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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로 영혼을 얻으라(눅21:10-19) 2017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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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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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7-04-02 23:32 조회 17,871 댓글 0
 
 인내로 영혼을 얻으라(눅21:10-19)          2017. 4. 2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 21장 7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이어지는 내용이다. 세상 끝 날에 있을 징조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교훈을 담고 있다. 마가복음 13장의 같은 내용에 보면 질문한 이는 제자들 중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였다. 예루살렘이 바라다 보이는 감람산 자락에서 조용히 질문하였고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예수님 당시의 헤롯 성전은 46년 동안 건축한 웅장한 성전이었다. 요한복음 2장 20절에 보면 46년 동안 건축했다는 말씀이 나온다. 실제로는 BC 19년에 착공하여 AD 63년에 완공되었으니 83년 동안 지어졌다. 누가복음 21장 5절에 보면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바라다보면서 큰 관심을 보이던 어떤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님의 그런 대답을 들은 이들이 다시 질문하였다. “선생님 그러면 어는 때에 그런 일이 있을 것입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는 무슨 징조가 있을까요.” 이와 같이 이어지는 질문 앞에 차근차근 대답해 주신 예수님의 종말 신앙에 대한 교훈 중의 일부가 오늘 본문이다. 


말세의 징조와 증거.
말세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예수께서 종말의 징조를 설명해 주신 내용은 4  가지이다. 

첫째, 적그리스도의 출현
둘째, 전쟁과 소요
셋째, 지진, 기근, 전염병과 같은 자연 재해
넷째, 성도들에 대한 세상의 박해와 투옥과 고문이 계속될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이 모든 말세의 종말 징조에 대하여 신앙을 지키는 길에 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첫째,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둘째, 전쟁과 소요와 자연 재해 중에서도 구원 받을 수 있는 믿음을 준비하라.
셋째, 박해와 환난과 핍박과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도 생명을 구원 받는 이기는 믿음을 가지라.
‘미혹’(迷惑)이란 ‘플라네데테’는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순간적인 과실이나 실수나 오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진리를 떠난 불행한 상태를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와서 자칭 그리스도 행세를 하는 경우가 자주 생길 것이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의미한다.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 간에 큰 부흥이 있었다.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복음 전파는 불길처럼 번져 갔다. 이미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남자들만도 5천명을 넘어섰다. 긴장한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 당파가 뜻을 같이하고 산헤드린 공회가 나서서 사도들을 핍박하고 죽여 없애고 부흥해 가는 교회를 무너트리려고 했다. 그 때에 바리새인 중에 ‘가말리엘’이란 율법 교사가 나서서 말했다. 가말리엘은 백성들에게 존경 받는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다. 

그는 과거에 ‘드다’란 이름을 가진 자가 자칭 그리스도 행세를 하며 400여명을 이끌고 다니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고 나니까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뿔뿔이 흩여진 적이 있었음을 언급하였다. 또한 ‘유다’란 이름을 가진 갈릴리 사람이 백성들을 꾀어 자기를 따르게 하더니 그가 망하니까 그를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버린 사건도 거론하였다. 그러면서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트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조심하라.”(행5:38-39)고 말했다.

가말리엘의 설득력 있는 설명을 들은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의 당파들은 사도들을 공회원들 앞에 불러 들였다. 그리고는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금지시키고 풀어 놓아 주었다. 사도들은 예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고 옥에 갇히고 채찍질 당하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며 공회 앞을 떠났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전도하는 일을 그치지 않았다. 그 때에 제자들의 수가 점점 많아졌다. 

오늘 날도 마찬가지다. 별의 별 이단과 사이비가 극성을 부리지만 걱정할 것 없다. 우리 각 사람이 온전한 복음을 따르는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만 있다면 때가 되면 주께서 우리 각 사람들을 통해서 점점 믿는 자의 수를 더해가는 부흥의 열매를 주실 것이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은 후에 예루살렘 교회에 불어 닥친 핍박을 피해서 흩어진 이들 중에 빌립 집사의 전도 내용이 나온다.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에 가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영접하고 세례 받는 이들도 많이 탄생하였다. 주님은 빌립 집사의 복음 전파를 통하여 사마리아에 믿는 자들이 많이 생기게 하셨다. 빌립 집사를 통해서 표적이 일어났다. 귀신이 떠나갔다. 중풍병자도 고침을 받고 못 걷던 사람이 걷기도 하였다. 빌립 집사를 통해서 사마리아 성 안에 큰 기쁨이 가득해 졌다. 그 성민 중에 시몬이란 사람이 예수를 영접하였다. 시몬은 마술을 하는 사람이었다. 시몬은 하나님의 능력을 빙자하여 마술을 행하고 백성들을 놀라게 하였다. 사마리아 성 안에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마술사 시몬을 따르는 자들이 많았다. 시몬은 교만했고 자칭 큰 자라 하면서 다녔다. 그런데 빌립 집사가 등장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도하자 그를 믿고 따르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 따르는 남녀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마술사 시몬도 빌립 집사에게 와서 세례를 받았다. 주님이 빌립 집사를 통하여 표적과 큰 능력들을 행하셨다. 그 때마다 마술사 시몬은 놀라워했다. 사마리아 성에 예수 믿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소문이 예루살렘에 까지 들렸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보냄을 받고 사마리아 성에 도착하였다. 가서 보니까 예수 믿는 이들은 많은데 성령 받은 이들이 없는 것으로 보고 성령 받기를 기도하며 안수하였다. 그 때에 성령이 임하였다. 성령이 강림하는 현장을 목격한 마술사 시몬은 돈을 꾸려 가지고 베드로와 요한 사도 앞에 왔다. 돈 보따리를 건네면서 “이 돈을 받고 나도 안수할 때에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도록 해 달라”고 흥정하였다. 그 때에 베드로가 엄하게 마술사 시몬을 책망하였다.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돈 주고 사려고 한 너는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하고 심하게 꾸짖었다. 그 때서야 마술사 시몬은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해 주세요.”하고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였다. 

