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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부모를 공경하라(엡5:1-3) 20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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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0-05-22 23:53 조회 9,683 댓글 0
 
                 네 부모를 공경하라(엡5:1-3)           2020. 5. 10 어버이주일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십계명 중의 다섯 번째 계명이다. 이는 인간 관계에 있어서 첫째가는 계명으로 명령하셨다. 나를 낳은 아버지나 어머니께 공경하고 순종하라는 말씀을 계명으로 명하신 이유가 뭘까. 형제자매간의 우애, 부부간의 사랑, 부모 공경 이런 것들이 오죽 하나님의 기대에서 벗어났으면 이런 내용을 계명으로 돌판에 새겨서 명령해 주셨겠나.

그렇지 않나. 부모 공경이란 것이 평생 부모 곁을 떠나지 말고 삼시 세끼 따뜻한 음식 차려 대접하는 것만을 말씀하겠나. 부모 앞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교훈하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 앞에서 제사드린 후에 들판에서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 죽였다. 형제간에 살인을 저질렀다. 살인 그 자체도 있어서는 않될 일이지만 부모 앞에서 이게 할짓인가. 죽임 당한 동생 아벨은 무엇이고 형이 동생을 쳐 죽인 소식을 들은 아버지 아담과 어머니 하와 앞에서 가인이란 존재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인류 최초의 가정인 아담의 가정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형제를 살인하고 부모에게 피눈물 나는 한을 안긴 패륜한 사건이 벌어졌다. 창세기를 읽다가 보면 요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별의 별 사건의 뿌리가 거기에 다 있다. 

물론 자식을 낳아 버리는 어미도 없지 않다. 아내를 학대하고 자식들을 학대하고 방치하는 패륜한 아비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정상적인 부모 자식 관계의 가정이라면 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맞다.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것이 인륜이다. 

세상에 부모 없이 태어난 자식은 단 한 명도 없다. 고아라도 부모는 있다. 전쟁으로 인해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기도 한다. 엄마나 아빠가 사고나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복잡한 환경 가운데 시련과 아픔과 상처와 가난과 고독 속에서 한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난다. 저들에게 있어서 부모 공경이나 효를 이야기 하기란 참으로 착잡하고 오히려 사치스러운 경우도 없지 않다. 

이 즈음에서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과연 효도란 무엇인가.”하고 말이다. 자녀들의 성장 환경을 보면 사회적으로 부모에게 효도를 강조하는 것조차 민망할 정도로 안타까운 경우도 없지 않으니 말이다. 

가령 3500년전의 모세는 애굽에서 태어났다. 애굽 왕 바로는 그 당시에 태어나는 히브리 노예의 사내아이들은 태어나자 마지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삼개월 동안 숨겨 키웠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갈대 상자에 역청을 바르고 그 안에 담아서 나일강에 떠내려 보냈다. 그 갈대 상자 속의 울음소리를 듣고 강가에 목욕하려고 나갔던 바로 왕의 딸인 공주가 어린 모세를 건져서 데리고 왕궁으로 들어갔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모세의 120년 파란만장한 인생의 시작이었다. 그러한 모세에게 있어서 효도란 무엇일까. 모세는 그 누이 미라암 덕분에 왕궁에 따라 들어간 엄마의 젖을 먹고 컸다. 그 기간이 얼마 동안이었는지 성경을 설명하고 있지 않다. 모세의 엄마 요게벳이 왕궁에서 얼마나 머물다가 모세 곁을 떠나 왕궁 밖으로 나가게 되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모세에게 있어서 아빠나 엄마에 대한 추억은 그것이 전부이다. 그런 모세가 왕궁 생활 40년, 광야 생활 40년을 겪으며 나이 80에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그 부르심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며 동족과 더불어 출애굽과 광야 40년의 나중 노년기를 살았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의 말씀을 두 돌판에 받을 때의 모세에게 있어서 “과연 부모 공경이란 무엇이었을까”하고 질문하게 된다.

