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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부활 신앙(Ⅳ)(눅24:36-49) 2018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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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8-04-27 19:07 조회 14,854 댓글 0
 
                  부활 신앙(Ⅳ)(눅24:36-49)              2018. 4. 22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그날 오후에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와 함께 동행 하셨다. 그 두 제자들 중의 한 제자 이름만이 누가복음 24장 18절에 기록되어 있다. ‘글로바’라고 이름 하는 그 제자는 아마도 70인의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이십 오리정도 되는 마을이었다. 예수께서는 글로바와 또 다른 한 제자의 곁에서 함께 걷기 시작하시면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예수의 질문을 받는 그 두 제자의 얼굴은 슬픈 빛을 띠고 있었다. 그들의 이런 설명을 들으며 함께 걷던 예수께서 저들에게 말씀하셨다.“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눅24:25-26)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의 글과 모든 성경을 인용해 가면서 예수에 관한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 때까지도 두 제자들은 그분이 부활하신 예수이신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이미 엠마오에 도착하였다. 그 때 예수께서는 더 가야 할 길이 있는 듯이 반응하였다. 그 때에 두 제자가 강권하였다. “우리와 함께 이 곳에 묵었다 가시지요. 이미 날도 기울었습니다.”그 때에 예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한 집에 묵으러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려고 감사 기도를 드리셨다. 그리고는 예수께서 먼저 떡 한 조각을 떼어 그들에게 주시자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 그제야 그 분이 부활하신 예수이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순간 예수께서는 그 자리에서 사라지셨다.
 
두 제자들도 저녁을 먹으려다 말고 서로 말하였다. 그날 오후 엠마오까지 오던 길에 그 분이 성경 말씀을 풀어 주실 때에 마음이 뜨거웠지 않았냐고 서로 말하였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시 예루살렘을 향해 돌아갔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한 곳에 숨어서 문을 닫아걸고 있던 열한 제자들이 있는 곳을 찾아 갔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 사실을 전하였다. 이처럼 예수의 부활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그 곳에 예수께서 찾아 오셨다.
오늘 말씀의 본문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두려움과 무서운 마음으로 문을 닫아걸고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찾아 가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인사하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제자들은 놀라워하고 무서워하였다. 그 때 예수께서는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24:38-39)

예수는 못 박히셨던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기뻐하면서도 반면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 분위기였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그 때 제자들 중의 누군가가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렸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그 생선 한 토막을 잡수셨다. 그 생선 한 토막은 부활 하신 예수께서  그 날 처음으로 잡수신 음식인 것 같다. 왜냐하면 성경 그 어디에도 예수께서 부활하신 그 날 다른 곳에서 음식을 잡수신 기록을 남긴 곳에 여기 말고는 없다. 아마도 예수께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구운 생선을 한 토막 받아 잡수신 것을 부활에 대하여 영의 부활을 인정할 뿐 육의 부활에 대하여 의심하던 제자들에게 예수의 온전한 부활을 증명해 보여 주시기 위해서 그런 것 같다.
 
구운 생선 한 조각을 받아 잡수시고 허기를 채우신 예수께서 그날 그 밤에 제자들에게 해 주신 말씀이 오늘의 본문이다. 예수께서는 그 밤에 열 한 제자들과 그 자리에 먼저 찾아가서 예수의 부활 소식을 전한 글로바와 또 다른 한 제자와 그 곳에 함께 숨어 있던 이들(눅24:33)에게 엠마오로 가면서 글로바와 다른 제자에게 해 주셨던 똑 같은 말씀을 다시 반복하여 해 주셨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과 시편에 예수 그리스도 즉 메시아에 관하여 기록된 말씀에 대하여 언급하셨다. 예수는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고 강조해 주셨다. 그렇다. 예수의 부활은 어느 날 우연히 일어난 역사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모세의 율법과 선지서들과 시편 등에서 말씀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뿐이다. 그 밤에 제자들의 마음이 열렸다. 예수는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 그리고 세 가지를 강조해 주셨다.
 
