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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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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이 마음을 품으라(빌2:1-11) 2019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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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9-08-09 14:19 조회 10,989 댓글 0
 
                     이 마음을 품으라(빌2:1-11)              2019. 8. 4
   

자기만을 아는 자기중심의 이기주의자로 살고 남들 위에 군림하려는 마음으로 살면서 주변 사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불가능할 것이다. 빌립보서 2장은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한다든지 혹은 그 무엇을 사랑하게 되면 그 대상에 마음을 쏟게 마련이다. 사랑한다는 것이 마음의 문제이다. 어떤 사람이나 그 무엇이 마음에 들고 마음을 끌기 때문에 그 마음이 자기의 생각, 감정, 의지를 좌우하게 된다. 

이발소에 가면 대개 이발하는 동안에 조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이 머리를 만져 주면 잠이 오게 나름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가끔 이발사와 대화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요즘은 밤마다 가까운 개울에 가서 2시간 정도 낚시를 즐긴다고 했다. 그 낚시라는 것이 한번 빠져 들면 온갖 생각이 낚시터에 가서 있게 된다.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은 낚시에 마음을 두고 살아간다. 군대에서 높은 계급으로 제대한 어떤 가정의 남편이 하도 낚시터에 다녔다. 아내게 보기에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도대체 그 낚시라는 게 뭐가 그렇게 좋다고 허구헌날 낚시터에 가서 사나 하고 몇 번 따라 갔다가 나중에는 남편보다 부인이 더 낚시 광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어 본 적이 있다.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이다. 모든 대상, 모든 상황이 마음에 좌우되는 법이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이란 것도 마찬가지이다. 

신명기 6장 5절에 보면,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였다.

그렇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마음으로 부터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자리 잡고 나면 하나님이 내 마음에 가득 찬 생각으로 나를 다스리게 된다. 내 마음이 주를 향하게 되고 주님 생각으로 충만하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고 섬기는 데 있어서 그를 대신할 사람이 없을 정도의 신실한 사도의 길을 걸어간 이방 전도자였다. 빌립보서를 쓰고 있는 지금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다. 그런 그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말씀 중의 일부가 오늘 본문이다. 

빌립보서 2장 1절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으면 이런 내용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은 서로 격려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위로하며 성령으로 교제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서로 친절과 동정을 베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생활하십시오.” 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는 마치도 빌립보서 1장 27절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권면과 맥락을 같이 하는 내용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있나.


한 마음(一心).
부부는 마음이 맞으면 어떤 환경, 어떤 고난,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더불어 오손 도손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사회적인 지위가 높고 인기가 대단하고 권력, 명예, 재물이 넘쳐 나도 남편과 아내, 아내와 남편이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그 가정생활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이다. 마음만 맞으면 오리가 아니라 십리라도 넉넉히 함께 갈 수 있다. 마음만 있으면 속옷이 아니라 겉옷이라도 벗어 줄 수 있다. 

이번 주말에 인천 공항의 주차장이 만차 상태라고 한다. 휴가철을 맞아서 해외로 여행을 떠난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이다. 그 여행이란 것이 어디로 여행을 가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여행하느냐이다. 마음이 잘 맞는 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 제일 행복한 여행이다. 

이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교회 생활도 그렇다. 우리가 주를 믿는 믿음 생활이란 것이 물론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길 원하지만 내 곁에 누구와 더불어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가느냐는 것이 나에게 중요한 의미와 이유가 된다. 
그러므로 2절에 보면,

마음을 같이 하라
같은 사랑을 가지라
뜻을 합하라.
한 마음을 품으라

고 권면하고 있다. 왜 이런 말을 하는걸까.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 간에 서로가 그렇지 못한 관계가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나. 빌립보서 1장에 보면 15절에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17절에 보면,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라는 내용이 빌립보 교회의 실상을 입증하는 표현들이 아닌가.

물론 다 나와 같을 수는 없다. 남자 여자 어른 아이 청년 노인 어린이 등등 서로 성별이 다르고 연령대가 다르고 관심 분야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기질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사회적인 지위나 역량이 다르고 사회 생활하는 능력도 다 다르다. 그런 다양한 계층의 서로 다 다른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교회를 형성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그리 간단할 리가 없다. 

그러나 그런 세상살이와 신앙생활의 우여곡절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빌립보서 2장 2절을 읽으면 이렇다.

