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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십일조 신앙(말3:7-12, 마23:23) 2020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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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1-15 22:30 조회 9,836 댓글 0
 
                    십일조 신앙(말3:7-12, 마23:23)       2020. 1. 12 청지기주일


십일조는 신정국가(神政國家)체제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규례이다. 신정국가란 하나님이 하나님의 대리자를 세우셔서 친히 통치해 가시는 국가를 말한다. 가령 모세 때의 광야 백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성령 강림으로 탄생한 교회는 예수께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에 의해서 형성된 단체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 받은 무리들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공동체’를 이루시길 원하신 것이 교회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사람이 정한 제도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430년 동안 저들은 그곳에서 노예로 살았다. 노예 생활하던 저들은 십일조 규례 같은 것 모르고 살았다. 언약 백성이지만 세상 정부 즉 애굽의 바로 왕의 통치 아래 있던 노예였다. 노예였지만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살았다. 그러나 신분은 노예였다. 노예의 삶은 고달픈 나날의 일과였다. 그렇다고 저들이 굶어 죽은 것은 아니다. 고단하게 일하고 일정한 최소한의 처우를 받으며 먹고 살았다. 그러나 생각하여 보라. 그렇게 사는 것은 살긴 사는데 사는게 아니다. 

그런 저들을 노예의 상태에서 해방시켜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신정통치의 구체적인 증거다. 모세 때에 홍해를 건너 광야로 이끌어 내셨다. 광야에서의 먹을거리는 만나였다. 하나님이 날마다 일정한 먹을거리를 하늘에서 내려 주셨다. 그래서 ‘하늘양식’이다. 고기 타령하면 바람으로 메추라기를 몰아다가 주셨다. 메추라기는 비둘기 만한 철새다. 200여만 명이 광야에서 메추라기 공급을 받았다. 한 사람이 두세 마리 정도를 구워 먹었다면 최소한 한 번에 500만마리의 메추라기가 공급되어야 했을 것이다. 광야에서의 삶이란 식수 문제도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런 저들의 광야 40년을 하나님이 인도해 주셨다. 하나님이 이끌어 주셨다. 물론 모세가 있었지만 모세가 동족들의 필요를 어떻게 해결할 능력이 있나. 여호수아가 젊고 유능했지만 여호수아가 동족들의 광야 생활에 그 무엇을 공급하고, 그 무엇을 해결할 수 있었나. 아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공급, 하나님의 이끄심,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살아가야했다. 이런 삶의 모습을 ‘신정통치’(神政統治)라고 한다. 십일조 신앙은 나의 삶을 주관하고 다스리고 이끌어 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신앙의 고백이 담긴 헌금생활이다. 그렇지 않나. 세상 사람들이 십일조 드리는 것 보았나. 왜 않드리나. 왜 못드리나.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성령 받은 초대 교회 성도들은 가진 모든 것을 다 드리고 유무상통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는 마라나타 신앙으로 살아가기 시작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연보 생활에 대하여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하라”고 가르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령 받고, 은혜 받고, 복음을 알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나면 십의 하나가 문제가 아니다. 열을 다 드리고라도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신비와 철저한 하나님의 공급을 체험하며 살아가기를 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걸 실천하려던 사람이 바나바이고 그걸 시늉 내 보려다고 죽임 당한 부부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아닌가. 

신정통치란 범사를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뜻이다. 모세 때의 광야 생활, 여호수아 때의 가나안 생활, 여러 사사가 통치하던 사사 시대의 그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다. 사울, 다윗, 솔로몬의 통일 왕국 시대, 나라가 남북으로 나뉘었지만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의 통치의 근본은 왕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 배후에 하나님의 통치가 면면히 흘러가고 있었다. 이런 눈으로 보면 창세기의 아담으로부터,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 모든 삶의 배후에 하나님의 통치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말라기는 구약 시대 맨 마지막 선지자의 기록이다. 말라기서가 기록된 시대는 느헤미야 시대 경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말라기란 ‘말라키야’는 ‘여호와의 사자’라는 뜻이다. 모든 선지서의 기록이 다 그러하지만 말라기서의 내용은 말라기 자신의 사상이나 의견이 아니라 여호와의 사자로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받아 기록한 것이다. 

