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의 뿌리에서 자라난 한 싹(사11:1-5, 9-10) 2019. 12. 1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한 대표적인 예언자 중의 한 사람이 이사야이다. 이사야가 누구인가. 이사야서 6장에 보면 웃시야 임금이 죽던 해에 그는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웃시야 왕은 분단된 이스라엘의 남 왕국 유다 10대 왕이다. 52년동안 나라를 잘 다스린 왕이었다. 주전 740년에 죽었다. 그 해에 이사야는 젊은 때인데 왕의 임종 소식을 듣고 성전에서 기도드리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는 주의 질문 앞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그 대답에 순종하는 삶을 평생토록 지켜 나갔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에 북 왕국은 우상 숭배의 심판을 받고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멸망하였다. 이사야의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는 뜻이다. 이사야는 그 후로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이 이르는 50여 년 동안 선지자로 활동하였다. 하나님은 그를 50여년 동안이나 선지자로 사용하셨다.
이사야는 방대한 분량의 예언서이다. 예레미야서와 함께 두꺼운 분량이다. 66장 분량의 이사야서 말씀 중에서 11장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이룩하실 희망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사야서 11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다윗의 후손으로서의 탄생으로 말씀하지 않고 이새의 줄기, 이새의 뿌리에서 자라난 한 싹으로 표현하고 있다.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시적 언어로 표현된 이사야 11장의 본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누구신지에 대하여 자세하게 예언하고 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끝으로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나뉘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남과 북은 점점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숭배하였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당하였다. 성경은 그 멸망의 이유를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한 죄에 대한 심판이라고 규정한다.
또 다시 세월이 흐른 후에 남 왕국 유다는 바벨론에 함락되고 말았다. 남 왕국 유다 멸망의 원인도 북 왕국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떠난 우상 숭배의 죄악에 대한 심판이다.
쓸만한 젊은이들은 다니엘처럼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다. 암담하고 참담한 포로 생활 후에 살아 남은 자들과 포로의 땅에서 태어난 유대인들이 70년 포로 생활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 까지에는 앞이 보이지 않는 고난의 날들을 이겨내야만 했다.
이사야서는 그런 암흑의 포로기 때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시려는 말씀을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전하신 방대한 분량의 선지서이다. 이사야서의 앞부분에는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과 교만과 어리석은 우상숭배의 대가가 얼마나 쓰라린 고통인가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런데 9장의 메시아 예언을 거치고 11장에 와서 다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메시아로 오셔서 이룩하실 아름다운 세상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계시다.
예수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으로 나셨다. 1절에서는 이새의 줄기, 10절에서는 이새의 뿌리라고 하였다. 줄기라는 말은 “완전히 말라 버린 나무 밑둥”이란 뜻이다. 생명의 싹이 틀 가망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그런 몹시 말라 버린 죽은 나무줄기와 같은 상태에서 한 싹으로 자라난 생명이 전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란 것이다.
줄기에서 한 싹으로, 뿌리에서 한 가지로 자라나서 결실한 그 한 아기의 탄생이 인류 역사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 한 아기의 탄생은 그냥 만나는 이웃집 아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2-5절이 그런 내용을 설명해 주고 있다.
현대인의 번역 성경으로 읽으면 이런 내용이다.
“여호와의 성령께서 그에게 자기 백성을 다스릴 지혜와 지식과 재능을 주실 것이며 그는 여호와의 뜻을 알고 그를 두려운 마음으로 섬길 것이며 그에게 순종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길 것이다. 그는 눈에 보이는 외모나 귀에 들리는 소문으로 심판하지 않을 것이며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옹호하고 세상의 악인들을 쳐서 죽이실 것이며 정의와 성실로 자기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
그 분이 오셔서 이룩하실 세상을 어린이의 그림처럼 묘사한 내용이 이사야 11장 6=8절이다. 맹수와 초식 동물이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는 세상,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 손을 넣고 장난하는 그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다. 어떻게 이리나 표범이나 사자나 곰이 어린 양이나 어린 염소나 송아지와 함께 먹고 함께 살아가고 함께 눕는 세상이 가능하단 말인가.