그렇다. 오늘 날도 마찬가지다. 올바른 분별력을 갖고 미혹하는 자들을 경계할 수 있어야 한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Be self-controlled and alert. Your enemy the devil prowls around like a roaring lion looking for someone to devour. Resist him, standing firm in the faith.)고 교훈하였다. 

오늘 말씀의 제목으로 삼은 누가복음 21장 19절의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시다. 공동번역 성경에 보면 “너희는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였다. NIV 영어 성경에 보면, “By standing firm you will gain life.”라고 하였다. “굳건하게 서서 생명을 얻으라”고 했다. 

그렇다. 미혹을 분별하여 복음과 진리 안에 든든히 서서 나아가야 한다. 천연 재해와 생명을 위협하고 죽음의 골짜기로 몰고 가는 핍박과 박해와 환란과 고난 중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믿음 위에 굳게 세움을 받아야 한다. 

336장의 찬송 가사가 우리 각 사람의 신앙 고백이 되어야만 한다. 이 찬송은 150년전인 1850년대에 영국 성공회 목사였던 프레데릭 페이버 목사가 가사를 썼다. 예배당의 오르간 반주자였고 신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헨리 헤미 교수가 곡을 붙였다.  이 찬송가는 미국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장례 예배 때에 불려진 찬송가로도 잘 알려진 찬송가이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 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옥 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얻었네
우리도 고난 받으면 죽어도 영광 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성도의 신앙 본받아 원수도 사랑하겠네
인자한 언어 행실로 이 신앙 전파하리라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아멘
 

도우시는 주님.
마태복음 28장 마지막 절인 20절은 이렇게 끝난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렇다. 우리 주님은 사랑하는 성도, 택함 받은 성도들과 세상 끝날 까지 영원히 함께 계시는 주님이시다. 지난 2천년 동안 세계 처처에 기독교의 복음이 전파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환난과 핍박을 받아야 했다. 더군다나 감당하기 어려운 박해를 받을 때에 끝까지 주님을 배반하거나 부인하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 고난의 길인가. 우리가 아는 대로 사도행전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비롯한 제자들과 사도 바울의 선교 현장을 보라. 때로 옥에 갇히고 때로 채찍에 맞고 때로 죽임을 당하는 순교자가 되기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일은 매 순간마다 위기를 극복해야만 했다.  

요즘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 “사일런스”는 일본 선교 초기의 핍박 받던 역사를 다른 소설 <침묵(沈黙)>의 내용을 영화화 한 것이다. 작가인 엔도 슈사쿠는 책에서 1600년대 중엽에 일본 땅에 전파되기 시작한 기독교의 복음 전파와 그에 대한 일본인들의 잔인한 핍박을 배경으로 실화를 중심으로 쓰인 소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는 한 사람이 신앙으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살면서 고난, 핍박, 박해, 위협 가운데 영적 고뇌에 빠져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단편적으로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구약 시대로 하면 사자 굴에 던져지던 다니엘의 믿음 상태가 어떠하였을까. 성경에 소개되는 다니엘의 믿음의 모습 말고 그가 어떤 영적 고민과 번민의 과정을 거쳐서 그런 담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 질 수 있었을까를 보아야 한다.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 속에 던져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신앙에 대해서도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사도행전 14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핍박을 받았다. 주께서 바울을 죽음의 현장에서 살려 내신 기적의 내용도 나온다.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사도 바울은 그 곳에서 만난 발을 못 쓰던 사람에게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큰 소리를 말하였다. 그런데 그가 고침을 받고 일어났다. 루스드라 성 안의 무리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제우스와 헤르메스 신이라고 숭배하려 하였다. 바울과 바나바의 인기가 대단하였다. 이런 상황을 못 마땅하게 보고 있던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소문을 듣고 몰려 들었다. 유대인들은 무리들을 충동질했다. 결국은 무리가 던지는 돌에 맞아 사도 바울이 죽고 말았다. 무리들은 죽은 사도 바울의 시체를 루스드라 시 밖으로 끌어 내다가 내쳐 버렸다. 그 현장을 따라 나선 사도 바울의 제자들이 사도 바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당황하고 둘러서서 있는데 사도 바울이 다시 살아서 일어났다. 