해마다 1월 둘째 주일이 되면 청지기 주일로 지키며 십일조 신앙에 대하여 묵상하고는 한다. 말라기 3장 7절에 보면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지적하고 계신가.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여기 보면 ‘나의 규례’라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 규례라는 것이 8절 끝에 보면 ‘십일조와 봉헌물’에 관한 규례를 말씀한다. 

질문해 보자. 규례는 반드시 지켜야 하나.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규례다. 여기서 말씀하는 십일조와 봉헌물에 관한 규례는 지켜야만 하는 규례이다.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려면 국가의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 그 법을 어기면 세계적인 기업체의 회장이라도 감옥에 가는 걸 본다. 왜 그런가. 법은 왕부터 평민에 이르기 까지 누구나 지켜야 하는 평등 사상이다.  요즘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남의 나라 물건을 직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관세를 내지 않으면 그 나라의 물건을 내 손 안에 받아 들 수 없다. 이것이 규약이다. 하나님은 수입의 십일조, 수입 중의 봉헌물 신앙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규례라고 하셨다. 그런데 말라기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 민족적으로 이걸 어겼다. 그 때 하나님이 민족을 상대로 경고하시고 책망하신 구체적인 내용이 말라기서이다. 

우리는 교회 생활을 한다. 어떤 이들은 십일조는 구약 시대의 산물이지 신약 시대에는 필요 없는 말씀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을 눈여겨 보라. 교회는 이 땅의 소유가 아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조직이나 이 세상의 그 어떤 제도가 아니다. 신약 시대의 교회 생활은 구약 시대의 모세 때의 광야 생활 중에 성막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모습을 대변한다. 사도행전에서 스데반은 광야에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광야교회’(행7:38)라고 하였다.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 설교에 보면 37절에 모세를 ‘선지자’라고 했고, 38절에 ‘광야교회’라는 표현이 나온다. 또, 스데반은 모세를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라고 설명해 주었다. 모세가 선지자란 말이다. 모세 때의 광야 생활하던 200여만 무리가 ‘광야교회’를 이루고 하나님의 십일조와 봉헌물에 관한 규례를 명령 받았다. 그렇게 시작해서 여호수아  때에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시대가 열렸다. 

그 십일조 신앙은 거슬러 올라간다. 아브라함은 자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공급과 보호와 섭리를 깨닫고 조카 롯이 생포되었던 그돌라오멜 연합군의 소굴에서 되찾아 온 후에 그 전리품 중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쳤다. 어려운 일을 겪고 보니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와 돌보심과 공급하심이 더 실감나게 고백되는 장면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스스로 자원하여 그렇게 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뒤 돌아 생각해 보고, 깨달아 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보살핌이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인 것을 절절이 감사하며 멜기세덱 앞에 십일조를 드린 것이다.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기도 받은 야곱이 형의 두려움을 피해 집을 떠났다. 루스 광야에서 돌을 베게 삼고 밤을 지새우다가 천사의 임재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 밤에 야곱이 십일조 신앙을 고백한다. 하나님이 시켰나. 아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그런 서원(誓願)을 한 것이다.

그 후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십일조와 봉헌 신앙에 대하여 규례로 명령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다르심을 받아 드리는 신정통치, 신정국가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규례인 것이다. 주를 믿는 우리는 세상 나라로 하면 대한민국 백성이지만 신앙적으로 하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십일조와 봉헌물 신앙을 명령하신 바가 없으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십일조와 봉헌물 신앙을 요구하신 바가 없으시다. 

그렇지 않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리나. 절대 그런 경우란 없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십일조 드리지 않아도 다 제 나름대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산다. 그냥 나라에 세금 내는 것으로 족하다. 왜 그런가. 세상 나라의 백성이긴 하지만 아직 하나님 나라의 백성, 즉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살아가는 천국 백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도 자식 낳아 가르치고 명문대도 보내고 사업도 성공하고 돈도 벌고 세상 낙을 누리며 배를 신처럼 섬기고 자기 배 자기가 두드리며 나름대로 세상을 즐기며 살아간다. 그런 저들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세상 나라의 백성들일 뿐이다.

