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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누구신가(시130:1-8) 2020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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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4-21 22:17 조회 8,977 댓글 0
 
                      여호와는 누구신가(시130:1-8)          2020. 3. 29


시편 130편을 <현대인의 성경>번역으로 읽으면 이런 내용이다.

“1. 여호와여, 내가 절망의 늪에서 주께 부르짖습니다.
2. 여호와여, 내 소리를 듣고 나의 간절한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3. 여호와여, 만일 주께서 우리 죄를 일일이 기록하신다면 누가 감히 주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4. 그러나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므로 우리가 두려운 마음으로 주를 섬깁니다.
5. 내가 여호와의 도움을 기다리며 그의 말씀을 신뢰하노라.
6. 파수병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보다도 내가 여호와를 사모하는 마음이 더하구나.
7. 이스라엘아, 너희 희망을 여호와께 두어라. 그는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며 언제나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8. 그가 이스라엘을 모든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리라.”

시편 130편은 누가 언제 썼는지 알 수 없는 참회시(懺悔詩)이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지내던 시절에 그 누군가에 의해서 고백되었고 기록되었으리라고 여겨진다. 주전 586년에 남 왕국 유다가 망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의 군대에 의해서 수많은 유대의 젊은이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도 그런 이들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주전 538년에 제 1차 포로 귀환의 길이 열렸다. 그 때에 예루살렘에 돌아갈 수 있었던 이들 중의 대표적인 인물이 총독 스룹바벨이다. 하나님은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유대 백성들로 하여금 유다 땅으로 돌아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길을 열어 주었다. 

그런 꿈과 같은 날이 오기 전에 긴긴 포로 생활 중에 기도드린 참회의 기도 내용이 시편 130편이다. 개인의 구원보다는 민족적인 구원을 바라고 소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요즘 같은 때에 각 사람의 신앙, 각 사람의 종교를 떠나서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누구나 다 그런 구원의 여망을 갖게 된다. 세계적인 위협이 되고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이 종식되기를 절대자 앞에 간구하고 염원하는 기도는 누구나의 기도일 것이다. 

시편기자는 자신의 형편을 깊은 죄악의 늪에 빠진 자로 고백하고 있다. 늪이란 허우적대면 허우적댈수록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가는 곳이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곳이 늪이다. 깊은 수렁을 말한다. 죄란 것이 그런 것이다. 사람이 일단 죄에 빠지게 되면 그 죄가 깊은 수렁처럼 사람을 빨아들이고 잡아당긴다. 그래서 점점 깊은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깊은 죄와 악의 심연으로 끌려 들어가고 빨려들어 가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초등학교 1-2학년 때쯤의 일이다. 여름 방학 중의 장마 때에 형과 함께 동네 형들을 따라서 냇가의 뚝방길로 바다에까지 이어지는 방죽 길을 따라서 갔던 적이 있었다. 구경거리가 흔하지 않던 어렸을 적에는 많은 비가 내려서 논이 바다가 되고 내뚝이 넘쳐흐르는 큰물도 구경거리였다. 외돌다리를 건너다가 검정 고무신이 이끼 위에서 미끄러지면서 형은 저쪽으로 빠지고 나는 이쪽으로 빠졌다. “사람 살려”하고 허우적대며 흙탕물 속에서 허우적대는데 그때 중학생 쯤 되는 동네 형이 긴 막대기를 저 끝에서 잡고 우리 형제에게 맞으편 끝을 잡게 해서 차례대로 구해 준 적이 있었다. 그 형은 마을 한 가운데 있던 장로님댁 큰아들이었다. 나는 그날 새 검정 고무신을 잊어 버리고 여름 내내 낡은 고무신을 다시 꺼내 신고 지냈다. 아버지가 새 고무신 어쨌느냐고 물으실까봐 늘 마음이 조마 조마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시편 기록자는 하나님의 구원의 순간이 다가 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다. 그 기다림을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기다림’보다 더한 기다림으로 표현하였다. 군대에서 밤새도록 야간 경계를 서 본 경험이 있는 남자들을 그 경험이 생생할 것이다. 날은 춥고, 온몸이 꽁꽁 얼어 오고, 배는 고프고, 발끝부터 손끝까지 체온은 점점 떨어지고 온몸이 돌처럼 차갑게 굳어 올때에 아침이 밝아 오기를 기다리는 그 기다림이란 지루하고 시간이 멈추어 선듯한 참 괴롭고 어려운 시간이다. 

