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딤후3:14-17) 2019. 12. 8 성서주일
우리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 목사는 영국 국교회의 목사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수산나(Susanna Wesley, 1669-1742)의 탁월한 성경 교육과 기도훈련의 영향을 받고 자라났다. 수산나 웨슬리는 19명의 자녀들을 17번에 걸쳐서 거의 매년 낳았다. 두 번은 쌍둥이가 태어났다. 아홉은 태어나자마자 죽거나 두 살 미만 때에 죽었다. 수산나 웨슬리는 죽은 아기들에 대한 슬픔을 쓸어내리며 살아남은 10 남매를 신앙으로 훌륭하게 잘 키워 냈다. 세 아들은 모두 영국 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일곱 딸들도 가난과 질병과 시련 속에서도 훌륭하게 성장하였다.
15번째로 태어난 요한 웨슬리 목사도 음악에 조예가 깊었지만 네 살 어린 동생인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1707-1788)는 음악의 대가였다. 감리교 전도자이며 찬송가 작가였던 찰스 웨슬리는 4,500여 곡 이상의 찬송가를 발표했다. 3,000여 편의 원고를 남겼다. 하나님은 그에게 글을 쓰면 찬송 가사요 곡을 붙이면 은혜롭고 아름다운 찬송이 탄생되게 하는 은혜를 부어 주셨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은 찰스 웨슬리가 남긴 찬송 가사의 일부를 특별히 작곡하기도 하였다. 찰스 웨슬리의 찬송 중에서 우리나라 찬송가에 실린 곡들만 해도 15장인 경배찬양〈하나님의 크신 사랑 Love divine, all loves excelling>, 강림절 찬송 중에는 오늘 부른 105장 <오랫동안 기다리던>, 성탄 찬송 중에는 126장〈천사 찬송하기를 Hark, the herald angels sing>, 부활 찬송 중에는 164장〈예수 부활했으니 Christ the Lord is risen today>, 힘찬 찬송 중에는〈그리스도의 군병들아, 일어나라 Soldiers of Christ, arise〉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그 외에도 388장〈비바람이 칠 때와 Jesu, lover of my soul〉, 522장 부르심과 회개를 촉구하는 <웬일인가 내 형제여 주 아니 믿다가>, 595장 <나 맡은 본분은 구주를 높이고> 등 13곡이나 된다.
요한 웨슬리가 네 살 때에 목사관에 불이 나서 죽을 번한 적이 있다. 88년을 살았으나 50대 때 죽음의 위기를 겪는 병약한 날을 지낸 적이 있던 그는 평소에 늘 비문에 쓸 내용을 미리 써 놓고는 하였다. 자기 이름 뒤에
“A brand plucked out of the burning.....”
(타는 불에서 꺼낸 부지깽이)
라는 표현을 적고는 하였다. 맞다. 그는 그렇게 불에 타 죽을 번한 어린 시절의 두려움을 딛고 역사적이고 세계적인 인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다가 갔다.
수산나 웨슬리는 성경에 기초한 신앙 교육이 하나님께서 어머니인 자신에게 맡겨 주신 가장 큰 의무요 신성한 직무라고 믿었다. 그는 자녀들의 신앙 교육에 전념하였다. 그가 자녀교육을 위해 사용한 방법과 규칙이 후대에 전해져 온다.
1. 언제나 규칙적인 방법에 따라 생활하게 했다.
2. 생후 2년이 지나면 회초리가 두려운 것을 알게 하여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했다.
3. 회초리로 매를 맞을 때에는 소리 내어 울지 못하게 했다.
4. 하루 세끼 외에는 거의 간식을 주지 않았다.
5. 성결하고 행복한 성품을 만들어주기 위해 가능한 한 어려서 악한 의지를 파괴하고 나쁜 성격을 고쳐주려고 했다.
6. 말을 배운 후 곧 ‘주의 기도’를 가르쳐 잘 때와 일어나서 외우게 했다.
7. 말을 배우게 되면 꾸준히 성경 요절과 교리문답을 외우게 했다.
8. 주일을 다른 날과 구분하여 성수하도록 했다.
9. 가족 기도회에 반드시 참여하도록 했다.