17살에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던 요셉에게 있어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의 명령은 어떻게 해석되고,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었을까 하고 질문하게 된다. 요셉의 어머니 라헬은 일찍 돌아가셨다. 요셉은 배 다른 10명의 형들에 의해서 남의 나라 애굽의 노예 시장에 노예로 팔려 갔다. 요셉은 22년 만에 아버지 야곱을 애굽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미 아버지 연세는 130세가 되어 있었다. 그 22년 세월을 배 다른 10명의 형들은 요셉은 들짐승에게 물려 찢겨 죽었다고 아버지 야곱을 속인채 아버지 곁에서 살아왔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과연 효도란 무엇이고 부모 공경이란 무엇인가” 만약에 요셉이 나중에 아버지 야곱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면 야곱에게 있어서 열 아들들의 아버지 속인 요셉 사건은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채로 세월에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부모 없이 사촌 오빠 모르드개의 손길 안에서 고아로 자라난 에스더에게 있어서 효도란 무엇이었을까 하는 또 다른 질문도 해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하나님 안에서 주어진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아 알고 자신을 향한 부르심을 따라 사명자의 길을 끝까지 다 달려 가는 것”이 자신을 이 땅에 낳아 준 부모에게 공경하는 길이요 효도의 시작이 아닐까. 

세례 요한은 헤롯의 칼에 목이 잘려 삽십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죽임 당하였다. 예수께서는 33살 젊은 나이에 어머니 마리아가 울부짖으며 쳐다 보는 골고다의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다. 그러면 저들은 다 불효자인가.

물론 부모 곁에 머물러 살면서 부모에게 잘해드리는 것이 효도요 부모 공경일 수 있다. 하지만 동서고금의 오고 간 그 수많은 인생들의 인생사는 참으로 복잡하기 그지 없다. 평온하고 일상적인 부모 자식의 관계를 쉽게 허용하지는 않는 것이 현실이다. 

젊어서 성공적인 유대인의 길을 걸었던 바리새파 사람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께 부르심을 받았다. 그 부르심 이후로 그는 이방에 부활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의 삶을 위해서 우여곡절 많은 삶을 살다가 순교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부모 공경이란 무엇이고 효도란 무엇이었을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부모 공경에 대하여 이렇게 교훈하였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주 안에서 옳은 일.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일은 주 안에서 옳은 일이다. 부모는 내 생명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줄기나 가지나 잎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뿌리가 중요하다. 줄기나 가지나 잎이 좀 상해도 뿌리가 튼튼하면 그 나무는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 동서고금에 그 어떤 누구이든 부모 없이 태어난 생명이 단 한명도 없다. 누구나 다 엄마 아빠에게서 태어난 것이다. 미혼모에게서 태어났어도 그렇고 아빠 얼굴을 몰라도 그렇다. 상처와 원망과 설명 될 수 없는 복잡한 환경 가운데 태어난 그 누구라고 할지라도 생명의 탄생은 신비한 것이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날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공경하는 것은 주 안에서 마땅한 일이다. 

자녀가 부모를 대하는 태도는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대하는 태도처럼 신성한 것이어야 한다. 가정의 평온하려면 부부의 화목이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할 때에 가정이 평화로워진다. 성경은 부모 공경이 땅에서 잘되는 복의 시작이라고 가르쳐 준다. 

요즘 신명기를 공부하고 있다. 신명기 5장 16절에 보면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고 교훈해 주었다. 그렇다. 부모 공경은 이 땅에서 잘되는 길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 사도 바울이 신명기의 이런 말씀을 염두에 두고 “주 안에서”라는 강조를 한 것은 이것이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생이 인생답게 살아가는 그 바탕이 부모 공경인 것을 아시고 이것을 인간 관계 계명의 제일 가는 계명으로 강조하고 명령하신 것이다.

그렇지 않나. 부모 공경 잘하고 부모께 순종하는 자식이 세상에 나가서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둑질하고 거짓 증거하고 돌아다니고 남의 것에 탐심을 갖고 살아가겠나. 사람다운 삶의 첫 출발은 부모 공경이다. 이것인 주 안에서 옳은 일이다. 

잠언 30장 17절에 보면, 하나님은 부모를 조롱하거나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식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는 저주의 말씀까지 하셨다.

출애굽기 21장 15절에 보면, 하나님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무섭게 경고하셨다.

눈에 보이는 제 부모를 공경할 줄 아는 자녀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도 믿고 경외하며 살아가게 되는 법이다. 물론 부모가 자식에게 공경 받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과 부모 공경에 대하여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자녀로부터 공경 받을 수 있는 날이 오는 법이다. 자식을 낳기만 하고 제대로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해서 그 자식이 부모의 눈에 피 눈물이 나게 한다면 자업 자득이다. 그러므로 어려서부터 자식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제대로 잘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길이다. 이것이 주 안에서 부모에게 공경하는 길이다. 반대로 하면 이것이 부모가 자식들로부터 공경 받을 수 있는 길이다. “주 안에서”라는 말씀이 중요하다.

