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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인의 믿음(막7:24-30) 2019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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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9-01-21 23:51 조회 12,313 댓글 0
 
                         어느 여인의 믿음(막7:24-30)     2019. 1. 20


지난 2018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저녁에 참으로 안타깝고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47살이었던 의사 임세원 박사는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다. 그는 100여 편의 전공분야 연구 논문을 발표한 정신과 분야의 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22년째 날마다 다양한 형편의 환자들을 대해 왔다. 정신과 의사인 그가 만나는 환자들은 모두가 다 정신 건강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었다. 그의 환자 중에 30살 박 모 군이 진료실에서 흉기를 빼어 들었고 임세원 의사의 가슴 부위를 여러 차례 찔렀다. 급하게 진료실을 빠져 나와 몸을 피하려 하였으나 범인으로 돌변한 환자는 의사를 쫓아가며 흉기를 휘둘렀고 그의 칼에 10여 군데 가슴 부위에 중상을 입고 2시간여 후에 결국 숨지고 말았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범행을 저지른 환자는 사건 후에 “의사가 자기를 치료해 주기는커녕 머리 안에 폭탄을 집어넣어 놓았다.”고 횡설수설하였다. 

임세원 의사는 지난 2016년 5월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제목의 책을 한권 내었다. 지난 주에 그의 책을 읽었다. 그는 책의 시작하는 글에서 20년이 넘도록 의사 활동을 해 온 자기 자신도 정작은 우울증이 찾아 와서 3년이 넘도록 힘겨운 날들을 지낸 과거의 사실을 털어 놓고 있다. 

아무리 대단한 것 같은 사람이라도 자신이 병들어 보면 인간이 참으로 별 것 아니라는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임세원 의사는 책에서 고통을 겪는 환자 가족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일화들을 정신과 의사의 눈으로 관찰하여 풀어 나가고 있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사랑하는 가족이 아파하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때때로 내가 아픈 것보다 더 괴롭게 느껴진다. 특히 어린 자녀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것을 보아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글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이다.”

그의 진료실에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60대 후반의 여성의 일화를 소개했다. 늘 곱게 차려 입고 오실 때마다 요구르트를 사 들고 오신다. 그의 40살이 넘은 딸은 20여 년째 조현병이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자신의 딸을 정신과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언제나 자신이 돌보아 주어야 하는 소중한 자신의 아이로 바라보며 지내고 있다. 딸의 병세는 여러 해 동안 전혀 더 나아지지 않고 제자리걸음이다. 그런 딸을 대하는 어머니는 담당 의사에게 늘 이렇게 말하고는 한다. 

“우리 아이가 더 나빠지지 않게 잘 돌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 딸을 둔 어머니는 자신이 딸보다 더 오래 살면서 딸을 돌봐야 한다고 여겨서 어머니 자신의 건강관리에도 신경을 쓰며 살아간다. 매주 주민센터에서 요가를 배우기도 하고 매일 한 시간씩 둘레 길을 걸으며 운동을 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고통에 처한 사람들의 가족이 해야 할 일은 고난 속에서 많은 것이 변해 버렸지만 가족들 간의 관계는 전혀 변하지 않았으면 앞으로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가족끼리 함께 이야기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해도 우리 가족은 ‘함께’라는 것을 가족들이 서로 느끼게 해 주고, 스스로도 그렇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가족은 함께 고난을 견디며 더 단단해지는 법이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더러운 귀신에 들려서 고생하는 어린 딸을 고쳐 보려고 몸부림치는 엄마를 만나게 된다. 생각하여 보라. 딸의 나이를 말하지 않았으나 어린 딸이라고 하였다. 어린 딸이 다른 병도 아닌 하필 더러운 귀신에 들려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귀신에 들린 상태의 환자들의 모습을 보아 안다. 물과 불 가운데 뛰어 들고 소리를 크게 지르고 옷도 잘 입으려고 하지 않는다. 쇠고랑으로 묶어도 끊을 정도의 힘이 어디에선가 주어진다. 무덤 사이에서 지내고 가족과 함께 집안에서 지내는 것을 거부하기도 한다.

