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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면(요13:31-38) 202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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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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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2-23 22:35 조회 9,219 댓글 0
 
                     서로 사랑하면(요13:31-38)             2020. 2. 23

하나님을 사랑하라
사람을 사랑하라
 흙을 사랑하라

이것은 강화도 시골에서 다녔던 감리교 학교인 동광중학교의 교훈이었다. 이는 18세기의 가난했던 덴마크를 오늘날의 세계적인 부국으로 일으킨 주인공 구룬트비 목사가 강조한 덴마크 국민들을 향한 실천 강령이었다고 한다. 

18세기 덴마크는 총체적으로 병든 사회였다. 전쟁에 패배한 이후의 덴마크에는 남자들은 술주정뱅이가 늘어나고 여성들은 몸을 파는 매춘부들로 거리에 가득하였다. 그 병든 덴마크를 일으킨 사람이 구룬트비(Grundtvig, 1783-1872) 목사다.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목사고시를 치렀다. 27살 때에‘덴마크 교회 지도자들이여 회개하라’는 그의 설교는 주변의 선배 목사들로부터 미움과 시기를 받게 되었다. 그의 설교는 3주만에 책으로 출판되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읽혀지게 되었다. 그는 주목 받고 시기 받는 젊은 목회자였다. 그는 교회를 개혁하고 나라를 구하겠다고 일어섰지만 아무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섬에서 얼마간 지내는 중에 신경쇠약에 걸려 잠도 못 자고 나중엔 헛소리까지 해가며 폐인 직전에 이르렀다. 완전히 절망하고 낙심하고 밑바닥에 떨어져 희망을 잃어버렸다. 다행인 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고 기도하는 그에게 성령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룬트비 목사는 간절히 통회 자복하며 눈물로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을 온몸으로 체험하였다. 천국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 땅이 아니라 천국을 사모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신경쇠약, 불면증도 고치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구룬트비를 통해서 성령의 바람이 덴마크에 불기 시작했다. 그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덴마크 사랑을 외쳤다. 청년들이 변하기 시작했고 나라가 처처에서 변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이 구룬트비 목사를 사용하고 계셨다. 구룬트비 목사에게 불었던 성령의 바람이 덴마크에 불기 시작했고 그 결과 남한 면적의 사분의 일 크기인 덴마크는 오늘 날 세계 1등 국가가 될 수 있었다. 지금도 덴마크 사람들은 구룬트비 목사를 국부로 존경한다. 덴마크 곳곳에는 그룬트비 목사의 동상이 서 있다. 성령의 바람이 덴마크에 부니 덴마크가 살다. 성령의 바람은 한 가정을 살리고 한 나라도 살린다. 후대에 덴마크는 코펜하겐에 구룬트비 기념 교회를 벽돌 600만개를 쌓아서 지었다. 덴마크 국민들에게 있어서 구룬트비 목사는 덴마크의 아버지인 국부요 목사요 작가, 시인, 사상가, 철학가, 역사가, 교사인 동시에 정치인 그룬트비로 기억된다. 

예수께서는 인간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무리들에게 하신 것이 아니다. 가롯 유다가 유월절 음식을 먹다 말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린 후에 남아 있는 열한 제자들에게 해 주신 말씀이다. 가롯 유다는 그 후에 예수의 곁으로 다시 돌아 오지 않았고 예수를 은 삼십에 팔아 버렸다. 가롯 유다는 그 시간 이후로 주님을 배신한 배반자의 불행한 끝을 맞고 말았다. 오늘 말씀이 시작되는 그 바로 앞 구절인 요한복음 13장 30절에 보면 그 날 밤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예수는 열두 제자들을 일일이 끝까지 사랑해 주셨다. 요한복음 13장 1절 말씀이 그러하지 않나. 예수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런데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 예수의 사랑을 입고 살아가던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이 예수를 배반하고 등지고 팔아버리는 어리석고 불행한 선택을 하고 말았다. 예수께서는 식사 중에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 말씀을 들은 요한과 베드로와 제자들은 서로 “누가 주님을 팔아버린단 말이냐”고 의심하고 의아해하며 서로 물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음식을 잡수시면서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는 말씀도 하셨다. 여기서 말씀하는 떡 한 조각을 무엇엔가 적셨다는 것은 두 가지 경우의 유월절 식사법이다. 유월절 빵인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을 소금물에 식초 몇 방울을 떨어트려서 찍어 먹는 경우이다. 또 다른 방법은 무화과나 건포도를 물에 녹인 과즙에 무교병을 찍어 먹는 유월절 식사법이다. 예수께서는 떡 한 조각을 식탁 맞은편에 앉은 가롯유다에게 적셔서 건네주셨다. 유대인들은 잔치상에서 주인이 손님에서 떡 한 조각을 적셔서 먼저 건네는 식탁 예절이 있었다. 이는 상대방을 높이고 상대방에게 정중한 예절을 표현하는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식사 예절이다. 

