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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기도(시25:1-10) 202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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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2-23 08:04 조회 7,774 댓글 0
 
                       다윗의 기도(시25:1-10)                2021. 2. 21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왕국 시대에 이스라엘은 주변 나라들과 전쟁이 끊임이 없었다. 이는 다윗이 왕이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블레셋을 비롯한 주변 국가와의 전쟁에서 이기게 해 주셨다. 

사무엘 하 8장에 보면 다윗은 왕이 된 후에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또한 모압의 군대도 쳐부수었다. 소바 왕 하닷에셀을 지원하려고 왔던 다메섹의 시리아 군대 22,000명도 섬멸하였다. 다윗은 시리아의 다메섹에 주둔군을 배치하고 그들 나라로부터 정기적으로 조공을 받았다. 다윗은 소바 왕 하닷에셀의 신하들이 들고 다니던 금 방패를 모조리 빼앗았고 많은 양의 청동을 빼앗아서 예루살렘으로 가져갔다. 사무엘 하 8장을 읽다 보면 6절 끝에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는 말씀을 접하게 된다.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 다윗이 전쟁에 능하고, 다윗의 전략이 뛰어나고, 다윗의 군대가 강해서 이긴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왕으로 있을 그 당시에 이스라엘로 하여금 주변 나라들을 이기게 해 주신 것이다. 

그런 다윗이었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 한편에서는 항상 떠나지 않는 불안이 있었다. 오늘 시편 25편을 다 읽지는 않았다. 그러나 16절 이하의 말씀을 먼저 보면 그의 마음에는 외로움과 괴로움이 있었다. 그의 마음에 근심이 많았다. 그의 마음 속은 곤고했고 주변에는 환난이 끊임이 없었다. 

그래서 다윗은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지내야만 했다. 16절에 보면 “주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17절에서는 “나를 고난에서 끌어 내소서.” 18절에서는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20절에서는 “나를 구원하소서.”마지막 절인 22절에서는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왕으로 있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난에서 속량하소서”

라고 말이다. 

비탄시(悲歎詩)로 구분되는 이 시편 25편은 다윗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쓴 시편인지를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다윗이 왕으로 있던 그 어느 때에 고백한 기도이며 간구임이 분명하다. 

1절로 돌아 가 보자.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다. 여기서 다윗이 고백하는 표현인 ‘나의 영혼’이란 그 ‘영혼’은 ‘네페쉬’라고 하는데 이는 생명(生命)을 말한다. 그렇지 않나. 우리는 천국과 영원을 믿지만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는 오늘, 지금 내 목숨이 붙어 있고 내 생명이 보존되어 있는 그 여건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예배드리는 것이다.“우러러 본다”는 것은 “고개를 쳐들고 위를 바라 보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새벽마다 사순절 새벽 기도회로 모인다. 어제 토요일 새벽에는 본당이 가득하게 모여서 기도하였다. 지난해 2월 이후로 일 년 만에 본당에 가장 많은 성도들이 어른과 아이 함께 모여 기도한 시간이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새벽에 빈 예배당에서 눈을 뜨고 높이 달린 십자가를 바라 보며 기도할 때가 있다. 눈을 감고 기도할 수도 있지만 캄캄한 예배당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높게 매어 달린 십자가를 쳐도 보며, 바라다 보며 기도할 때가 있다. 물론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계신 주님이 아니시다. 예수는 십자가의 죽음, 무덤 속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고난 당하신 예수님, 영문 밖으로 끌려 나가셔서 십자가에 달려 못 박혀 죽임 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찬양한다. 

“얼마나 아프셨나 못 박힌 그 손과 발 
죄 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 예수님
하늘도 산과 들도 초목들도 다 울고 
해조차 빛을 잃고 캄캄하게 되었네
오 놀라운 사랑 크시고도 끝 없도다 
오 주님의 사랑에 구원의 강물 넘치네”
조용기 작사 김성혜 작곡의 “얼마나 아프셨나”라는 614장 찬송의 일부이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외롭고 괴로울 때가 없지 않았다. 다윗은 전쟁마다 싸워 이기는 강성한 나라의 임금이었지만 그의 마음에 근심이 많았다. 다윗은 하나님이 도우시는 왕이었지만 그의 마음에 쌓이는 곤고와 그의 주변에 끊임이 없는 환난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주여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라고 기도하였던 것이다. 다윗은 그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심령의 고통과 나라 안팎으로 끊임 없이 계속되는 환난의 원인을 자기의 깊은 내면에 있는 죄의 문제에서 대답을 찾고 있다. 그래서 18절에 보면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이새의 8번째 아들, 막내로 태어나 자라던 어린 시절부터 기도하는 법을 알았다. 다윗은 어려서도 기도했고 소년기에도 기도하였다. “나는 만군의 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 간다”고 소리치며 블레셋의 골리앗 장군을 무서워하지 않고 물매 용 돌맹이 다섯 개를 들고 골리앗을 향해 나아가던 소년 다윗에게 이미 그런 믿음과 그런 기도 생활의 충만함이 있었다. 


