성도의 사귐을 가졌다. 잠시 몇날 만난 그 은혜와 사랑과 사귐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 작별하고 전송받는 순간이 다시 또 찾아 왔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이제 예루살렘을 거쳐서 고소를 당하고 붙잡혀 로마로 호송되어 가는 그 모든 선교 여정의 하루하루가 순교의 순간을 향해서 나아가는 엄숙한 순간이었다. 그걸 바울 자신도 잘 알았고 두로의 성도들도 익이 예감하고 있었다. 두로의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말한 내용이 우리에게 그런 정황을 교훈해 주고 있다.

그래서 두로의 많지 않은 제자들과의 사귐과 작별이 애틋하고 남다른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나.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예배드리고 또 한 주간을 살아가고는 하는 한 주간 한 주간이 모두 다 새롭다. 되 돌이 킬 수 없고 다시 찾아오지 않는 직선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여기면 매일 매일이 새롭고 진지하지 않나. 

어느 작가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오늘이란 시간은 어제 이 세상을 떠난 이들이 그렇게도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란 시간”이란 말이다. 

무릎을 꿇는 기도가 무엇인가.
예수의 기도 생활을 그린 성화 중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기도 장면이 있다.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기도하시던 기도 장면이다. 유월절 만찬을 끝으로 십자가를 지시던 날 새벽까지 밤새도록 기도하셨던 감람산의 기도는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핏방울로 변하는 기도였다. 예수의 겟세마네 기도는 자신의 생각을 접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였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구약과 신약 성경에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기도의 장면이 여러 번 소개되어 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 앞에서 무릎을 꿇나. 언제 어떤 경우에 무릎을 꿇게 되나. 생각해 보면 무릎을 꿇는 행위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사람이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리는 시간에 무릎을 꿇는 것은 얼마나 경건한 기도자의 태도인가.

창세기 12장부터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돌단을 쌓았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다. 그 제사라는 것이 곧 예배이고 기도이다.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돌단을 쌓고 제사를 드릴 때에 어떤 자세로 제사 드렸겠나. 

하나님 앞에 단을 쌓던 아브라함과 모리아 산의 제물로 드려지는 체험을 했던 이삭과 얍복강가에서 밤새워 기도하던 야곱 그리고 시내산에서 사십일을 머물며 하나님께 기도드리던 모세의 기도의 장면을 상상해 보라. 저들은 얼마나 간절하고 진지하게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고 기도드렸겠는가. 

다니엘 6장 10절에 보면 다니엘은 날마다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다리오 왕 때에 왕은 신과 같은 존재였다. 만일 왕 외의 그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절하거나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조서에 왕의 어인을 찍고 금령을 내렸다. 그런데 다니엘은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날마다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다.

다니엘은 자기 집의 윗방에 올라가서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날마다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그 말씀에 보면 ‘전(前)에 하던 대로’라는 표현이 나온다. 다니엘은 신앙생활을 하루 이틀 한 젊은이가 아니었다. 그는 유다가 망하고 예루살렘의 젊은이들이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서 포로로 끌려가기 그 이전부터 일찍이 기도생활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런 기도의 사람 다니엘을 사자 굴속에 던져 넣었다. 하나님은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고 다음 날까지 다니엘은 털끝 하나 상한 곳이 없었다. 다음 날 새벽 사자 굴속을 들여다 본 다리오 왕은 깜짝 놀랐다. 사자의 밥으로 온 몸이 물려 찢기고 뼈만 흐트러졌을 줄 알았던 사자 굴 안에는 다니엘이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다니엘 곁의 사자들은 순한 양 같은 모습이었다. 이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왕 다리오는 다니엘을 참소한 이들을 모조리 끌어 오게 하였다. 저들을 모조리 사자 굴에 던져 넣었다.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 다니엘을 다리오 임금 때 뿐 만 아니라 그 다음 임금인 바사 나라의 고레스 임금 때까지 존귀하게 들어 쓰셨다.

다니엘을 통하여 보여 주신 하나님의  기적을 본 다리오 왕은 온 나라에 조서를 내려서 하나님을 높였다. 다니엘 6장  26절부터 나오는 내용이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열왕기 상 18장에 보면 엘리야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기도의 선지자였다. 이스라엘 나라에 이미 비가 내리지 않고 이슬도 사라진지 삼년 육 개월이 되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땅에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는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땅에 엎드려 그의 머리를 두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였다. 그리고 사환을 바다 쪽으로 보내어 비 소식이 있는가를 알아보게 하였다. 아무리 기도하여도 비올 징조가 보이지 않았다. 엘리야는 사환에게 일곱 번까지 계속가라고 명령하면서 기도를 계속하였다. 사환이 순종하고 일곱 번째 나아가서 바다를 바라보았을 때에 바다 쪽의 맑은 하늘에 손만한 작은 구름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더니 하늘이 캄캄해 지고 큰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삼년 육 개월 만에 큰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 날 우리도 엘리야처럼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는 중에 이런 기적을 체험하고 응답받는 주인공으로 살아 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다윗이 범죄하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통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그 아들이 병들어 죽어 가고 있었다. 사무엘하 12장 15절에 보면 태어난 아들이 어쩌다 아픈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치셔서 심히 앓았다.”고 했다. 그 때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면서 땅에 엎드려서 밤새도록 기도하였다. 일주일을 그렇게 하였다. 왕의 곁의 연세 많은 신하들이 땅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 왕 다윗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다윗은 듣지 않았다. 다윗은 자신의 지난날의 범죄를 통회하며 땅에 엎드려 기도하고 또 기도한 것이다.

