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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럽고 감사한 일(살후1:1-4) 2019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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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9-11-03 21:46 조회 10,415 댓글 0
 
                 자랑스럽고 감사한 일(살후1:1-4)      2019. 11. 3

우리나라에 주재하는 외교관이나 주재원들 간에 한국말로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고 한다. 그들이 서로 주고받는 한글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있다. 그 중에 이제 익숙해진 한국 생활을 마치고 다른 나라로 전근될 때가 다가온 징조에 대하여 말하는 몇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 첫째는, 자장면이 맛있어지고 자장면을 먹을 때에 단무지를 더 달라고 하는 경우다.
그 둘째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에는 한국 사람들이 둘러앉아 산 낙지를 썰어서 먹는 장면을 혐오스러워했으나 이제는 자기 자신도 한국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아서 자연스럽게 산 낙지 먹기를 즐기는 경우다.
또 하나는, 일본 사람들 이야기만 나오면 일본 사람들이 싫어질 때라고 한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 생활하는 소식을 대할 대에 자랑스럽고 항상 감사하게 된다고 편지하고 있다. 
사도 바울의 데살로니가 지역 전도 내용은 사도행전 17장에 담겨 있다. 데살로니가는 그리스 북동부에 위치한 아름다운 항구도시이다. 아테네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 지금도 35만 명 정도가 사는 항구도시이다. 데살로니가는 그리스의 경제, 산업, 상업, 정치면에서 중요한 도시 중의 한 곳이다. 지중해로 이어지는 유럽 남동부의 해양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데살로니가에 도착한 사도 바울은 3주 동안 머물면서 그곳의 유대인 회당에서 성경을 강론하며 전도하였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대한 복음을 설명하였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강조하며 전도하였다. 그 복음의 말씀을 들은 이들 중에서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 바울과 실라를 따랐다. 그러나 이러한 소문을 들은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시장의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떼를 지어 성안에서 소동을 일으켰다. 바울과 그의 선교단 일행이 묵었던 야손의 집에 쳐들어가서 바울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이미 바울 일행은 그곳을 피하여 떠난 후였다. 결국은 집주인 야손과 그의 형제들이 불량배들에 의해서 읍장 앞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저들이 가이사의 명을 어기고 예수를 다른 임금으로 소개한다.”며 큰소리를 치면서 소동을 일으켰다. 결국  야손과 그 주변 사람들은 보석금을 내고야 풀려날 수 있었다.
밤 중에 믿는 형제들의 도움을 받은 바울과 실라는 베뢰아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바울과 실라는 베뢰아에서도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세월이 흘러 면서 데살로니가 지역의 교회가 부흥해 갔다. 그곳의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대한 소문도 좋았다. 사도 바울은 그런 저들에게 두 번의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 중의 나중 편지인 데살로니가 후서의 앞 부분 일부를 오늘 읽었다.
사도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에게 문안하고 있다. 바울을 비롯한 선교단 일행은 데살로니가 지역 성도들의 신앙 생활하는 소식을 들으며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편지의 서두에서“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친히 자랑하노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자랑스럽고 감사한 일”이라고 정하였다. 그러면 사도 바울과 그의 선교 일행들에게 있어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항상 감사하고 여러 교회 앞에서 친히 자랑스러운 이유가 무엇인가.
 

더욱 자라나는 믿음.