바울 스스로 살아난 것이 아니라 돌에 맞아 죽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하시려는 주님의 할 일이 더 있으시므로 죽었던 사도 바울을 주님께서 다시 살려 내신 것이다. 그렇다. 죽고 사는 것이 주님의 손 안에 달린 것이다. 사무엘 상 2장에 나오는 한나의 기도처럼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신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신다.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 계속되는 한나의 기도 내용처럼 “힘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이길 인생이란 없다.”  

돌에 맞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바울은 그 순간에 다시 루스드라 성 안으로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이동하였다. 바울과 바나바는 더베에서도 복음을 전파하였다. 많은 사람이 더베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제자가 되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다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였다.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기도 하게 하였다.
믿고 따르는 주님께 그들의 앞날을 위탁하였다.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모든 이들을 부탁하였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마다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들을 간증하였다.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어떻게 믿음의 문을 여셨는지를 증언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박해를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임금이나 집권자들 앞에 끌려가는 일이 생기더라도 당황해 하지 말라고 충고하셨다.

“그 때 어떻게 항변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마라. 너희의 적수들이 아무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주겠다.”(공동번역 21:14-15)

그렇다. 우리 주님은 약한 자의 힘이시며 어리석은 자의 지혜가 되시는 주님이시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만날지라도 담대하게 주님의 도우심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답게 살자. 

믿음의 사람 다윗은 시편 22편에서 “여호와의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시22:19)라고 기도하였다.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나이 100세 된 아브라함과 나이 90세 된 사라 사이에 아들 이삭이 태어 날 수 있었겠나.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이삭이 농사하여 한 해에 백배의 소출을 거둘 수 있었겠나.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야곱을 죽인다고 달려들던 형 에서의 칼에서 야곱의 목숨을 구하고 형 에서와 화해 할 수 있었겠나.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애굽의 노예였던 요셉이 애굽 왕 바로의 총애를 받는 총리대신이 될 수 있었겠나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모세의 때에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출애굽에 성공할 수 있었겠나.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광야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를 배불리 먹고 반석의 물을 마실 수 있었겠나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어떻게 요단 강을 육지처럼 건너고 여리고 성이 그렇게 무너질 수 있었겠나.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기드온의 300명 용사로 미디안의 그 많은 군대와 싸워 이길 수 있었겠나.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느헤미야가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곽 복원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겠나.

그렇다. 신앙생활이란 세상 끝날 까지 언제나 어디서나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의 손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보호하시는 주님.
우리 하나님은 성도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심지어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된 우리가 부모 형제 친척 혹은 친구들에게 미움을 받고 배반을 당하여 죽음의 순간을 만날 지라도 하나님 아버지는 택한 백성들을 돌보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눅21:18)는 말씀이 무엇인가. 참새 한 마리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떨어지는 법이 없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보호를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면 16절의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라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성도된 우리의 믿음은 분명하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자는 생명을 얻으리라.”고 교훈해 주셨다. 그렇다. 성도된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다. 우리 각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이 귀하지만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복음의 신비”를 또한 깨닫고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아니었다면 모리아 산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결박되어 제물로 바쳐졌던 이삭이 살아남을 수 있었겠나.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아니었다면 엔게디 광야와 막벨라 동굴에 숨고 피신하던 다윗이 어떻게 살아남아 이스라엘의 임금이 될 수 있었겠나. 사울 왕이 던지는 창과 사울 왕의 군대가 추격하는 두려움에서 다윗을 보호하신 것은 섬세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었나.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아니었다면 블레셋에 빼앗겼던 법궤를 어떻게 다윗의 힘으로 되찾아 올 수 있었겠나.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겠나.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거운 풀무 불 가운데서 살아남을 수 있었겠나.

하나님이 보호하시지 않았다면 그릿 시냇가의 로뎀 나무 아래 피신했던 엘리야가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남아 40주야를 걸어 호렙 산을 향해 가며 사명을 다할 수 있었겠나.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아니었다면 누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시체를 몇 시간 만에 안식일 전에 장례 할 수 있었겠나.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아니라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 장례된 예수 그리스도에게 어떻게 부활의 영광스러운 승리의 순간이 찾아 올 수 있었겠나.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은 영원한 것이다. 설령 성도가 죽임을 당한다고 하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서 인생의 범사를 주께 맡기고 세상의 종말 징조를 깨달아 분별하며 어리석은 미혹의 영에 끌려 다니지 않고 핍박과 고난과 환난과 시련을 굳굳하게 이기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질병과 사고와 사건과 때로는 믿음을 지켜 가기 위한 환난과 핍박과 박해와 시련과 유혹과 미혹이 끊임이 없는 세상 중에서 전능하신 주님의 손에 붙잡혀서 날마다 승리하는 우리의 믿음생활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본문에서 주님은 말씀하셨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굳게 서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승리의 주인공이 모두 다 되어야만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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