10.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게 했다.
11. 어디서든지 경어를 쓰고 속된 말을 못하도록 했다. 하녀에게도 경어를 사용하도록 했다.
12.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거나 저주와 맹세와 무례한 말을 일체 금했다.
13. 큰 소리로 떠들거나 노래하는 것을 금했다.
14. 매일 가정 학교의 6시간 학습에 충실하도록 했다.
15. 화재사건 후부터는 조석으로 시편을 읽고 시편송을 부르게 했다.
16. 잘못한 것을 정직하게 고백하면 용서했다.
17. 특별히 거짓말하는 것을 용서치 않았으며, 엄하게 다스렸다.
18. 잘못한 언행에 대하여는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19. 같은 잘못에 대하여 두 번 이상 책망하거나 매 맞는 일은 없었다.
20. 순종한 일에 대하여는 언제나 칭찬하고 때때로 상을 주었다.
21. 일단 순종을 했으면 성공을 못했어도 따뜻하게 인정하고, 다음부터는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22. 각자의 소유물에 대한 권리는 반드시 보호되고 아무리 작은 소유라도 남의 것을 침해해서는 안되었다.
23. 약속은 반드시 지키게 했다.
24. 남에게 한번 준 것은 다시 달라고 요구하지 못하게 했다.
25. 아무도 글을 읽기 까지는 일을 시키지 않았다.
26. 자녀를 다룰 때에 엄격함과 느슨함을 균형있게 사용했다.
27. 사춘기에 들어서면 육욕적 사랑을 피하도록 가르쳤다.
28. 매주 1회 한두 시간 동안 한 명씩 만나 상담하였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베드사이드스토리(bedside story)라고 해서 엄마나 아빠가 어린아이가 잠들기 전에 <침대 머리맡에서 성경을 읽어 주고 기도해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사실 어머니가 복중의 태아에게서부터 시작하여 탄생과 그 이후의 어린 시절에 책임지고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하여 나가는 가장 기초적인 가정교육의 모습이요 바탕인 것이다.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 사람이고 어머니는 유대인이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은 모계 혈통을 중시한다. 가정의 교육은 엄마 아빠 다 중요하지만 엄마의 역할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뒤 늦게 예수 영접하고 신앙 생활하는 것도 은혜이지만 어려서부터 평생토록 예수 안에서 살고, 교회 중심의 삶을 살고, 성도들과 더불어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복인가. 디모데는 16절의 말씀대로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우며 컸다. 디모데 후서 1장 5절에 보면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이름을 거론할 정도로 선조들때부터 믿음이 잘 계승되는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런 디모데에게 편지하는 사도 바울은 성경이 신앙생활에 주는 유익에 대하여 조목조목 교훈하고 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누구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에 대하여 자세하게 가르쳐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신구약의 모든 성경 말씀은 교훈과 사건의 기록을 포함한 역사적인 내용이 많지만 그 모든 내용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말씀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하여 교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면 죄로 인하여 타락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인생을 구원할 수 있을까를 말씀하신 내용이 구약성경이다. 레위기의 짐승 제사를 비롯한 그 모든 제사의 자세한 내용이 그러하다. 양과 염소와 송아지와 비둘기를 갖다가 피를 흘리게 하고 제사하는 바탕은 죄 사함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과 이웃과의 화목에 관한 것이다. 구약은 오실 예수께 대하여 말씀하고 복음서는 오신 예수께 대하여 말씀한 기록이다. 오늘 날 우리는 장차 이 땅에 재림주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3장 14절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라는 말씀이 무엇인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믿음을 얻게 되나. 믿음이 없이 구원 받을 인생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는가. 없다. 오직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그 은혜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게 된 것이다.
우리 각 사람이 구원 받게 되는 지혜의 길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길 밖에는 없다. 타종교인들 중에는 나무나 돌로 깎아 만든 우상 앞에 3000번씩 절하는 이들이 있다. 삼천배라고 한다. 그렇게 절하기를 삼천 번씩 삼천 번을 더 절해도 구원은 그렇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은혜가 무엇인가.
믿음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선물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 앞에 명쾌하게 답을 주는 성경 말씀이 바로 에베소서 2장 8절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게 하는 지혜의 책이다.