3절에 보니까 하나님 앞에서 항상 감사하는 일이 당연하다고 했다.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갓 태어난 아기가 귀엽고 한 두 살 때의 아기의 모습이 하나하나 귀엽고 예쁘지만 그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계속하여 무럭무럭 자라나야 한다. 예수의 어렸을 적 모습처럼 키도 자라고 지혜도 자라고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사랑스러워 가야 한다. 성장이 멈추어 버리고 키도  안 자라고 지혜도 나이에 비해서 늦어지면 부모에게 은근히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혹시 우리 애가 뭐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믿음이 자라나는 성장과 믿음이 견고해져 가는 성숙은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과제이다. 씨앗을 뿌려 놓으면 채소가 자라난다. 사과나 배나 복숭아 나무의 묘목을 심어 놓으면 몇 해 만에 풍성한 열매가 맺기 시작한다. 자라나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감귤 농사 이야기를 들었다. 그 원나무는 탱자나무라고 한다. 거기에 접을 붙여서 귤나무가 된다. 그 원 나무는 50살 70살 80살 나이가 들어 간다. 그러나 새 가지에 어떤 품종을 접목하느냐에 따라서 천리향 열매도 맺고 별의 별 맛있고 당도 높은 신품종을 생산하게 된다. 긴긴 세월 동안 해마다 계속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
신앙생활도 그러해야 한다. 분재는 작은 화분에서 성장을 억제시키고 줄기와 가지를 철사 줄로 엮고 전지가위로 잘라 주고 해서 빨리 자라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믿음은 분재처럼 작은 화분에서 이리 얽히고 저리 얽혀서 꼬불꼬불 자라지도 못하고 억제되면 안 된다. 믿음은 그 어떤 환란과 핍박과 박해와 고난과 고통이 있더라도 무럭무럭 자라고 계속하여 성장해 나갈 수 있어야만 한다.
‘더욱 자라고’라는 헬라어 원어의 뜻은 '풍성하게 성장하다', '한계점에 이르기까지 성장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의 성장에 대하여 이토록 감사해 하는 것은 늘 저들의 믿음의 성장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 전서 3장 5절에 보면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 생활에 대하여 궁금해 하던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저들에게 보낸 적이 있었다.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라고 말했다. 저들에게 다녀 온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 생활에 대하여 전하였다.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살전3:6)는 소식을 들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위안을 받았다고 편지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1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의 부족을 보충하게 하려고 밤낮으로 심히 간구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나. 지금 어린 자녀들이나 십대의 청소년들을 키우는 가정의 엄마 아빠의 마음은 한결 같을 것이다. 한창 건강하게 키도 자라고 지혜도 자라서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골고루 제대로 된 인격을 갖고 성장하기를 바란다. 어린 아들 딸을 대하는 부모의 소원은 어느 가정이나 한결 같을 것이다. 그래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자녀들 학원도 보내고 과외도 시키고 제 때에 제대로 공부하게 하고 실력 있는 사회인을 키워 보려고 애를 쓰고 수고할 것이다.
요즘 신문에 보니까 ‘사교육걱정없는 세상’이란 기관에서 2016-2018년도 사설 유치원 영어 교육실태를 공개하였다. 지난해 서울 반일제 이상 유아 영어학원의 월평균 학원비는 약 103만7000원이었다. 가장 비싼 유아 영어학원인 <게이트대치·서초·압구정 어학학원>의 학원비는 월 224만원이라고 한다. 수업 강도도 대단하다. 서울 반일제 이상 유아 영어학원의 하루 평균 영어교습시간은 거의 5시간에 달한다. 교습시간이 가장 긴 학원은 서울 강남구 리틀핸즈학원인데 하루 평균 교습시간이 11시간 25분이다. 유치원 시절부터 이렇게 영어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커서 사립초-국제중-외고·자사고·특목고로 이어지는 특권교육 환경에서 성장하기 때문이 일반적인 환경의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저들의 실력을 따라갈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 져 가고 있다.
이런 뉴스 내용을 접하면 허탈해 하는 평범한 가정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얘기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도 어려서부터 자라나고 자라나야 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생각하여 보라. 유치원 나이의 어린이에게 하루에 11시간 반씩을 영어로 공부하는 환경에서 키워 내면 영어 못할 아이들이 누가 있겠는가. 11시간 반이란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인가. 한창 잠을 많이 잘 5-6살 나이 때부터 하루에 11시간 반씩 원어민 교사 곁에서 영어를 달고 살게 한다면 영어 못할 아이들이 누가 있겠는가.
우리의 신앙생활, 나의 믿음 생활을 스스로 점검해 보라. 주일에 이처럼 모여서 예배도 드리고 말씀도 듣고 속회 예배도 드리고 서로 둘러 앉아 말씀으로 교제도 하고 하기는 한다. 그러나 주 중의 한 주간을 살아가면서 나의 말씀 묵상 생활, 기도 생활, 찬송 생활, 전도 생활, 봉사 생활, 나 자신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나의 믿음의 현 주소는 어떤가를 스스로 점검해 보자. 그냥 세상에서 벌어서 먹고 살기 급급하며 지내다가 주일이면 잠시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또 한 주간을 개미 체 바퀴 돌듯이 그렇게 살아가고 말지는 않는가.
