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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감사하라(시136:1-5,23-26) 202010704 맥추감사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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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07-27 22:08 조회 7,966 댓글 0
 

여호와께 감사하라(시136:1-5,23-26)            20201. 7. 4   맥추감사주일



자동차를 발명한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나 비행기를 처음 날린 윌버 라이트Wilbur Wright, 1867-1912)와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 1871-1948) 저들 두 형제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은 정상적이다. 그러나 자동차에게 감사하고, 비행기에게 감사한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쌀과 보리와 밀과 콩과 옥수수에 감사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분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에게 먹을거리로 주신 분에게 감사해야 한다. 우상숭배가 죄인 것은 이런 면에서 그렇다. 


바다를 향해 절하고, 산을 향해 빌고, 하늘을 향해 소원을 구하는 것은 우상숭배이다. 산과 바다와 하늘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절대로 금하셨다. 우상을 만들거나, 우상 앞에 절하거나, 우상 앞에 경배하면 하나님은 그 죄를 삼사대까지 갚겠다고 경고하셨다.‘질투(嫉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출애굽기 20장에 실려 있는 십계명 중의 둘째 계명의 내용이다.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제 2계명의 내용에 ‘질투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질투심이 불일듯하면 상대방을 죽이기도 하지 않나. 이처럼 하나님은 절대로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 경배하는 민족과 개인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미국의 로드아일랜드주에 위치한 프로비던스 도시에는 ‘브라운대학교’가 있다. 1764년도에 침례교도들이 세운 기독교 명문대학교이다. 그 대학교의 상징탑 하단 벽면에 아가서 8장 6절 말씀의 일부가 새겨져 있다. 


“for love is as strong as death”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그 같은 구절에 인용된 단어가 ‘질투’이다.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고 하였다. 이 모든 표현을 반대로 해석하면 “여호와는 사랑이시다.”라는 뜻이다. 그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지은 찬송시 한편이 있다. 바로 시편 136편이다. 


시편 136편은 유월절과 맥추절과 초막절인 수장절 때에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부르는 찬송시이다. 오늘 날의 지휘자 격인 아삽 자손이 앞부분을 찬송하면 백성들은“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26번을 반복해서 큰 소리로 찬송하는 형식을 담고 있다. 상상하여 보라. 모든 백성이 한 목소리로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으로다”라고 26번을 반복한다면 장엄하고 우렁차고 아름답지 아니하겠는가. 26절 분량의 시편 136편은 각 절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계속하여 반복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그 대구를 이루는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표현도 매 구절마다 반복되고 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의 그 무엇에 대하여 감사하라는 것인가. 



그는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함으로.

1-3절은 “모든 것 위에 뛰어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였다. 4-9절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하며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라”고 하였다. 10-15절은 “이스라엘을 노예의 땅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라”고 하였다. 16-24절은 “출애굽하게 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고 언약을 이루셔서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라”고 하였다. 


그런 눈으로 보면 시편 136편은 구약의 역사를 찬양하고 있다. 창세기의 천지 창조로부터 언약 백성을 구별하셔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애굽의 고난에서 건져 내시고 모세의 광야 생활 40년을 거친 후에 여호수아를 앞장세워 가나안 점령을 마치고 그곳을 기업 삼고 살아가기까지의 장구한 역사를 감사 찬양의 가사로 담고 있다. 


그렇다. 하나님은 과거에나 지금이나 장래에나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도다”라고 찬양을 받으실 주님이시다. 여기서 말씀하는 ‘인자’(仁慈)란 히브리어‘헤세드’(חסד)라는 단어이다. 그 뜻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사랑과 은혜”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에 바탕을 둔 끊임이 없는 사랑을 묘사하는 말이다. ‘헤세드’는“친절, 자비, 은혜, 은총, 시기, 질투, 긍휼, 사랑”등의 다양하고 복잡한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그것을 시편 136편에서는 한결같이 ‘인자하심’이라고 한 것이다. 구약에만 무려 240번이나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이처럼 자주 사용되고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인자’라는 이 단어가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요즘 헐몬산 새벽 기도회 기간에 묵상한 출애굽기의 내용에 보면 모세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은혜, 은총’을 간구하지 않나. 그 바탕이‘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간구하는 기도이다. 인간이란 도저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죄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끊임이 없는 인자와 자비와 긍휼과 돌보심과 은혜와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의 감격을 누리며 죄 사함의 축복 가운데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감사하여야한다.



지혜로 우주와 만물을 지으셨음으로.

5절에 보면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하였다. 그렇다. 여호와 하나님은 지혜로 땅을 물 위에 펴시고, 큰 빛을 지으시고,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창조주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주 만물과 삼라만상을 창조하신 주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그 인자하심을 찬송하는 것이다. 


다윗은 시편 8편에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아름답게 노래하였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8:1-4)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앞에 절하지 말고 우주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그 인자하심을 찬송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인도하시고 공급하심으로.

10-25절까지를 보면 하나님이 선택하신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난의 풀무와 같은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건져 내시고 인도해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한다. 그 첫 언급이 모세 시대의 열 가지 재앙 중의 마지막 재앙인 애굽인의 장자를 치신 사건이다. 아홉 가지 재앙 앞에서도 점점 강퍅해져만 가던 바로 왕이 애굽의 사람과 육축의 첫 생명을 거두어 가실때에야 두 손을 들었다. 하나님은 바로 왕의 장자로부터 감옥에 갇힌 자의 장자까지 모든 애굽 사람의 장자를 치시는 것으로 바로 왕의 완악한 마음을 흔들리게 하셨다.


