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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사60:1-3, 막2:1-12) 202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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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1-06 20:29 조회 10,383 댓글 0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사60:1-3, 막2:1-12)  2020. 1. 5 신년 주일


태어난 아기가 때가 되면 몸을 뒤집고 때가 되면 배로 기어야 한다. 때가 되면 한 발자국씩을 띠고 때가 되면 아장 아장 걷기 시작해야 한다. 때가 되도 일어나지 못하고 때가 되도 걷지 못하게 되면 충격이다. 본인에게는 고난의 시작이며 엄마 아빠와 가족들에게는 더불어 극복해야 하는 평생의 무거운 짐의 시작이다. 우리 주변에는 선천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일어나 걷기 불편한 이들이 있다. 몸을 일으켜 걸을 수 없고 뛸 수 없는 것도 충격이지만 우리의 마음, 우리의 생각, 우리의 태도가 일어날 수 없는 상태로 주저앉아 있다면 이는 더욱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떤 경우의 그 누군가는 어렸을 적에 받은 상처나 아픔이나 학대받거나 버림받은 충격을 그대로 안고 살아간다. 그 씁쓸한 기억을 극복하지 못해서 어른이 되어서도 그 벽에 가려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리지도 못하며 지내는 불쌍한 이웃들이 주변을 둘러보면 적지 않다. 

일어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선포하셨다. 그렇지 않나.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이든 민족이든 주저앉아만 있지 말고 일어나야 하고 빛을 발해야 하지 않겠나.

이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면 개인이든 교회든 민족이든 다 마찬가지이다. 과거에 연연해서 지난날의 일과 사건에 붙들려만 있지 말고 지난날의 일들을 훌훌 털고 일어나야 한다. 새길을 가야 한다.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한다.

죄악의 자리에서 죄 사함의 자리로 일어나 나아가야 한다.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일어나 나아가야 한다. 
게으름의 자리을 박차고 일어나서 창조적인 새역사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불평과 원망의 자리에서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은혜의 사람으로 일어나야 한다. 

새해가 되었다는 것은 달력을 새해의 것으로 바꾸어 단 것 말고는 변화가 없다. 변화가 일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악의 자리에서 선의 자리로 일어나야 한다. 
거짓된 자리에서 진실한 진리의 자리로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한다. 
불의한 자리에서 정의와 공의의 자리로 일어나 나아가야 한다. 
어떤 상황, 어떤 형편, 어떤 처지에 있던지 일어나 빛을 발하는 빛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막상 내가 실패해 보면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다시 딛고 일어나는 게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세월 호 침몰 사건 때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지난 연말에 또 한 사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왜 그랬냐고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내가 병들어보고, 내고 약해져 보고, 내가 넘어져 보고, 내가 수렁에 빠져보면 다시 일어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마음 아파보고, 내가 속상한 일을 겪어 보고, 내가 슬픈 일이나 내가 억울하고 답답한 일을 겪어 보면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이론과 현실은 다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어렸을 적 상처에 평생 갇혀 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나 아픔이나 충격의 감옥에 갇혀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고 끙끙대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그 누군가는 증오심에 갇혀 살고, 미움에 갇혀 살고, 복수심이나 원망이나 저주의 늪에 빠져 어우적 대며 연명하듯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프랭크린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1945)는 넉넉하진 않지만 청빈하고 기품이 있고 평온한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시력도 좋지 않아 두꺼운 돋보기를 써야 했다. 뿐만 아니라 천식을 심하게 앓아서 때때로 호흡곤란에 이르기도 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 루즈벨트에게 "아들아, 너는 시력도 나쁘고, 천식까지 앓고 있지 않니. 아무리 그래도 네가 스스로 하나님을 믿으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거라. 그리하면 너는 누구보다 더 훌륭한 인물이 될 거야." 하고 늘 어린 아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약한 시력이나 천식의 장애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며 자라났다. 그는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읽고 부지런히 공부하였다. 뉴욕 하이드 파크라는 곳에서 태어난 그는 14살 때에 부모 곁을 떠나서 매사추세츠 주 그라튼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다. 공동체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돌보고 섬기는 예수의 사랑 실천을 교육받았다. 18살에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대학 생활도 유익했지만 청년기에 그에게 영향을 준 것은 뛰어난 진보적 대통령이었던 친척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영향이 컸다고 그는 회상한다. 23살에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조카와 결혼하였다. 신부가 된 엘러너는 뉴욕 시에서 근무하면서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들에 대한 복지 문제를 담당하고 있었다. 엘러너는 남편 프랭클린이 비참하게 살아가는 뉴욕 맨하튼 슬럼가의 환경에 관심을 갖도록 계속하여 조언하였다. 

