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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오시면(요15:26-27) 202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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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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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06-19 14:22 조회 7,037 댓글 0
 

                              성령이 오시면(요15:26-27)             2021. 5. 16



성령은 예수와 함께 언제나 하나님 안에 계신 영이시다. 곧 성령은 영이신 하나님 그분 자체이시다. 하나님은 육체가 없으시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배는 육체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영으로 드리는 것이고 진리를 따라 예배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일 예배를 시작할 때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라는 요한복음 4장 24절을 고백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목요일인 5월 13일은 예수 승천 기념일이었다. 열흘 후인 다음 주일은 성령강림기념 주일이다. 우리가 사도행전 1~2장의 내용을 아는 그대로이다. 그러면 도대체 성령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승천하시는 예수께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을까. 승천하시기 전에 예수께서 설명해 주셨다. “요한이 베푼 것은 물 세례이다. 그러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행1:5)


사도행전 1장 2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신 동안에 12사도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저들에게 명하신 사명이 ‘성령으로’인한 것이라고 하였다. 승천 직전의 예수께 대한 제자들의 관심은 여전히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담담한 심정으로 대답해 주셨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신 것이니 너희들의 알 바가 아니다.”


그리고 성령 강림으로 인하여 권능을 받고 복음의 증인이 되어 살아갈 삶에 대하여 예언적으로 말씀해 주신 말씀이 우리가 잘 아는 사도행전 1장 8절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초대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탄생은 성령강림의 열매이다.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한 맛디아로 보충된 12제자와 예수의 어머니와 예수의 아우들이 더불어 같이 모여서 성령이 임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열흘째 되던 날 약속하신 성령이 충만하게 저들에게 임하였다. 그 수가 하루에 세례를 받는 자가 3,000여 명에 이르도록 놀라운 은혜가 계속되었다.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한 대제사장 가야바와 그의 장인 안나스와 요한, 알렉산더 대제사장 문중이 총동원되어서 예수의 부활 복음을 전파하지 말라고 위협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예루살렘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40여 세 평생을 걸어 본 적이 없는 걸인을 주님은 베드로를 통해서 일으켜 세우셨다. 이 일로 베드로와 요한은 밤새 옥에 갇혔고 다음 날 대제사장 문중이 총동원된 자리에서 심문을 받았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담대하였다. 풀려난 저들을 비롯한 십이사도들의 복음 전파는 얼마 가지 않아서 예루살렘에 예수의 부활 복음을 믿는 남자들만도 5,000명이 넘어서는 큰 무리를 이루었다.


다음 주일은 성령강림 주일이다. 우리 각 사람의 믿음의 바탕은 성령이시다. 하나님의 일은 힘으로도 못하고 능으로도 못하나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지 않나. 교회가 무엇인가. 여러분 각 사람이 냉철하게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라. 교회가 무엇이고, 교회 생활이 무엇이고, 신앙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 여러분을 주일 날 이렇게 예배당에 와서 예배드리게 하는 힘이 어디서 오는 힘인가. 왜 교회에 다니나. 왜 주일 예배를 드리나. 왜 헌금 생활을 하고, 왜 십일조를 드리고, 왜 봉사하고, 왜 서로를 섬기고, 왜 충성하고, 왜 헌신하는가. 왜 자녀들에게 교회 생활을 강조하고 가르치려 하는가. 


도대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주일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일주일 동안 가정 안에, 가족들에게, 아들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고 찜찜하기 때문에 주일에 교회에 다녀가는 것인가. 아니지 않나. 


초대교회의 12사도 사도들과 사도 바울과 스데반을 비롯한 일곱 집사와 수많은 성도가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예수의 부활 복음을 믿고 전파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순교자의 길을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그 믿음의 바탕이 무엇인가. 히브리서 11장 38절에 보면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고 하였다.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의 끝부분에 나오는 성령에 관한 내용이다. 예수께서는 포도나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왜 ‘성령’에 관한 말씀을 하셨을까. 예수께서는 성령에 대하여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성령, 아버지께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성령, 나를 증언할 성령”이라고 정의해 주었다. 차례대로 좀 더 자세하게 묵상하면 은혜를 나누도록 하자. 


보혜사 성령.