스코틀란드는 메리(Mary, 1516-1558) 여왕이 통치할 때 역사적으로 가장 어두운 시대였다.  영국의 캐톨릭 국가로 되돌리려 하였다. 종교 개혁가들의 반대가 거셌다. 핍박이 심했다. 피의 여왕이라고도 불린다. 종교는 부패했다. 도덕은 땅에 떨어졌다. 정치는 표류하고 있었다. 메리 여왕 자신이 불륜의 범죄를 저지른 소문이 온 나라에 파다하였다. 백성들은 우상숭배의 깊은 심연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처럼 캄캄한 민족의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땅 바닥에 엎드려서 기도하고 있었다.  
 
“하나님, 이 스코틀랜드를 구원해주시옵소서.
아니면 차라리 나에게 죽음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던 사람은‘존 낙스’(John Knox, 1513-1572)라는 종교 개혁자였다.  본래 존 낙스는 아주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이 개혁 운동을 하면서도 메리 여왕이 무서운 나머지 두 번 씩이나 도망을 갔다. 불란서로 도망을 가고 스위스로 도망을 갔다.  그러나 이 결사적인 기도와 금식하는 기도를 드리면서 존 낙스는 완전히 변하였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아주 담대한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반대로 이젠 메리 여왕이 기도의 사람 존 낙스를 두려워하기 시작 했다. 메리 여왕은 스코틀랜드의 전 군대보다도 존 낙스의 기도를 더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마침내 존 낙스는 그의 기도와 그의 투쟁을 통해서 민족을 재건시키고 개혁하는 위대한 일을 성취하는데 불을 붙여 나갔다. 
  
세계 제 2차 대전 중에 윈스턴 처칠(Sir Winston Churchill, 1874-1965)경과 영국 의회가 함께 모여서 매우 중요한 안건을 심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앞자리의 의자에다가 머리를 숙이고 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의회의 의장이 못마땅해 하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 일국의 수상이 한 나라의 중대한 의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어떻게 졸고 계십니까.”
 
그러니까 처칠이 갑자기 눈을 뜨더니 하는 소리가 “졸다니요? 나는 지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의장이 말하기를 “아니 하필이면 이런 때 여기에서 기도하십니까” 그때 처칠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 이때 기도하지 않는다면 언제 기도하란 말입니까. 나라의 중요한 일들이 의논되고 있는 바로 이 자리가 기도하는 자리가 될 수 없다면 어디에서 기도하란 말입니까.”

무릎을 꿇는 기도는 우리가 주께 기도할 수 있는 최고로 겸허한 기도의 자세이다. 


서로를 향한 문안(問安).
사도 바울과 그 선교 일행들은 두로를 떠나 돌레마이에 머무는 하루 동안에도 형제들은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두로에서 만난 성도들을 ‘제자’들이라고 한 반면에 돌레마이에서 만난 성도들을‘형제’라고 부른 것은 훨씬 다정다감하게 다가온다. 맞다. 우리는 주 안에 형제자매들이다. 이 세상에서 피를 나눈 형제자매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형제자매들이다. 그러므로 주 안에 형제자매된 우리들은 언제나 서로의 신앙의 형편에 대하여 문안하여야만 한다. 성도들 간의 문안이란 다른 것 묻고 다른 것 궁금해하고 다른 것 관심 갖는 것 아니다. 로마서 12장 15절 말씀처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주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서로에게 문안 하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마태복음 25장의 예수의 비유 말씀에 나오는 오른 편의 양과 왼 편의 염소의 비유가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예수께 칭찬을 들은 의인들이 주께 물었다. “언제 우리가 주께 그렇게 한 적이 있습니까”그 때 예수께서 대답해 주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맞다.“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34-36) 여기서 말씀하시는 주께 한 것은 주께 한 것이 아니라 소외되고 버려진 자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갖고 한 것이었다. 

우리는 가정과 교회와 세상 중에서 주님을 향한 그런 마음가짐으로 서로에게 문안하며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대(代)를 이어가는 신앙(信仰).
돌레마이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떠나서 도착한 곳은 가이사랴였다. 가이사랴는 돌레마이에서 남쪽으로 60km정도 떨어진 먼 거리이다. 로마 치하에서는 유대 지방의 행정 장관이 거주하는 정치적 수도였다. 그 곳은 헤롯에 의해서 바닷가에 화려한 시설들이 건설되어 있었다. 아우구스투스(Augustus)를 높이기 위하여 가이사랴라는 이름도 붙여 불렀다. 그곳은 거대한 항구 도시인데 바울은 그의 선교 여행 중 그 곳에 세 번 째로 방문한 것이다.

바울과 선교 일행은 그 곳에서 빌립 집사를 만났다. 빌립은 스데반을 비롯한 일곱 집사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빌립 집사는 사도행전 8장의 사마리아 선교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사 광야에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 맡은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후에 그 곳 가이사랴에 까지 가서 지내며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네 딸들이 있었는데 그 네 딸 모두가 선지자였다. 전도자 빌립과 그의 네 딸들의 이야기는 온 가족이 대를 이어 복음으로 살아가는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을 교훈해 주고 있다. 이 무더운 여름 우리의 양가와 일가친척 그리고 나의 주변의 모든 영혼들이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주께로 돌아오는 온전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도록 쓰임 받는 우리 각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런 복된 주인공의 가정이 모두 다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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