이런 처참한 지경을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 귀신 들린  가족을 대하는 또 다른 가족들의 긴장된 일과이다. 어린 딸을 귀신 들린 상태에서 고침 받게 해 보려는 엄마의 노력은 계속되었고 드디어 예수를 만났다. 이 여인은 이스라엘 여인이 아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 나라 밖의 두로 지방에 가셨다가 거기서 헬라인인 수로보니게 여인을 만난 것이다. 오늘 날로 하면 시리아 지역의 페니키아 지방의 여인이다. 이 여인은 예수를 만나자 마자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렸다. 그리고는 자기의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였다.

그런데 예수의 대답은 무척 냉담하였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막7:27) 예수의 이와 같은 대답은 성경을 읽는 독자들을 무척이나 당황스럽게 만든다. 우리가 아는 예수의 모습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의 이 대답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녀’라고 말씀하고 이방인들은 ‘개’에 비유한 대답이 아닌가. 이런 식의 표현은 그 어떤 누가 해도 크게 반감을 살 말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의 근본으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께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 수로보니게 여인을 향하여 ‘개’ 운운하셨단 말인가. 

물론 예수의 이 말씀은 유대인만이 구원 받을 대상이고 이방인은 구원에서 벗어난 백성들이란 뜻에서 하신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구원을 향한 수로보니게 여인의 열망을 자극하고 열정에 불을 붙이며 유대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이방에 어떻게 흘러가는 가를 교훈하신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여하튼 이처럼 상대방을 무시하는 듯한 예수의 말씀을 들은 수로보니게 여인은 전혀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없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막7:28)

이 말을 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막7:29) 예수의 이 말씀을 들은 여인이 집으로 돌아가서 보니 귀신에 들려 있던 딸에게서 귀신이 떠나갔고 딸아이가 침상에 누워 있었다.

성경의 복음서를 웬만치 아는 이들은 대개가 아는 내용이 오늘 본문이다. 이 말씀을 좀 더 묵상하는 중에 말씀에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
가족들 중에 그 누군가에게 고통이나 질병이 찾아 왔을 때에 가장 안타까운 마음으로 대하게 되는 것이 아들딸에 관한 것이다. 아직 어린 아들딸이든 혹은 나이가 들어가는 아들딸이든 자식에게 고난이 닥치거나 자식이 사고를 당하거나 자식에게 질병이 찾아오면 부모로서 그 자식을 대하는 마음의 고통과 아픔이란 설명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 속담에 “부모가 돌아가시면 산에 묻지만 자식이 먼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지 않나. 자식이 당하는 고통이나 불행이나 슬픔이나 어려움이란 부모에게 있어서 차라리 대신 해 주고 싶을 정도의 아픔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기 수로보니게 여인의 어린 딸은 그 어떤 다른 병도 아닌 귀신에 들린 것이다. 내 어린 자식이 귀신에 들렸다고 상상해 보라. 그 부모의 심정이란 무너지고 찢어지는 충격과 아픔이 아니겠는가. 이 수로보니게 여인이 어린 딸에게서 귀신이 떠나가고 딸이 어서 깨끗해지기를 바라서 별의 별 노력을 다 기울였을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보면 작은 시골 마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가정에 그 누군가가 귀신에 들린 이런 경우에 굿도 하고 무당을 찾아다니고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 나서고 하는 경우를 어른들의 대화를 통해서 들은 기억이 생생하다. 