그때 예수께서는 가롯유다에게 “네가 하는 일을 속히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자리에 제자 요한은 예수의 품에 기대어 비스듬히 누워 유월절 음식을 먹고 있었다. 제자 요한은 예수께서 가롯 유다에게“네가 하는 일을 속히하라”고 말씀하신 내용을 복음서에 기록해 놓았다. 다른 복음서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그리고 떡을 건네받는 그 순간에 사탄이 가롯유다의 마음에 들어갔다고 관찰해서 기록해 주고 있다. 

가롯유다는 예수로부터 떡 한 조각을 건네받은 후에 그 유월절 만찬장을 떠나 버렸다. 요한의 그 역사적인 운명의 시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요13:30)

여기, 밤이 시작되었다는 요한의 이 기록이 대단히 상징적이다. 예수의 생애에 밤이 찾아왔고 예수는 그 밤에 시작해서 다음 날 붙잡혀 고난을 당하시기까지 캄캄한 밤길을 걷는듯한 고난과 십자가 죽음의 길을 걸어가셔야만 했다. 예수께서는 임박한 고난을 통하여 이룩하신 자신의 영광과 아버지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에 대하여 언급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사랑의 실천에 대하여 강조하셨다.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고 분부하신 후에“서로 사랑하면”이런 모습으로 장차 살아가게 되리라고 예언적으로 말씀해 주셨다.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수께서 “내 제자”란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 과연 누가 예수의 제자인가. 예수께서는 삼 년 전에 한 명씩 열두 명을 부르셔서 제자 삼길 원하셨는데 실패한 인생이 나왔다. 열두 제자 모두가 신실한 주의 제자가 되질 못했다. 그러면 누가 과연 예수의 제자인가. 예수가 부르셨으니 제자인 것은 맞다. 베드로나 안드레나 야고보나 요한을 비롯한 열두 제자들이 스스로 예수의 제자가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저들을 일일이 한 사람씩 부르셔서 예수의 제자가 되는 길을 따르게 하셨다. 그러나 지난 삼 년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가롯 유다는 예수를 버리고 사탄의 조종을 받는 불행한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남아 있는 열 한 제자들, 아직 유월절 만찬장에서 유월절 음식을 먹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해 주신 말씀이 이것이다. “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자, 그러면 과연 누가 예수의 제자인가. ‘서로 사랑하는 자’가 예수의 제자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서로 사랑’이란 그냥 세상 사람들이 제 눈에 들고 네 마음에 드니까 서로 사랑하는 에로스의 사랑, 육적인 사랑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송혜교, 송중기 커플은 결혼 1년 9개월 만에 이혼하고 헤어졌다. 왜 그랬을까. 세상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다 그런 것이다. 믿을 것도 없고 기대할 것도 없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는 사랑은 어떻게 다른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과 무엇이 다른가. 예수께서는 그 많은 각색 병자들을 사랑의 마음으로 고쳐 주셨다.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귀신을 내어 쫓고 건강하게 해 주셨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광야의 배가 고픈 무리에게 먹을 것이 풍성하게 하셨고 오히려 부스러기가 열두 광주리나 남도록 흡족하게 공급해 주셨다. 