고난과 부활.
그 첫째는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에 관한 말씀이셨다. 이와 같은 말씀은 누가복음에만도 네 차례 째이다.
 
누가복음 9장 22절, 누가복음 18장 32-33절, 누가복음 24장 7절, 누가복음 24장 26절에 보라.
다른 곳 말고 펼쳐 가지고 있는 누가복음 24장 7절을 보라. 안식 후 첫날 여자들 몇이 예수의 무덤을 찾아 갔다. 준비한 향품을 예수의 시체에 더 발라 드리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예수의 무덤에 도착해 보니 무덤을 막고 있던 큰 돌이 굴려져 옮겨 있었다. 무덤 안에 들어가 보니 예수의 시체가 없었다. 여인들의 마음에 근심이 생겼다. 그 때에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의 곁에 섰다. 여자들은 두려워서 땅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었다. 그 때에 그 두 천사가 말하였다.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두 천사의 이 설명을 들은 여인들은 평소에 예수께서 해 주시던 똑 같은 말씀의 내용이 생각나서 무덤에서 돌아가서 예수의 부활 사실을 열 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들에게 알렸다.
 
누가복음 24장 10절에 보면 예수의 무덤을 찾아 갔던 여인들의 이름이 실려 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길에 예수께서 글로바와 다른 제자에게 설명하실 때 강조하신 내용도 바로 이 내용이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눅24:26)
 
예수의 생애는 고난을 시작으로 하여 부활의 영광을 드러내신 생애였다. 요즘은 교회력으로 하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이 땅에 40일간 머무셨던 기간이다.
 
실로 예수의 생애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예수는 요즘처럼 환경이 잘 구비된 여건의 산부인과 병원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의 탄생지는 베들레험 그것도 사람의 거주 공간이 아닌 마구간이었다. 상상하여 보라. 만삭된 마리아가 남편 요셉을 따라 남편의 호적 하는 일에 동행하였다가 예수를 낳게 되었다. 해는 떨어졌고 사방이 어두워졌다. 베들레헴에 호적하기 위해서 먼저 찾아 온 이들이 묵을 만한 집을 이미 다 차지한 후였다. 요셉은 해산의 통증을 호소하는 마리아를 보호하며 결국은 짐승들의 우리인 마구간으로 찾아 들어가야 했다. 2000년 전의 베들레헴 마구간. 무슨 마땅한 불 빛 하나 있었겠나. 짐승의 배설물 냄새가 진동하고 지저분하고 열악하고 깜깜한 마구간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낳게 된 것이다.
예수는 탄생부터가 고난의 시작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애굽으로 피신하여야 했다. 헤롯이 그 주변 근동의 두 살 미만의 사내 아기들 모두 다 죽이라고 명령하였기 때문이었다.
 
오늘 날 유럽의 여러 나라 주변을 떠도는 난민들의 숫자는 6,0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떠도는 난민들은 그 어느 나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중에 최근 노르웨이교회는 “난민을 환대하자”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노르웨이교회는 “예수께서도 난민이셨다. 예수는 바로 이 시대와 이 세계의 굶주리고 목마른 난민들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고통 받는 세상에서 그들과 벽을 쌓고 거리를 두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교회는 그래서는 안 된다. 유럽은 외국인혐오증에 마비되고 있다. 난민들은 공포와 두려움 속에 유럽이 쌓은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의 입장을 발표하였다. 노르웨이교회는 에르나 솔베르그(Erna Solberg, 1961-/ 1913년 이후 총리) 노르웨이 총리를 향해 “용기를 갖고 말과 행동을 통해 난민들을 환대해 달라”고 촉구했다.
 