경우와 상황은 좀 다르지만 교인 가정 중에 어린 아들이 경기를 해서 거품을 물고 땅 바닥에 쓰려지고 팔 다리를 사시나무 떨듯하고 죽은 것처럼 누워 있다가 ‘후우’하면 긴 한숨을 몰아쉬고 일어나는 동네 아이가 있었다. 어른들은 그 아이가 건강을 회복하고 잘 자라날 수 있도록 예배당의 마루 바닥에 원을 그리고 둘러앉아서 기도하고 기도하던 장면을 기억한다. 어렸을 적 기억이지만 어린 마음에도 안타깝고 불쌍한 마음이 크게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 이 수로보니게 여인의 심정이 오죽하였겠나. 귀신들린 딸은 집안에 두고 가족들 중에 그 누군가에게 맡기고 예수를 찾아 나선 수로보니게 여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시내에 다니다 보면 “실종된 송혜희를 좀 찾아 주세요.”라고 쓴 현수막을 보게 된다. 1999년에 실종되었으니 올해 20년째이다. 그 부모의 심정이 이해가 되나. 이게 부모의 마음이다. 

실종된 것과 상황은 좀 다르지만 지금 어린 딸에게 귀신이 들어가서 고생하고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겉으로 보기에는 부러워 보이고 화려해 보이는 그 누구의 삶이나 그 어느 가정의 살아가는 내막도 사실은 깊이 들어 가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어려움이 없이, 고난이 없이, 시련이 없이 날마다 복숭아꽃이 핀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의 봄날에 멀리 꽃이 만발한 과수원을 바라보듯이 그렇게 연분홍빛으로만 화사한 나날을 살아가는 가정이 몇이나 되겠나.

인생이 살아가다 보면 유라굴로 광풍이 대작하듯이 바람과 풍랑이 휘몰아쳐서 낮인지 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칠흑과 같은 암울한 날들을 지내는 경우가 없지 않다. 

세례 요한의 부모인 아버지 제사장 사가랴와 어머니 엘리사벳이 생존해 있었다면 감옥에 갇혀 지내던 아들 세례 요한이 헤롯의 생일날 잔치 자리에 목이 잘려 쟁반에 담겨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어떤 심정이었겠나.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묵상하고는 한다. 그날 예수의 제자 베드로는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하고 배반하고 도망가 버렸다. 골고다 십자가 처형 현장에는 그 어떤 다른 제자들의 모습도 보이질 않았다. 그 곳 골고다 언덕에서 높은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당하는 아들 예수를 지켜봐야 했던 어머니 마리의 심정을 상상해 보라.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들딸들이 겪는 고난, 고통, 질병, 사고, 시험 등 별의 별 어려움을 지켜보면서 부모로서의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씨름하며 살아간다.  

가령 장애를 갖고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는 본인들의 심정 또한 할 말이 없으나 양 손에 두 손가락씩 네 손가락만을 가진 불구의 딸이 태어났을 때에 그 딸을 오늘 날까지 키워 낸 피아니스트 이희아 양의 부모의 심정을 상상해 보라. 말은 쉽게 하지만 팔다리 없이 몸에 작은 발하나만 붙어 있는 모습으로 태어난 닉 브이치치를 길러낸 부모의 심정, 엄마 아빠의 심정을 상상해 보라. “공평하신 하나님”이란 찬양의 작시자로 잘 알려진 중증뇌성미비 상태의 딸 송명희 자매를 돌보고 키워낸 엄마 아빠의 마음이 느껴지나. 

평생 말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볼 수조차 없던 딸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를 돌본 엄마 아빠의 마음과 엔 셜리반 선생의 심정이 헤아려지나. 

본문의 수로보니게 여인은 귀신들린 어린 딸의 문제를 안고 예수를 찾아 나섰다. 


예수의 발 앞에 엎드린 여인.
예수의 소문을 들은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를 만나자 마자 예수의 발아래 엎드렸다. 그리고는 자기의 어린 딸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아 달라고 간구하였다. 이 심정, 이 상황을 상상해 보라. 26절에 ‘간구하거늘’이란 말은 한두 번 요청하고 그만 두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달리 표현할 수 없는 간절한 마음을 갖고 애원하고 또 애원하는 간청을 말한다.

