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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찬송 받으실 왕(시45:1-17) 2018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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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8-09-02 23:37 조회 13,533 댓글 0
 
                   영원히 찬송 받으실 왕(시45:1-17)       2018. 9. 2
   
   
시편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는 '메시아 예언시'(Messianic Psalm)가 일곱 편이 있다. 그 중의 한 편이 시편 45편이다. 본 시편의 내용은 왕의 결혼에 관한 것이다. 지난주일에 이어서 고라 자손의 시편 중의 하나인 본 시편은‘시편의 아가’(雅歌)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우리는 아가서에서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 이야기를 대한다. 그러나 그것은 저들 남녀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실 영원한 신랑이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될 성도들의 아름다운 연합을 노래한 것으로 이해하고는 한다. 

성경대로 하면 독신의 은사가 있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산다. 하나님은 혼자 사는 아담을 잠재우시고 갈비뼈를 취하여 돕는 배필인 하와를 그의 곁에 만들어 주셨다. 이처럼 한 남자가 한 여자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이다. 

그런데 한 나라의 왕이 미혼의 상태에서 신부를 정하여 국가적인 결혼식을 연다고 상상하여 보라. 그 결혼식이 얼마나 장엄하고 웅장하고 아름답겠는가. 

우리 중에 아직 미혼인 젊은이들이 없지 않다. 결혼 생활에 대하여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혹은 결혼 생활에 아픔이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인 시편 45편은 세상 사람들의 통속적인 결혼에 대하여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시편 기자인 고라 자손의 손을 빌려서 한 국가의 왕의 장엄한 결혼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본 시편은 신부인 신약 교회의 성도들이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아름답고 영원한 영적 연합에 대하여 교훈 하는 내용이다.

본 시편 45편이 어느 시대 어느 임금의 결혼에 대하여 노래한 것이냐에 대하여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그것에만 매여서 말씀을 대하다 보면 이 말씀이 교훈하는 더 소중한 교훈과 의미를 놓치고 말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땅의 시대마다 두고두고 부름을 받아서 주를 믿는 성도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가 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신부”들이기 때문이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계19:9) 


왕의 영화와 위엄.
어느 시대나 왕은 복장이나 그 위엄에 있어서 주변의 그 어느 인물보다 돋보이 마련이다. 2절의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허리에 칼을 찬 왕의 모습은 전쟁에 출정하는 왕이 빛나고 화려한 갑옷을 입고 허리에 띠를 띠고 그 띠에 칼을 찬 위엄 있는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서 ‘칼’이란 그 어떤 대적의 어두운 권세라도 능히 겨루어 이길만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과 영광을 예표하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 19장 15절에 보면,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라고 하였다.

그렇다. 이 땅에 만군의 주 여호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권세를 이길 세력이란 그 어디에도 없다. 

만왕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불의와 강포가 아닌 진리와 공의로 다스리신다. 온유와 평화로 통치하신다. 그 분이 다스리시는 나라에는 거짓과 술수와 불의가 없다. 진리와 온유와 공의의 위엄을 가지신 왕이 병거에 오르시니 천하가 벌벌 떤다. 

생각하여 보라. 2절의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신랑이신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신다고 하였다. 이 땅에 그런 왕이 있는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 그런 왕이 있었는가. 사울인가. 다윗인가. 솔로몬인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 만이 그러한 왕이시다. 시편 45편이 끝나는 17절에 보면 그 왕의 이름은 만세에 기억될 왕이시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만민의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라고 선포하였다. 

물론 맞다. 왕이나 하나라의 절대 권력자가 세워지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그를 높이고 그를 절대화하려고 하는가. 그러나 동서고금의 역사를 돌아보라. 어느 시대에 그렇게 영원히 찬송 받을 왕이 있었는가. 

제국주의의 절대 권력을 가지고 큰 소리를 치며 천하를 호령하려 하던 영웅 호걸들이 다 어디로 갔는가. 중국 역사의 그 많은 왕들이 다 어디로 갔는가.
진시황은 어디로 갔는가. 애굽의 ‘바로’라고 칭해지던 그 여러 왕들은 피라미드의 묘실에 미라로 누워 있다. 몽골의 칭키스칸은 어디로 가고 독일의 히틀러는 어디로 갔는가. 일본의 히로히토 천황은 어디로 갔는가. 무솔리니, 스탈린, 모택동 그들이 다 어디로 갔는가. 그들의 영화와 위엄이 오늘 날 어디에 남아 있는가. 

