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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와 열매(요15:1-9) 2017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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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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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7-09-04 21:21 조회 18,302 댓글 0
 
                     포도나무와 열매(요15:1-9)               2017. 9. 3
 
민수기 13장에 보면 모세 때에 가나안을 정탐하기 위해서 보냄 받았던 각 지파의 대표들이 에스골 골짜기에서 풍성한 포도송이를 취했다. 두 사람이 막대기에 꾀어 어깨에 메고 석류와 무화과를 갖고 모세와 아론에게로 돌아 왔다. 모세에게 돌아 온 그들은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민13:27)하고 보고하였다. 광야와 비교하면 그 당시 가나안의 포도 열매나 넘쳐 나는 석류와 무화과는 풍성함의 상징이었다. 그들을 보낼 때에 모세가 명한 것은 “그 땅의 실과를 가져 오라.”는 것이었다. 포도나무를 비롯한 과실나무는 열매로 말하는 것이다. 수확철에 열매가 풍성한 포도나무와 다 시들고 말라버린 포도나무를 상상해 보라.
 
화성시는 수원시 곁에 바다를 끼고 광활한 면적의 들판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서울 시 면적의 1. 4배이다. “현대기아자동차 연구소”가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과거와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를 책임지는 우수한 연구진들이 포진되어 있는 곳이다. 전국 160개 시군 중에서 기초 생활권 지역경쟁력 평가 3년 연속 1위를 차지한 곳이다. 최근 10년간 인구증가율도 전국 1위를 계속하고 있다. 출산율도 경기도에서 2위이니까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 출산 비율이 1. 18이다. 부부가 아기를 2명 나아도 평균이다. 1. 18명 낳는다는 통계는 인구가 심각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1인당 GDP도 경기도 1위이다.  그 곳의 현대 기아와 같은 곳의 산업 인구들은 연봉이 1억을 넘어설 정도이다. 반월 공단도 화성시에 위치해 있다. 최근에 뜨고 있는 수도권 위성 도시 중의 한 곳인 동탄 신도시도 화성시 관할이다. 젊은이들이 많이 살다 보니 초중학교 학군도 좋고 경쟁력도 높다.
 
화성시는 도시와 농촌, 산과 들과 바다가 하나로 어우러진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다. 태풍과 같은 자연 재해도 거의 없는 곳으로 농사도 잘된다. 그 중에 으뜸이 포도 농사이다. 화성의 송산포도가 유명하다.
 
강화도 포도도 맛있는 편인데 화성의 포도 맛이 좋고 당도도 높다. 포도는 열매가 좋아야 한다. 아무리 나무가 크게 자라고 굵게 자라도 소용없다. 매년 포도 열매 농사가 잘 되어야 그것이 좋은 포도나무이다. 포도나무는 건축용 재목으로도 못쓰고 가구 제작용으로도 못쓴다. 단지 포도나무는 열매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포도  나무에 포도 농사가 되지 않는 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 포도나무는 열매로 대답하는 나무이다.
 
예수님의 그 유명한 포도나무 비유의  본문 말씀에도 ‘열매’라는 강조가 무려 여섯 번이나 반복하여 계속되었다.
신앙생활은 포도나무의 열매를 맺는 생활과 같다. 요즘은 포도 열매를 수확하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지난 겨울과 봄 그리고 초여름을 지낸 결과물인 열매를 거두는 때이다. 이 계절에 열매를 따는 풍성한 추수를 할 수 없다면 추운 겨울을 지내며 긴긴 봄철의 수고와 무더운 여름날의 땀 흘림이 모두 다 헛된 일이 되고 만다.
 
예수께서는 “나는 참 포도 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고 하셨다. 그리고 주를 믿는 성도들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만한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한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제가 되리라.”
 
(요15:8)고 하셨다. 포도나무와 열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좀 더 자세히 묵상하자.
 