그렇지 않겠나. 소문에 듣던 예수를 만났으니 마음이 얼마나 설레었겠나. 예수께서 가시는 곳마다 각색 병자들을 고치신다는 소문을 전해들은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의 발아래 엎드려 간구할 때의 심정이 어떠하였겠나.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 만나 자기 어린 딸에게서 귀신이 떠나가고 사랑하는 딸이 깨끗함을 받았다. 우리는 성경의 이런 장면을 대할 때에 “그런데 왜 예수님은 우리 가정, 우리 집 기도 제목은 응답하지 않으셨나요. 왜 예수님은 우리 집에 이런 불행이 찾아오도록 외면하고 계셨나요.”라고 반문하게 된다. 

“왜 예수님은 내가, 우리 가족이 그렇게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간구하고 또 간구했건만 왜 우리 가정에, 왜 우리 아들딸에게 이런 불행이 찾아오도록 침묵하고 계셨나요.”라고 항의하게 된다. 

생각하여 보라. 인간의 불행은 어느 순간에 갑자기 찾아온다. 

과거에 보스톤 국립 정신병원의 특별 보호 병동에 앤 셜리반(Ann Sullivan)이란 소녀가 입원하였다. 엄마는 죽고 아빠는 알콜 중독자였다. 여동생마저 보호소에서 함께 지내다 죽고 말았다. 앤 셜리반은 그런 충격으로 시력을 잃었다. 자살을 여러차례 시도했다. 버럭 버럭 소리를 지르고 사납게 행동하였다. 어느 의사나 어느 간호사도 그 소녀의 가까이에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정신 병원 특별 감호 병동의 독방에 짐승처럼 갇혀 지낸지 몇 해가 지났다. 

그런데 은퇴 간호사인 로라(Laura)가 그 소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맛있는 과자도 가져다주고 초코렛도 건네 보고 책도 읽어 주고 손도 잡아 주길 계속하였다.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앤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하는 말을 계속해 주었다. 그래도 여전히 소리치고 고함을 지르며 사납게 반응하는 앤 셜리반을 늙은 간호사 로라는 정성을 다해 꾸준히 돌보아 주었다. 그런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앤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로라 간호사 할머니는 앤의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책도 읽어 주고 기도를 계속해 주었다. 앤은 창가에 앉아서 햇볕을 쪼이기도 하였다. “앤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라고 말하면 “나도 사랑해”라고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가면 앤은 정상인에 가깝게 변해 가고 있었다. 2년 여만에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은 앤은 파킨스시각장애 학교에 입학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는 중에 로라 간호사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열심히 공부한 앤은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신문사의 재정적인 도움으로 개안 수술을 받고 세상을 다시 보게도 되었다. 그런 어느 날 “말 못하고 듣지 못하고 볼 수 없는 소녀를 돌볼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신문 광고를 보게 되었다. 앤 셜리반은 그 동안 자신이 사라 간호사 할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갚을 기회가 왔다고 여기고 나섰다. 이것은 우리가 아는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와 앤 셜리반이 만나게 된 시작이었다. 앤 셔리반은 헬렌 켈러 곁에서 48년을 함께 지냈다. 헬렌 켈러를 만날 당시에 앤 셜리반은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요.” 나중에 헬렌 켈러는 말했다. “저는 저에게 항상 사랑과 희망과 용기를 붇돋어 준 앤 셜리반 선생님께 감사해요. 내가 눈을 뜰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셜리반 선생님을 보고 싶어요.” 