그렇게 시작된 출애굽 즉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는 기적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시편 기자는 그 모든 것들이 가능하게 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감사하며 찬송하고 있다. 그렇다. 여호와 하나님은 4절의 찬양 가사처럼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신 분”이시다. 11절, 12절, 16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11절에“애굽의 장자를 치시는 대재앙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를 건너 출애굽하게 하신 유월절의 감격스러운 순간”을 찬양하고 있다. 12절에 “강한 손과 펴신 팔로”인도하셨다. 16절에 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구체적이어서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광야 길을 인도하여 그 어려운 광야 길을 통과하게 하신 분”이심을 찬양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의 길을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비천한 자의 삶을 기억하시고 돌아보아 주셔서 그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분이시다. 23절에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는 고백이 그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들이 430년간 노예였다. 그런데 지금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번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저들은 유월절을 맞을 때마다 시편 136편을 찬양하며 선조 때부터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과 공급하심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맞이하는 절기 때마다 시편 136편을 읽고 또 읽고 찬송하고 또 찬송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인도하시는 하나님, 비천한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애굽의 바로 왕과 가나안의 일곱 족속과 같은 대적자들로부터 생명을 보존하시고 새 길 가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시편 136편 마지막 절은 26절은 이렇게 끝이 난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매일 받아 보는 조선일보 한 면에 영화의 영어 대사 내용 한 마디를 중심으로 그 영화가 담고 있는 교훈을 해설하는 난이 있다. 영화 번역가인 <황석희의 영화 같은 하루>라는 제목의 난이다. 어제는 세계의 어린이들이 가 보고 싶어하는 미국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 건너편 허름한 보라색 모텔에 사는 여섯 살 소녀 무니의 일화가 실렸다. 그 모텔의 이름은 ‘매직 킹덤’이다. 무니는 아빠가 없다. 엄마는 미혼모이다. 그래도 여섯 살 된 딸 무니는 엄마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아이다. 엄마는 항상 싸구려 모텔만 찾아다니며 생활한다. 그러하다 보니 그 주변의 아이들이 말이 심하고 욕이 많고 장난이 짓궂다. 그 모텔에 사는 아이들은 낯선 자동차가 주차장에 세워지면 모텔 이층 난간에 몰려서서 자동차 지붕 위에 침뱉기 내기를 한다. 며칠 전에도 어느 남루한 할머니가 다 낡은 자동차에 짐을 잔뜩 싣고 와서 자기가 묵을 방으로 나르고 있었다. 모텔촌 아이들은 도와주기는커녕 여전히 자동차에 침 뱉기 내기를 한다. 할머니가 “너네 혼날래”하고 고함을 치자 애들은 한 목소리로 “꺼져. 걸레야”하며 모욕을 준다. 3년 전에 개봉한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장면이다. 무니의 엄마 헬리는 변변한 직업도 없다. 성격은 다혈질이어서 걸핏하면 주변 사람들과 부딪치고 싸운다. 엄마 헬리는 개구쟁이 딸 무니의 무례한 행동을 사과하려고 모텔 지배인을 찾아간다. 거기서 어린 무니는 지배인의 딸 젠시를 만나 단짝 친구가 된다. 


멀리 길 건너에는 24시간 휘황찬란한 디즈니랜드의 조명과 음악 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나 무니가 사는 허름하고 가난한 모텔 촌에는 그런 아름다운 놀이터가 단 한 곳도 없다. 무니는 모텔 지배인의 딸 첼시와 함께 자기가 찾아 놓은 비밀 놀이터로 달려간다. 무니는 친구와 함께 땅 바닥에 비스듬히 가로누워 쓰러진 채 자라나는 커다란 고목 위에 기어 올라간다. 그 나무 가지에 걸터 앉아 노는 것이 무니와 첼시의 놀이터이다. 나무를 타고 놀던 무니가 첼시에게 말한다.


 

“Do you know why this is my favorite tree? 

cause it tripped over and its still growing.”

(내가 왜 이 나무를 제일 좋아하는 지 알아. 

쓰러져도 계속 자라기 때문이야)


영화의 장면은 바뀐다. 어린 여섯 살 첼시는 결국 엄마와도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된다. 단짝 친구 첼시와도 헤어지고 만다. 영화 대사 번역가는 이런 댓글을 다는 것으로 영화의 대사와 장면 해설을 마무리 한다.  


“하지만 쓰러져 있어도 계속하여 자라나는 고목을 사랑하는 무니는 나무처럼 어딘가에서 이 험한 세파를 이겨 가며 꿋꿋하고 밝게 자라나고 있으리라고 믿고 싶다.”


요즘 힘들 날들을 지내고 있는가. 지금 너무 지쳐 쓰러질 것 같은가. 하나님은 장래에 힘과 용기를 주시며 그 품은 뜻과 생각을 하나님 안에서 성취하게 하시는 인애가 풍성하신 전능자이시다. 


유월절이나 맥추절이나 초막절과 같은 절기가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날마다 해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공급하심과 돌보심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란 고백을 담은 예배가 절기 예배가 아닌가. 올해도 변이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서 온 열방이 다시 긴장해 가는 이 답답한 세상에서 주님의 은혜와 돌보심 가운데서 감사하며 살아가는 나날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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