어느 작은 교회 예배 시간에 할머니 권사님 한 분이 매 설교 시간마다 고개를 떨구며 졸기를 반복했다. 설교하던 목사가“권사님 설교 시간 30분도 못 참고 그렇게 매 주일마다 조시면 어떻게 해요”하고 큰 소리로 말하니까“목사님 그래 일주일에 단 30분도 졸지 않도록 설교 하지 못하시면 도대체 난들 어떡하란 말이세요.”하고 대답하더란다.
지금 우리의 믿음의 문제는, 오늘 날 나의 믿음의 문제는 예배 시간에 조느냐 깨어 있느냐의 문제 그 이상의 과제여야 한다. 과연 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믿음의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는가. 과연 나는 이 악하고 험한 세상에서 믿음이 더욱 자라고 있는가에 대하여 정직하게 자기 자신에게 묻고 대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동방의 등불’을 쓴 인도의 기독교 시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에게는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많은 제자가 있었다. 그의 기도문 중에 이런 기도가 있다.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게 하시고,
위험에 처해서도 겁내지 말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게 하시고
고통을 극복할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인생의 싸움터에서 동조자를 찾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게 하시고,
인생과 싸워 이길 스스로의 힘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근심스런 공포에서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게 하시고,
자유를 싸워 얻을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겁쟁이가 되고 싶지 않나이다.
도와주소서.
일취월장하는 성공 속에서만
하나님께서 자비하시다고 생각하지 말게 하시고,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내 손을
힘껏 쥐고 계시다고 감사하게 하소서.

하루는 타고르에게 한 제자가 찾아와 물었다. “인생에서의 참된 성공은 무엇입니까?”,“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다.”제자가 다시 물었다.“자기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매일 저녁 다섯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그 질문에 만족하면 된다.”타고르가 제자에게 5가지를 질문하였다.
첫째, 오늘은 무엇을 하려 했는가?
둘째, 오늘은 어디에 갔는가?
셋째, 오늘은 누구를 만났는가?
넷째, 오늘 무슨 일을 했는가?
다섯째, 오늘 후회스러웠던 일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의 삶에 대한 5가지 질문이 우리가 주님을 따라 사는 믿음의 사람인지에 대한 점검표가 될 것이다.
 

서로를 향한 풍성한 사랑.
사도 바울에게 전해진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신앙 생활 모습은 각기 서로 풍성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소식이었다. 이는 데살로니가 전서 1장 3절에서 언급한 그대로이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라고 하였다. 사랑의 수고가 무엇인가. 사랑하기 때문에 수고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주변 사람 눈치 보지 아니하며 묵묵히 자기의 할 바를 감당해 나가는 것이다.
쌀쌀해져 가고 밤중에 기온이 뚝 떨어지는 날씨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서 나라를 염려하는 것은 저들의 가슴 속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풍성한 이란 말은 점점 증가하고 늘어난다는 말이다. 처음 사랑이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식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계속되고 오히려 점점 더욱 따뜻한 사랑으로 지속되는 것이어야 풍성한 사랑인 것이다.
요한1서 4장 20-21절에 보면 우리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보이는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말하는 자라고 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우리가 나의 사랑과 돌봄과 섬김이 필요한 내 가족, 내 친척, 내 직장 선후배 동료들을 사랑으로 대하지 못하면서 지구 저 멀리 반대편에 있는 아프리카의 배고픈 형제자매들을 향한 사랑을 운운하며 이야기하거나 기도한다면 이것은 가증한 것이고 위선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사랑은 구체적인 것이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25장에서 비유로 교훈하신 양과 염소의 비유 내용 그대로이다. 예수께서는 그 누군가가 주리고 목 말라하고 나그네 되고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혔을 때에 그 누군가를 돌보아 주는 것이 곧 예수께 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우리 교회가 사랑을 많이 실천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성도들의 거룩한 연합이 될 수 있기를 늘 바라고 기도한다. 이제 일주일 후면 말레이시아 선교 현장에 방문하게 될 것이다. 정기창 선교사는 우리 곁에서 함께 사역하고 함께 신앙 생활하던 이이다. 다른 선교 현장도 다 그러하지만 그의 선교 사역 현장을 방문하고 기도 제목을 함께 나누어야 하겠다는 부담과 짐을 늘 느끼며 지내 왔다.