레위기 27장, 민수기 18장 등을 찾아 읽어 보면 하나님은 십일조에 대하여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12지파이다. 그 중에 레위 지파는 성막을 중심으로 살아갔다.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처럼 자기 몫의 땅이 없다. 그러하다 보니 자기 소득, 자기 분깃도 없다. 곡물을 생산할 땅이나 양과 소를 키울 들판도 없다. 레위 사람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성막을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고 제사의 진행을 돕고,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삶의 전부였다. 그런 저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11지파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하신 규례가 십일조 규례이다. 뿐만 아니라 십일조를 가지고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를 돌보도록 명령하셨다. 이처럼 십일조 명령에는 선교와 구제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가령 레위기 마지막 장인 27장 30절 이하에 보면 곡물과 과일과 양과 염소와 소와 같은 그 모든 것에서 십일조를 구별하라고 명령하셨다.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레27:30)고 하셨다. 소나 양도 십일조를 구별 할 때에 우열을 가리지 말고 목자의 막대기 아래로 지나가게 해서 그 열 번째 것을 하나님의 몫으로 구분하라고 명하셨다. 레위기 27장 30절과 32절에 보면 십일조는 곡물이든 과일이든 양이든 소이든 그 것은 ‘여호와의 성물’이라고 하셨다.

민수기 18장 21절부터 32절까지에는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에 대하여 말씀하면서 이것은 ‘레위인에게 기업으로’주었다고 강조하였다. 레위인은 자신들이 받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구별해서 거제로 여호와께 드리라고 했다. 그것은 제사장 아론의 몫이었다. 성막에서 섬기고 일하는 레위인과 제사장들은 이렇게 구별된 십일조를 먹되 “이는 회막에서 일한 너희의 보수임이니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렇지 않나. 오늘 날 교회로 하면 나나, 이범진, 김준연 전도사는 여러분이 드리는 십일조에서 사례를 보수로 받으며 성막에서 일하는 레위사람처럼, 제사장처럼 하나님의 일을 전담해서 섬기는 이들이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교훈해 주셨다.

세세하게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리는 것도 좋지만
정의/긍휼/믿음
이 세 가지를 버리면 안된다고 지적하셨다. 하나님 중심 신앙의 실천을 강조하신 말씀이시다. 그 뒤에 이어지는 강조에 보면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무슨 말인가. 그 모두가 다 중요하다는 강조이다. 십일조 철저히 드리듯이 정의와 긍휼을 실천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시다. 

이것이 신약 시대를 사는 성도의 십일조 신앙이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연보 생활을 교훈할 때에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하라고 하였다.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다고도 교훈하였다. 그렇지 않나. 씨앗을 뿌리는 농부가 씨앗을 아까워하며 뿌리는 경우가 있나. 좋은 씨앗, 틈실한 씨앗을 구별해서 넓은 땅에 넉넉히 뿌릴때에 수확할 날이 오면 풍성하게 거두는 법칙이 농사의 법칙이 아닌가.

십일조 잘해야 복 받는다. 십일조 잘해야 자손이 잘된다. 십일조 잘해야 만사 형통해진다. 십일조 잘해야 무병 장수한다. 성경 말씀을 그런 식으로 대하면 박수 무당에게 귀 기울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33살에 붙잡혀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하셨다. 그리고 무덤에 장사된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예수의 오실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를 사명을 다하던 세례 요한은 헤롯의 칼에 목이 잘려 죽임 당했다. 

제자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다. 바울은 목 베임을 당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임 당했다. 맛디아로 보충된 열두 제자의 나중을 우리는 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겪었던 고난도 안다. 로마 시대 박해기를 거치던 신앙의 선조들이 당한 환난과 핍박과 고난을 기억한다. 저들이 십일조 잘해서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입고 배 두드리며 살다 죽었나. 