죄와 악이 가득하고 사탄 마귀의 권세가 가득한 세상에 영원한 통치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그런 꿈과 같은 세상이 전개될 것이라고 예언해 주었다.
어떤가. 당신의 삶, 당신의 가족들의 삶은 어떤가.
나 자신이 예수 믿기 이전과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시고 이끌어 주시는 삶을 살아갈 때의 삶의 차이가 무엇인가.
평생을 “내 삶의 유일한 주인은 오직 나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온 사람이라면 도대체가 이런 설명이 귀에 들리질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을 내가 판단하고 내가 경영하며 살아가는 것이지 무슨 어떤 다른 존재의 힘에 이끌려 살아간다는 말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
걸찍한 목소리와 구수한 입담의 주인공 개그맨 조혜련 씨가 요즘 신학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틈틈이 전국을 찾아다니면서 간증집회를 하고 있다. 예전에 절대 기독교를 반대하고 핍박하고 비난하던 그녀가 변했다. 연예인 이성미 집사가 그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공을 많이 드리고 중보 기도했으나 소용 없었다. 전화기에서 이성미 집사의 전화 번호를 지워 버릴 정도로 기독교에 대하여 강경한 반대자였다.
재혼한 남편의 요청을 받아 들여서 교회에 가 주기 시작한 그녀의 발걸음에 성령이 역사하였다. 회개하고 세례 받고 집사도 되었다. 경상남도 고성에서 아들 하나 딸 일곱이던 가난한 집의 여섯 번째 딸로 태어났다. 구박을 많이 받고 자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머니 따라 다니며 채소 장사 일을 도왔다. 우여 곡절 끝에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다녔다. 머리 좋고 집념이 강한 그녀는 일본어와 중국어도 독학으로 독파했다. 남에게 강의할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일본과 중국에까지 진출한 그녀는 분주한 연예인 생활에 지쳤고 돌보지 못하던 자녀들에 대한 미안함을 안고 첫 남편과 이혼하는 아픔도 겪었다. 비행기에서 뛰어 내려 죽고 싶은 마음도 여러 번 들었다. 어렵사리 재혼한 두 살 아래 남편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신자였다. 그 남편의 기도와 요구를 들어 주려고 따라 나선 교회 생활이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44년 동안 지독하게 기독교를 비난하고 못 마땅하게 여기며 자신은 일본의 신흥 종교에 빠져 지내던 차였다. 그런 그녀가 완전히 새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 받는 품에 안기게 되었다.
하나님 모르고 평생을 살아오신 친정 어머니, 친정 남동생, 친정 자매들에게 줄줄이 전도해서 열매를 보았다. 지금은 70대 후반의 연세 들어가시는 친정 어머니가 하루에 다섯 시간씩 성경 읽고 기도 생활하는데 매진하고 있다고 한다.
하나님은 처처에서 그 때 그 때마다 복음을 깨달은 믿음의 사람들을 택하여 쓰신다. 쓰임 받는 우리가 되자. 아까운 세월 허송하지 말고 복음전파의 열정이 활활 타오르는 주인공이 되자.
예수 만나면 인생이 변한다. 복음이 들어가면 가정이 변한다. 하나님 만나면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 예수 만나야 한다. 이사야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체험해야 한다. 예수 믿는 시늉만 내지 말고 진짜 예수꾼이 되어야 한다.
이사야 11장 9절 끝에 보니까“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런 성경 말씀에 곡을 붙여 찬송하고 또 찬송하지 않는가. 그렇다. 맞다. 복음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깨닫고 나면 그 복음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가 물이 바다를 덮는 것처럼 개인과 가정과 나라와 민족을 감싸 안는 축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10절이 그런 메시아의 은총,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의 역사에 대하여 자세하게 교훈하고 있다.
만민(萬民)의 기치(旗幟)로 서실 것이다.