사랑하시니까 회당장 야이로의 열 두 살 때 죽은 딸을 살려 주신 것이 아닌가. 사랑하시니까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내신 것이 아니가. 사랑하시니까 장례가 끝난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셔서 새 생명을 선물해 주신 것이 아닌가. 예수께서 누군가를 사랑하신 사랑은 무엇을 기대하고 대가를 바라고 사랑하신 사랑이 아니다. 예수의 사랑은 주는 사랑, 섬기는 사랑, 내어 주는 사랑, 끝이 없이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고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품고 누군가의 필요와 요구를 온전히 해결해 주시는 희생적인 사랑이셨다. 예수께서 실천하신 사랑 실천의 극치는 심장의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까지 다 흘리시는 십자가의 사랑이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죄와 사망 가운데 죽어 있는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랑하는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 측은하게 여기시는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사셨다. 이 세상에 계신 동안에 그런 사랑의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로 선포해 주시고 또 가르쳐 주시고는 하셨다. 예수께서 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사랑의 눈이었다. 이 세상 백성들을 대하는 마음은 사랑의 마음이었다. 예수는 대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을 비롯해서 그 누구라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저들이 죄 사함 받고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마음을 갖고 각 사람을 대하셨다. 그러나 저들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여 오히려 예수를 미워하고 대적하고 죽이려 하고 죽여 없애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그 어떤 모멸을 당하고 멸시를 겪고 조롱을 당하고 그를 미워하는 그 누구라도 사랑으로 대하셔서 저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지길 원하셨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예수께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사랑의 실천을 분부하신 것이다. 

저들이 예수의 제자인 것을 자기들끼리만 알아서는 안된다. 예수의 남아 있는 열한 사도가 서로 사랑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 나아가서 천하만국에 다니며 열방의 모든 민족을 찾아 다니면서 예수의 부활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 갈 때에 ‘모든 사람’이 저들을 예수의 제자인줄로 알아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시다.

그렇지 않나. 우리나라에 개화 초기에 얼마나 많은 선교사들이 이 땅에 찾아왔나. 저들이 이 땅에 와서 그 어려운 생활 여건에 적응해 가느라 고생 고생하면서 낯설은 나라의 음식, 풍습, 문화에 적응해 가면서 이 나라의 낯 설은 말을 익히고, 이 나라의 말로 성경을 번역해 가면서 교회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고아원을 세우고 별의 별 선한 일을 다 감당하였다. 경신학교, 배제학당, 이화학당, 연세학당, 나중에 연세 세브란스병원으로 발전한 제중원, 최초의 여성 병원이며 오늘날 이화여자대학부속병원의 원조인 보구여관등은 모두가 초라한 초가집이나 옹색한 기와집 몇 칸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오늘 날 그러한 학교와 병원들의 시설이 어떻게 변화되고 발전되어 왔는가.

다음 주일이 삼일절 기념 주일이다. 1919년 3. 1절 독립 만세 운동은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3월 31일 수원 발안 장터에서 있었던 만세운동 후 계속되는 시위를 일본 군대는 막을 길이 없었다. 그에 대한 경고와 보복으로, 일본 육군은 중위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가 앞장서서 일본 경찰을 동원하였다. 보름 뒤인 4월 15일, 수원 제암리 마을에 집집마다 불을 지르고 제암리감리교회 예배당에 15살 이상의 기독교 신자들 중에서 남자들만 불러 모았다. 마을의 기독교 신자들과 마을 주민 29명을  일본 육군이 나서서 학살하였다. 27명의 남자들을 죽였다. 예배당 안에 불로 모으고 문을 닫아 걸고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살아 나려고 뛰쳐 나오니까 총으로 쏘아 죽였다. 남편을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2명의 여성의 목을 총 끝에 매단 칼로 쳐 죽였다. 그 야만적인 만행을 세상에 알린 것은 영국출신의 캐나다 의료 선교사 스코필드(Frank W. Scofield, 1889-1970)박사와 우리가 아는 호레스 언더우드 선교사였다. 그 당시에 무슨 교통수단이 마땅히 없었다. 덜덜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수 십킬로를 달려갔다. 현장 사진을 찍고 참혹스런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기사를 작성해서 미국으로 보냈다. 세계 언론에 일본 군대의 만행이 알려졌다. 

