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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시50:1-8, 14-15, 22-23) 2019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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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9-08-13 22:21 조회 10,067 댓글 0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시50:1-8, 14-15, 22-23)     2019. 8. 11  광복절 74주년 기념주일


시편 50편은 하나님을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하고 있다. 맞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르는 것이 없으시고 못하실 일이 없으신 전능자이시다. 

때로 우리가 하나님을 불신하거나 의심할 수 있다. 하나님께 대하여 오해할 수도 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자(無神論者)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런 행위는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한 낮의 태양을 향하여 태양은 없다고 부정하려는 것과 같다.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요 사상가요 계몽주의 철학자였던 볼테르(Voltaire,1694-1778)는 기독교를 비난하고 하나님을 부인하였다. 그는 "나는 불란서의 한사람이 50년 내에 기독교를 말살 시키는 것을 보여 주겠다”고 큰 소리쳤다. 그리고 많은 무신론 책자와 하나님을 반박하는 글을 썼다. 볼테르는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인격적인 하나님을 거부하는 이신론자였다. 이신론(理神論, Deism)은 자연종교라고 볼 수 있다. 자연종교란 계시나 성경 말씀의 가르침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저들은 모든 사람이 타고났거나 이성으로 얻을 수 있는 종교적 지식체계만을 인정하려고 한다. 초기의 이신론자들은 종교의 예배의식과 교리의 피상적인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18세기말에 이르자 이신론은 영국, 프랑스, 독일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가장 우세한 종교적 태도가 되었다. 

볼테르의 아버지는 은근히 볼테르를 친자식이 아니라고 말했다. 아들이 자기 뜻대로 따르지 않자 감옥에 보내거나 추방하려고까지 하였다. 아버지에 대한 깊은 불신은 그를 있으나마나한 존재로 여겼다. 이것이 볼테르의 신앙 형성에 영향을 미쳐 그는 이신론자가 되었다

그가 죽은 지 20년 만에 그가 살던 집은 제네바 성서공회 소유로 넘어갔고 성서공회 출판소로 삼았다. 그가 살던 그 집에서는 외국어 성경을 대량으로 출판하는 성서 공회 파리 본부가 되었다. 

성경은 언제나 해마다 세계의 베스트셀러 위치를 놓치지 않고 있다. 오늘 날 웬만한 서점에 가 보면 성경이 없는 곳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부인하고 기독교를 말살하려 했던 볼테르의 책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찾아 볼 수 가 없다. 그는 죽기 직전에 "나는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좋았을걸”하고 후회하며 죽어 갔다. 평소에 천국도 지옥도 없다고 소리치던 그가 "나는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비참한 모습으로 죽어 갔다. 

7절에,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하고 말씀하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아삽의 시편인 시편 50편의 내용이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시면서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고 계신가.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셨다. 지구의 그 모든 것들도 하나님의 창조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새들, 벌과 나비들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이다. 물속의 그 형형색색의 크고 작은 물고기들도 하나님의 작품이다. 땅 위에 뛰고 달리고 기는 그 모든 것들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들이다. 온갖 과일 나무들을 비롯한 그 다양한 나무들과 풀과 꽃들도 하나님이 지으셨다. 하나님은 1절의 고백처럼“해 돋는데서 부터 지는 데 까지” 세상의 그 모든 것들을 말씀으로 지으셨다. 

하나님은 어둠을 이기는 빛을 창조하셨다. 3절의 불과 광풍도 하나님이 지으셨다. 하나님은 그런 가운데서 예루살렘인 시온을 온전히 아름다운 곳으로 구별하셨고 그 곳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이 지어지게 하셨다. 하늘과 땅에 가득한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는 자기 백성을 공의(公義)로 판결하신다. 그 가운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言約) 백성들인 성도(聖徒)들의 삶을 주목하신다. 5절에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는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그 앞에서 ‘주의 자비와 은총을 누리는 백성들’을 ‘성도’라고 부르셨다. 

그 하나님이 스스로 말씀하셨다.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다.”

이게 얼마나 감동적이고 두렵고 떨리고 경외로우며 흥분되고 은혜로운 말씀인가. 