농부이신 하나님.
어부가 그러하듯이 농부는 전문직이다. 이 세상의 모든 직업이 다 그러하지만 농부는 농사로 대답하는 것이다. 농부의 농사일이란 어디까지나 일이지 취미 생활이 아니다. 농사 중에 고단한 농사가 포도 농사이다. 천안 주변에 살면서 포도 농사가 하도 힘들어서 미국에 이민 가게 되었노라고 말하는 벤살렘 교회 교우를 만난 적도 있다.
그처럼 모든 농사가 힘들고 고단하고 어렵지만 포도 농사도 일 중의 일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포도원의 농부시라고 하였다. 농번기에는 농부가 어디 함부로 농사일을 벗어 날 수가 없다. 포도 농사도 마찬가지이다. 포도 농사를 하는 농부의 마음은 항상 포도원에 있다.
 
아가서의 표현처럼 한창 포도나무에 꽃이 피는 계절에 포도원 울타리를 헐고 뚫고 드나다는 들 여우를 잡는 일과 막는 일도 포도농사를 하는 농부의 몫이다. 잡식성인 여우는 곤충, 물고기, 개구리, 지렁이, 새, 들쥐 뿐만 아니라 식물도 먹는다. 그 중에서 포도를 무척 좋아한다. 그러하다 보니 포도농사를 짓는 농부는 항상 포도원의 울타리를 헐고 드나드는 여우를 경계하고 막아야 한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아2:15)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교활하고 간교한 경우를 여우같다고 비유한다. 그러나 히브리인들과 성경은 그 반대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여우란 “머리가 텅 비어서 어리석은 동물”을 상징한다. 성경이 말하는 여우라는 동물은 “쓸모없거나 남을 비방해서 파멸시키거나 믿을 수 없고 파렴치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서슴치 않고 하는 사람을 표현 할 때 사용한다.
 
그렇지 않나. 포도 농사를 하는 포도원의 농부의 입장에서 보면 포도원의 울타리를 헐고 들락거리며 포도 농사를 망치는 여우의 출입은 백해무익한 동물 중의 대표이다. 나는 우리 교회가 주마다 달마다 해마다 부흥되고 좋은 소문이 나고 크게 부흥하여 수많은 불신자들이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집이 되길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부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포도원을 허는 여우의 출입을 경계하고 잘 막아 내야 한다.
 
포도 열매를 거두는 때가 문제가 아니라 포도나무에 꽃이 피는 계절부터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포도원 울타리를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했다. 여우라는 동물 자체가 큰 덩치도 아니긴 하지만 특히 작은 여우의 출입을 경계하고 잡으라고 했다. 왜냐하면 작은 여우 한 마리가 포도원의 그 해 포도 농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가 포도원이라면 교회 학교에, 청소년부에, 청년부에 장년부에 구석구석마다 여우가 들락거리지 않도록 여우의 출입을 경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교회란 건물과 공간의 의미가 아니다.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어른 아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누구나가 내 마음의 포도원에 여우가 마음의 울타리를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어느 방심한 순간에 내 마음의 포도밭에 작은 여우 한 마리라도 들락거리도록 방치하는 경우에는 한 창 꿈 많은 해 맑은 세대로 자라나야 하는 우리의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이 자라기도 전에 꽃이 떨어지고 열매를 맺기는커녕 포도밭이 짓이겨 지듯이 한 인생이 엉망이 되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나. 한 인생이란 것이 애기 때도 중요하고 청소년기 때도 중요하고 청년기 때도 중요하고 장년기 때도 중요하고 노년기 때도 중요하다. 소중하지 않은 때가 어느 한 순간도 없다. 날마다가 소중하고 매 순간이 소중한 것이 인생이다. 인생에 방황이 시작되거나 탈선하거나 하면 5년, 10년 아니 어떤 경우에는 평생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피눈물이 되고 한숨거리가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포도원은 곧 내 마음이다. 내 심령의 포도원에 여우가 들락거리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아가서의 말씀처럼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한다. 감기 바이러스로 사람이 죽기도 한다. ‘중동호흡기증후군’이라는 메르스 사태로 온 나라가 얼마나 긴장했나. 2012년에 발견된 코로나바이러스라는 호흡기로 감염되는 이 병으로 인해서 2015년 5월 20일 한국 최초 감염자 확인부터 16,693명이 시설이나 자기 집에 격리되기 시작했다. 이 병으로 38명이 죽었다. 감염자 중에서 20%가 죽은 셈이다. 첫 감염자 발표 후에 더 이상 감염 염려가 없다는 종식 발표까지 68일이 걸렸다. 그러나 그 후에도 병원이나 집단 수용 시설 등에서는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왔다.
 