스코필드 박사의 한국 이름은 석호필이다. 1916년 한국에 와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 세균학교수로 있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교수직을 포기하고 독립 운동에 적극 협력하였다. 일제의 강압으로 1920년에 강제 출국당했다. 한국을 떠날 때 조선총독부에 요청하여 옥고를 치르고 있는 월남 이상재·이갑성·오세창 등 독립지사를 면회하고 격려했다고 전해진다. 귀국 후 캐나다의 토날드 대학에서 의과 대학 교수로 활동하였다. 강제 추방되었기 때문에 해방이 되기까지 우리나라에 올 수가 없었다. 세월이 흐른 후에 195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10주년 경축식에 초청되어 한국에 다시 왔다. 그 후 1969년 2월 한국에 다시 돌아왔고 여생을 한국에서 마쳤고 그는 그의 몸도 그가 사랑하던 한국 땅에 묻히길 원했다. 저들은 예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가르침을 죽기까지 실천한 예수의 제자들이었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길이 무엇인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따라서 서로 사랑을 실천하며 예수의 부활 복음을 가슴에 안고 이 낯 설은 나라에 찾아와서 ‘서로 사랑’을 실천한 이들의 섬김과 헌신의 열매가 아닌가.

우리 교회가 위치한 은평구 갈현동 산자락에 있는 나라를 대표할 만한 복지 기관 중의 한 곳이 ‘엔젤스헤이븐’이란 곳이다. 그곳에서 ‘서로 사랑’을 실천한 세 대표적인 인물이 존 조셉 타이스와 윤성열 목사와 루스 노블 아펜젤러 선교사였다. 

그 첫 사람은 존 조셉 타이스(John Joseph Theis, 1930-) 선교사이다. 1930년 미국 캔사스주에서 태어났다. 미국 피츠버그 주립대학교와 보스턴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56년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윤성렬 목사, 루스 노블 아펜젤러 선교사와 함께 엔젤스헤이븐을 설립하는 큰 공로를 세웠다. 엔젤스 헤이븐 초창지에 5년 동안 이사장을 역임하였으며, 홀트아동복지회장으로 섬겼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이었다.

또 다른 한 사람인 윤성렬(1885-1977) 목사는 경기도 여주군에서 태어났다. 배재학당에서 마태복음 18장 12절을 읽던 가운데 ‘길 잃은 어린양' 구절을 보고 큰 감동을 받은 후에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목사가 되었다. 여러 곳에 교회를 개척하고 건축하였다. 1937년 일본의 민족성 말살정책이 점점 심해 갈 때에도 흑석동교회, 한남동교회를 신축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막내아들 대영을 기념해서 전북 전주에 윤대영 기념교회를 세웠다. 그는 1954년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땅에 은평교회를 개척하였다. 4년 후에 물러난 후 다음 해인 1959년 에 은평천사원을 설립하고 이 태만에 보사부에서 법인 설립 허가를 받았다.

미군들이 전쟁 중에 쓰다 버린 군용 천막 두 동을 세우고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하였다. 늘 부지런하고 늘 검소하던 그는 어느 날, 의사인 셋째 딸 윤정옥 교수가 동료 교수의 자택건축현장에서 시멘트 빈 포대의 끈을 풀어 모으다가 딸의 눈에 뜨이고 말았다. 동료 교수가 “저 할아버지는 왜 끈이 필요한지 몰라, 매일 저렇게 뭘 주워간다니까.”
윤정옥 교수는 동료 교수의 말에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아버지 돈을 드릴 테니 필요하신 만큼 끈을 사다 쓰세요. 이제 주우러 돌아다니는 일은 그만 좀 하세요.”하지만 윤성렬 목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노끈 꼬는 일을 계속하였다.