생각하여 보라. 출애굽기 3장에 보면 양을 치던 모세가 호렙산의 떨기나무에 불이 붙는 환상을 보았다. 그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이 모세의 이름을 부르셨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애굽의 바로 왕에게 가서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라고 명령하셨다. 모세는 만약에 동족들이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여야 하냐고 하나님께 질문하였다. 그 때에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셨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3:14)

맞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주 창조 이전에 홀로 먼저 계신 창조의 근본이시다. 하나님 안에서 만물이 창조되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물론 인간이 지혜를 모아서 국가를 건설하고 법과 제도를 만든다. 군사를 모병하고 하늘과 땅과 바다를 지킬 무기를 계발한다. 그러나 한 나라의 흥망성쇠 그 배후에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이 배어 있다. 이것을 섭리(攝理)라고 한다.

국제적으로, 역사적으로, 시대적으로 하면 구한말 대한제국이 힘이 없어서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이 맞다. 그 당시 대한제국은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의 전쟁의 발판이었다. 이 땅에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벌어졌다. 더 이상 저들을 막아 낼 힘이 없었다. 그 당시 우리는 1910년부터 일제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긴긴 세월이 흘러갔다. 얼마나 많은 애국지사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연합하고 항거하고 희생되었는가.

그러나 생각해 보라. 1945년 8월 15일에 이 땅에 광복이 어떻게 찾아 왔나.  8. 15해방 직후 그 같은 해 12월 27일에 모스크바 3상회의가 열렸다. 5년 동안 4개국인 미국과 영국과 중국과 소련에 의하여 이 땅을 신탁통치 한다는 결정이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한국인의 거센 반대로 신탁통치가 시행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처럼 어수선한 날들을 지내면 1948년에 건국을 선언한지 이태 만에 동족들 간의 전쟁인 6.25에 휩싸이고 말았다.

생각하여 보라. 오늘 날의 대한민국이 누구의 힘에 의해서 건설되었나. 독립지사, 애국지사들의 수고의 열매인가. 중동에 나가서 돈을 벌어온 이들의 힘인가. 월남전에 파병되었던 군대의 피 값인가. 독일에 갔던 광부들이 벌어들인 경제력인가. 독일에 간호사로 취업되어 갔던 여성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인가. 그 어느 것 하나 아니라고 부인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겠나. 

<기독교와 유물사관> 이란 책은 미국에서만도 수 백 만 권이 팔렸다. 저자는그 책에서 하나님의 천지 창조는 부인할 수 없는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지구는 매시간 1천마일 즉 1600km의 속도로 자전과 공전을 계속한다. 만약에 그 자전 속도가 십분의 일로 느려 진다면 낮에는 식물이 말라죽고, 밤에는 꽃 순이 얼어 죽을 것이다. 또한 태양계를 중심으로 지구는 23도의 경사가 있기 때문에 사계절이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해양의 증기는 남북으로 이동하여 대륙을 동결시켜 버릴 것이다. 만약 땅이 현재의 지면보다 평균 3미터만 더 깊어진다면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엄청나게 흡수되어 식물이 생존하지 못하게 되고 말 것이다. 대기층이 현재보다 엷다면 매일 우주에서 떨어지는 별똥 때문에 지상에는 곳곳에서 화재가 끊임 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연구를 계속하면 계속할 수록창조주 하나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깨달아서 믿고 고백하며 섬기는 것은 은혜 중에 은혜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곧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신앙고백이 가능하다면 이는 복 중의 복이 아닐 수 없다. 시편 14편 1절에 보면,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라고 하였다. 

성도가 ‘하나님. 하나님.’ 하며 살아가는 것은 나약한 것도 아니고 소극적인 것도 아니다. 우리가 매 순간 하나님의 실존을 느끼며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은총이며 복인 것이다. 

하나님의 현존을 구구절절이 실감하며 살아간 인물들이 성경에는 가득하다. 지난 이천년 교회의 역사에도 넘쳐 난다. 성경의 인물들로 하면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이 그 대표적인 사람이다. 노아도 하나님을 자기 자신의 하나님으로 믿고 순종했던 믿음의 선조들 중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아블함, 이삭, 야곱, 요셉이 그러하고 모세가 그러하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하였던 말씀의 사람이었다.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구구절절이 고백하지 않았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8:2) 다윗은 하나님은 힘의 근원 삼고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시편 139편 14절에 보면 다윗은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고 하였다. 예전 성경에 보면 ‘신묘막측’하다고 해석하였다.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예레미야 31장 33절의 고백처럼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여호와의 말씀이 날마다 순간마다 체험되고 고백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환난 날에 나를 부르면 내가 너를 건지리라.
개인이든 가족이든 국가든 민족이든 환난을 전혀 겪지 않고 사는 경우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환난과 핍박과 시련과 고난을 극복해 가는 태도가 다르다. 달라야 한다. 