내 마음에 작은 여우의 출입을 막는 일은 마치도 이런 일이다. 설마 메르스로 사람이 죽겠어 라고 함부로 여기면 안 된다. 그처럼 내 인생의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한다. 그 작은 여우란 내게 있어서 무엇일까. 대표적으로는 육신적인 탐욕과 우상 숭배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 언급하는 성령을 거슬리는 소욕들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겠나.
 
뿐만 아니라 포도송이 자체가 잘 결실하지 못하도록 병들게 하는 요인을 해결해야 한다. 환경적으로는 계속하여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습해지면 “흰색곰팡이”병이 덮쳐서 포도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농부는 잘 자라나서 풍성한 포도 열매를 수확하기 까지 마음 편할 날이 없다. 그 외에도 “새눈무늬병, 잿빛곰팡이병, 탄저병, 갈색무늬병, 노균병, 뿌리혹병”등을 계속하여 막고 해결하지 않으면 수확철에 풍성한 극상품 포도가 저절로 수확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농부의 마음은 항상 포도나무에서 떠나질 않는다. 이는 개인도 마찬가지이고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에서 속회에서, 성가대에서, 교사들 간에 구석구석에서 이런 병이 번져 가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고 서로 삼가고 서로에게 악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자기 자신의 신앙 상태를 점검하고 내가 병듦으로 주변의 모든 포도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 나가야 한다. 나라는 포도송이 하나가 병들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넓은 밭의 모든 포도나무에 탄저병이 번지고 흰색곰팡이 병이 번지고 뿌리에 혹이 생겨서 포도 열매는커녕 포도나무 뿌리 자체가 병들어 죽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인생의 포도 열매 농사를 가능하게 하시는 내 인생 포도원의 농부이신 하나님이 내 인생 포도나무의 열매를 풍성하게 열매 맺도록 가꾸어 주시길 기도하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붙어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내 인생의 포도나무를 농사하시는 농부로 시인하고 그 분이 내 인생을 가꾸어 가시도록 내 인생의 포도나무를 그 분에게 맡겨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포도원을 가꾸시는 농부시기 때문이다.
 
포도밭마다 주인이 따로 있듯이 하나님이 내 인생 포도나무를 농사하시는 주인이 되시도록 하나님 아버지를 내 인생 포도나무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주님이 나의 포도나무 농사를 전적으로 책임지시고 돌봐 주시기를 항상 겸손하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농부이신 하나님이 맡으신 포도나무를 가꾸어서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포도 열매를 많이 맺기를 기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사탄과 사이비와 이단들은 하나님이 풍성한 포도열매를 기대하시는 인생들을 타락과 미혹과 지옥의 소굴로 끌고 들어가려 하고 있다.
 
포도원의 농부이신 아버지께서는 포도농사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울타리를 허는 여우를 잡을 뿐만 아니라 포도나무의 가지치기에도 열심을 다하신다. 유능한 농부이신 아버지는 열매 맺는 가지와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를 분별해서 제거할 것인지 남길 것인지를 판단한다. 살균제와 살충제도 방제하여 그 때 그 때마다 병균과 해충으로부터 보호 받고 포도송이가 잘 익어 가도록 온갖 신경을 고추 세운다.
 