우리는 어떠한가. 나는 어떠한가. 내게 복된 날이 주어졌을 때 어떤 모습, 어떤 자세로 살아 왔나. 혹은 지금 혹은 요즘 혹은 올해 새해를 출발한 내게, 우리 가정에, 우리 가족이 겪는 고난이나 불행이나 슬픔이나 충격이나 질병이나 시련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예수의 발아래 엎드려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그래야 대답을 얻을 수 있다. 그래야 내가 당한 형편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 그래야 극복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어렵고 내려놓을 수 없는 내 인생의 불행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다.

찬송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를 부르자.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모든 짐 내려 놓고 
주 십자가 사랑을 믿어 죄 사함을 너 받으라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 노라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

어떤가.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내 마음대로 되나. 내가 피를 쏟아 낳은 아들딸이라고 내 마음대로 되나. 내가 내 몸이라고 마음대로 유지가 되나. 내가 내 마음이라고 내 생각대로 다스려 지나. 

지금 답답한 내 인생의 문제를 안고 예수의 발아래 가지고 나와야 한다. 예수 만나야 한다. 그래야 위로가 있고 그래야 회복이 있고 그래야 소망이 있고 그래야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다. 


귀신을 다스리신 예수.
내 아들 딸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하고 자녀에게 줄 떡을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던 예수께서 이 여인의 귀신 들린 어린 딸을 고쳐 주셨다. 예수께로부터 무척이나 냉담한 반응을 들은 여인이지만 이 수로보니게 여인은 담대하고 침착하였다. 예수로부터 냉담한 취급을 받은 이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막7:28)라고 지혜롭게 대답하였다. 

여인의 이런 대답을 들은 예수께서는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막7:29)고 축복해 주셨다. 여인이 집에 돌아가 보니 딸에게서 귀신이 떠나갔고 딸은 침상에 얌전하게 누워 있었다.  

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인가. 우리는 헬라 말을 사용하던 이방 여인인 수로보니게 여인에게서 주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을 만나 보게 된다. 마가복음의 내용 중에 예수를 항하여 ‘주여’라고 부른 경우는 여기 이 수로보니게 여인 밖에는 없다. 유일한 경우이다. 이 수로보니게 여인은 유대인이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비록 이방 여인이었지만 예수에 대한 소문을 분명하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예수 만나서 예수께 간구하면 기적이 일어나리라는 믿음도 갖고 있었다. 

성경은 이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를 만난 이후에 어떤 믿음의 삶을 살았는지를 기록하고 있지 않다. 예수를 통해 귀신이 떠나가고 건강을 회복한 그녀의 어린 딸이 예수의 사랑을 덧입고 치유 받은 딸답게 어떤 생을 살았는지를 말씀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의 상상의 분량일 뿐이다. 
우리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지만 별의 별  우여곡절과 희노애락을 다 겪으며 살아간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하여야 하겠는가. 입으로 쏟고, 말로 쏟고, 화로 쏟고, 감정으로 쏟아 내지 말고 구약의 욥처럼 입의 말로 범죄하지 아니하고 잠잠히 주를 바라보고 주님을 향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조세핀 캠벨((Josephine Campbell, 1853-1920)은 미국 텍사스에서 출생했다. 21살 때에 텍사스의 작은 개척교회 목사였던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과 결혼하여 남매를 낳았다. 그러나 결혼 6년 만에 남편 목사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갔다. 그 후에 아들과 딸도 모두 잃고 말았다. 그 뒤 주변에서는 재혼하라는 권유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죠세핀 캠벨은 불행을 연이어 겪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자신이 겪은 슬픔과 절망을 극복하면서 뜻을 정하였다. 그리고는 일생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공헌하기로 결심하고 시카고의 간호원 양성소에 입학하여 간호 교육을 받았다. 또한 신학 공부도 함께 병행하였고 해외 선교사로서 살아가면서 복음을 전하기로 서원하였다. 33살에 간호원 양성소를 수료하고 미국 남감리교회 해외 선교사로 임명을 받아 1886년에 중국 청나라에 도착하여 상해와 소주를 중심으로 10년간 간호 선교사로 활동하며 교회 설립에 앞장섰다. 
미국 남감리회 선교부는 그녀의 능력과 헌신을 높이 평가하여 미국의 선교 본부로 불러들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미국 남감리회 해외 여자선교부”(Woman's Board of Foreign Mission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South)에서 조선에 파송하는 감리교 최초의 여자 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한국에 도착하였다. 1897년의 일이다. 그 해 10월에 인천 제물포항을 거쳐 오늘 날 서울인 한성부에 도착했다. 