“그렇다면 한마음 한뜻으로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하나가 되어 내 기쁨을 충만하게 하십시오.”

같은 사랑으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 서로 뜻을 합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마음을 같이하고 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생각하여 보라. 가령 부부가 아무리 구중궁궐(九重宮闕)과 같은 집에서 살면 무엇 하나. 일심동체(一心同體)일 때 부부이지.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상태가 계속되면 그것은 더 이상 부부일 수 없다. 내 생각이 다르고 네 생각이 다르며 내 관심 분야가 다르고 네 관심분야가 다르다면 그게 어찌 부부일 수 있나.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도 그렇지 않나. 하나님은 신랑이 신부를 사랑하듯이 사람을 사랑해 주길 원하시는데 신부가 고멜처럼 집 밖으로 뛰쳐나가서 길거리의 남자들을 만나고 돌아다닌다면 어떻게 신랑이 그런 신부를 계속하여 사랑할 수 있겠는가.

호세아서의 신랑 호세아와 신부 고멜의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깥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신부 고멜의 마음을 남편 호세아 쪽으로 되 돌이키려고 끝없는 사랑과 용서를 계속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지 않나. 마음에 없다면 어떻게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겠나. 마음에 없다면 어떻게 뜻을 같이 하여 한 길을 더불어 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한 마음을 갖는 것처럼 귀한 것이 없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에서 주님이 기대하시는 건강하고 올바른 교회상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누누이 강조하였다. 그리고 2장인 오늘 본문에 와서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를 이루려면 성도들 간에 ‘한 마음’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고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나. 우리가 성도와 성도들 간에 혹은 성도와 목회자 간에 서로 한 마음, 한 사랑, 한 뜻을 가지고 마음을 같이하고 한 마음을 품고 정한 푯대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다면 무엇이 더 부러울 것이 있겠나.

우리 각 사람이 서로를 그런 마음가짐으로 대하여서 한 마음을 품고 은혜롭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신앙생활과 교회 생활을 가꾸어 나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겸손한 마음(謙心).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세상에는 끼리끼리 모이지 교회처럼 누구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형제자매의 사랑을 고백하며 연합하려 하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각계각층의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제 나름대로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모인다. 

그러나 교회는 다르다. 교회는 달라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된 성도들의 연합인 교회는 세상적인 지위고하, 빈부귀천 등등의 그 모든 차등을 뛰어 넘는 공동체여야 한다. 세상에서는 교만한 사람, 거만한 사람, 으스대는 사람,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세상에는 얼마나 권력 중심, 명예 중심, 지위 중심, 학벌 중심, 학교 중심, 능력 중심의 사회를 이루고 있나. 그러나 교회는 달라야 한다.

교회는 철저하게 자신의 세상적인 모습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겸손하게 서로를 대할 수 있어야만 한다.

세상으로 하면 임금도 있고 평민도 있다. 장군도 있고 일개 사병도 있다. 사장도 있고 일용직 근로자도 있다. 각 분야의 대 석학도 있고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는 이들도 있다. 어마 어마한 부자도 있고 국가에서 뒷바라지 하는 것으로 최저 생계를 유지해야하는 수급대상자도 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것을 구분하면 안 된다. 

교회는, 성도들은 누구나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 받은 죄인들일 뿐이다. 그러므로 예배도 마찬가지이다. 찬양을 잘 하든 그렇지 못하든 우리는 다 날 대속하신 주님의 은혜를 찬송하며 날 향하신 하나님의 성호를 높이고 경배하는 예배자들일 뿐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만나는 성도들은 서로 간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한다.”

각각 자기 일을 성실하게 잘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줄줄 알아야 한다. 

그 당시의 겸손은 미덕이 아니었다. 사람이 상대방에게 겸손하게 행동하는 것은 노예가 주인에게 하는 굴욕이고 비굴한 행동으로 여겼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겸손한 삶의 본을 보여 주셨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하시기 전날 밤에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다 말고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어 주셨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5)고 교훈해 주셨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깔보거나 냉대하면 안 된다.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에게 예절 있게 대하고 정중하게 대하여야 한다. 