윤성렬 목사는 이처럼 푼돈이라도 모아서 선교와 사회봉사 사업에 값지게 사용하고는 하였다. 자신은 낡은 옷을 걸치고 낡은 운동화를 신고 다녔지만 해외 선교와 엔젤스 헤이븐 발전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하여 헌신하였다. 그는 평소에 “무릎을 꿇고 도우라”고 말했고 자신도 그런 섬김의 삶을 늘 실천하였다. 

또 한 사람은 우리나라에 감리교 제 1호 선교사로 와서 사역한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의 아들과 결혼한 루스 노블 아펜젤러(Ruth Noble Appenzeller, 1894-1986)선교사이다. 그의 아버지도 선교사였다. 그는 1894년 인천 제물포에서 윌리엄 노블(William Arthur Noble) 선교사의 맏딸로 태어났다. 후에 한국 초대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Appenzeller)의 아들 헨리 다지 아펜젤러와 결혼하고 한국 감리교 선교사가 되었다. 그의 남편인 헨리 다지 아펜젤러는 그의 아버지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가 낳은 아들이다. 헨리 아펜젤로 선교사는 44살에 충남 서천군 앞바다를 지나 목포로 성경 번역 위원회에 참석하려고 밤 배를 타고 가다가 밤중에 일본의 철선과 충돌하는 바람에 배가 가라앉아 숨졌다. 시체도 못건졌다. 그의 아들은 커서 나중에 아버지가 세운 배재 학당의 교장으로 섬겼다. 그의 아내인 루스 노블 아펜젤로 선교사는 선교활동 중에 은평교회의 설립 목사인 윤성렬 목사와 존 조셉 타이스(Theis) 선교사와 함께 엔젤스헤이븐을 설립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소년단 밴드부를 조직하고 4H-Club 등을 조직하는 등 다양한 아동복지사업을 전개하는데도 힘을 다했다. 과거 1960-1970년대에 농촌에는 마을마다 4H-Club(구락부,俱樂部))라는 것이 있었다. 한 때는 35000곳의 전국 지부가 활발하였다. 이것은 새마을 운동보다 훨씬 앞선 운동이었다. 병아리들이 어미 닭이 되면 그걸 판 돈을 모아 새끼 돼지를 샀다. 돼지를 키워 팔면 학비며 살림에 큰 보탬이 됐다. 그 대표적인 사업 성공가가 하림의 대표 김흥국 장로이다. 
높이 1m쯤 되는 시멘트 비석에 녹색 네 잎 클로버를 그리고 이파리마다 지(智) 덕(德) 노(勞) 체(體) 흰색 네글자를 새겼다. 표석 맨 밑에는‘무슨 마을 4H구락부'라고 새겨넣었다. 
4H는 머리(Head) 마음(Heart) 손(Hands) 건강(Health)을 뜻하는 영어 단어의 머리글자다. 

4H 서약을 기억하는가.
“나는 4-H회와 사회와 우리나라를 위하여 나의 머리는 더욱 명석하게 생각하며 나의 마음은 더욱 크게 충성하며 나의 손은 더욱 위대하게 봉사하며 나의 건강은 더욱 좋은 생활을 하기로 맹세합니다”

찰스 앤더슨 중령은 미군정 시절 경기도 책임자였다. 그는 경기도 화성에 첫 모임을 만들고 전국으로 이 운동이 번져 가게 하였다. 미국 농촌에서 1920년대에 시작된 4H구락부를 1947년 국내에 소개하였다. 그는 미국 교회나 자선단체들로부터 소나 염소 같은 가축을 기부받아 한 배 가득 부산항으로 실어오기도 했다. 4H구락부가 있는 전국의 마을에 나눠주고 키우도록 장려하였다. 루스 노블 아펜젤러 선교사는 4H  운동에도 늘 앞장서서 우리나라를 섬겼다. 