농부는 열매를 많이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그 가지를 깨끗하게 한다.
예수님은 본문의 포도나무 비유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일관되게 표현하고 있다. 요즘 날마다 대하는 이사야서에서는 ‘거룩하신 하나님’ 혹은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을 자주 대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표현하고 있다. 맞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버지이실 뿐만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포도나무이신 예수의 말씀에 붙어서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제자라면 우리 각 사람에게 있어서도 아버지이시다.
농부이신 아버지가 포도나무의 가지를 깨끗하게 하신다. 깨끗하게 하신다는 말씀은 우리의 죄인됨과 관련이 깊은 말씀이시다. 우리는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죄인들이다. 오직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손길에 나 자신의 죄인됨을 맡겨 드릴때에라야만 주께서 우리 각 사람의 영혼을 깨끗하게 해 주실 것이다.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자신을 참포도나무라고 하셨다. ‘참’이란 말은 ‘완전하다’는 뜻이다. 그렇다. 예수님만이 완전하신 주님이시다. 완전하신 참포도나무에 붙어 살 때에 그 분으로 인하여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는 법이다. 포도나무는 약해 보이나 세월이 지나면 천지를 덮는 포도원을 이룬다. 이것이 복음의 위력이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된 성령의 역사는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 까지 퍼져 왔다. 이것이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힘이다.
 
성도는 어떻게 깨끗해 질 수 있는가. 3절에 보면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느니라.”고 하셨다. 그렇다. 가령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께서는 “내가 세상의 빛이다. 내가 생명이다. 내가 생명의 떡이다. 내가 생명의 물이다. 내가 길이다. 내가 진리다. 내가 영생이다. 내가 양의 문이다.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다” 이런 말씀으로 주님이 누구신지를 거듭 말씀하고 또 말씀해 주셨다. 맞다. 예수께서 일러 주신 말씀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깨끗해졌어야 하는 성도들이다. 그런데 주님이 다시 말씀하고 계시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내 안에 거하라.”는 강조이다. 4-7절까지에 반복되는 강조가 그것이다. ‘거한다’는 말씀은 ‘머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은 “내 안에 머물라.”는 말씀이시다. 그렇지 않나. 신앙생활은 주님 안에 머무는 생활이다. 주님 안에 머물러 살면서 불편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자유롭고 행복하고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여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주님 안에 거하는 생활이며 주님 안에 머무는 생활이다.
 
4절의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는 말씀은 상대적이고 쌍방이 서로 그러해야 한다는 강조이다. 절대로 일방적이지 않다. 아버지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후에 계속 그런 관계를 원하셨다. 그러나 시시 때때로 인간 편에서 하나님의 그 사랑의 초청과 약속을 어겼다. 그 이유는 죄 때문이다. 반복되는 강조는 무엇인가. 포도나무이신 예수께 붙어 있지 않으면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붙어 있는 줄 알았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 불필요한 가지를 제거해 버리신다고 했다. 4절에 보면 인간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셨다. 우리가 스스로 잘 나서 내가 매사를 이루며 산다고 여기면 어리석은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는 그런 모습을 교만이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비롯된다는 신앙고백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
 
5절에 보면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셨다. 늘 비유를 들고는 하지만 만약에 지금 전기가 나간다면 예배당은 어두워지고 에어컨도 꺼지고 마이크와 스피커도 쓸모없어지고 프로젝터 스크린도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다. 피아노는 몰라도 키보드도 전혀 소리가 안 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전략무기인 탄소섬유탄을 공중 투하하면 적국의 전력망과 통신망을 마비시키고 무력화 시켜서 제압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내가 힘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 힘을 자랑하면 안 된다. 시편 147편 10절에 보면 “하나님은 말의 힘이 세거나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고 해서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했다.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시147:11)라고 했다.
 
우리가 부르는 복음 성가 가사처럼 “나 호흡 있는 동안에” 활동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나 호흡 있는 동안에 나 생명 있는 동안에
나 주를 찬양 하리라 내게 생명 주신 주님을”
이런 마음가짐과 태도를 갖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믿음생활은 훨씬 진지해지지 않을까.
 

본문 7절에 보면 기도 생활을 강조하는 말씀이 나온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If you remain in me and my words remain in you,
ask whatever you wish, and it will be given you.)
 