선교가 무엇인가. 130년 전에 헨리 아펜젤러 부부와 호레스 언더우드 선교사를 비롯한 수 많은 선교사들이 이 땅에 왔다. 저들은 학교를 세우고 이 땅의 어린이들과 십대 소년소녀들을 가르쳤다. 서양학문을 비롯하여 영어와 성경을 가르쳤다. 병원을 세웠다. 고아와 남편 잃은 여인들을 돌보았다. 저들의 선교 사역을 통해서 이 나라 개화 초기에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오늘 날도 마찬가지이다. 세계 열방에 나아간 2만 여명이 넘는 선교사들의 사역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땅 끝을 향하여 번져 나가는 것이다.
저 지난 주 토요일에 방문했던 천안 하늘중앙교회는 최근에 엘리스라는 이름의 넓은 카페를 교회에 문 열었다. 엘리스 샤프 여 선교사의 이름을 기린 것이다.
앨리스 해먼드 샤프(Alice Hammond Sharp, 1871-1972)는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교역자로 일하다가 1903년, 32살 때에 감리교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왔다. 그의 한국이름은 사애리시(史愛理施)이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에서 성장하며 공부하고 목회자요 선교사의 신분으로 우리나라에 왔다. 38년 동안 사역하였다. 유관순은 그가 공주 영명 여학교에서 발굴한 인재이다. 이화 학당으로 유학 시켰다. 엘리스 샤프 선교사는 유관순 같은 역사적인 인물을 키워낸 복음의 지도자였다. 일본 정부는 1940년에 그녀를 강제 추방하였다. 38년간 선교 사역하던 한국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녀는 노년기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파사데나의 은퇴선교사요양원에서 지내다가 101세에 주님 품에 안겼다.
그녀의 남편 로버트 샤프 선교사(Robert Arthur Sharp, 1872-1906)는 서울에서 YMCA에서 청년운동을 활발히 펼쳤다. 정동제일교회와 배재학당에서 교육을 담당하였다. 1904년에 공주선교부 책임자로 임명되고 이듬해 앨리스 샤프와 결혼하여 공주에 최초의 서양식 벽돌 양옥집을 짓고 이주하였다. 그 전까지는 움막 같은 초가집에서 지내야 했다.
남편인 로버트 샤프 목사 공주시 영명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남편 샤프 선교사는 한국에 온 지 3년, 결혼 생활 3년 만에 장티프스로 34살에 주님 품에 안겼다.  자녀도 없이 남편을 잃은 아내 엘리스 샤프 선교사는 천안과 논산을 거점으로 강경, 은진, 노성 등 여러 곳에 교회를 세우고, 영아육아원,  유치원, 사회 복지 활동 등에 열의를 다하였다. 20여 곳의 여학교를 세워서 감리교회 선교활동과 교육사업에 매진하였다. 어렵게 지내는 가정의 소녀들의 교육을 후원하는데 앞장섰다. 그들 중의 몇 사람이 유관순, 인덕 대학교의 박인덕, 중앙대학교의 임영신, 노마리아, 전밀라등이다. 아마도 유관순이 오래도록 살아 있었다면 그도 박인덕, 임영신 이상의 사역을 감당하는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다. 엘리스 사프 그는 우리나라, 우리 민족을 진심으로 사랑하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모든 박해와 환난을 견디는 인내.
