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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오직 말씀으로(롬10:13-17) 2019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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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9-10-25 12:24 조회 10,087 댓글 0
 
                   오직 말씀으로(롬10:13-17)          2019.10.20


성경이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고 상상해 보라. 일년이 지나도 성경 말씀을 단 한 구절도 접할 수 없는 여건에서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해 보라. 누가 내게 성경 말씀을 전해 주지도 않고 나 스스로 성경 말씀을 접할 수조차 없는 환경에서 살아간다면 과연 내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어떻게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날에도 지구 어딘가에는 아직도 기독교의 복음을 전혀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이들이 있다. 적지 않다. 아직도 많다. 

물론 이미 주어진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 붙들고 살아가기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가 왜곡되고 성경적이지 않은 이단과 사이비가 난무하고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말씀에서 멀어진 쪽으로 교회가 흘러가고 있다면 어떻게 할까. 마틴 루터가 ‘오직 성경으로, 오직 말씀으로’라는 말씀운동을 주창한 이유를 알려면 그 당시의 기독교 1500년의 역사를 이해하여야 한다. 

환난과 핍박을 이기며 복음을 전파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기독교의 복음을 받아 들이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안정기가 찾아 들면서 기독교는 타락하고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수많은 박해와 고난을 이겨 내야만 했다. 그러던 중에 AD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노스(Constantinus I, 280-337)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하였다. 그 때부터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 핍박받던 기독교의 신도들은 국가로부터 보호받는 존재가 되었다.

313년 2월에 로마의 콘스탄티노스 황제는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동방의 리키니우스 황제를 만났다. 의논을 거듭한 저들은 같은 해 6월에 ‘밀라노 칙령’이란 것을 발표하였다.
“이제부터 모든 로마인은 원하는 방식으로 종교생활을 할 수 있다. 
로마인이 믿는 종교는 무엇이든 존중을 받는다.”

이는 황제가 정치적 통합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지만 그와 같은 선언은 그 동안 핍박 가운데 순교를 각오하고 예수를 믿던 기독교인들에게 상상조차 못했던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동안 몰수당하던 교회의 재산은 교회 앞으로 되돌려 졌다. 황제는 자기의 개인 제산을 털어서 교회를 건축하는데 앞장섰다. 로마를 통치하는데 기독교 성직자의 조언을 듣기도 하였다. 노예 처벌 금지법, 죄수학대 금지법과 같은 인권법을 제정하여 발표하였다. 주후 321년에는 일요일을 휴일로 하는 법도 제정하였다. 일요일에는 재판도 하지 않았고 관공서는 문을 닫았다. 농사하는 이들 외에 도시 근로자들은 출근하지 않았다. 

콘스탄티노스 황제는 “하나의 제국(One Empire), 하나의 법 (One Law), 하나의 시민(One Citizen), 하나의 종교(One Religion)”를 로마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 황제는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그 곳에 수많은 교회를 건축하였다. 그 동안은 핍박을 이겨 내며 죽음을 각오해야 믿던 기독교 신앙이 출세를 위한 방편으로 변해가기 시작하였다. 로마 제국 안에서 출세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허위로 기독교로 개종하는 이들도 있었다. 기독교의 사제들은 새로운 사회적 신분과 세속적 이익 앞에서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교회의 감독들은 높은 명예를 가지게 되었고 교회당은 점점 크고 높고 화려하게 지어졌다. 

그 당시 상황을 기록한 역사가들의 글에 보면 “불로 시험 받던 교회가 이제는 호의로 시험받고 있다.”고 말했다. 교의학자 제롬(345-419)은 “예배당은 황금으로 첨탑을 장식했고 대리석으로 지어졌다. 한 때 빼앗겨 불에 던져지던 기독교인들의 거룩한 책이 이제는 화려하게 제본되고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되었다.”고 그 당시를 평했다. 수많은 가짜 기독교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지극히 세속적인 욕망을 가진 이들이 성직자가 되려고 나섰다. 

순교를 각오한 참 신자들의 공동체였던 초대 교회 공동체는 출세와 성공을 위해 정치적 야심을 품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세속적인 교회로 변질되어 가기 시작하였다.

4세기의 이런 현상이 1000년이 넘도록 계속되면서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가 등장한 것이다. 그 배후에는 개혁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역사하신 것이다. 
면죄부는 서부 유럽 지역에서 11세기 이전부터 시행되었다. 선행으로 천국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생전의 행실로 천국에 이르렀을지 의심 가는 고인의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지역 성직자들이 면죄부를 작성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소식이 주변에 널리 퍼져 나갔다. 11세기 교황 우르바노 2세가 십자군 참여를 장려하기 위해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참전하는 군인들과 군부대에 지원금을 낸 후원자들에게 교황의 권한으로 면죄부를 주었다. 