1977년 신학교에 입학해서 성경 이외에 첫 독서 목록으로 독후감을 썼던 책이 빅터 프랭클(Viktor Emil Frankl, 1905-1997)의 <죽음의 수용서>(Man's Search for Meaning)에서 라는 책이다. 저자는 신경학자요 심리학자이다. 빅터프랭클은 나치의 핍박에서 생존한 유태인 중 한명이었다. 

그는 이곳저곳 수용소로 옮겨 다니며 아우슈비츠에 가지 않기만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생존해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직업, 정신신경학 의사라는 점을 이용해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각 상황별로 생존하기 위한 행동 유형을 구성하였다. 아무리 힘겨운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목표가 있고 목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기가 쉽다는 것을 관찰하였다. 

목적과 목표가 없는 사람들은 힘겨운 상황을 비관하고 자살을 택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자살하고자하는 사람을 말리는 경우 나치들로부터 찍히기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있어도 말릴 수가 없었다. 

아우슈비츠라는 이름은 가스실, 화장터, 대학살 등 온갖 공포의 대명사였다. 1500명이나 되는 죄수들이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가축우리 같은 곳에 집어넣어졌다. 맨땅에 앉을 자리도 없을 정도로 비좁은 삶의 터전과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다. 그들에게 겨우 140그램 정도의 빵 한 조각이 나흘 동안의 유일한 식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수들은 심한 추위 속에서 중노동을 해야 했다. 

죄수들은 이름을 부착하지 못한다. 번호로만 자신의 인격이 말해지며 조금만 약하게 보이면 가스실로 들어가 연기로 사라져야하는 상황에서 어떤 죄수들은 강하게 보이려고 유리 조각으로 수염을 깎기도 했다. 그것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젊어서 일할 수 있음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살고 싶은 욕망이 유리조각을 면도날이 되게 한 것이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좋은 전기 면도날이 필요 없다. 무엇으로 수염을 깎던 그것이 면도날이 되는 것이다. 죽음의 두려움이 강하면 강할수록 인간은 더욱 살고 싶은 것이다. 

인간은 살기위해 몸부림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반응이나 주위에 일어나는 사건들에 무감동 해진다. 오직 한 가지 자신의 생명과 동료의 생명 연장 외에는 아무것도 애착을 주는 것이 없는 상태다. 

무감동 상태에서 인간을 가장 활력 있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라고 프랭클은 말한다. 그는 아내를 그리며 그녀와 마음으로 대화했다 실제로 아내가 살아 있느냐 아니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인간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그것이 단 한 순간이더라도 사랑하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 엘사와 동생 월터는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 아내 틸리는 베르겐 벨젠에서 죽었다. 가족 중 자기 말고 또 한 사람의 생존자는 오스트리아에서 호주로 이주한 여동생 스텔라뿐이였다여기서부터 ‘의미요법’이라고 정의하는‘로고테라피’(Logotherapy)는 시작된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해방을 맞아 하늘을 나는 기쁨과 하나님께 감사의 응답으로 그 감동을 이렇게 묘사한다. “석방된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나는 꽃이  피어있는 들판을 지나 시골길을 따라 몇 마일을 걷고 또 걸었다. 수용소에서 가까운 작은 마을로 가는 중이었다. 종달새가 하늘로 날아올라 즐겁게 지저귀었다. 사방 몇 마일 안에는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넓은 대지와 하늘과 종달새 환희의 노래 소리 그리고 자유로운 공간뿐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서 주위를 둘러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곤 마음속에서 흘러나오는 한마디뿐이었다.”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으로부터의 자유, 마음대로 걸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자유는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욕구일 것이다. 

충남 강경의 병촌성결교회는 일제시대인 1935년도에 설립된 교회이다. 1943년 광복 2년 전에 항일 운동으로 목회자와 교인대표들이 구속되었다. 교회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폐쇄되었다. 나중에는 재산이 매각되는 수모도 겪었다. 그러나 해방 후에 다시 교회가 세워졌다. 1950년에 6. 25 전쟁이 벌어졌다. 그 같은 해 9월 27-28일 이틀 동안 공산 폭도들이 한 마을의 병촌교회 신자 66명을 학살하였다. 남자 27명, 여자 39명이다. 구덩이를 파고 쇠스랑, 삽, 절구공이, 몽둥이를 동원해서 무참하게 죽여 매장하였다. 74명의 전교인들 중에서 살아남은 교인은 8명뿐이었다. 그 중에 한 분이었던 노종미 권사는 살아남아 그 날의 슬픈 역사를 수 백 번 고증하고 지난 2015년에 93세를 살고 주님 품에 안겼다. 