사실 이것은 이 시편기자의 기다림과 비교할 수 없는 기다림이다. 시대적으로는 이스라엘 나라가 망했다. 예루살렘에 가 볼수 조차 없다. 바벨론에 끌려 가서 지내는 포로 신세가 되었다. 그런 가운데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다. 5절,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여호와께서 부르짖음을 들어 주시기를 바라며, 여호와께 구원의 소망을 두고 여호와의 도우심을 바라고 바라고 또 바라는 간절함이 절절이 묻어 나는 시편이 바로 시편 130편이다.“바라고 원하고 기도합니다.”하는 찬양의 고백이 구구절절이 배어 있는 시편의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은혜가 되기를 바란다. 


귀 기울여 들으신다.
2절에 보면 시편 기자는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이런 기도를 주께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님은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귀 기울여 들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친히 약속해 주셨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이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한 것은 그가 시위대 뜰에 갇혀 지낼 때였다. 하나님은 두 번째로 예레미야에게 임하셔서 이런 약속의 말씀을 해 주셨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렘33:2) 그리고 이어서 하신 말씀이 부르짖으면 응답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셨다.

우리가 <사랑합니다. 나를 자녀 삼으신 주>라는 찬양에서 찬송하지 않나. “내 부르짖음 들으시고 감싸 주시는 영원히 주 찬양 합니다. 내 삶을 다해”

마가복음 10장 46절 이하에 보면 하루는 예수께서 여리고에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들과 함께 여리고 성 밖으로 나가고 계셨다. 디메오의 아들 맹인 거지 바디메오가 길 가에 앉아 있었다. 나사렛 예수가 지나 가시는 것을 알고 소리질렀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많은 사람이 그에게 조용히 좀 하라고 꾸짖었다. 그러나 그는 더욱 더 큰 소리로 소리쳤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예수께서 그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를 부르라’고 청하셨다. 사람들이 맹인 거지에게 말했다. “안심하고 일어나라 예수께서 나를 부르신다.”그 맹인은 겉옷을 내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로 나아 왔다. 예수께서는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다. 그는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기 시작하였다.

류태영 박사는 1936년생이다. 올해 85세이다. 지금도 왕성하게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류태영은 1936년 5월 14일, 일본 식민지 시절에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 복홍리 가리진 바우 마을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났다.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연명하며  날마다 굶주림과 고된 노동 속에서 자라면서도 대한민국 농촌 부흥운동의 미래에 대한 꿈을 품게 되었다. 독학으로 실력을 키우던 그는 18살 나이에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서울로 올라와서 6.25 직후에는 미군부대에서 구두닦이도 했다. 신문배달과 행상 등 온갖 일을 하면서 야간 고등학교를 마치고 21살 때에 건국대학교에 진학하였다.

6. 25 전쟁 이후 우리나라의 가난을 살려보기 위해 선진 복지국가로 유학을 가려고 기도하고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하루도 새벽 기도를 빠지지 않고 다녔다. 오늘날까지 늘 그렇게 생활하고 있다. 그는 우연히「새 역사를 위하여」라는 책을 보다가 덴마크의 가난한 농촌이 세계적인 복지국가로 탈바꿈한 내용을 읽게 되었다. 그 후 덴마크 유학을 결심하였다. 그때 대한민국은 덴마크와 어떠한 연고도 없는 상태였다. 외교 관계도 없었다. 그는 가장 높은 사람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기지를 발휘하여 덴마크 국왕인 프레데릭 9세에게 보낼 편지를 작성했다. 대사관도 없던 시절이라 왕궁의 주소도 몰랐지만, 덴마크의 우편 배달부는 왕실의 주소를 알 것이라는 믿음으로 편지를 보냈는데 한 달 후에 기적적으로 덴마크 왕궁과 외무성에서 답장이 왔다. "당신이 원하는 기간,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분야를 공부할 수 있도록, 덴마크 정부가 책임을 지겠다“라는 초청 편지를 받았다. 1968년 7월, 그는 33살 나이에 덴마크 정부의 지원과 초청으로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