프랭클린은 23세 때 뉴욕 대표의회의 의원이 되었다. 28세 때에는 뉴욕시장에 출마했다. 39살 때부터 척수성 소아마비를 앓았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연세 들어 가시는 어머니는 어디 공기 맑은 곳에 가며 쉬면서 지내길 원하였다. 그러나 아내 생각은 달랐다. 그의 아내 엘러너는 휠체어에 앉아 재화 치료를 받는 남편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 후 뉴욕 주지사와 부통령이 되었다. 마침내 32대 대통령이 되었다. 4선을 연임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그의 몸을 언제나 휠체어에 싣고 다녀야 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열악한 환경과 힘겨운 신체 조건과 씨름하며 지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 때문에 더욱 겸손했고 늘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공로를 세운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사랑을 받았던 인물인 동시에 혐오의 대상이기도 했다. 인물과 지도자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언제나 엇갈리는 법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평가도 없겠지만 무슨 일인가 하게 되면 역사의 평가란 언제나 엇갈리게 마련이다.

그의 정적들은 그를 무능력하고 얄팍하고 교활한 정략가이고 독재적인 야심가였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그의 지지자들은 그는 미국을 1930년대 말의 극심한 경제공황으로부터 건져낸 구원자이고 세계 제 2차 대전으로부터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민주주의를 수호한 위대한 지도자로서 칭찬하고 있다. 그는 국민의 지지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행정부 내에 다양한 정견을 가진 유능한 관료들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역사상 그를 능가할 인물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높은 평가도 받는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뉘어 있던 때에 남 왕국에서 무려 60여년간 활동한 선지자이다. 그가 활동하던 때에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주전 722년에 망하였다. 

이사야서의 시작은“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라고 되어있다. 52년 동안 유다를 통치하던 선한 왕 웃시야가 죽자 젊은 선지자 이사야는 성전에서 나라의 운명을 염려하며 기도하였다. 네 명의 왕이 바뀌도록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존귀하게 붙들어 사용하셨다. 세월이 흐르고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였다. 그 원인은 우상 숭배였고 하나님을 멀리한 결과였다. 남 유다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외교적으로 도움을 기대하던 애굽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아람 나라와의 연합이 오히려 침공의 빌미가 되고 말았다. 앗수르의 비위를 맞추고자 한 종교적인 배교의 행위는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고 말았다. 

이런 격동의 시기에 선지자로 부름 받은 이사야는 자신의 이름의 뜻처럼“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구원자시다”라는 믿음과 확신에 차 있었다. 


