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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믿는 하나님(시124:1-8) 2023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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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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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8-27 21:59 조회 2,914 댓글 0
 

                     다윗이 믿는 하나님(시124:1-8)           2023. 8. 27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 때에는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서 경기하였다. 일단 편이 정해지고 나면 청군은 언제나 청군 편을 들고, 백군은 언제나 백군 편을 든다. 운동 경기는 거의 가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인다. 응원도 자기편만 응원한다. 인생살이가 그렇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사회이든, 국제 관계이든 다 내 편이 있고 네 편이 있다.

 

한 나라의 정당에도 여당과 야당이 있다.

국가 간의 군대에도 아군과 적군이 있다.

이웃 나라들 사이에도 우방 국가가 있고 그렇지 않은 국가가 있다. 미국 편에 서는 나라들이 있고 중국이나 러시아에 편을 드는 국가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어느 편에 계시냐는 것이다. 쌍둥이로 태어났으나 하나님은 동생 야곱을 사랑하셔서 그의 편에 계셨고 형 에서는 미워하셨다. 말라기 1장 2-3절에 나오는 내용이다. 예수께서도 그를 반대하는 자들에 의해 미움과 핍박을 계속 받으셨다. 나중에는 예수를 십자가 처형으로 몰고 갔다. 역대 대 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 산헤드린 공회원 등 그 어느 한 사람도 예수의 편에 서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들 예수의 편이셨다. 하나님이 예수의 편에 서시니 죽음도 두렵지 않았다. 하나님은 예수를 무덤에서 부활 시키셨다. 부활하신 주님, 승천하신 주님은 장차 이 땅을 심판하실  재림 주로 강림하실 것이다. 

 

시편 124편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편이셨다고 고백한다. 다윗은 마지막 절에서“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다윗은 오늘날로부터 3천년 전의 인물이다. 우리는 사무엘 상하를 통해서 다윗이 누구인지를 안다. 다윗은 성경의 기록자이다. 시편 150편 중에는 73편이 다윗의 시편이다. 다윗은 목동이며 전쟁에 능한 용사이며 사울 왕의 사위였다. 다윗은 소년의 때에 블레셋의 적장 골리앗을 물매 돌로 해결하면서 국제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다윗이 누군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다윗은 수금과 같은 악기도 잘 연주했다. 다윗은 시인이었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다윗은 영특했고 명민했고 탁월했고 매사가 남달랐다. 다윗은 청년기 때의 긴긴 고난과 역경을 잘 극복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30살에 왕이 된 후에 70살에 죽기까지 왕이었다.

 

시편 124편은 다윗이 언제쯤 썼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한가지 사실은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수 없이 체험하며 지내던 어느 날 이런 찬양과 고백을 남겼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나. 인생을 70-80년쯤 살아오신 분들은 안다. 태어나서, 청년기 때에, 장년기를 지내면서, 노년기를 맞이하기까지 사람이 한평생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하는지를 안다. 모세의 시편인 시편 90편 10절에 보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 인생이 칠팔십년을 살다가 보면 별의 별 수고, 별의 별 고생, 별의별 슬픔, 별의 별 충격적인 일들을 다 경험하며 살게 된다. 일류 역사상 요즘처럼 장수하는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우리 나라로 해도 역사사 최 장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하여 보라. 사람이 한 평생을 살다가 보면 별의 별 일을 다 겪게 된다. 나라에 전쟁, 기근, 지진, 홍수, 대 가뭄, 전염병 등이 휩쓸고 지나가면 그 피해와 후유증은 상상 이상이다. 오늘 날로 하면 국가적인 경제 위기와 경제 불 안정 등을 겪게 되면 웬만한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것이 막막해 진다. 가정적으로도 그렇다. 가족의 죽음, 경제적인 위기, 부모의 이혼이나 별거, 부모와의 너무 이른 사별, 가족 간의 갈등, 가족 중의 누군가가 겪는 장애나 질병 등등으로 인해서 서로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거리며 연명하듯이 살아가는 가정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다윗은 인생이 겪을 수 있는 별의 별 고난을 다 겪었다. 시련과 역경과 위기와 도전의 순간을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앞에 선 것처럼 겪어야만 했다. 그야말로 그가 믿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다윗은 어느 날 갑자기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는커녕 우리가 성경에서 대하는 다윗의 모습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잊혀지는 평범한 인생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그는 수 없는 역경, 수 없는 위기, 수 없는 불안, 수 없는 격변기의 중심에서 살아남고 또 다시 살아 남았다. 하나님은 자주 다윗의 편에 계셨다. 하나님은 다윗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보내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13:22)라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다윗은 영화나 드라마로 하면 언제나 주인공과 같은 삶을 살았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시편 124편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대하여 어떤 고백을 하고 있는가.