얼마나 지독하게 공부했던지 덴마크어를 3개월 만에 터득하였다. 복지국가와 국민운동에 관해 2년간 공부하였다. 그 당시 덴마크는 복지국가로 이미 발전한 상태였다. 그러하다 보니 실제로 농촌 유토피아의 발전을 경험해 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는 "건축으로 말하자면 완성된 건물과 설계도만 보는 것 같다”고 여겼다. 그래서 실제 부흥 운동이 진행 중인 이스라엘 유학을 다시 결심하게 되었다. 그 때에도 당시 이스라엘 대통령이었던 잘만 샤자르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대답이 왔다. 항공권, 생활비, 의료비, 학비 모든 지원을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약속받고 이스라엘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귀국 후 1971년 건국대학교 설립자 유석창 박사의 특채로 건국대 축산학과 교육담당자로서 근무하였다. KBS한국방송공사에서 농촌전문가로 아침 농가방송을 1년간 진행하였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의 홍성철 정무수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청와대에서 농촌 발전 프로젝트에 대한 조언 요청을 받았고 본인의 농촌 경험 및 선진국의 발전 모델을 소개하며 대한민국 농촌을 위한 비전을 대통령에게 제시하였다. 그에 대해 보고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학교에 사표를 내고 내일부터 청와대로 출근하라고 제안을 하였지만 그는 가르치는 학생들을 위해 거절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 날 새벽에 청와대 및 문교부가 건국대학교 재단이사장과 총장에게 특별히 부탁한 계기로 다음 날 아침부터 청와대로 출근하게 되었다. 

1972년 3월 15일, 그는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농촌 혁신 운동인 새마을 운동 담당자로 임명받았다. 그는 새마을운동 초창기의 핵심적인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는 덴마크와 이스라엘에서 연구하고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전략적인 아이디어와 실행방안을 대통령에게 제안하였다. 대통령은 새마을 운동에 관해서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의 기획을 실행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그 당시 류태영 박사가 제시한 새마을운동의 기본 정신 세 가지가 "근면(勤勉), 자조(自助), 협동(協同)”이란 표어였다.

그는 이스라엘 외무부의 장학금을 받으면서 1973년 7월부터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서 농촌사회학을 전공하였다. 4년 만에 석박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취득하고 유대인이 아닌 사상 첫 동양인 교수로서 이스라엘 국립 벤구리온 대학에서 히브리어로 한국문화사를 가르치는 교수 생활도 하였다. 그리고 1978년에 대한민국의 농촌 발전에 공헌하겠다고 마음 먹고 이스라엘에서의 모든 지위와 명예를 포기하고 다시 귀국하였다. 귀국 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어 학교 부설 새마을 연구소장을 겸임하였다. 1993년 2월부터 1다음 해  8월까지 건국대학교 부총장을 맡기도 하였다. 2001년까지 정교수로 재직하였다. 

은퇴 후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국가와 사회의 지도자로 성장시키기 위한 농촌청소년미래재단을 2002년에 설립하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출판 수입과 강연료로 모은 개인 재산 4억 3천만원을 농촌청소년미래 재단에 희사하였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시작한 날마다 일기를 쓰는 습관을 오늘 날까지 실천하고 있다. 그는 오늘날도 날마다 새벽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의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줄로 믿으라. 할렐루야.