이르른 빛.
지난 2010년 8월 5일, 남미 칠레 산호세의 구리광산 붕괴사고로 광부 33명이 지하 700m 갱도에 갇혔다. 70여톤의 무너진 토사에 격리되고 말았다. 물, 우유, 쥬스, 통조림 등 10명이 이틀 정도 먹을 분량의 식량 밖에 없었다. 물론 빛도 없었다. 공간은 비좁았다. 32도의 온도, 95%의 높은 습도 속에서 어떻게 69일을 버틸 수 있었을까. 그런 저들 33명이 모두 다 구조되었다. 인간의 생명력이 강인하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지도력과 협력과 일치된 마음가짐과 격려와 위로가 없었다면 어떻게 구조될 희망을 버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을까. 세계에서 2000여명의 기자들이 몰려 들었다. 놀라운 기적을 이루어 냈다. 나중에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지하 622미터까지 내려가는 캡슐을 제작해서 한 명씩 끌어 올렸다. 칠레 정부와 세계의 공학자들이 다 같이 모여들어서 구조 작업을 벌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이 세상을 살면서 죄와 어둠 가운데 죽어 가길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나라, 민족, 개인 그 어느 누구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구원의 빛을 받아 들이고 구원 받는 백성들이 되길 간절히 원하신다. 하나님은 집에 있는 큰 아들이나 집 떠나 타국에 간 둘째 아들이나 다 같이 사랑하신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 430년 그리고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을 겪은 고난의 민족이다. 하나님은 이사야의 입을 통하여 그런 질곡 많은 아프고 슬픈 역사 속에 연명하며 살아가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선포하신 것이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라고 말이다.

예루살렘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폐허가 되었던 도시다. 솔로몬의 왕궁과 성전이 페허가 되었다. 바벨론의 군대는 왕궁과 성전의 금은 보화를 모두 다 가져가 버렸다. 성전의 놋 기둥까지 다 끌어 갔다. 폐허를 만들어 버렸다. 쓸만한 젊은이는 모조리 포로로 잡아 갔다. 다니엘이 그 중의 한 명이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그런 고난이 때 인물이다. 

그런 페허와 낙망과 슬픔에 눌려 있던 시온성,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나님은 선포하게 하셨다.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생각하여 보라.  2절의“어둠이 덮혔던 땅, 캄캄함이 만민을 가렸던 백성들”에게 어떻게 구원의 빛이 임한 것인가. 이것이 구원의 은총이고 이것이 구원의 혜택이 아닌가. 사실 이것은 예언이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이런 말씀들이 고난의 역사 속에 이루어진 것은 100년 아니 150년 쯤 긴긴 세월이 흐른 후에 이루어진 일들이다.

생각하여 보라. 누가 일어나고 싶지 않아서 못 일어나나. 누가 가난하게 살고 싶어서 가난하게 사나. 누가 병약하게 살고 싶어서 병약하게 사나. 누가 가족과 불화하고 싶어서 불화하나. 누가 시집살이 하고 싶어서 시집살이하나. 누가 직장의 그런 희한한 고참 꼴 보고 싶어서 그 직장에 계속 다니나.

세상이란 것이 상대방이 변하든 내가 변하든 아니면 환경이 변하든 변화가 일어나야 바뀌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이것은 지금은 어둡고 암울하고 캄캄한 세상인데 하나님께서 미래 완료형으로 말씀해 주신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모든 예언의 말씀은 그렇게 임하는 것이다.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 같이 대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성도들이 갖는 믿음이란 그런 것이다. 
지금 좋다고 언제 까지나 다 좋은 것이 아니다. 반대로 지금 최악이라고 해서 그 악조건이 끝없이 계속되는 것도 아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교훈처럼 모든 것은 지나가게 마련이다. 

우리는 오늘 이사야 서의 말씀과 함께 마가복음의 말씀도 읽었다. 마가복음 2장의 이 기적 사건은 우리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아는 내용이다. 그 당시나 오늘 날이나 중풍병은 쉽게 고쳐 지는 병이 아니다. 현대 의학으로도 쉽게 치료 되는 병이 아니다. 이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들것에 메고 왔다. 이 환자의 병세가 중하다는 내용이 아닌가. 자기 스스로 조금씩이라도 일어나 천천히라도 걸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그런 중한 상태의 중풍병자를 예수께서 고쳐 주셨다.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걸어가라.”고 말씀하시지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걸어 나갔다. 그 현장을 지켜 본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놀라워 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우리가 이런 일은 본적이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누가 그를 고쳤나. 누가 그를 일어나게 했나. 누가 그에게 자기 들것을 들고  가게 하였나. 네 사람은 그 중풍병자를 들것에 태우고 어디로 갔나. 종합병원으로 갔나. 유명하다는 한의원으로 갔나. 예수 앞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를 고쳐 주셨다. 