감리교 선교사 중 여성 선교사로는 최초로 파견된 것이었다. 한국으로 오면서 양녀(養女)로 입양한 중국인 여도라(Dora Yui, 余小姐)를 데리고 왔다. 캠밸은 선교 사업과 동시에 간호, 치료, 진료를 하였다.

조선에 도착한 캠벨 선교사는 윤치호(尹致昊, 1865-1945)의 마중을 받았으며 남대문 근처의 남송현(南松峴) 감리교선교부에 정착했다. 어느 날 때 묻고 더럽고 글도 읽지 못하는 어느 소녀를 보고 놀란 그는 여성 학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본격적으로 여성 기숙학교(Boarding School)를 시작하였다. 한국에 도착한 다음해인 1898년 10월 2일 오늘 날의 배화여자대학교의 전신인 배화학당을 창설했다. 

그는 교육을 받지 못한 조선의 여성들에게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으나 대부분 냉소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조선의 어린 소녀들을 데려다가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후 학생들 수가 늘어서 1903년 12월 배화학당이 되었고성경, 영어, 산술, 독본, 생리학, 지리, 역사 등을 가르쳤다. 학교의 교명은 윤치호가 “꽃을 기른다”는 뜻의 ‘배화’(培花)라고 지어 주었다. 배화학당(培花學堂)이란 “여성을 아름답게 기르고, 꽃 피워 내는 배움의 터전”을 의미했다. 죠세핀 캠벨 선교사는 14년간 초기에 교장으로 봉직하였다. 
1901년 미국에서 루이스 워커(Lousie Walker) 등이 선교 후원으로 보내준 돈으로 배화학당 내에 예배당을 건축하여 봉헌하였다. 그리고 이름을 '루이스 워커 기념 예배당'(Lousie Walker Memorial Chapel)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시작된 예배는 훗날 종교 교회와 자교 교회를 탄생하는 기반이 되었다. 죠세핀 캠벨 선교사를 적극적으로 후원한 윤치호는 훗날 종교교회의 설립과 부흥을 위해서 열심을 다해 헌신하였고 나중에는 장로로 섬겼다. 

우리는 누구나 세상을 살다 보면 별의 별 어려움을 다 겪고 별의 별 고난을 다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사고와 사건과 질병과 어려움이 많은 세상을 살아가며 어떠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까.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의 발아래 엎드려 간구하였다. 예수의 냉담한 말씀을 듣고도 낙담하지 않고 상아래 개들이라도 받아먹기 원하는 식탁의 음식 부스러기의 은혜라고 덧입기를 사모하였다. 이와 같은 지혜롭고 간절하게 간구하는 수로보니게 여인을 대하신 예수는 그 순간에 그녀의 어린 딸로부터 귀신이 떠나가도록 치유의 은총을 베푸셨다. 

마치도 마태복음 8장의 백부장의 믿음을 따라 예수 곁에 없던 하인인데도 예수께서 “가라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하고 말씀하실 때에 백부장의 하인이 나은 것처럼 어린 딸에게서 귀신이 떠나갔고 깨끗해 졌다. 

예수 안에 대답이 있다. 예수 안에 소망이 있다. 예수 안에 위로와 격려가 있다. 예수 안에 영원한 구원과 영생의 은총이 있다. 

우리의 겪는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질병과 절망스러운 문제를 안고 예수의 발 앞으로 나아와 엎드려 간구하는 믿음의 역사가 계속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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