인자하시다.
7절의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란 표현은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말씀하는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에 보면 “그는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며”라고 하였다. 그렇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결 같은 사랑이시다. 사순절을 보내고 있다. 다음 주일이 종려주일이다. 종려주일은 예수께서 새끼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수께서 새끼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자 백성들이 호산나 하고 소리쳤다. 호산나란 말은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예수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며칠 후에 붙잡히셔서 온갖 고난을 당하셨다.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하셨다. 좌편 강도의 조롱 앞에 반응하지 않으셨다. 예수는 온갖 조롱과 비난과 멸시와 부끄러움과 수치와 억울함과 고통을 다 당하셨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하셨다. 예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의 힘이었다. 우리는 요한 복음 3장 16절의“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을 기억한다. 이것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 최고의 말씀이시다.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죄와 악에 대하여 심판하신다. 3절에 보면 “주께서는 죄악을 지켜 보신다”고 했다. 맞다. 그렇다. 각 사람과 각 나라와 각 민족의 죄와 악을 자세하게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감히 고개를 들고 설자란 단 한 사람도 없다. 인간은 다 죄인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을 믿는다. 4절에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이란 말씀은 “주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신다”는 뜻이다. 

인간이 스스로의 죄와 악에서 건짐을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힘은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주님의 용서의 은총을 입고 새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집 나갔던 둘째 아들, 방탕하게 살던 둘째 아들,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 가지고 허랑방탕하게 살며 주색잡기를 즐기던 아들, 거지가 되어 남의 나라에서 돼지우리에 눕던 초라한 신세의 아들을 품에 안고 아들로 맞이해 준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다. 이 세상에 그 아버지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란 없다. 아버지는 집 안에 있는 큰 아들도 사랑하시고 집 떠나 방탕하게 살던 둘째 아들도 한결 같이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이 사랑은 신랑의 사랑을 포기하고 길거리로 나서는 부정한 아내 고멜을 여전히 사랑하고 또 다시 사랑하는 신랑 호세아의 사랑이며 이는 곧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말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다. 이유가 없다. 그냥 사랑해 주시는 사랑이시다. 일방적인 사랑이시다. 조건 없는 무조건의 사랑이시다. 끊임이 없는 사랑이시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 그런 사랑이라면 그런 사랑으로도 비교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이 여호와의 인자하심이다. 

찬송 563장, <예수 사랑하심은>의 가사와 같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죄를 다 씻어 하늘 문을 여시고 들어가게 하시네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세상 사는 동안에 나와 함께 하시고 세상 떠나가는 날 천국가게 하소서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아멘



모든 죄악에서 속량(贖良)하신다.
속량(贖良)이란 말은 ‘죄의 삯을 해결한다’는 뜻이다. 대속(代贖)이란 말도 쓰는데 대속이란 대신하여 값을 치른다는 뜻이다. 노예의 값을 주고 노예를 사서 풀어 주면 자유자가 될 수 있었다. 그 노예의 몸값을 지불하는 값이 대속금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하심으로 인간에게 대속의 은총이 임하였다. 이것이 대속의 사랑, 대속의 은혜, 대속의 보혈 은총인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하신 말씀 “다 이루었다”라는 ‘테테레스타이’라는 그 말씀의 뜻이 ‘대속하였다’,  ‘속량하였다’는 의미이다. 

이사야 55장 1절의 말씀이 대속의 초청, 속량의 초청 말씀이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생각하여 보라. 어떻게 돈 없이 포도주와 젖을 마련할 수 있는가. 이것은 전적인 주님의 은총이요 주님의 축복이다. 광야 40년 동안 어떻게 먹고 어떻게 마시고 살아 갈 수 있었다. 누가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가려주고 누가 밤에는 불기둥으로 나아가는 길을 밝혀 인도해 주었는가. 누가 반석에서 생수가 나게 해 주었는가. 누가 아침마다 만나를 공급해 주었는가. 무슨 값을 치루었나. 무슨 댓가를 지불했나. 아니다. 홍해 건너서 출애굽하게 하신 하나님이 40년동안 날마다 먹이시고 입히시고 마시우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선선하게 그늘 되어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밝혀 인도해 주신 것이다.