그러면 십일조 신앙은 무엇인가. 십일조 잘 드려서 이 땅에서 복을 받고 번성하고 자식 잘되고 편안하게 평안하게 오래 오래 사는게 복인가. 물론 그런 복도 없지 않다. 그러나 십일조 신앙은 성령 받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제 제산을 팔아서 바나바처럼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놓고 가진 자와 없는 자가 유무상통하던 현장에 주목하여야 한다. 땅 끝까지 성령 받고 권능 받은 증인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그 바탕이 되어야 맞다. 십일조를 드리느냐 못드리느냐의 문제를 넘어서서 로마서 12장 1-2절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다 사도 바울처럼 열방을 향하여 나가는 선교사가 될 수는 없지만 그런 선교 열정이 식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런 선교 의지가 불붙어야 할 것이다. 

 우리 교회가 은평 뉴타운의 북한산 자락에 예배당 예쁘게 건축한 후에 ‘여기가 좋사오니’하며 자위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지난날을 뒤로하고 분연히 일어나서 빛을 발하는 거룩하고 역동적인 공동체로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오르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각자 받은 유인물을 잠시 보자. 
하나님은 십일조생활 봉헌물 생활 중심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나. 

1. 하늘 문을 여시고 복(福)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다.(말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2. 죄(罪)를 멀리하게 해 주신다.(민18:32)
너희가 그 중 아름다운 것을 받들어 드린즉 이로 말미암아 죄를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성물을 더럽히지 말라 그리하여야 죽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말씀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성물’이란 십일조를 말씀한다. 십일조 신앙이 레위인과 제사장들을 위한 몫이니 그것을 더럽히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거룩하고 아름답게 구별하고 하셨다. 

3. 모든 가족(家族)이 즐거워하며 살게 해 주신다.(신12:7)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그 앞 부분에 보면 가나안 일곱 족속이 숭배하던 우상 숭배 현장을 철저하게 깨트려 그 흔적도 없이 지워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라고 하셨다. 신명기 12장 1-6절이다. “네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 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를 막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그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그리고 이어서 하신 말씀이 인쇄물로 드린 3번째의 성경 본문인 신명기 12장 7절이다.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4. 범사(凡事)에 복을 주신다.(신14:28-29)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그렇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믿음의 사람이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로 하여금 먹고 배부르도록 돌아 보고 섬기라고 하셨다.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하셨다.

룻기의 보아스를 보라.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시어머니 공양하려고 남의 밭에 드나들며 밀 이삭, 보리 이삭을 줍던 모압 여인이 룻이다. 베들레헴에서 모압 땅에 가서 살던 신랑을 맞아 가정을 이루었으나 남편이 죽었다. 연세 들어가는 시어머니 따라서 이스라엘 베들레헴 마을에 가서 하루 하루 이삭 주워 먹던 젊은 과부를 그 마을 대 지주 보아스는 측은히 여기며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에게 넉넉하게 이삭을 남겨 두라고 했다. 하나님은 그 룻이 보아스의 눈에 들게 하셨다. 룻은 보아스를 통해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 이방 과부를 돌보아 준 보아스는 룻을 통해 다윗의 증조할아버지가 되고 룻을 다윗의 증조 할머니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누가 한 일인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5.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해 주시고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는 여호와의 성민(聖民)이 되게 해 주신다.(신26:19)
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6. 만족(滿足)하게 먹고 남는 복을 주신다.(대하31:10)
사독의 족속 대제사장 아사랴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백성이 예물을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 시작함으로부터 우리가 만족하게 먹었으나 남은 것이 많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그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이 쌓였나이다

*청교도 신앙을 바탕으로 세워진 미국의 저력은 이런 신앙과 섬김의 증거인 것을 부인 할 수는 없다. 

7.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해 주신다.(고후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8. 풍성(豊盛)하게 하시고 의(義)의 열매를 더하신다.(고후9: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모든 것의 공급자이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사는 그 증거가 개인과 가정마다 넘치길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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