이 세상이 박해와 환난을 원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시대적으로 환경적으로 피할 수 없는 박해와 환난 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것이 믿음의 사람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자랑하노라고 하였다. 환난이란 신앙을 떠나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반적인 시련이나 고통을 말한다. ‘견디고 있는’이라는 내용은 지나간 과거의 핍박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핍박을 말한다. 초대교회에 예루살렘 교회에 불어 닥친 핍박은 유대로 사마리아로 이방의 땅 끝을 향하여 성도들을 흩어지게 하였다. 성도에게는 언제나 어디서나 환난과 핍박이 있을 수 있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신 바 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하셨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많은 환난을 받았다. 데살로니가 전서 1장 6절에 보면 그런 내용이 나온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 받은 자가 되었으니”이로 인하여 데살로니가 전서 1장 7절에 보니까 많은 환난을 잘 이기고 극복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모습이“주변의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고 칭찬하였다. 요즘이 핍박이나 환난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당하던 환난이나 핍박과 비교할 수 없다. 사도 바울 자신도 수 없이 옥에 갇히고는 하였다. 그래서 그는 사도행전 20장 23절에서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라고 말하였다. 사도 바울은 가는 곳곳마다에 환난과 핍박과 결박이 굶주린 사자처럼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을 비롯한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처럼 언제라도 환난과 핍박과 결박을 참고 견디고 이기고 극복해야만 했다. 고린도 후서 7장 5절에 보면 바울 자신은 “밖으로는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다툼이 되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은 고통과 고난과 슬픔과 환난과 핍박과 번민과 답답함과 억울함과 조롱을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하는 그 모든 것들을 통해서 성도들의 믿음을 정금보다 더 견고하게 다듬어 가신다. 로마서 8장 35절의 사도 바울의 고백과 선언이 바로 그것이다.“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37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일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 사도 바울은 39절에서 다시 고백하고 선포하였다.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은 성도들로 하여금 박해와 환난 중에서도 참고 견디고 인내하게 하셔서 성도다운 믿음을 지켜 가도록 성령을 통하여 도우시고 역사하신다. ‘휘포모네스’라는 ‘인내’(忍耐)란 참다가 말고 체념해 버리고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용맹스러운 군사와 같이 끝까지 견디고 강인하게 극복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요즘 <람보: 라스트 워> 라는 영화 시리즈가 또 개봉되었다. 아주 오래전에 람보 영화를 본 기억이 새롭다. <록키>와 <람보>시리즈로 각인된 그이다. 기회가 된다면 보고 싶은 영화이다. 딸처럼 대하던 옆집 소녀가 멕시코 납치범들에게 납치된 사실을 알고 그를 구하려고 나서는 이야기라고 한다. 올해 73살인 주인공 실버스타 스텔론Sylvester Stallone, 1946-)은 불굴의 전사로 등장한다. 끝까지 승리한다. 주인공이라서 그러하기도 하지만 그에겐 실패란 없고 승리만 있다. 불굴의 정신을 영화의 바탕에 깔고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주인공 실버스타 스텔론 자신은 어려서 언어 장애 안면마비 등의 루저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약점을 극복한 영화계의 거장이 되었다.
성도는 유약하게 주저앉는 자들이 아니다. 성도는 환난과 핍박과 박해와 곤고함 가운데 도살당하는 양처럼 취급을 받아도 넉넉히 이겨 나가야 한다.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어둠과 불의와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의 부활로 대답하신 것처럼 말이다. 조카 롯을 구하던 아브라함이 그랬고 애굽의 노예 상태로부터 동족을 구출한 모세도 그랬다. 사사 기드온도 미디안으로부터 동족을 구출하는 이기는 자의 삶을 살았다. 하나님이 기드온에 말씀하셨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을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삿6:16) 블레셋의 골리앗을 물맷돌 한 개로 이기던 소년 다윗이 그랬다. 블레셋에 빼앗겼던 법궤를 되찾아 오던 다윗은 언제나 그랬다. 
그러므로 믿음의 결과는 지는 것이 아니다. 이기는 것이다. 잠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영원히 이기고 온전히 이기는 것이다.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믿음의 나날이 되길 축원한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과 핍박과 환난을 견디고 참고 극복한 담대한 믿음은 사도 바울의 자랑이요 그들의 믿음 생활에 대하여 소문을 전해 들은 그 당시의 모든 성도들에게 자랑이 되었다. 오늘 날의 우리 각 사람도 자랑스럽고 항상 감사할 만한 믿음의 주인공들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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