내가 했다고 말하면 않된다. 요즘 같은 어려운 때에 뒤돌아 생각해 보라. 멈추어 서서 뒤 돌아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 있나. 건강도 내가 지킨 것이 사실 아니다. 재물도, 시간도, 인간관계도, 직장도, 사업도, 그 어떤 경영도 내가 잘나고 내가 실력 있고 내가 역량 있고 내가 뛰어나고 내가 수완이 좋아서 했던게 아니다.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신 분이 주님이시다. 그렇지 않나. 일 순간 내 손 목에 맥이 풀리게 되고 두 다리에 맥이 풀리게 되고 두 눈꺼풀에 맥이 풀리게 되고 혀의 맥이 풀리게 되면 내가 내 몸의 그 어느 부위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마사회 회장이 어느 교회 장로였다. 
마사회가 뭔가. 우리나라에 경마장에 돈 갖다 바치는 인구가 매년 연인원 2,5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왜 경마장에 돈을 갖다 바칠까. 왜 복권을 살까. 왜 로또에 마음을 쓸까. 전에 부목사 시절에 어느 여집사가 자기 남편이 택시 운전을 하는데 돈을 벌면 버는대로 경마장에 갖다 바치는 바람에 이혼하고 말았다고 했다.

사람이 돈에 빠지고 이성에 빠지고 불륜에 빠지고 불건전한 재물 욕심에 빠지고 탐심에 빠지고 교만에 빠지고 나면 인간처럼 어리석은 존재가 없다. 전에 봐라. 도지사는 미국으로 하면 주지사급이다. 미국의 웬만한 주지사는 웬만한 나라의 대통령보다 그 힘이 막강하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서 추락하고 일 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경우를 본다. 왜 그런가. 인간이란 그런 존재이다. 권력, 명예, 재물, 돈, 지위, 인기 뭐 이런 것들이 아침 볕에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랑하면 안된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왕비 이세벨의 나중을 보라. 교만하고 어리석고 자랑하고 탐심에 붙잡히면 누구라도 그렇게 되고 만다. 우리나라 건국 이후 역대 통치자 12명이었다. 그 중에서 한 사람은 미국으로 망명가서 망명지인 하와이에서 눈을 감았다. 네 명은 감옥에 갔다. 두 명은 아직도 감옥에 있다. 한 명은 총에 맞았다. 한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랑하면 않된다.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자기 맘대로 장수할 수 있었다면 33살 한창 나이에 죽었겠나. 중국의 진시황이 원하는대로 살고 싶은대로 살았다면 그렇게 일찍 죽었겠나. 몽골의 징키스칸은 한때 그를 당할 자가 없었다. 그는 유럽 정벌에까지 나섰었다. 그런 징키스칸이 백년을 살았나 백이십년을 살았나. 히틀러는 나중에 어떻게 되었고 스탈린은 어떻게 되었고 모택동은 어떻게 되었는가. 시리아의 카다피는 어떻게 되었고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은 어떻게 되었는가. 

사람이 교만하거나 자랑하면 안된다.
인간은 누구나 다 죄인이다. 그 어떤 영웅호걸 절세가인이라도 자랑할 것이 없다. 인생 만사는 모든 것이 다 일장춘몽과 같은 것이다. 세상 것에 지나치게 연연하고 마음 쏟으면 누구나 다 후회하고 누구나 다 더 초라해지고 마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 속에 행복과 평화를 누가 갖다 주는 것인가.
인간이 스스로 자신를 인간의 죄와 악에서 구원할 자가 있는가.

삼성 이건희 전 회장의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본 적이 있다. 왕이라고 늘 평안할까. 재벌이라고 저절로 행복할까. 젊었다고 저절로 행복하고 미모를 가졌다고 날마다 천국일까. 인간을 그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는 풍성한 속량의 은총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이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의 은혜요 속량의 은총인 것이다. 인간을 죄와 악에서 구원하고 사망에서 영생으로 구원하는 능력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각 사람과 가족과 가정에 구원이 임하는 것이다. 이런 속량의 은총이 각 사람에게 강처럼 흐르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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