그 후 16세기 교황 레오 10세에 이르러 교황청의 부채과 운영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자금 모금책으로 면죄부를 발행하였다. 교황 레오 10세는 문화를 지원한다는 명분을 만들어 코끼리와 표범과 어릿광대까지 대동하며 사치한 생활을 하였다. 그 당시는 교황과 교황령의 권력 강화 방안을 찾던 시기로 우르비노 전쟁 지원금과 십자군 전쟁 지원 비용과 교황청 건물을 확장하기 위한 대규모 공사비용 등을 충당하기 위해서 면죄부를 대량으로 판매하였다.

1506년에 그 당시 최고의 설계가로 명성을 날리던 브라만테의 설계에 의해서 평면이 구성되었다.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은 레오 10세의 명령에 의해서 건축가 라파엘로가 총감독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미켈란젤로도 참여하였다. 바실리카의 내부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의 걸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미켈란젤로의〈피에타〉이다. 베드로 대성당은 자그마치 1615년까지 109년 동안 건축하였다. 베드로 대성당의 대성전은 30년 전인 1989년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성전이었다. 

16세기 면죄부는 그 값이 1/4 플로린이었다. 그 가치는 당시 평민이 거주하는 작은 집 6개월 치 월세 비용이었고 그 돈이면 송아지 3마리를 살 수 있었다. 각종 세금에도 힘겨워하던 일반 평민들에게까지 각 목적에 해당하는 면죄부를 세분화하여 발부했고 한 가족이 여러 개를 구입 하도록 유도하였다. 이 막대한 자금은 모두 다 교황청으로 보내졌다. 

로마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10세기부터 계속되었고 그 후로 500년 세월이 흘러갔다. 

서방교회는 이미 10세기부터 창부(娼婦)정치와 정치세력화의 문제로 교회개혁이 여러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주장되던 상황에서 자금 모집책으로 면죄부 대량 판매는 서방교회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결국 서방교회는 종교개혁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찬성파는 개신교회로 반대파는 천주교회로 분열되었다.

10월 마지막 주일인 다음 주일이 마틴 루터(1483-1546) 종교 개혁 기념 주일이다. 502년 전인 1517년 10월 31일에 있었던 일을 기념하는 주일이다. 그 당시 마틴 루터는 수사이며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교수였다. 마틴 루터는 명석하고 총명한 성장기를 보냈다. 공부를 잘했다. 22살에 인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구리 광산업을 하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법학을 공부하길 원했다. 그러나 마틴 루터는 그 후 수도회에 들어가 3년을 지내고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비텐베르크 대학에 들어갔다. 그의 나중 고백에 의하면 24살 때인 1507년 7월 2일 고향집에 다녀서 학교로 돌아 가던 길에 무섭고 두려운 천둥 번개를 경험하였다. 그 날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저를 도우시면 수사가 되겠나이다.”하고 서원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는 성서신학을 공부해서 4년 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결코 성경적이지 않은 면죄부 판매를 통해 수입을 늘려 가던 교황청에 반기를 들고 95가지의 반박문을 작성하였다. 그는 이미 사제 서품을 받았고 신학 교수로 있던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교회 정문에 그 95가지 조항을 내어 붙인 것이 종교 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의 나이 34살 때의 일이다. 

그는 나중에 바르트부르크 성에 갇혀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히브리어와 라틴어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갇혀 있는 동안에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송가도 작곡하였다. 그는 실력과 재주를 겸비한 믿음의 거장이었다.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의 바탕은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네 가지였다. 우리는 지난 두 주 동안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를 주제로 주일마다 말씀을 묵상하였다. 오늘을 그 세 번째 시간으로 ‘오직 말씀으로’라는 주제의 말씀을 묵상할 것이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무턱대고 뭘 믿는다고 하는 그런 막연한 미신을 믿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예수는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말씀이 눈에 보이는 살아 계신 말씀으로 이 땅에 와서 33년을 살다 가셨다. 이천 년 전의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예수를 만난 제자들과 무리들은 예수께로부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을 늘 들었다. 

예수는 십자가에 죽임당하였으나 사흘 만에 다시 사셨고 부활 후 40일을 계시다가 승천하여 지금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다. 
예수의 제자였던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다.

그렇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는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 충만했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우리가 학교에서 조금 배워서 아는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라는 것이 그 대표적인 중세 로마 가톨릭의 타락을 입증하는 내용이다.

이방 선교의 선봉에 서서 쓰임 받던 전도자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에 편지하면서 복음 전파의 사명과 그리스도의 말씀인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길에 대하여 힘을 주어 강조하고 있다. 