부활 신앙이란 무엇인가. 오늘 날 내 주변에 고난당하는 이웃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희망이 싹트며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더불어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는 가는 곳마다 배척을 받고 미움을 받으셨다. 한번은 고향을 방문하고 고향 나사렛의 회당을 방문하신 적이 있으셨다. 마태복음 13장 54절 이하에 나오는 내용이다. 예수께서 전하는 말씀을 듣고 있던 나사렛 마을 주민들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고 말하며 예수를 배척하였다. 그 때 예수께서는 저들에게 말씀하셨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께서는 고향 사람들에게 이런 말씀을 전하신 적이 있으셨다.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 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눅4:25-27)
 
이 말을 들은 나사렛 회당의 동네 사람들은 모두 다 크게 화를 냈다. 그리고는 일제히 일어나서 예수를 동네 밖으로 쫓아내었다. 동네 밖 낭떠러지까지 끌고 갔다. 그리고는 거기서 밀쳐 떨어 뜨려 죽이려고 위협하였다. 예수는 그 현장을 피하여 고향 나사렛을 떠나셨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환영 받지 못하셨다. 특히 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로부터 늘 못마땅하게 여김을 당하셨고 미움을 받고 배척을 받으셨다.
 
결국 예수는 주님은 제자였던 가롯 유다로 인해서 은 삼십에 팔려 가셨다. 유월절 다음 날 새벽에 붙잡히신 예수는 처절한 고난과 고통과 부끄러움과 온갖 모멸을 다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하셨다.
 
예수께서 당하신 고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예수께서 당하신 고난을 어떻게 받아 들일 수 있는가.
기독교를 설명하는 표현 중에
 
No Cross No Crown
 
이란 표현이 있다. “고난의 십자가 없이는 영광의 면류관도 없다."는 뜻을 담고 있는 표현이다.
벤살렘 교회에서 목회 할 때에 벅스카운티 중앙고등학교 대 강당에서 큰 행사가 있었다. 그 학교는 미국 전국에 소문난 풋볼 팀을 운영하는 학교였다. 학교 대 강당 로비의 벽면에는 벽장마다 가득하게 역대 선배들 때부터 줄줄이 우승하여 받아 온 우승 컵과 우승 기와 우승 메달 등이 넘쳐 났다.

그 장식장 중에 어는 한 곳에 이렇게 쓴 내용을 지금도 기억한다.
 
Know Cross Know Crown
 
무슨 말인가. “고난의 십자가의 의미를 아는 자만이 영광의 면류관의 가치를 안다 ”는 뜻이 아니겠는가.
 
우리 조상들은 ‘고진감래’(苦盡甘來)를 교훈하였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을 지어서 사용해 왔다. 그 속담은 진리이다. 고생이 없이 무슨 낙이 있겠는가.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신 김용기 장로의 가나안 농군학교의 구호는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이다. 노동의 가치를 강조한 구호이다. 그의 강조는 한 끼 밥을 먹으려면 4시간 이상 일하라는 강조였다. 김용기 장로가 강조한 것은 꼭 논과 밭에서 일하는 것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학생은 공부하는 것이 일이다.
상인은 친절하고 정직하여 상업에 종사하는 것이 일이다.
기술자는 자기 기술을 가지고 자기 분야에서 기술을 갈고 닦으며 최고의 장인이 되려는 긍지를 갖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일이다.
 
지난 금요일 심야 기도회 두어 시간 전에 승용차 운전석 맞은편 뒤 바퀴에 바람이 많이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교회 가까운 곳의 자동차 A/S 센터를 방문하였다. 저녁 시간인데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열심히 차량을 수리하는 수리공 몇을 보았다. 자동차 펑크를 수리하는 동안에  한 수리공에게 말을 건넸다. 매우 어려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는 용산 공고 자동차 과 야간을 졸업했다고 했다. 주간에는 자동차 센터에서 수발을 들면서 기술을 익히고 야간에는 고등학교에 다니며 17살에 공고를 졸업했다고 했다. 군대에서도 자동차 정비과에 비치 받아 기술을 연마하고 그 분야에서 일한지 벌써 23년째라고 했다. 39살 난 그는 결혼도 했고 자녀들도 있다고 했다. 작은 체구에 손 끝에 기름때가 쌔카맣게 낀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고난이 있으나 자기 분야에서 자기 재능과 자기 은사와 자기 기술과 자기 역량을 계발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정치인은 올바르게 나라를 정치하고 백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건설해 가는 것이 일이다. 판사와 검사와 변호사는 정의가 상식이 되는 나라를 건설해 가는 것이 일이다.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일에, 경찰은 시민들의 안전한 삶을 위해 일하는 것이 일이다. 버스를 운전하는 이들 기차를 모는 이들, 하늘의 비행기를 조종하는 이들, 바다의 여객선과 관관선과 화물선을 운행하는 이들은 그 하는 일이 일 중의 일이다.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에세이를 쓰고 무슨 글이든 쓰는 이들은 자신의 쓴 글의 누군가의 삶을 영혼을 더욱 살찌우게 하고 풍성하게 하는데 조금이라고 공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일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 그리는 일로,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 하는 일로, 야구, 농구, 축구, 수영, 스케이팅, 골프하는 사람은 그 하는 일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는 고난당하시고 죽으셨으나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그를 죽음에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의 영생의 영광을 천하 만민들에게 증거하는 구주가 되셨다.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