요한 사도는 그의 복음서인 요한복음 14장 16절과 26절 그리고 오늘 본문으로 읽은 요한복음 15장 26절에서 반복적으로 ‘보혜사’(保惠師)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 원래의 헬라어 단어는 ‘파라클레토스’이다. ‘파라’라는 뜻은 ‘곁에’이고, ‘칼레오’라는 뜻의 파생어인 ‘클레토스’는 ‘변호자, 대언자’라는 뜻이다. 좀 더 자세히 그 뜻을 연구해 보면 “보호하고 은혜 주시며 가르치시는 분”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보혜사’의 원 의미는 “보호자, 변호자, 조력자, 위로자, 상담자”라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요한복음 16장 7절 끝에도 보면 “내가 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약속하셨다.


가만히 생각하여 보라. 다 좋고 귀한 의미가 아닌가. 그렇지 않나. 우리가 별일이 없는 평온한 날에는 그런 특별한 역할을 하는 전문가의 도움을 절감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긴급하고 당황스럽고 누군가 어느 분야의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런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변호사를 찾아 나서게 된다. 나를 위로하고 보호하고 내 사정을 속 시원하게 듣고 해결해 줄 만한 전문 상담가의 도움을 받기를 간절히 원하게 될 것이다. 보혜사 성령의 도움을 받고, 보혜사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악한 길에서 선한 길로, 거짓된 길에서 올바른 길로, 어두운 길에서 밝은 길로 인도하심을 받게 된다..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은 그런 분이시다. 보혜사 성령이시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보면 “아버지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하였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곧 보혜사 성령은 “모든 것을 가르치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하셨다. 


오늘 설교 말씀 후에 부를 찬송인 188장 찬송, <무한하신 주 성령>의 4절에 보면 


“우리들의 연약함 탄식하며 도우사 

우리 위해 비소서 보혜사시여”


라고 찬송하고 있다. 맞다. 그렇다. 보혜사 성령은 로마서 8장 26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이시다.”“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


그렇지 않나. 요즘처럼 사고와 사건이 파도처럼 계속되는 이 험한 세상 중에서 살아가려면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또 드리게 되지 않나. 세상이 험악하다. 세상이 전쟁터와 같다. 평안하게 세상을 출입할 수가 없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예측할 수가 없다. 날마다 별의별 충격적인 사건 소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인륜이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장유유서라는 말은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표현인 것 같다. 젊은이들이 무섭다. 내 주변에 스쳐 지나가는 시민이 언제 폭도로 변할지 모른다. 세상이 너무나 살벌하고 험악하다.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질 않는다. 폭력과 욕설과 구타와 살인 사건이 너무 흔하고 쉽게 일어난다. 사람들이 모두 다 제정신이 아닌 것만 같다. 너나 나나 폭발 직전의 시한폭탄과 같다. 뉴스에 거론되는 사고와 사건 뉴스에 관련된 기독교인의 비율도 대단히 높다. 요즘은 어디 가서 “예수 믿는 사람”이란 말을 하기가 부끄럽고 민망할 정도이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왜 그 모양이냐”고 손가락질하는 것만 같다. 


보혜사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 성도라면 그럴 수는 없다. 세상 사람들과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어딘가 달라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생각이 다르고, 추구하는 바가 다르고, 바라보는 곳이 다르고, 말이 다르고, 관심 분야가 다르고, 삶의 철학이 다르고, 생의 목표가 달라야 한다. 시간 사용이 다르고, 드나드는 곳이 다르고, 돈 쓰는 곳이 다르고, 만나는 사람이 다르고, 매사가 달라야 한다. 

“왜 사냐고” 물으면 씩 하고 웃지만 말고 하루하루의 삶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요한복음 15장 18절 이하에 보면 보혜사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달아야 한다고 하셨다.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택함을 받은 성도라면, 예수의 택함 받은 제자라면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신 동안에 세상이 예수를 미워하였기 때문이다. 맞다.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산헤드린 관원, 장로, 사두개인 등 그 누구도 예수를 사랑하지 않았다. 저들은 철저하게 똘똘 뭉쳐서 예수를 미워하고 대적하였다. 