요즘 믿는 부모들 조차도 아들딸을 주 안에서 가르치질 못해서 문제가 심각해 진다. 어려서부터 아들딸을 세상으로, 학교로, 학원으로, 유학으로 내 몰기만 하고 주 안에서 성장하고 주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칠 기회를 놓쳐 버린다. 나중에 다 큰 후에 주 안에서 살아가는 길을 강요해 보아야 이미 기차는 지나갔다. 자식들이 너무 커 버렸다. “어머니 아버지 내가 알아서 해요. 신앙은 자유에요.” 이렇게 두 눈을 부라리면서 부모에게 거역하기 시작하면 부모 자식 관계는 복잡하게 엉키기 시작한다.

왜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 ‘주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하나. 그 길이 주 안에서 부모로서 공경 받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콩가루 집안’이란 표현을 쓴다. 콩가루 집안이 되기 전에 주 안에서 무엇이 옳은 길인지를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주 안에서 공경 받는 부모가 되고 주 안에서 제 부모 공경 할 줄 아는 자식이 되는 법이다. 

아침 운전 중에 양희은 씨가 사회 보는 라디오 생방송을 들은 적이 있다. 편지 글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딸이 쓴 편지이다. “엄마는 자기가 어렸을 적에 아빠의 학대로 인해서 40대 때에 실오리기 하나 걸치지 못한채로 파출소로 피신한 이후에  다시는 집으로 돌아 오지 않았다. 그런 패륜한 아빠 밑에서 자라난 딸이 커서 남자를 잘못 만났다. 자기도 한량 같은 남자를 만나서 맞으면서 살았다. 자기는 어렵게 벌어 모아 놓은 돈을 남편이 챙겨 가지고 나가서 멋진 밴즈 차를 타고 돌아 다니며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 부부라는 이유로 경제적인 피해와 정신적인 학대와 실제 매 맞는 부부로 산지가 한 두해가 아니었다. 나중에 어머니의 행방을 알았을 때는 늙고 암으로 병들어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불쌍히 여겨서 자기가 어머니 수발을 들어 드리다가 몇 해 전에 돌아가셨다. 지금 남편은 어떤 젊은 여자하고 눈이 맞아서 집을 나가 버린지 오래다. 자기는 엄마의 대를 이어 학대 받고 매 맞고 버려진 폐허 같은 인생을 살아 오고 있다.”

우린 이런 이웃의 사연을 대하다 부면 “주 안에서” 부모 자식의 관계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 일상이 왜 소중한지 절절이 깨닫게 된다. 맞다. 주 안에서 부부로 만나 가정을 이루고 주 안에서 자녀를 낳고 주 안에서 키워야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할 줄 아는 자녀로 자라나게 되는 법이다. 악이 악을 낳고 선이 선을 낳는 것이다. 주 안에서 부모 공경을 가르치고 주 안에서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공경을 받는 가정들이 모두 다 되기를 축원한다.  

약속이 있는 첫 계명.
부모에게 순종하고 아버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다. 수학에는 공식이 있고 과학에는 원리가 있고 법학에는 법칙이 있다. 성경의 바탕은 계명이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성경의 틀이다. 이는 하나님의 모든 명령의 기초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양하지만 그 바탕과 틀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것이다. 

최첨단 과학의 발전은 개인별로 수 십억을 내고 우주 여행도 가고 우주 공간에 머물기도 한다. AI 즉 인공 지능의 발전과 로봇 형명, 3D 프린팅의 기술 혁명 등은 상상을 초월한다. 최첨단 의료 기기와 수술 장비의 발전 속도도 가히 혁명적이다. 그러나 그런 모든 분야의 과학 발전의 바탕은 과학의 원리에 의한 것이다. 원리를 알면 대답이 보인다.

요즘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막으려는 백신 개발에 관심이 뜨겁다. 평소에 일반 시민들은 별로 관심이 없던 RNA 연구 개발과 그 진척 상황에 대한 뉴스나 신문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그와 같은 최 첨단 의학 연구 분야에서 밤을 세우는 연구진들이 있다. 