그러나 성경을 보라. 하나님이 세우신 그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운 왕이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말은 외모의 화려함이나 뛰어남을 일컫는 말이 결코 아니다. 그 왕의 인격과 성품의 넉넉함과 고매함을 표현한 말이다. 그 왕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은혜로 가득 차 있다.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그 왕은 무력과 독설과 강압과 거짓과 폭력으로 한 시대를 점령하고 장악하는 계엄군과 같은 그런 통치자가 아니다. 그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말에는 은혜와 공의와 자비와 긍휼이 가득하다.   

왕이신 그가 성도된 우리를 신부로 맞이하길 원하신다. 이사야 61장 1절의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처럼 그 왕의 입술에서 머금은 말씀들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다 은혜롭고 자비롭고 힘과 위로와 격려와 용기가 되는 말씀들로 가득 차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 분 우리의 영원한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 왔다. 

“예수께서 입을 열어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비롭게 대하실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
(새번역, 마5:2-12)

세상 그 어디에서 이런 교훈의 말씀을 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나. 우리의 신랑이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영화와 위엄을 대신할 왕이란 이 땅의 그 어디에도 없다. 그 왕의 오른 손이 왕에게 놀라운 일을 가르친다. 그 왕의 화살은 날카롭다. 그 화살이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는다. 그 화살 앞에서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진다. 이는 사탄 마귀 권세를 대적하여 물리치시는 평화의 왕이신 주 예수의 권세를 노래한 것이다. 

6절 말씀대로 그 왕의 보좌는 영원하다. 어떠한가. 이 세상 그 어느 시대, 그 어떤 왕국에 영원한 왕의 보좌가 있었는가.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하지 않았나. 과거에도 그러했고 오늘 날도 그러하지 않나. 절대자의 권력이란 것이 몇 년이나 가나. 이 세상에 영원한 권세자의 보좌가 있는가. 그러나 만왕의 왕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는 영원한 보좌이시다. 왜냐하면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규’라는 말은 왕의 지팡이란 뜻이다. 예전 성경에는 ‘홀’이라고 번역하였다.

모세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손 때 묻은 지팡이를 통하여 온갖 기적을 행하여 보이셨다. 그러나 나중에 모세가 어떻게 되었는가. 반석을 향하여 물을 내도록 명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자기 손에 들려 있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딱 딱’ 내려친 적이 있다. 민수기 20장에 나오는 사건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에 백성들이 가데스에 머물러 있었다. 거기서 미리암이 죽어 장례하였다. 백성들은 목이 말라 물을 원하였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하셨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민20:8)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모세는 손을 들어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다. 반석에서는 많은 물이 솟아 나왔고 백성들과 짐승들이 충분하게 마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일을 책망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불순종의 사건이라고 지적하셨다. 이 일로 아론과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모세의 지팡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능력이 나오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지 않나. 이 세상 그 어떤 통치자의 결정 중에 완전하고 완벽한 결정이 있는가. 시편 45편 6절에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라는 말씀은 바로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말씀이다. 오직 주의 말씀의 판단만이 옳고 우리의 신랑이신 영원히 찬송 받으실 왕의 규만이 공평한 것이다. 

우리의 신랑이신 왕은 정의만을 사랑하는 왕이시며 악을 미워하는 왕이시다. 하나님은 즐거움의 기름을 그 왕에게 부어 주셨다. 그분의 통치는 옳고 바르고 영원하다. 그 왕의 옷에서는 몰약과 침향과 육계의 향기가 가득하다. 그 왕이 거하는 상아 궁에서는 현악 소리가 왕을 즐겁게 한다. 

사도 바울은 영원한 신랑이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대하여 이렇게 선포하였다.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왕의 신부가 되는 기쁨과 즐거움.
아름다운 신부를 맞이하는 신랑의 기쁨도 크지만 훌륭한 신랑을 남편으로 맞이하는 신부의 즐거움도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9-15절까지의 긴 내용은 그와 같은 신부의 기쁨과 즐거움을 노래한 것이다. 

평민의 아내가 아니다. 서민의 신부가 아니다. 왕의 딸들 중에서 왕의 신부가 되는 이는 오빌의 금으로 수를 놓은 화려한 옷을 입고 왕의 오른쪽에 서게 된다. 왕의 신부가 되는 왕비는 친정집을 잊게 된다.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 버릴지어다.”(시 45:10)는 말씀이 그것이다. 