전파하는 자와 듣고 믿는 말씀.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없다면 어찌 들을 수 있겠는가.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면 어떻게 그 복음을 믿을 수 있겠는가.
그 복음을 믿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 복음을 전파하는 자로 부르실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복음 전파는 예수의 씨 뿌리는 자와 같은 것이다. 더러는 길가에 더러는 가시덤불에 더러는 돌밭에 뿌려졌다. 그러나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다. 그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자라나서 삼십 배, 육십 배 혹은 백배로 결실하게 되는 법이다. 

이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로 그 후에 사마리아를 거쳐서 유럽 전역과 북미주와 아시아 각국과 세계 열방으로 퍼져 나갔다.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고 태평양을 건너가서 전파하는 자가 없었다면 어찌 복음이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었겠는가.

늘 간증하지만 복음을 전파하려는 이들이 아니었다면 나의 강화도 고향 마을에까지 복음이 들어갈 수 있었겠는가. 1906년에 스크랜턴 선교사와 데이밍 선교사가 복음을 들고 찾아갔다. 그 해 8월 23일에 56살의 김용하, 전병규 두 사람이 김용하의 집에서 세례를 받았다. 강화에 알려진 유학자였던 김용하의 손자 김용우는 배재 학당에 유학하고 목사가 되어 나중에 동대문교회, 정동 제일교회 등의 담임목사가 되었다. 나의 고조부(지상준) 증조부(지선주)는 49살과 23살에 1906년 10월 3일에 스크랜튼 선교사와 데이밍 선교사에게 각각 세례를 받았다. 연 이어 12월에는 고조모, 증조모도 세례를 받았다. 나의 고조모 김마리아 권사는 마을의 첫 세례자인 김용하의 딸로 나의 고조부는 김용하의 사위가 되었다. 

마을의 유지이고 어른이던 김용하(1849-1919)의 가문은 서울에서 벼슬을 살던 명문가로서 선조 때에 강화로 낙향한 후 흥천이란 마을에 자리를 잡고 유학에 심취하여 김용하까지 4대에 걸쳐 ‘도학자’ 칭호를 받을 정도로 유교에 철저한 가문이었다. 이런 가문을 배경으로 한 김용하는 학문으로 유학을 공부하는 수준을 넘어 극기(克己)와 금욕(禁慾)의 수도 생활을 통해 공자와 맹자 등 유교 성현들을 환상 중에 만나는 신비 체험을 하였던 ‘도학자’였다. 이런 그가  배척을 받아온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동기가 흥미롭다.

감신대 이덕주 교수의 <흥천교회 초기 역사에 나타난 신앙 유산과 전통>이란 교회사 연구 논문에 보면 나의 고조부는 탁사로 고조모와 증조부는 속장으로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생각하여 보라. 113년 전에 강화도 시골 섬 마을에 선교사들이 찾아가서 복음을 전파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아시아 동쪽 한반도 그것도 작은 섬마을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을 영접할 수 있었겠는가.


전파되는 복음과 보내심을 받은 자들.
15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보내심을 받지 않았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라고 말씀하면서 이사야서 52장 7절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원래 이사야의 예언에 포함된 이사야 52장 7절 말씀은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나고 자유의 순간이 찾아오고 있다는 희망을 전파하기 위하여 기록된 말씀이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으로부터 시작해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그런 자유와 기쁨과 해방의 감격이 주어질 것을 희망하며 이처럼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이사야 52장 7절의 전문을 보면 이렇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그렇지 않나. 오늘 날도 각 분야의 모든사람들이 이런 좋은 소식, 이런 복된 소식, 이런 구원의 소식, 이런 하나님의 통치가 분명하게 들어나는 소식이 전파되길 목말라 하지 않나. 

15절의 ‘보내심’이란 사도 바울 자신이 사도 된 것이 보내심에 의한 것이라는 강조이다. 12제자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그런 보내심에 의해서 사도가 되었다. 이는 예수의 아우 야고보, 사도행전 4장의 바나바, 바울, 실라, 디모데, 디도 다 마찬가지이다. 그렇다. 복음 전파는 보내심을 받은 자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다. 

나는 강화도 시골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과학 선생님은 서강대학교를 졸업한 20대 초반의 초임 여교사였다. 그는 점심시간이나 아침 첫 수업 전에 매 주 한 번씩 기독 동아리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기 위해 힘썼다. 졸업생들 중에서 기독 동아리 학생들에게 기독교 서적을 선물해 주었다. 지금도 책꽂이 어딘가에 그 2권의 책이 꽂혀 있을 것이다. 그 당시에 한국 교회에 한창 알려지던 전도자 빌리 그래함, 적극적 사고방식의 주창자로 알려진 노만 빈센트 필 목사의 책으로 기억한다. 남자 수학선생님도 학생들에게 할 수만 있으면 복음을 전해 주려고 애썼던 걸로 기억이 된다.