로마서 12장 15절 이하의 말씀처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 수 있어야 한다. 
나를 박해하는 자라도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상대방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여야 한다.
할 수 있으면 모든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공부해서 남 주는 마음가짐, 돈 벌어서 남 섬기는 마음가짐으로 살아 갈 수 있어야 한다. 실력을 쌓고 장사하고 사업하고 돈 많이 벌어서 자기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실력을 키워서 가정을 세우고,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국가 발전에 공헌하고, 인류 발전에 공헌하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겸손한 마음가짐과 삶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생각하여 보라. 내가 누군가를 섬기는 것이 비굴한 것인가. 내가 상대방에게 겸손하게 대하는 것이 굴욕적인 것인가. 아니다. 겸손은 기독교 최대의 미덕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섬기고 돌보는 것은 이 땅에서 모본을 보여 주신 예수의 마음을 실천하는 길이다. 

하나님은 인생들을 구원하시려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보내셨다. 예수는 하나님 안에서 자기를 낮추셨다.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기를 메고 끌려 가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 까지 복종하셨다. 

임실 치즈의 창시자 지정환 신부는 벨기에 사람이다. 그의 본명은 디디에 엇세르스테번스(네덜란드어: Didier t'Serstevens, 1931-2019)이다. 올 해 4월 13일, 88세에 주님 품에 안겼다. 

벨기에의 귀족 집안에서 3남 2년 중에서 막내로 태어난 그는 19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때에 대한민국의 6. 25 전쟁이 벌어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부가 되면 한국에 와서 사목활동을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1959년에 한국에 도착하였다. 3년 후에 전북 부안 성당에서 사목하는 동안에 3년 만에 간척지 100헥타아르를 개간해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가난한 이웃들을 위하여 1967년에 산양 두 마리를 들여다가 키우기 시작했다. 자기 나라와 프랑스에 가서 치즈 제조법을 배어 왔다. 벨기에의 부모에게 선교비 2000불을 후원 받아서 치즈 생산을 시작하였다. 치즈 생산은 오늘 날 임실군의 대표적인 산업이 되었다. 그가 세운 기업은 연간 270억의 매출을 올리는 협동조합으로 발전했다. 유신을 반대하다가 강제 추방당할 위기도 겪어야 했다. 1980년 5.18 광주사태 때에는 우유 트럭을 직접 몰고 가서 시민군에게 우유를 나누어 마시게 하기도 하였다. 

그의 선행이 알려졌다. 호암 상을 받던 2002년에 상금으로 받은 1억원으로 ‘무지개장학재단’도 설립하였다. 다발성 경화증으로 고생하며 노년기를 지낸 그는 장애우들을 위한 ‘중증 장애인 재활 공동체 무지개 가족’을 설립하여 병약한 이웃들을 섬겼다.

그의 귀화가 받아 들여져서 성씨와 본을 새롭게 시작한 임실 지씨(任實 池氏)의 시조가 되었다. 지난 4월 13일, 임실 성당에서 장례미사가 진행되고 출관하는 시간에는 평소 그의 유언을 따라서 노사연의 ‘만남’을 모든 사람들이 부르며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환송하였다. 그의 장례식에는 신부들만 1천여 명이 참석할 정도였다. 지정환 신부는 평소에 늘“우리의 만남은 우연이란 없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는 하였다.

<만남>의 노래 가사는 이런 내용이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운명 이었기에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돌아보지 말아 후회하지 말아 
아 바보같은 눈물 보이지 말아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돌아보지 말아 후회하지 말아 
아 바보같은 눈물 보이지 말아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사랑해 돌아보지 말아 
후회하지 말아 
바보같은 눈물 보이지 말아
돌아보지 말아 
후회하지 말아 
사랑해 널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사랑해 널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널 사랑해 널 사랑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主心).
5절 이하에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을 것을 구체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그 자신이 주님의 마음을 품고 평생토록 복음을 전파하던 주님의 사람이었다. 그는 고린도전서 11장 1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고 교훈하였다.

맞다. 신앙생활이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즉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한 지위를 버리시고 이 땅에 사람의 모양을 입고 오셨다. 자기를 낮추시되 십자가에 죽기 까지 낮추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극히 높여 주셨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해 주셨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로 하여금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 꿇게 하셨다.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 
예수의 마음, 주님의 마음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보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교훈해 주셨다. 그렇다. 주님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마음이시다.

어린 아이를 통해 천국 백성의 마음을 가르쳐 주신 주님, 각색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내어 쫓아 건강하게 해 주시고, 죽은 자라도 살려 내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비유로 교훈하여 가르치고 또 가르쳐 주신 주님의 마음, 섬김의 마음, 돌아보는 마음,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 주신 구원주의 마음,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신 겸손한 왕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워가고 닮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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