요한복음 15장 20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5장 21절 끝에 보면 “세상 사람이 예수나 예수를 따르는 이들을 박해하는 이유는 예수를 보내신 이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요한복음 15장 23절에 보면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고 하셨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와 하나님 아버지를 미워하는 이유는 예수께서 이 세사에 오셔서 ‘죄’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분명하게 깨우쳐 주셨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5장 22~24절의 긴 말씀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죄’가 ‘죄’로 드러난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뭘 회개하라는 말씀인가.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물 세례가 무엇인지, 성령 세례와 불 세례가 무엇인지 모르고 관심조차 없이 세상 낙에 빠져서 살아가는 육체의 욕망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듭난 자녀의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초청이시다. 세상이 예수와 하나님 아버지를 미워하고 예수를 믿고 따르려는 이들을 미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은 이 죄의 문제를 깨달아 알고 예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주 안에서 영생하는 하나님 자녀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진리의 성령.

‘진리의 성령’이란 말씀은 ‘진리가 성령이다.’ 혹은 ‘성령이 진리다’라는 뜻이다. 요한 사도는 요한일서 5장 6절에서 “성령은 진리니라”고 선언하였다. 즉 성령과 진리를 동격 화한 것이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보면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라고 하였다. 다 같이 요한복음 14장 17절을 읽자.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여기에 보면 진리의 영이신 성령은,

첫째, 성령을 믿는 성도들과 함께하시는 영이시며

둘째, 성도들 속에 계시는 영이시다. 

‘보지도 못하고’라는 말씀은 영적 통찰력이 없다는 뜻이다.

‘알지 못함이라’라는 말씀은 영적 무지를 일컫는 말씀이다. 영적으로 무지해서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요한복음 14장 7-11절의 내용이 그런 말씀이다. 예수가 누구신지 모르고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이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조차 모르기 때문에 제자 빌립은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라고 간청하였다. 이를 답답하게 여기신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요14: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4)는 말씀을 이어서 강조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하신 말씀이 ‘보혜사 성령’과 ‘진리의 성령’에 관한 말씀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라는 말씀은 성령과 성도 간의 교제(交際) 즉 사귐과 임재(臨在)를 의미한다. 또한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는 성령의 내재(內在)를 의미한다.


본문인 요한복음 15장 16절의 ‘보낼 성령인 보혜사, 그리고 아버지께로부터나와서 임재하고 내재하게 될 진리의 성령을 보내 주셔서 예수가 누구신지를 증언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시다. 



예수를 증언하는 성령.

예수께서 여러 번 반복해서 말씀하신 성령을 그를 믿는 성도들에게 보내주시는 목적은 “그가 예수를 증언할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라는 요한복음 15장 26절 마지막 부분의 교훈이 이것이다. 그렇다. 성령을 보내주신 목적은 성령이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마음 속에 임재하고 내재하셔서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증언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성령이시다. 그 성령은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8)고 하였다. 


요한복음 14~17장의 내용은 거의 다 예수의 직접 하신 말씀의 기록이다. 복음서에 예수의 말씀은 빨간빛으로 구분한 성경을 우리가 가지도 있다. 나의 성경도 그렇게 되어 있다.


요한복음 16장 9-11절에 보면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고 있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으면 이렇다. 


“죄(罪)에 대하여라고 한 것은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며

의(義)에 대하여라고 한 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므로 너희가 다시는 나를 볼 수 없기 때문이요 

심판(審判)에 대하여라고 한 것은 이 세상 임금인 사탄이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는 어른, 어린이, 청년, 노인 구분 없이 누구나 다 성령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복음을 담대하게 증언하는 전도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곽남태 장로의 친손자가 곽온유다. 부처를 색칠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온유 마음이 불편에서 안 그릴 수는 없어서 시커멓게 칠해 버렸다. 선생님이 물었다. “나는 예수를 믿는데 선생님은 예수의 부활을 믿느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나는 예수를 안 믿는다”고 대답했다. 그때 온유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이 부활절인데 어떻게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는 말이냐고 또박또박 선생님에게 질문을 계속 이어갔다고 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

여러분은 예수의 무엇을 믿나.

여러분은 예수의 무엇을 증거할 수 있나.

여러분은 예수의 무엇을 증거하길 원하나.


요한복음 15장 27절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으면 이런 내용이다.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니 나를 증거해야 한다.”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요한복음 15장은 포도나무 비유이다. 포도나무는 열매로 말하는 나무이다. 성도의 열매가 무엇인가. 예수께 붙어 서는 인생, 예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인생은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의 말씀처럼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9가지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생을 날마다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으로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할 수 있는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코로나 19 핑계하지 말고 어떤 상황, 어떤 여건, 어떤 환경 중에서라도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예수의 부활을 삶으로 증거 할 수 있는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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