예수는 만민의 기치이시다. 그는 유대 땅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 나셨다. 마른 땅에서 자라난 연약한 가지처럼 태어나고 자라나셨다. 그는 유다 지파인 베들레헴의 농부 이새의 뿌리, 이새의 줄기에서 작고 약한 한 싹으로 태어나셨다. 다시 반복하지만 예수를 다윗의 후손으로 예언하지 않고 이새의 후손으로 예언하게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사야 53장에 보면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고 하였다.
그렇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태어나 자라나셨다. 그런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하고 무덤에서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아니 하나님이 그를 무덤에서 살려 내셨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신 동안에 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수 많은 대적자들이 시시 탐탐 그를 잡아 없애려고 하였다. 죽여 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때 그 때마다 그를 지키셨고 보호하셨다. 나중 그를 버리시듯 골고다 십자가 위에 무참하게 죽임 당하는데까지 이르게 하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절규하게 하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러나 하나님을 아들 예수를 버리신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그를 만민의 기치로 우뚝 서게 하신 것이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런 멸시와 버림 받는 고난의 자리에서 붙드셔서 만방의 만민 가운데 기치로 우뚝 세워진 구세주가 되게 하셨다.
이 복음이 이 땅에 1885년에 들어 왔다. 그리고 134년 세월이 흘러 갔다. 생각하여 보라. 돌아 보라. 우리 민족이 그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가. 거국적인 이야기 말고 나 자신은 어땠는가. 내가, 우리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복음을 모르고 살던 때와 예수 영접하고 살아 온 그 이전과 그 이후가 어떻게 다른가. 아직도 나의 가족들 중에 이 복음이 영접되지 않은 가족이 있다면 그 사랑하는 가족의 마음에 복음의 기치가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그 가족이 남편이든 아내이든 부모이든 형제 자매이든 나를 통해 태어난 내 자식이든 그들 한 영혼 한 영혼 가운데 예수의 기치가 우뚝 세워지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열방(列邦)이 그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이 애굽으로 급하게 몸을 숨겨야 했다. 헤롯이 그 주변에서 태어난 두 살 미만의 사내 아이들을 모두 다 죽이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나사렛에 가만히 숨어 들아가 지내듯 지내면서 예수는 나사렛의 회당에 드나들며 성장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목수 요셉의 아들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아니다. 예수는 목수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서 남자를 알지 못하는 마리아의 태를 통해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열방의 중심에 세우셨다. 단군교 신자들은 단군력을 쓴다. 불교인들을 불교력을 따로 만들어서 사용한다. 식당에 가보면 불자들은 불교 달력을 큰 월력으로 만들어 따로 쓴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 대개의 가정들이 쓰는 달력은 기독교에 근거한 달력이다. 기원 전, 기원 후란 말이 무엇인가.
BC란 예수 이전이란 말이다.
AD란 예수 이후란 말이다.
예수를 중심으로 예수 탄생 이전 역사와 그 이후 역사를 나눈다. 이것이 우연한 일인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교회 앞 사거리 한 편 땅에 탈북자 청소년들을 위한 여명학교가 이사 온다. 2020-2021년 두해 동안 건축하고 2022년 초에 이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명학교의 교장, 교감 선생님이 우리 교회에 다녀갔다. 16년 동안 새터민 아이들을 가르쳐 왔다고 했다. 경찰서 맞은편에는 통일 박물관에 들어서게 된다고 한다. 그런 시대가 되면 우리교회는 이 지역에 더욱 우뚝 선 복음의 아이콘이 될 것이다. 지난 십년을 뒤로 하고 새로운 십년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자.
열방이 예수께로 돌아오듯이 하나님은 이곳에 세워지게 하신 주의 몸된 교회를 통해서 하시려는 구원의 계획과 섭리를 하나님의 방법대로 넉넉하게 이루어 가실 것이다. 문제는 우리 각 사람이 구경꾼이 되지 말고 일꾼이 되어야 한다. 길거리에서 서성거리지 말고 주님의 포도원에 들어가서 부지런히 주님의 일을 하는 농부가 되어야만 하겠다. 잘했다 칭찬 받기 까지 성실하게 의롭게 진실하게 수고하고 애쓰고 땀 흘리고 충성되게 주를 섬겨 나가야 하겠다.