요즘과 같은 일을 겪으면서 보니 의사, 간호사, 보건 담당자, 검역, 방역 담당자의 전문적인 노고가 돋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을 통해서 이것이 사람이 사람답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첩경이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다. 사실 에베소서 6장의 1,2,3절이 우리 삶에 복으로 임하려면 4절이 먼저다. 아비들이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한다. 주 안에서 주의 말씀을 따라 교훈하고 양육하여야 한다. 그래야 그 자녀들이 자라나서 제 부모에게 순종하고 제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할 줄 아는 아들딸로 자라나는 법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의 선순환의 법칙이다. 악은 악순환되고 선은 선 순환되는 법이다. 우리 속담처럼 웃물이 맑아야 아랫 물도 맑다. 내가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면 내 자녀들도 내게 순종하고 나를 공경하는 자녀들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순종하고 아버지 어머니를 공경하는 일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첫 계명임이 분명하다. 첫 계명이란 말씀은 십계명 중에서 사람과 사람에 대하여 교훈하는 여섯 가지 계명 중의 첫째라는 말씀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 말씀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다. 제 부모에게 순종하고 제 부모를 공경할 줄 아는 가정이 복된 가정이고 잘되는 가정이다. 

땅에서 잘되고 복된 길.
이 세상에서 잘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하나님은 분명하게 교훈하고 강조하셨다. 주 안에서 제 부모에게 순종하고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할 줄 아는 가정과 인생들로 하여금 잘되게 하시고 이 땅에서 그 생명이 오래 가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점점 세워져 가는 가정이 있고 점점 쇠락해져 가는 가정이 있다. 다윗의 때에 사울의 가정은 점점 약해져 갔고 다웃의 생애는 점점 강성해져 갔다. 하나님은 다윗과의 언약을 지키셨다. 예수는 아브라함의 이천년 후손이요 다윗의 천년 후손으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

우리는 다윗의 증조 할머니 룻의 이야기를 잘 안다. 룻은 모압 여인이다. 흉년이 계속되던 때에 베들레헴에서 모압 땅에 이주했던 나오미의 아들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남편이 일찍 죽고 홀로되었다. 동서는 친족에게로 가 버렸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운명을 같이 하였다.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 신앙도 받아 들였다. 어머니 가시는 곳에 같이 가고 어머니가 죽으시는 곳에 같이 죽겠다는 결심도 섰다. 그러나 그 삶은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시대 마을 베들레헴으로 시어머니 따라 간 그의 일상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남의 이 밭 저 밭을 넘석 거리며 수확이 끝난 이웃의 밭에서 보리 이삭, 밀 이삭을 주워다가 빵 한 조각 구워 먹는 굶주린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런 룻에게 그 마을의 대 지주 노총각 보아스가 마음을 주었다. 남편과 사별한 결혼 경험이 있는 룻은 보아스의 청혼을 받아 들이고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다. 오벳이란 아들도 낳았다.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던 여인이 보아스의 아내가 된 것이다. 룻의 시 어머니 나오미는 룻을 따라 들어가 보아스이 집에서 살았다. 룻이 보아스를 통해서 낳은 아들 오벳을 나오미는 무릎 위에서 내로 놓질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나오미가 오벳을 낳았다고 할 정도로 사랑으로 키웠다. 그 오벳이 이새를 낳고 이새가 낳은 여덟 명의 아들 중의 막내가 다윗이다.

룻은 다웃의 중조할머니이다. 다윗의 증조할아버지인 보아스는 여리고 성을 정탐했던 여호수아 때의 두 정탐꾼 중의 한 사람 살몬이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을 통해서 가정을 이루고 낳은 아들이다. 생각하여 보라. 기생 라합은 소문에 듣던 여호와를 믿는 광야 백성들이 섬기는 신, 하나님을 영접했고 그 정탐꾼과 결혼해서 아들 보아스를 낳았다. 정탐꾼 살몬, 몸을 팔던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 태어난 아들 보아스, 모압의 기구한 운명의 젊은 여인 룻, 시어머니 나오미와 하나님 신앙을 갖고 새 길을 걷기를 결단했던 룻,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인 보아스, 그런 환경에서 태어난 오벳과 그의 아들 이새 그의 막내 아들 다윗. 저들은 각 사람이 모두가 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첫 계명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며 살다가 하나님이 잘되게 하신 복을 받은 주인공들이다. 재물, 건강, 장수 이 모든 것은 주 안에서 이 땅에서 누리는 성도의 축복이다. 주 안에서 잘 되는 길이 있다. 에베소서 6장 3절을 영어 성경(NIV)으로 보니까 

“so that it may go well with you and you may enjoy long life on the earth.”

라고 했다. “잘 될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나의 오랜 삶을 즐겁게 살리라” 고 약속하셨다. 

주 밖에서 세상적으로 잘되는 것 말고 주 안에서, 약속 안에서, 계명 안에서 잘 되는 길이 참 복이다. 주 안에서 이런 복은 누리는 개인과 가정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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