세월이 흐르고 93세에 캘리포니아 파사데나에서 소천하자 그의 시신을 한국으로 모셔 왔다. 정동제일교회에서 미국의 가족과 배재학교, 이화여대 및 엔젤스헤이븐 관계자들이 모여 천국 환송 예배를 드리고 마포 양화진 외국인 묘소에 안장하였다. 평소에 그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넘치도록 주어도 부족한 것이 사랑이다. 사랑이 없는 보살핌은 위선일 뿐이다.”라는 말을 강조하였다. 

루스 노블 아펜젤러 선교사는 임종하기 4개월 전까지도 매달마다 엔젤스헤이븐에 편지와 성금을 보내왔다. 뿐만 아니라 생전에 약속대로 유산도 기증해 주었다. 아펜젤러 가문 전체가 현재까지 엔젤스헤이븐을 후원하고 있다. 그 덕분에 많은 고아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해외 입양도 되고 해외 유학을 다녀올 수 있었다. 엔젤스헤이븐 출신 아동들은 하나님과 예수의 사랑 안에서 자라나서 박사, 교수, 의사 등 전문가로 사회 곳곳에서 유능하게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존 조셉 타이스, 윤성열 목사, 루스 노블 아펜젤러 등 저들 몇몇 사람들의 의합하여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의 사랑을 실천할 때에 오늘날의 엔젤스 헤이븐은 짧은 시간에 다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겨자나무처럼 크게 크게 자라나서 국내와 열방에 왕성한 선교와 복지와 의료활동을 계속해 가고 있다. “사랑, 존중, 책임, 협력”이런 성경에 기초한 섬김의 정신이 오늘 날 그런 거대한 복지와 섬김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 교훈하신 교훈 중의 하나가 이것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너희가 내 제자인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그 어떤 분야에서 사회생활을 하든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예수의 제자 다운 사랑을 서로서로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성령 받은 후에 나를 따르리라.
예수를 믿는 생활이란 예수를 따르는 생활이다. 예수를 사랑하는 증거는 예수를 따라 사는 생활이다.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들을 한 사람씩 부르실 때에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다. 그렇다. 예수 믿는 생활은 예수를 따르는 생활이다. 그런데 정작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이런 멋진 신앙고백을 했던 제자 베드로조차도 예수를 모른다고 하고 부인하고 저주하고 도망가 숨어 버렸다. 예수께서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 예수를 부인하고 도망가 버린 베드로는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에 끌려가서 십자가에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실 그 때에 어딘가에 가서 숨어 있었다.

그런 비겁했던 베드로가 어떻게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의 중심 인물이 되고 위대한 사도의 길을 걸어 갈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성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유월절 만찬 장에서 그 밤에 예수의 가시는 길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있었다. 그래서는 예수께 질문하였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예수의 이 예언적 말씀이 베드로의 하루 하루 일과 중에 그대로 드러났다. 베드로는 예수로부터 이 말씀을 들은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예수께서 붙잡혀 끌려가신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여자 아이가 묻는 질문을 듣고 자기는 예수를 모른다고 거짓말을 하고 도망쳐 버렸다. 그렇게 나약하고 비겁했던 베드로인데 성령 충만을 받고 나니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다. 성령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를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낼 수 있다. 그래야 제자다운 삶을 살수 있게 된다. 그래야 예수 부인하고 저주하고 도망다니는 비겁한 인생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을만한 담대한 제자의 인생으로 바뀌게 된다. 성령 받아야 예수 따라 사는 제자다운 제자의 삶으로 변화받게 된다. 

예수는 부활 하신 후에도 “성령을 받으라” 이 말씀을 하셨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성령 받는 것이 예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 사순절 주제 성경구절을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으로 정한 것이다. 성령 받아야 한다. 그래야 부르심과 사명에 충실한 담대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길은 내 의지 내 힘, 내 결심만으로는 부족하다. 성령을 받아야 한다. 성령이 임해야 한다.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고단해도 이기고, 억울해도 이기고, 힘들어도 이기고, 답답해도 이기고, 지쳐도 이겨 낼 수 있다. 성령을 받아야 진정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성령 받기를 기도하자. 성령 받기까지 말씀을 대하자. 성령이 임하면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가 군대가 된다. 성령이 임하면 내 안에서 내가 판단하고 내가 결정하고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다스리시고 성령이 다스리시게 된다. 