우린 환난, 핍박, 고난, 고통, 죽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나. 오늘 날처럼 편안하게 주일 날마다 모여서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는 환경이 어떻게 주어졌나. 저절로 주어졌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 

예수께서 겪으신 환난은 무엇인가. 예수는 붙잡혀 온갖 고난과 수치와 핍박과 시험과 고통과 어려움을 다 당하셨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감당 할 수 없는 핍박을 받으셨다. 처참하게 십자가에 달려 처형되었다. 죽임 당한 시체를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니고데모의 도움을 받아 자기의 새 무덤에 모셨다. 하나님은“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부르짖으며 절규하며 운명하신 예수를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부활 시켜 주셨다.

부활은 우리 신앙의 바탕이다. 기독교의 부활 신앙이 아니라면 우리가 여러 타 종교를 믿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러므로 그 어떤 환난과 그 어떤 시련과 그 어떤 핍박과 그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성도는 담대하게 주를 믿는 믿음을 지켜 나가야만 할 것이다.
요즘 336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라는 찬송을 즐겨 부르는 자가 누가 있는가.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 얻었네
우리도 고난 받으면 죽어도 영광 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성도의 신앙 본받아 원수도 사랑하겠네
인자한 언어 행실로 이 신앙 전파하리라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오늘 날 우리들의 교회, 우리들의 신앙 환경은 이와 같은 환난과 핍박과 고난을 감내하고 극복했던 신앙의 선진들의 눈물과 희생의 덕분에 그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336장 찬송가의 각 절 가사 뒤 부분은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라는 결단의 고백을 담은 찬송이다. 


감사로 제사를 드려 나를 영화롭게 하라.
16-22절까지의 내용에 보면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며 주의 율례와 언약을 소중하게 여기지 아니하는 이들의 악에 대하여 책망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들은 하나님의 교훈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뒤로 던져 버린다고 하였다. 도둑을 보면 그들과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된다고 경고하였다. 입을 악에게 내어 주고 혀로 거짓을 꾸미고 둘러앉아서 형제를 공박하고 자기 어머니가 낳은 형제들을 비방한다고 하였다. 3절과 21절에 보면 그 동안 침묵하시고 잠잠하시던 하나님이 책망의 불로 악인들을 삼키고 책망의 광풍으로 판결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시겠다고 경고하셨다. 21절에 보면,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앞에서 낱낱이 드러내리라”고 엄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악인의 악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하나님 앞으로 모으라고 명령하고 계시다. 5절을 다시 보라.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성도들은 제사로 즉 감사제로 하나님과 언약하고 그 언약을 지켜 가기 위해서 주의 도우심을 구하는 백성들이다. 그래서 14절에 보면 하나님은 명령하신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라.”

23절에서는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하는 자들에게 주실 응답에 대하여 다시 반복하여 약속하셨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놀랍고 감사하지 않나. 성도가 드리는 감사의 제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셨다. 하나님 앞에서 그의 행위를 옳게 하며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김준호(1954-2002)씨는 인하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과에 진학하여 공부하다가 군에 입대했다. 군복무 19개월이 되던 10월 어느 날 부대 내무반에서 관물대 위 높은 곳에 올라가 물건을 정리하다가 실수로 시멘트바닥에 떨어져 크게 다쳤다. 척추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경추를 크게 다쳐 전신마비 환자가 된 것이다. 머리와 목 아래 전신 마비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절망적인 신체장애를 탓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받은바 은혜를 감사하며 생활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 지면서 입에 젓가락을 물고 젓가락으로 성경책을 넘겨 가며 성경을 읽었다. 그는 원호병원에 입원하는 중에 병원 간호 실습생을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하며 지냈다. 그는 남들이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구필화가가 된 것을 늘 감사하였다. 그는 우리나라에 구족화가 협회를 조직한 구필 화가 제 1호이다. 그는 인당이라는 화명으로 붓을 입에 물고 글씨나 그림을 그리다가 지난 2002년, 48살에 갑자가 건강이 악회되어 주님 앞으로 갔다. 얼마나 열심히 붓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렸던지 치아가 다 흔들거릴 정도였다. 1981년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회를 갖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다. 그는 평소에 늘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나라를 생각할 때 감사하고, 가정을 생각할 때 감사하고, 가족들을 생각할 때 감사하고, 내가 예수 믿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예배자로 살아가는 구원의 은총을 감사하고 아름다운 교회의 성도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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