그가 거한 곳이 영화(榮華)로울 것이다.
지난 이천 년의 역사를 보라. 예수 복음이 전파된 곳곳마다 하나님은 그 땅을, 그 민족을, 그 가정을, 그 가족을, 그 자손을, 그 개인을 영화롭게 만들어 가셨다.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처럼 복음이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까지 번져 나갔다. 사도 바울의 때에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 미국과 캐나다로, 호주로, 아시아로 불이 옮겨 붙듯이 전파되게 하셨다.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인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의 차이가 무엇인가. 복음을 모르면 오늘 날도 우상에게 절하며 산다. 무당 찾아다닌다. 몸에 부적 붙이고 다닌다. 돼지 머리 앞에 절한다. 권력가라도 대기업의 총수라도 학박사라도 아무리 높고 아무리 유명하고 아무리 대단해도 미신에 사로 잡혀 살고 우상 숭배에 젖어 산다. 종합병원 원장이라고 어깨에 별을 넷씩 달았어도 천하를 호령하는 권세자라도 하나님 모르면 우상에게 절하고 우상 앞에 빈다.
어리석지 않나. 시편 14편 1절에 보면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다”고 하였다.
미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아브라함 링컨은 예수 잘 믿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고 자라났다. 친 어머니 일찍 돌아가시고 새 어머니를 맞았다. 새 어머니는 믿음이 더 좋았다. 집안은 비롯 가난했지만 예수 향기로 비가 새는 통나무 집에 가득했다. 그 아들이 커서 미국 역사에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그가 대통령을 지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대통령이었기에 존경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나. 우리 나라 역사를 비교해 보라. 대통령 지냈다고 존경하나. 대통령 지냈다고 유명해지나. 아니다. 절대 아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평생을 하나님 안에서 살았다. 오늘 전도지에 옮겨 다 실은 내용 중에 2014년 1월 12일 주일에 소개했던 내용을 다시 실었다.
미국 청교도의 후예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 1703-1758)다.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나 철저한 기독교 교육을 받고 자라났다. 13살에 예일대학에 입학하였고 17살에 최우수 학생으로 졸업하였다. 예일대 신학부에서 공부하여 같은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1727년 예일대학 설립자 중 한사람인 피어폰트 목사의 딸과 결혼하였다. 목사 안수를 받고 외할아버지가 담임하시던 매사츄세츄 노스햄팅톤교회에 부임하여 23년간 섬겼다. 그의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다. 청교도신앙이 퇴락해 가던 시기에 부흥의 불길을 던진 사람이었다. 그는 11명의 자녀를 두었다.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으로 부임한 지 한 달 반 만에 천연두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30여 년간 철저한 기독교 가정생활을 유지했다. 아내와 함께 하루 한 번씩 기도했고 자녀들에게도 하루 시작을 기도로 시작하도록 가르쳤다 청교도적 경건을 심어주었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난 200년이 지난 뒤 그의 후손들의 삶을 추적했다. 조나단 에드워드의 후손들은 모두 873명이었는데 대학총장이 12명, 교수 65명, 의사 60명, 목회자와 성직자 100명, 군장성 75명, 저술가 85명, 변호사 100명, 판사 30명, 국가공무원 80명, 미국 부통령 1명, 그리고 260명의 평범한 신앙인들로 살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반면에 같은 시기에 미국의 대표적인 범죄자였던 맥스 주스의 4대손을 보면 약 1200명 중 거리의 방랑자 310명, 13년 이상 징역을 산 사람 130명, 살인범 7명, 알코올중독자 100명, 상습절도자 60명, 매춘부 190명, 방탕과 부도덕한 삶을 산사람 440명이 나왔다.
복음 안에 살아야 한다. 예수 만나야 한다. 성탄절 장식만 하려 하지 말고 내 마음에 예수의 보혈이 흘러야 한다. 예수의 심장을 가져야 한다. 예수의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 내 안에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나를 다스리셔야 한다. 은혜로운 성탄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강림절기가 되길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