사도 베드로가 성령 충만을 받고 나니까 하루 말씀 전파로 삼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 받는 기적이 일어났다. 핍박자 사울이 성령 받고 나니까 그날부터 다메섹 성 안에 이 곳 저곳을 찾아다니며 예수의 부활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다른 기도하지 말고 백번 천번 만번 계속하여 간절하게 주님께 간구해야 한다. “주여 내게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 주시옵소서”하고 밤을 새워서라도 기도하고 절규하며 애절하게 간절하게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원하고 바라고 소원하면 받게 된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구하게 되고 받게 되고 열리게 된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응답의 방법이 아닌가. 아들이 아버지께 좋은 것 달라고 간구하듯이 구하면 하나님은 그 구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고 하셨다. 그 좋은 것이 무엇인가. 바로 성령이다. 누구나 성령 받기를 간절히 구하고 구하면 성령을 받게 된다. 


회개한 후에 네 목숨을 버리리라.
유월절 그 밤이 지나고 새 날의 아침이 되면 예수 모른다 하고 부인하고 저주하고 도망가 버릴 베드로가 아닌가.  그런데 그 전날 밤에는 어쩌면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예수 앞에서 말하고 또 말할 수 있었을까. 37절을 보라.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해 주셨는가.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우리가 잘 아는대로 베드로는 다음 날 아침 이런 부끄러운 모습으로 무너져 내렸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함부로 장담하면 안된다. 함부로 맹세해도 안된다. 함부로 큰 소리치면 안된다. 

그렇게 비겁하고 부끄럼 당하던 베드로가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는가. 어떻게 해서 베드로가 예수 위해, 복음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는데 까지 이를 수 있었을까. 그 힘이 무엇인가. 제대로 회개했기 때문이다. 눈물 콧물 흘리는 것 다 좋지만 제대로 회개해야 한다. 제대로 변화받아야 한다. 제대로 붙잡혀야 한다. 회개란 ’‘메타노이아’는 감성적인 변화를 일컷는 말이 아니다. 방향을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악에서 선으로, 거짓에서 진실로, 불의에서 정의로, 내 힘으로 하던 상태에서 그 분에게 완전히 사로 잡힌 상태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 회개한 것이다. 어설프게 회개해선 회개라고 할 수가 없다. 

며칠 전에 머리도 식힐 겸 유튜브에서‘새롭게 하소서’라는 어느 목사의 대담 간증 프로를 보았다. ‘하늘 뜻 푸른 교회’의 박종배 목사는 과거에 잘 나가던 목사였다. 그런 그가 강릉에서 개척교회를 섬기고 있다. 교인은 열명이다. 상가 교회 월세라도 해결해야 하니까 틈틈이 7년 째 대리 운전도 하고 택배도 하면서 네 가족 생활비도 해결하고 교회 잡비도 충당하며 목회한다. 기도만 하고 앉아 있으면 가족 모두 굶어 죽을 형편이니 말이다. 어느 날 밤중에 대리 운전을 하는데 술에 취한 두 사람이 함께 탔다. 뒷 거울로 보니까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은 자기가 아는 이웃 교회 장로였다. 얼마를 가다가 한 명의 일행이 먼저 내렸다. 뒷 자리에 앉은 그 장로가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 “장로님 요즘 많이 힘드시죠”깜짝 놀라서 양복 매무새를 고치고 자세를 반듯하게 앉더니 “아니 목사님이 운전을 하십니까.”, “네 장로님 제가 틈틈이 대리 운전도 하고 택배도 하며 지냅니다.”그 장로님 하는 말이 “목사님 제발 부탁입니다. 우리 목사님께 비밀로 해 주십시오. 요즘 사업이 너무 힘들어서 정말 처음으로 술을 좀 마셨습니다. 우리 목사님께 절대로 비밀로 해 주십시오.”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장로님” 얼마를 가다가 목적지에서 그 장로님이 내렸다. 요금을 내고 내리고 말고 지갑을 다시 꺼내더니 오만원짜리 한 장을 그 목사님께 건네면서 또 다시 말했다. “목사님 우리 담임 목사님께 제발 말씀하지 마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그런데 다음 날 그 장로님이 어제 보다 더 만취가 된 상태로 다시 또 그 목사님이 운전하는 대리 운전차를 타게 되었다. “이번에는 더 신신 당부하였다. 두 손을 빌면서 말했다. 목사님 정말 거짓말 아닙니다. 내가 신앙 생활 하면서 어제 하고 오늘 하고 딱 두 번 취했습니다.  우리 담임 목사님께 절대로 이르지 말아 주세요. 부탁입니다.  목사님 제가 다시 또 술에 취한 모습으로 목사님을 만나면 목사님네 교회로 교회를 옮기라는 하나님 뜻으로 알겠습니다.”그런데 그 장로님을 다시 또 만났을까 못 만났을까. 왜 못만났을까. 술을 끊었을 수도 있지만 아마도 대리 운전 회사를 바꾸었을지도 모른다. 