예수 만나야 한다. 예수 만나야 고침 받는다. 예수 만나야 기적이 일어난다. 예수가 빛이다. 예수는 구원의 빛이요 치료의 빛이요 어둠을 이기고 캄캄함을 이기는 빛이시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그 빛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이시다. 

그렇지 않나. 내 몸과 마음에, 나의 가정에, 나의 삶의 중심에 예수의 구원의 빛이 이르러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그래야 희망이 있다. 

예수 없이 사는 것은 사는 것이다. 더군다나 예수 없이 잘 사는 것은 잘 사는 것이 아니다. 예수 없이도 살만하다고 말하는 것은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예수 만나야 한다. 예수가 빛이다. 예수가 대답이다. 그래야 인생의 어둠이 물러가고 그래야 인생이 캄캄한데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임한 여호와의 영광.
성탄절이 지난 지 불과 열흘밖에 되지 않았다. 성탄절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무엇인가.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천군 천사의 찬송 소리가 무엇이었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라고 찬송하였다. 아기 예수의 탄생이 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인가. 

지금 고난과 시련과 암울한 역경과 고통 속에 있을지라도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주의 말씀이 실감나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래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는 말씀은 장차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어느 시점에 이룩될 하나님의 사건을 예언한 말씀이시다. 2절에 보면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라고 말씀하였다.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언젠가, 어느 순간엔가 우리의 삶의 현장에, 나의 삶의 중심에 나타날 여호와의 영광을 기대하고 고대하며 기도하며 살아가는게 아닌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조상 대대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의 때에 출애굽의 순간이 찾아 왔다.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으로 바로 왕을 향해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나타내 보였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은 애굽의 왕과 모든 백성들의 가정에 장자를 죽게 하는 심판이었다. 이보다 더한 어둠이 어디에 있나. 이보다 더 캄캄한 심판 사건이 어디에 있겠나. 그런데 그 밤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셨다. 옷을 차려 입고 허리에 띠를 띠고 신을 제대로 신은채로 양을 불에 구워 가족들이 나누어 먹게 하였다. 그 밤이 밝기 전에 모세를 앞장 세우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200만 명을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서게 하셨다. 이것이 출애굽하던 그 밤의 사건이다. 하나님은 캄캄한 어둠 가운데서 모세와 그의 동족들에게 영광으로 임하셨다. 그 영광이 나타나게 하셨다.

우리는 기도하자. 올해 나의 삶에 그런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길 기도하자. 우리 자녀들에게 그런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시길 기도하자. 우리 가정에, 나의 일터에, 우리나라에 그런 주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도하자. 그런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길 기대하며 준비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믿음의 사람답게 살아가자. 우리가 마음을 합하여 섬기는 우리 교회의 앞날에 그런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시길 기도하고 또 기도하자.

지난 송구영신축복기도회 셋째 날인 목요일, 1월 2일에 여명학교 이흥훈 목사가 다녀 갔다. 그는 30대의 세 딸이 스웨덴, 미국 등 모두 다른 나라에서 흩어져서 살아간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려서 성장기에 중국에서 선교 사업할 때에 중국어와 영어로 공부한 딸들이기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에 가서 살든 사는데 큰 불편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가정에는 중학교 2학년부터 다섯 살까지 부모 없는 일곱 명의 남자아이들을 데려다가 키운다고 했다. “나는 너희들을 낳은 엄마 아빠가 아니라”고 설명해서 키운다고 했다. 그러나 사랑으로 키우고 하나님으로 키우고 있다고 했다. 일 년 후에 2020년 말 송구영신 예배 시간에 그 가정의 일곱 형제들을 중창단으로 초대하였다. 일 년 내내 연습해서 수준 있는 찬양단으로 우리 곁에 방문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런 아이들 중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시대적인 인물들이 자라나는 것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누군가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을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임하도록 이루어 나가는 이들이 있다. 마가복음 2장의 중풍병자를 들것에 싣고 예수를 찾아갔던 네 사람이 그런 사람들이 아닌가. 