예수께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열방의 모든 나라, 모든 민족에게로 전파되어 가기를 원하셨다. 신앙생활의 유익이 무엇인가.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되어 아버지의 사랑을 덧입고 자녀의 권세를 누리며 증거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세례 요한의 복음 전파의 시작이 무엇인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의 시작이 무엇인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이다. 왜 내용이 같은가.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회개하고 죄 사함 받는 길이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회개’이다. 회개를 헬라어로 ‘메타노이아’라고 한다. ‘메타’는 ‘변화’이고 ‘노이아’는 ‘머리’이다. 즉 생각과 마음의 변화가 회개이다.
 
입으로만 말하지 않고 행동으로, 삶으로 변화가 따르는 것이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모세 때에 불평하고 원망하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 뱀에 물려 죽어 갔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은 놋뱀을 만들어 장대 꼭대기에 매어 달게 하였다. 불 뱀에 물려 죽어 가지만 쳐다보는 자들마다 살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이 회개의 시작이다. 놋뱀을 쳐다보면 산다. 회개란 그런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이 어떻게 하여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는 길이란 말인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이것이 회개하여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하게 되는 길이다. 요한복음에 보면 3장 16절의 이 말씀 바로 앞에 놋 뱀 사건을 말씀하셨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4-15)
 
사랑의 반대는 미움일 수 있으나 무관심이다. 관심을 갖게 되면 사랑하게 된다. 꽃 한 포기,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자연 사랑, 동물 사랑, 하나님이 창조 하신 세계를 사랑으로 보고 관심있게 보면 사랑하게 되어 있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탄식하고, 교만하고, 거만하고, 갑질하고, 법을 악용하고, 권력을 남용하고, 배우고 터득한 살상 무기를 만들고, 원자탄을 만들어 지식으로 세상에 피해를 입히는 것이 모두 다 악이다.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피조물인 인간이 나무와 돌로 다듬은 우상 앞에 절하고 금과 은으로 녹여 만들 우상 앞에 절하며 비는 것이 모두 다 악이고 죄이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인간은 스스로 죄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주 예수를 믿면 나와 내 가족이 구원을 받는다. 이것이 놋 뱀의 교훈이다. 믿으면 구원 받는다. 믿고 놋뱀을 바라보는 자는 살았다.
 
행복하기 때문에 기쁘고 감사한 것이 아니다. 기뻐하고 감사해 하기 때문에 행복해 지는 것이다. 20대 초반에 만성 골수성 백혈병 판정을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사는 심효보 안드레아는 수사가 되어 8년여간 필리핀의 마닐라 판자촌에 버리진 남자 아이들 18명을 돌보며 저들의 아빠처럼 살아가고 있다. 지난 3월 말에 5일동안 인간극장 “아빠가 된 수사님”을 재방으로 우연히 보았다. 5회 분 중에서 첫 편을 보았다. 이제는 종신 서원을 하였다. 6개월밖에 못살 것이라고 했는데 15년도 더 살아 있다. 첫 인상이 병색이 완연하다. 그런 허약한 몸으로 지내며 독한 약을 먹어 가며 저들을 돌본다.
 