질문해 보자. 회개가 쉽나 어렵나. 습관을 바꾸기가 쉽나 어렵나. 내 의지로 살던 지난 날을 뒤로 하고 내 삶의 주인을 예수 그리스도로 모시고 사는 것이 회개인데 그게 쉽나 어렵나. 물론 어렵다. 인간의 생각으로 되는게 아니다. 내 노력이나 내 의지로 회개가 되는게 아니다. 성령 받아야 회개할 수 있다. 회개해야 성령도 임하신다. 

그 목사님이 새벽 두시경 경포대 호숫가에 자기만이 정한 기도처에 차를 세우고 묵상하며 기도하면 “하나님 저좀 도와 주세요.”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래 종배야 내가 너와 함께 있다”그런 음성이 들리는 것만 같다고 했다. 그러면 “주님 저도 주님 사랑해요.”그리고 다시 또 힘을 내서 밤을 꼬빡 새워 가면서 대리 운전을 하고 새벽 기도시간 맞추어 교회로 향한다고 했다. 어떤 때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엄마가 초등학교 어린 아들에게 하는 말이 “너 열심히 공부해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너도 나중에 저 아저씨처럼 이 무더운 여름 날에 택배하며 살아야 돼”그런말이 10센티쯤 열린 엘리베이터 문 안에서 들린 때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대리 운전하는 차 안에서 만난 강릉 시민들을 선교 대상, 전도 대상으로 여겼다. 어느 날은 공황장애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답답해서 쩔쩔매는 어느 교회 집사를 만나 권면하고 기도해서 돌려 보내기도 하였다. 어느 날은 부모가 이혼한 날 두 젊은 자매가 술에 잔뜩 취해 울면서 대리 운전 차를 타고 자기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알고 권면하고 위로 하기도 하였다. 그는 주일 예배 시간도 예배시간이지만 대리 운전하며 만나는 모든 이웃들이 그의 전도 대상이요 예배의 자리에서 만나는 신자와 같다고 했다. 

요한 웨슬리와 같은 시대의 전도자였던 영국 교회의 죠지 휘필드(George Whitefield)는 “ 나는 녹슬어 없어지기 보다는 달아 없어 지는 삶을 살다가 가고 싶다”고 늘 외치며 그런 복음 전파자의 삶을 살았다. 

순교하는 것도 거룩한 죽음이요 주를 위하여 삶이지만 평생을 숨을 거두기 까지 복음 전파를 위해서 살고 복음 안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돌보고 섬기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의 명령에 준행하는 제자의 삶이 아니겠는가. 이런 은혜가 우리의 가정과 세상의 일상과 믿음 생활 가운데 간증으로 가득하길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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