신명기 21장 10절 이하에 보면 이방의 딸들 중에서 포로로 잡아 온 여인을 아내로 맞으려면 머리를 밀고 손톱을 깎게하고 포로의 옷을 벗게 한 후에 한 달 동안을 애곡하게 하였다. 그 후에 아내로 삼을 수 있었다. 이는 신약 교회의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옛 습관인 구습을 온전히 벗고 주를 따르는 것이 신앙생활의 출발이 되어야 한다. 신앙생활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신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화의 왕 예수를 신랑으로 모시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옛 날의 세속적인 구습들을 벗어 버려야 한다. 그리고 오빌의 금으로 장식한 화려한 왕의 신부의 옷을 갈아입고 신랑이신 왕의 오른편에서 왕의 즐거움과 왕의 기쁨을 왕과 더불어 누리는 것이다. 

다이애나의 둘째 아들인 해리 윈저 (Henry Windsor, 1984-) 왕자는 영국의 왕실 안에서 왕 서열 여섯 번째이다. 2018년 5월 19일에 결혼하였다. 결혼식 장소는 런던 인근 윈저 성, 세인트 조지 성당으로 600여 명의 하객이 참석했다. 세인트 조지 성당은 1984년 해리 왕자가 어머니 다이애나비의 품에 안겨 유아 세례를 받은 곳이기도 하다. 해리 왕자의 신부인 미국 할리우드 배우 메건 마클(Meghan Markle,1981-)은 결혼 경험이 있는 이혼 여성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민자로 영화 조명 감독이다. 어머니는 아프리카계의 요가 강사이다. 매건 마클은 지난 2004년부터 영화제작자인 트레보 엥겔슨과 오랜 연애 끝에 2011년 부부가 됐으나 2년 후 이혼하였다. 그러나 메건 마클은 영국 왕실 최초의 혼혈 왕세자비가 되었다.

왕의 신부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나의 지난날의 과거를 모두 다 뒤로 하고 왕의 신부가 되는 순간에 모든 신분이 새롭게 바뀐다. 영원한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인 우리를 그의 사랑스러운 신부로 맞아 주시는 것이 신앙생활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의 신부가 되는 순간부터 나의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화와 위엄을 그 분 안에서 영원히 누리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신분을 스스로 인정하라. “나는 영원하신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받는 신부이다.”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주 예수의 신부된 성도들은 15절의 말씀처럼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

라는 영광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영원히 찬송 받을 왕의 아들들.
신랑인 왕이 신부를 맞아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다 보면 아들들 즉 왕자들이 태어날 것이다. 저들은 조상들을 계승하여 왕위를 이어 받을 자격과 권리를 갖게 된다. 16절이 그런 내용이다. 그들은 선왕의 대를 이어 “세세무궁토록 왕노릇하게 되리로다”(계22:5)라는 말씀의 주인공들이 될 것이다. 이것이 성도됨의 영광이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딸이다. 왕중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인 우리 각 사람의 영원한 신랑이시다. 

성도인 우리는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부의 영광과 위엄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을 세세무궁토록 영원히 찬송하며 전파하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것을 시편 45편 17절은 이렇게 묘사하였다.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남편을 잃은 모압 여인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서 시댁 고향 마을인 베들레헴을 찾았다. 룻은 그곳에서 대 지주 보아스의 눈에 들었다. 룻은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우리가 아는 다윗 왕을 여덟 번째 아들로 낳았다. 

이새와 이새의 부인인 다윗의 어머니는 왕 같은 영광과 왕비 같은 영화를 누린 부모가 되었다. 다윗이 왕으로 등극하던 날의 장면을 상상하여 보라.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대를 이어 왕이 되던 날을 머릿 속에 그려 보라. 

영국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1926-) 여왕이 왕위에 오른지 66년이 되는 날이다. 올해 92세인 그는 2022년이 되면 왕위 70년을 채우는 여왕이다. 그녀가 영국인들로부터 받는 존경과 위엄은 상상 이상이다. 그녀의 아버지 조지 6세가 암으로 임종하자마자 1952년 2월 6일, 케냐를 공식 방문 중이던 맏딸인 그녀가 왕위 서열 제 1위로 왕위에 지명되었다. 26살 때의 일이다. 

한 나라의 왕만 되어도 그러하거늘 만 왕의 왕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영광, 그 왕의 아들들이 되는 명예란 이 세상의 그 어떤 왕의 왕족이 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다. 요한계시록 5장 10절은 말씀한다.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이와 같은 영원히 찬송 받으실 왕의 아들딸의 영광을 영원히 주 안에서 누리며 살아가는 축복의 주인공이 모두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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