다윗의 하나님 신앙은 결코 막연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2절에서도 보면 이렇게 고배하고 있지 않나.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습니다.”

1절에서는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봅니다.”
3절과 21절에서는 “주를 바랍니다.”, “내가 주를 바랍니다.”
5절 끝에서는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립니다.”
15절에서는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봅니다.”라고 말한다.

다윗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늘 가득하였다. 

다윗의 그 많은 시편의 구석 구석을 보면 다윗은 참으로 깊고 넓고 높고 끊임이 없는 기도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 오늘 읽은 본문의 분량에 담긴 기도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길 원한다.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2, 3, 20)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승리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그렇지 않나. 전쟁이란 것이 이겼을 때에 전쟁이지 지고 나면 남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나 전쟁이란 것은 이겨도 불안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게 마련이다. “맞은 자는 다리 뻣고 자도 때린 자는 움크리고 잔다”는 속담이 있다. 다윗은 그가 임금으로 있던 당시에 수 많은 전쟁에서 이기고 또 이겼다. 아니, 이겼다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하여금 이기게 해 주셨다. 어떻게 알수 있나. 사무엘 하 5장 10절에 보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의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라고 하였다. 

다윗은 삽십살에 왕위에 올랐다. 나라가 안정되었다. 주변 나라들 중에서 다윗의 이스라엘을 이기는 나라가 없었다. 왕궁도 잘 지었다. 사울 왕 때에 블레셋에 빼앗겼던 법궤도 다시 찾아 왔다. 그러나 다윗 당시에도  하나님의 법궤는 성막 안에 모셔져 있었다. 다윗 당시의 하나님의 집은 대리석으로 짓고 백향목을 지은 성전이 아니었다. 그래서 늘 다윗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집을 잘 지어 봉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어느 날 나단 선지자를 만나서 그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 밤에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의 자손들을 크게 축복하시겠다고 하셨다. 다음 날 나단 선지자는 이 내용을 그대로 다윗 왕에게 전달하였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내용을 선지자 나단에게서 전해 들은 다윗은 하나님 앞에 들어가 앉아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사무엘 하 7장 18절 이하에 나오는 내용이다.

다윗은 감사해하고 감격해 하며 기도하였다. “하나님 주의 종 다윗의 집이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삼하7: 26, 29)

그런 다윗이 지금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 나의 원수들 앞에서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해 주십시오.”2절과 3절에서 같은 내용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한다” 3절에 보면 다윗에게는 이와 같은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20절에 보니까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있다. 

생각하여 보라. 사람이 어떤 경우에 부끄러운 일을 겪게 되고 수치를 당하게 되나.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대와 부르심을 망각하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에 붙잡히게 될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고 수치를 당하게 되는 법이다. 다윗은 기도하는 왕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 날 때에 전쟁 중에 부하 우리아 장군의 아내를 취하였다. 부하 우리아 장군을 전쟁 일선에 배치해서 죽임 당하게 하였다. 사건을 은폐하려 하였다. 이는 다윗의 생애에 돌이킬 수 없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하나님의 용서가 아니었다면 모든 것이 끝날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그런 연약한 다윗을 하나님이 붙들어 쓰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하나님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라는 기도는 매 순간 드리고 또 드려야 하는 기도이다. 왕이라도 거짓되면 부끄러워지고, 죄악을 범하면 부끄러워지는 법이다. 잠언 22장 1절에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잠언 24장 1절에는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도 하지 말지어다”라고 교훈하였다. 

사람이 언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나. 진실해야 하는데 거짓되면, 의로워야 하는데 불의한 편에 서면, 선으로 악을 이기지 못하면 언제라도 부끄러워지고 만다. 이는 왕이든 평민이든 상관이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과 이웃에게 대하여 진실하고 성실하고 거룩한 자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교훈하소서
여기서 접하는 도, 길, 진리는 다 같은 의미이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각기 달리 표현 한 것 뿐이다. 땅에도 길이 있고 바다에도 길이 있고 하늘에도 길이 있다. 자동차는  차도로, 기차는 철로 위를 달려야 한다. 방향도 지켜야 하고 속도로 지켜야 한다. 자동차는 차도로 사람은 인도로 다녀야 한다. 배가 넓은 바다라고 해서 아무데로나 다니지 않는다. 하늘에 비행기도 아무 하늘로나 날아가며 격추되고 만다. 바다와 하늘에도 나라와 나라 사이에 국제법이 허용한 뱃길과 항공로가 있다. 산 짐승도 즐겨 다니는 길이 있다. 