복음 전파는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힘써야 한다. 영국 교회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 목사가 설교 시간에 복음 전파의 기회를 미루지 말고 급하게 전파할 것을 강조하였다. “지금 당장 사랑하는 아들 딸에게 복음을 전파하세요.”라는 촉구의 말씀을 듣고 예배 후에 집으로 달려 간 어머니가 잠을 자고 있는 딸을 깨워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자 딸은 “엄마 나는 엄마가 믿는 복음을 나에게도 전파 해 주시길 기다리고 있었어요.”하고 대답하였다. 그 후 그 딸은 영국 교회에 알려진 복음 전파자가 되었다.

우리는 아들딸 손자 손녀 가족, 일가친척들과 좋은 관계를 갖고 사는 것 가 좋지만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복음 전파자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교회의 칠팔십대 여 권사님 몇 분이 전남 목포와 신안군 일대를 여행하고 오셨다. 권사님 한 분이 증도의 전도자 문준경 전도사의 생애를 소개하는 책을 사다 주셨다. 그 책 안에는 신랑에서 소박맞은 새댁 문준경이 시아버지에게서 한글을 깨우치고 나중에 목포에 나가서 이성봉 목사의 집회에서 은혜를 받았다. 서울에 올라와서 성경학원에서 공부하였다. 신안군은 섬이 1004개라서 천사섬이라고 한다. 이 섬 저 섬에 다나며 복음을 전했다. 그 복음 전파의 영향을 받은 이들 중에 CCC의 김준곤, 중앙성결교회 이만신, 한국 신학대학 상담학 교수를 지내고 지금은 크리스쳔치유상담연구원의 정태기 박사 등의 수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을 제자로 배출하였다. 


전파된 복음을 순종하는 자들.
복음을 전파한다고 해서 누구나 다 그 자리에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순종하는 자들보다는 거부하고 거역하고 배척하고 불순종하는 이들이 더 많다. 바울 당시에 동족인 유대인들이 그러하였다. 동족인 유대인들 중에는 오히려 사도 바울을 죽여 없애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러 더러 복음에 응답하고 순종하는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하신다. 17절의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는 말씀의 뜻이 무엇인가. 공동번역으로 로마서 10장 17절을 읽으면 이렇다.

“그러므로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그리스도의 말씀을 계속하여 전파하여야만 한다. 

요한복음을 보라
1장에 보면 예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의 같은 마을인 벳새다 사람 빌립을 제자로 부르셨다. 빌립은 나다니엘에게 찾아가서 예수를 소개하였다. 나다니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시큰둥하게 반응하였다. 그러나 빌립은 뒤로 물러 서지 않고 “와서 보라”고 강권하였다. 나다니엘을 처음 본 예수께서는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시며 그를 열 두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을 택하셨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예수께서는 가나 혼인 집에 가셔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 이 일로 인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게 되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예수를 찾아 왔던 관원 니고데모가 나중에 예수의 시신을 장례하기 위해서 침향 100근을 갖고 나와서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함께 예수를 장례하였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야곱의 우물가에 물을 길러 나왔던 여섯째 남자와 동거하던 수가성 여인이 예수를 만났다. 물좀 달라 하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신 것을 알고 자기 마을에 들어가 전파하였다. 온 마을 사람들이 예수께로 몰려 왔고 저들 모두가 예수를 주로 영접하였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베데스다 못가에서 예수 만난 38년된 병자가 고침을 받고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벳세다 광야의 배고픈 무리들이 예수께서 감사기도 하시고 나누어 먹게 하신 어린 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인하여 배 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체험하였다. 무리들은 예수를 임금 삼고 싶어 했지만 예수께서는 혼자 조용히 산으로 기도하기 위해서 그 자리를 피하여 떠나가셨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곳마다에서 기사와 이적과 표적과 주의 말씀으로 인한 구원의 역사가 계속되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벌써 10년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어제 지방 성경 암송대회에 우리 교회는 이가은 중학생 한 명 출전하였다. 전도사와 교사 두 명이 나서서 세 명의 교사가 한 명의 학생을 위해서 토요일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해서 어른 아이의 한 영혼 한 영혼이 세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확장되어 가는 것이다. 

9월 초에 애기들 손마디만한 어린 김장 배추모 300개를 심었다. 지난 주에 가서 보니 배추 잎이 큰 부채만하게 자라났다. 올해는 배추 한포기에 만원씩 한다고 한다. 심고 물을 주면 자라나는 법이다. 식물과 채소가 땅에 심겨지고 물을 주고 햇빛을 받으면 무럭 무럭 자라나는 것처럼 복음 전파란 것이 그런 것이다. 

가정과 가족과 교회와 성도들 각 사람의 마음 속에서 들고 깨달아 알고 믿게 된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이 겨자나무처럼 새가 깃들 정도로 무성하게 자라나길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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