1968년 5월 18일 밤 10시 20분 경상북도 안동의 문화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던 시민 400여명을 향하여 수류탄 2개를 던진 탈영병이 있었다. 5명이 현장에서 죽고 44명이 크게 다쳤다. 육군 소속 신 모 하사의 소행이었다. 그는 안동의 고아원에서 자라났다. 18살에 고아원을 떠나야 했다. 갈 곳이 없으니 군대에 입대하였다. 장기 복무 지원을 하고 하사관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늘 자신을 불행하게 생각하였다. 휴가를 나가도 만날 엄마 아빠도 없고 만날 가족이 없었다. 제대하려고 생각해도 자기를 반길 가족이 없었다. 세상을 비관한 그는 수류탄 2개를 가슴에 품고 탈영하였다. 그는 자기가 자라난 안동 시내에서 초저녁부터 술을 퍼 마셨다. 그리고 그 날 밤 10시 20분에 극장 앞에서 시민들을 향해 수류탄 2개를 던진 것이다. 그는 붙잡혔고 남한산성 곁의 육군 교도소에 갇혔다. 군사 재판에서 사형 언도를 받았다. 총살형에 집행될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군 교도소 군목의 면회도 거부하였다. 어렵게 만날 자리가 마련되었다. 처음에 신 모 하사는 아무 말도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군목은 “당신을 이렇게 만든 것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나를 용서하고 우리를 용서해라.”하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군목에게서 “나를 용서해라. 우리를 용서해라.”는 말을 들은 신 모 하사는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잠시 후 군목과 신 모 하사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한참을 서로 울었다. 그 날 이후로 신 모 하사는 마음 문이 열렸다. 그 다음 면회 시간에 군목은 “너를 과거에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 영원히 너를 사랑할 분을 만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신 모 하시는 “그 분이 누구시냐”고 물었고 군목은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소개하였다.
 
신 모 하사는 어디서 들었는지 죽기 전에 자신의 장기와 시신과 안구를 누군가에게 기증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형 집행 전에 군의관이 앰뷸런스를 타고 도착하였다. 신 모 하사는 군의관과 군목에게 말했다. “나는 한 번도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지만 나의 이 두 눈을 기증 받는 분은 내가 한 번도 못 해본 사랑을 이웃들에게 늘 전해서 육신의 눈도 뜨고 영혼의 눈도 활짝 뜬 삶을 살아가도록 부탁해 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이 늘 평소에 즐겨 부르던 찬송가 305장“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 울려 퍼질 때 군법에 따라서 총살형을 받았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 날 밤 제자들을 만나 하신 말씀이 이것이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눅24:49)
그렇다. 부활신앙이란 무엇인가 성령 받아야 한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위로부터 능력이 입혀져야 한다. 성령이 충만히 임할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성령 받아야 삶이 달라진다. 비겁하게 숨던 제자들을 보라. 성령 받으니까 저들의 나중 생이 달라지지 않았나.
 
시골에서 이 계절이 되면 암탉이 병아리를 까기 위해서 달걀을 품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병아리는 3주를 품고 있으면 달걀에서 태어난다. 신비하다. 노랑 병아리가 떼를 지어 어미 닭을 따라다니며 삐약 삐약 하면 모이를 쪼아 먹는 광경을 보면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된다. 성령 받고 그 분의 품에 안기고 그 분을 따라 살아가아 한다.
 
신앙생활은 성령 받은 생활이어야 한다. 우리가 아는 대로 사도행전의 시작이 무엇인가. 예수께서 승천 하신 후에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기다리던 제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동생들과 여인들을 비롯한 120여 성도가 기도하며 성령 받기를 기다리던 중에 모두 다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 서로 각기 방언하였다.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 날마다 집에 모여 사랑의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서로를 섬겼다. 믿는 사람들이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다.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늘 하나님을 찬미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들의 수를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
 
이런 구원의 역사가 성령 충만함과 더불어 날마다 계속되는 아름다운 공동체, 아름다운 교회로 세워 나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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