이 말씀은 기도의 자세, 기도의 태도에 대한 강조이다. 우리가 주여 주여 하는 기도 생활이 다 필요하지만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주님과 나와의 관계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는 조건부의 이 관계가 우선되어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명확하게 설정된 후에 기도해야 하는 것이 맞다. 애들이 길 가다가 낯 설은 사람에게 돈 달라고 하면 주나.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에게 달라고 하면 모든 것이 아버지로부터 공급된다. 예수께서도 비유로 말씀해 주시지 않았나. “육신의 아버지라도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포도나무 비유인 본문에서 이 말씀을 강조해서 가르쳐 주셨다. 예수와 나와의 관계가 분명하다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교훈해 주셨다.
    
맞다. 요한은 요한 일서 5장 14절에서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는 주님의 말씀도 전해 주었다.
 

많은 열매를 맺는 제자.
농부가 포도나무를 가꾸는 목적은 단 한가지다. 많은 포도 열매를 맺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불필요한 가지를 모두 다 제하여 버릴 것이다. 8절에 보면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고 했다. 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왜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왜 예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야 하는가. 그래야 많은 포도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열매를 맺어야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딸다운 삶을 살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들딸이 잘 되면 부모로서 자랑스럽고 영광스럽지 않나.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시다.
주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9절 말씀처럼 사랑의 실천이다. 하나님과 사람과 일과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KG그룹, 이데일리의 곽재선 회장은 <간절함이 열정을 이긴다>는 책을 썼다. 그는 단 돈 76,000원을 들고 무작정 상경해서 안 해 본 일이 없이 닥치는 대로 일했다. 지금은 1조원이 넘는 기업을 일구었다. 그는 “간절함이 열정을 이기고, 간절함이 차이를 만들며, 간절함이 성공에 이르게 했다.”고 자신의 자난 날을 회고하였다. 지난주에 대하신 이사야 9 장의 말씀처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다.”고 하였다.
요한복음 15장의 9절부터 그 이하의 말씀은 사랑의 실천에 대한 강조이다. 사랑의 힘이 이 모든 것을 이룬다는 말씀이시다. 예수 안에 거하고 예수의 말씀 안에 거하며 농부이신 아버지의 마음에 드는 인생으로 살아간다면 어찌 풍성한 열매를 맺지 않을 수 있을까.
열매로 대답하자.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은 인생을 연명하지 말자. 개인과 가정과 가족과 사회와 나라와 민족과 교회 앞에 유익을 주는 인생으로 살아가자. 내게 세상을 떠났을 때 나로 인해서 세상이 더욱 더 나아지는 그 무엇인가 흔적이 있는 삶을 가꾸어 가자.
 
존 에프 케네기(John F. Kennedy 1917-1963)는 이런 연설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으라.)

우리는 교회와 나에 대하여 이런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교회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당신이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으라.
 
우리는  교회 생활 예배 생활기도 생활을 통해서 주께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고 살아간다. 그 받은 은혜를 이웃과 주변과 세상과 열방에 흘려보내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공부해서 남 주고 돈 벌어 남 주고 사업해서 남 주고 실력을 키워 남 주고 은혜 받아 남 줄 줄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살아가야 한다. 늘 강조하지만 나 공부하고 나 벌어 나 한 사람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자는 식의 인생관을 가지고는 그런 수준의 인생으로 밖에는 살 수 없다. 개미 인생도 좋지만 꿀 벌 같은 인생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갈렙 기드온 드브라 사무엘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엘리야 엘리사 에스겔 다니엘 느헤미야 에스라 에스더 모두 다 많은 열매를 맺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린 제자 인생들이었다.
 
성령 충만을 받은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의 나중이 그랬고 다메섹의 부르심을 체험한 사울의 나중인 사도 바울이 그런 많은 열매를 맺는 인생이었다. 스스로 농부 이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맡겨 드리며 순복하는 겸손한 삶을 살아서 극상품 포도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자.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12:3)
 
고 약속해 주셨다.
 
예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를 농부 삼고 열매가 풍성한 포도나무 가지 인생이 되기를 원하신다. 좋은 계절 9월, 가을의 문턱에서 겨울이 오기 전에 풍성한 신앙생활의 열매를 맺어 주께 영광 돌리며 사랑받고 인정받는 제자의 삶을 가꾸어 가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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