사람이 사람다운 길에서 벗어나면 탈선이 되는 것이다. 인생의 길에서 벗어나서 탈선한 인생은 죄를 범하고 타락하게 되고 만다. 요즘과 같은 세상에는 오프라인 언 라인 다 마찬가지이다. 북한의 해커들이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기술을 탈취하기 위해 미국 제약사인 화이자를 해킹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국제적으로 부끄러운 사건이다. 뭐 이런 예는 국가간에, 지도자들 간에, 기업 간에, 개인 간에 무수히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넘어 질까 조심하며 살아가야 한다. “나의 하나님이야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이 기도를 끊임 없이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교훈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기억하소서.
우리는 대개 하나님이 나의 그 무엇을 잊어 주시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다윗의 기도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기억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6절과 7절에 보면 두 가지 내용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소서”
“여호와여 영원하신 주의 긍휼과 인자로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소서”
“주의 선하심으로 나를 기억하소서”

이런 기도의 내용들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솔직하고 진솔한 기도의 사람이었나를 알게 해주는 기도의 내용들이다. 다윗은 자신이 그 동안 살아 온 자신의 지난 날의 행위로는 구원 받을 수 없으니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와 자비와 사랑과 선하심을 따라 자신의 지내온 날들의 죄와 악을 용서해 주시고 잊어 버려 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우리는 다윗의 시편 51편을 기억한다. 거기 1절에 보면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와 은혜와 많은 긍휼을 따라서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라고 간구하고 있다. 시편 51편 2절에 보니까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7절에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9절에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라고 간구 하고 있다.

그런 다윗이 시편 25편에서 드리는 기도는 무엇인가.
뭘 기억해 달라는 것인가. 11절에 보면 그 대답이 있다.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크오니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하소서”

이것이 무슨 기도인가. 주의 이름의 권세로 내 모든 죄악을 사해 주시고 이제는 죄 사함 받은 하나님의 아들로 기억해 달라는 간구이다. 주의 긍휼과 인자와 자비와 선하심을 따라 죄 사함 받고 거듭나고 새 사람이 된 하나님의 사랑 받을 만한 아들딸의 모습으로 기억해 달라는 기도인 것이다. 

맞다. 사순절은 그런 묵상과 그런 기도의 은혜를 깨달아 가는 기간이다. 15절에 보니까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이 기억해 주시는 자녀의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면 그 발을 죄와 악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그런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15절의“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이라는 다윗의 고백처럼 밤낮 없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 보는 삶을 지속적으로 계속해 나가야만 한다. 

나의 장모(丈母)는 92세신데 이번 4월경에 신구약을 일곱 번째 쓰게 되신다고 한다. 다섯 자녀 뿐만 아니라 일곱 손자녀까지 한 권씩 유산처럼 선물로 주시려면 아직도 다섯 권은 더 쓰셔야 할 것이다. 손마디가 관절염으로 다 휘도록 새벽부터 기도하고 성경 쓰고 300구절 이상이 성경을 줄줄 외우신다. 복되다.  6. 25 전쟁 중에 피난 오셔서 맨 손으로 신학교 공부하고 1. 4후퇴 때 혈혈 단신 피난 와서 목사가 된 남편 만나 그의 아내 되어 목사 사위, 선교사 사위 맞고 후손들이 나라 안팎에서 하나님 잘 믿는 가정 이루었으니 그게 복이지 않나. 꼭 왕이어야 복인가. 꼭 왕비여야 복인가. 꼭 좌의정 우의정이어야만 하고 꼭 별을 달아야 하고 꼭 정상에만 서야 하고 꼭 거부여야 만 하나. 다윗은 왕이었기 때문에 기도한 것인가. 아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의 시골 목동 시절부터 그 싹이 달랐다. 다윗은 평생 기도의 사람이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도 늘 기도하고 또 기도하셨다. 

베드로 전서 2장 9-10절에 보면 분명히 말씀하셨다.
주를 믿는 우리는 주 안에서,
 
택함 받은 족속이다.
왕 같은 제사장이다. 
거룩한 나라이다.
여호와의 소유가 된 백성들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두운 데서 불러 내셨다.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셨다.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한 없는 긍휼을 얻은 자 되게 하셨다. 

시작된 사순절 기도와 말씀으로 든든히 세워져 가는 개인과 가정과 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아멘

다 함께 찬양하자.

“지존하신 주님 이름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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