구원이 그렇게 쉽게 주어지는 것이란 말이냐고 질문하는 이들이 있다. 설명할 수 없고 비교할 수 없이 귀하고 값진 것은 정작 그 값을 먹일 수 없는 법이다. 그렇지 않나. 공기가 얼마나 귀한가. 공기 없이 살 수 있는 인간이 있나. 이 도시 안에 살면서 1급 공무원이 마시는 공기가 따로 있고 9급 공무원이 마시는 공기가 따로 있나. 정규직 사원이 마시는 공기가 따로 있고 비정규직 사원이 마시는 공기가 따로 있나. 부자 마시는 공기가 따로 있고 가난한 사람 마시는 공기가 따로 있나. 물론 건물 안에 공기 청정기를 설치해서 좀 더 맑은 공기를 마실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공기를 대하는데 있어서 차별이 있나.
공기가 그러하고 햇빛이 그러하지 않나. 귀하고 값진 것은 다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다. 구원도 그렇게 받는 것이다. 성경 말씀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 얼마나 성경 암송을 많이 하느냐, 얼마나 성경을 여러 번 읽었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 말씀을 통하여 나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은총을 제대로 깨달아 알고 주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빌립보 감옥에 지진이 나고 옥 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바울과 실라를 채우고 있던 차꼬가 풀려났다. 그 밤에 간수가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였다. 왜냐하면 죄수들이 다 도망쳐 버렸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자유로운 몸이 되었지만 도망가지 않았다. 그리고는 간수에게 말했다.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말아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 ”그 때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서 감옥 안에서 바울과 실라 앞에 가서 엎드렸다. 그리고 하는 말이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그 때 바울 사도가 말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그 밤에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데려다가 매 맞아 아픈 자리를 씻어 주었다. 자기와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았다.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가서 음식을 차려 대접하였다. 간수와 온 집안 식구가 모두 다 하나님을 믿고 기뻐하게 되었다. 이것은 이방 땅인 빌립보에서 일어난 기적과 은혜의 사건이 아닌가. 구원은 그렇게 임하는 것이다.
어제 밤 엘리베이터에서 장로교 장로 부인 권사와 출가한 딸과 그 사위를 만났다. 그 부인 권사는 아들과 함께 우리 교회 주일 예배에 몇 차례 다녀 간 적이 있다. “너희들 인사드려라. 요 앞에 예수사랑교회 목사님이야 목사님 우리 딸 내외입니다. 우리 딸과 사위가 십일조도 매달 제대로 잘하고 교회 봉사도 잘 하고 신앙생활 잘합니다.”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딸과 사위를 소개하였다. “장인 장모님처럼 예수 잘 믿고 훌륭한 장로 부부되라.”고 덕담을 해 주었다.
신구약 성경은 제대로 알고 믿기만 하면 그 누구라도 어려서부터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성경은 형이상학적인 말씀의 책이 아니다. 대단히 구체적이다. 어른이나 어린이나 누구나 다 그 말씀을 듣고 행할 수 있는 말씀이다. 가령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남의 것 탐내지 말라
이런 계명의 말씀에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왜 하나님은 무엇은 하라고 말씀하시고 무엇은 하지 말라고 하셨는가. 그게 진리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라는 교훈과 하지 말라는 두 가지 교훈으로 가득 차 있다. 하라는 교훈이 적극적이라면 하지 말라는 교훈은 소극적이다. 그러나 그 두 가지 교훈이 모두 다 소중한 것들이다.
성경은 수 없이 많은 교훈 즉 가르침을 담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록이다. 가령 잠언 3장 1-6절에 보면 왜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또 잠언 4장 1-4절에 보면 왜 아버지의 훈계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다.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노라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책망이란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과 교훈을 벗어나서 잘못되게 살아갈 때에 꾸지람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 않나. 우리가 성경 말씀을 스스로 대하다 보면 성경 말씀 구석구석에서 나에게 대하여 책망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처처에서 쏟아져 나온다.