남들 탓하지 말고 내게 임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주인공으로 살자. 우리 가정이 그런 가정이 되도록 가꾸어 가자. 우리 교회가 우리 가운데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는 공동체가 되도록 든든히 세워나가자.  


빛과 광명으로 나아오는 자들.
그처럼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고 나타나는 삶을 가꾸어 가다 보면 3절의 말씀처럼“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과명으로 나아오리라”는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는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민족이 될 것이다. 

여명학교 이야길 조금 더 하자. 정부에서 세운 학교가 아니다. 100여명의 학생들을 누군가의 후원으로 가르치고 먹이고 입히고 기숙사도 운영한다. 어떤 사업체 사장은 매년 5천만원도 후원하고 1억도 후원하고 여기 저기서 후원하는 후원금으로 끝 없는 후원 사역을 이어 가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러는 중에 빛과 광명으로 나아오는 인재들이 자라나는 것이다. 

나는 우리 교회도 그런 교회가 되길 바란다. 성도들이 가정마다 그렇게 인재를 키워 내는 가정이 되길 바란다. 그냥 “공부 잘해라. 명문 대학가라. 돈 좀 잘 벌어라.” 그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믿음의 사람들을 길러내는 가정과 교회가 되길 소원한다.

그래서 할 일 많은 교회에 크게 공헌하고 충성하고 헌신하고 시대적으로 선교의 축을 잘 감당해 나가는 그런 교회가 되길 소원한다.

개인도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한다.
가정도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한다.
교회적으로도 우뚝 일어나 환한 빛을 발해야 한다.

이사야서 60장의 말씀은 장차 이루어질 것에 대한 예언이라고 하였다. 맞다. 예언이다. 그러나 이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믿는 자에게 이루어진 것이다. 불행을 생각하면 불행이 찾아 오고 축복을 기대하면 축복이 찾아 온다.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이사야 55장 8-9절을 화면에서 보고 읽자.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생각하여 보라. 어떻게 75살된 노인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나. 어떻게 아브라함이 사라를 통해 아들 이삭을 낳고 언약의 조상이 될 수 있었나. 어떻게 17살에 빨가 벗겨진채 노예로 팔려 간 요셉이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될 수 있었나. 어떻게 모세가 80나이에 애굽에 가서 바로 왕을 만나고 동족을 출애굽 시키는데 쓰임 받을 수 있었나. 어떻게 아둘람 굴에 숨고 광야로 피신해 다니던 다윗이 30살에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나. 어떻게 다윗이 73편의 시편을 쓰는 성경 말씀의 기록자가 될 수 있었나. 

어떻게 어부 베드로가 단번에 3000명을 회개시키는 능력의 사람이 될 수 있었나. 은혜 받아야 한다. 성령 받아야 한다. 빛이 임해야 한다. 어둠을 물리쳐야 한다. 캄캄함을 이겨야 한다. 주님의 빛이 내게 임해야 한다. 베들레헴의 목자들이 들었던 천군천사들의 찬송 소리인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라는 우렁찬 찬송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의 귀가 열려야 한다. 그리하면 나라들이 네 빛으로, 왕들이 네 광명으로 나아오는 기적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사야 60장 5절부터 11절까지를 화면에서 보라. 
“5.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6.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7.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8.저 구름 같이, 비둘기들이 그 보금자리로 날아가는 것 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냐
9.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먼 곳에서 네 자손과 그들의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라
10.내가 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너를 불쌍히 여겼은즉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그들의 왕들이 너를 섬길 것이며
 11.네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들이 네게로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들의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새해의 첫 주일이다. 주일 예배를 소중히 여기라. 병원에 누워 있기 전에는 주일 예배를 귀하게 여기라.

이사야 60장 21-22절에 보니까.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라고 하였다. 

이런 언약을 믿고 승리하는 한해와 평생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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