하나님은 사건과 사람과 때로는 짐승을 통해서라도 책망하신다. 하나님을 경홀히 여긴 사울 왕에게는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서 책망하셨다. 부하 우리아의 아내를 간음하고 그 남편을 전쟁의 일선에서 죽게 한 다윗에게는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책망하셨다. 발람 선지자에게는 그가 타고 다니던 나귀를 통해서 책망하셨다. 동생의 부인을 빼앗아 살던 헤롯에게는 세례 요한을 통하여 책망하셨다. 가롯 유다에게는 최후의 만찬 식탁의 맞은편에 앉으셨던 예수께서 친히 알아듣도록 책망하셨다.
민수기 22장에 보면 발람 선지자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려 하자 하나님은 그의 가는 길에 천사들을 동원해서 그 앞길을 막아서게 하였다. 발람은 못 보는 장면을 나귀를 보았다. 천사가 칼을 빼어 든 장면을 본 나귀가 밭으로 들어서려 하자 발람이 나귀를 채찍으로 때렸다. 천사는 포도원 사이의 좁은 길에 막고 서 있었다. 길 좌우편은 좁은 담장이었다. 나귀는 천사를 보고 몸을 담장에 대었다. 발람의 발이 그 담장에 짓눌러졌다. 고통을 느낀 발람이 나귀를 채찍으로 때렸다.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는 더욱 가까이 다가서서 그 가려는 길을 막아 섰다. 좌우로 피할 곳이 없는 좁은 길이었다.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의 밑에 엎드렸다. 발람이 화가 나서 지팡이로 나귀를 때렸다. 그 때 하나님은 나귀의 입을 열어서 발람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발람은 “네가 나를 거역하였기 때문이다. 내 손에 칼이 있었다면 너는 내 칼에 죽었을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은 발람의 눈을 밝혀서 여호와의 사자들을 보게 하셨다. 그리고 천사를 통해서 발람에게 책망하셨다. 그 때야 정신을 차리게 된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 앞에서 자신의 범죄를 시인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서 모압 왕 발락의 편에 들려고 했던 잘못을 회개하게 하였다.
맞다. 하나님은 사건과 교훈을 통하여 옳고 그른 것을 가르쳐 주신다. 무엇이 불의이며 무엇이 정의인지 깨닫게 하신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인지를 깨달아 알고 변화되게 하신다. 하나님은 그 때 그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려고 하는 자들을 교훈과 책망으로 바르게 교정하며 의로운 길로 인도 받도록 가르쳐 주시고 깨달음을 갖도록 회개의 기회를 경험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교훈과 책망의 말씀을 듣고도 변화 받지 못하고 진정으로 회개 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사울 왕이나 가롯 유다나 사도행전 5장의 아나니아 삽비라는 책망 앞에 회개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바울 곁에서 많은 해를 입히고 대적한 후에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떠나가 버린 구리 세공업자였던 돈 많은 사업가 알렉산더(딤후 4:14)는 교훈과 책망 앞에서 회개와 변화의 기회를 놓친 불행한 주인공이다.
그러나 다윗은 침상이 젖도록 회개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인생으로 살아갔다. 베드로는 통곡하며 회개한 후에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초대교회의 훌륭한 사도의 길을 걸어갔다. 교훈과 책망 앞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 받는 것은 크나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회복의 은총이 임하길 축원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한다.
예수 믿으며 살아간다고 해서 사람이 쉽게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각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잘 깨달아 모든 선한 일에 겸손하게 주를 섬기며 성도를 섬기며 교회를 섬기고 주변을 섬기며 살아가다 보면 우리 각 사람은 점점 주 안에서 새로워지고 성숙되고 변화되어 갈 것이다.
주께서 우리에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시며 온전한 성도의 길을 걸어가도록 매 순간마다 바르게 교정해 주시고 의로 가르치셔서 붙들어 주실 것이다.
그렇지 않나.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의 산상 수훈을 읽다가 보면 5장 마지막 절인 48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예수께서 이런 교훈을 말씀하신 바탕은 사랑의 실천에 관한 대목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골라서 사랑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할 줄 아는 사랑이다. 그러나 나를 박해하고 핍박하고 원수시하고 대적하고 미워하는 자라도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갖고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해져가는 것이다.” 라고 교훈해 주신 말씀이시다.
은혜로운 성탄절 맞이가 되시길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