 

 

그의 편에 계신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해서 만사가 형통하고 범사가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긴긴 역사가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고, 하나님의 기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만 살아가면 하나님은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는 누구일지라도 그의 편이 되어 주신다는 믿음을 갖고 살았다. 

 

시편 124편을 읽다가 보면 아마도 다윗이 과거 모세 때의 출애굽 현장을 상상하며 이 고백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물, 시내, 넘치는 물”이란 표현이 출애굽 때에 홍해를 건너던 장면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믿으려 하지 않는 이들은 홍해를 육지처럼 건넌 출애굽의 기적을 지어 낸 이야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의 수많은 기사와 이적들은 안 믿으려고 하면 하나도 믿어지지 않고, 믿으려고 하면 모든 것이 다 믿어지게 된다. 

 

시편 124편은 1절에서 질문하고 그 다음의 여러 절에서 대답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으면 “만일 여호와께서 우리 편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느냐”라고 하였다. 그렇다. 그날, 그 때, 그 순간에 하나님이 나의 편이 되어 주지 않으셨다면 지금 내가 어떤 모습일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나섰던 아브람이 기근을 만났다. 기근을 피해서 애굽으로 내려갔다. 아내 사래의 미모는 나이가 들었어도 소문이 났고 아브람은 아내를 빼앗겼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왕궁의 고관들에 의해서 애굽 왕 바로 앞으로 인도되었다. 하마터면 아내 사래를 애굽 왕에게 빼앗길 뻔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비겁했던 겁쟁이 노인 아브람은 아내 사래를 뉘이라고 속인 후였다. 사태가 난감해졌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브람의 편을 들어 주셨다. 그 날, 그 때 하나님이 아브람의 편을 들어 주시지 않았다면 아내 사래를 애굽 왕에게 빼앗기고 말았을 것이다. 창세기 12장을 읽다가 보면 17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라고 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이 개입하시지 않았다면 사태는 심각해 지고 말았을 것이다. 

 

만약 아브람이 아내 사래를 애굽 왕 바로에게 빼앗겼다면 이삭은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오늘 날의 이스라엘 민족이 탄생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심약한 노인 아브람의 편을 들어 주셨다. 아내 사래를 되 찾아 왔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풍성한“양과 소 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건네 받았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이런 일이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주시면 기적이 일어난다.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모세의 때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편이 되어 주지 않으셨다면 뒤 쫓아 오는 애굽의 군대와 홍해 물 앞에서 전멸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홍해를 육지처럼 가르셨다. 홍해 저편 언덕으로 대 이동을 감행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로 뒤에 추격해 오는 애굽 군대를 하나님은 다시홍해의 두 물 줄기가 하나로 합해지게 하셔서 송장으로 만드셨다. 만약 그 때 그 현장에서 하나님이 모세의 편을 들어 주지 않으셨다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물 한 가운데에서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절대절명의 순간에 모세의 편이 되어 주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편이 되어 주셨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불의가 가득하고 악한 세력이 점점 힘을 얻으며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 중에서 정의의 편에 서고 선한 자의 편에 서고 진리의 편에 설 때에 하나님은 그런 자의 편이 되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의인의 편이 되어 주시고 악인을 낫을 든 자 앞에서 풀이 베임을 당하는 것처럼 하실 것이다. 

 

믿음의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만날지라도 하나님이 나의 편이 되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시편 37편 5절에 보면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리라”라고 하였다.

 

기도는 공의의 하나님이 나의 편이 되어 주시기를 아뢰는 길이다.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비딤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에 아말렉이 쳐들어 와서 싸움이 벌어졌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군대를 동원해 가지고 나가서 싸우라고 하였다. 모세는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지팡이를 손에 잡고 기도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는 동안에는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가 손에 힘이 들어서 손을 내리고 있는 동안에는 아말렉이 이기는 것이었다. 아론과 훌은 돌을 가져다가 놓고 그 위에 모세로 하여금 앉아서 기도하게 하였다. 모세가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할 때에 아론과 훌이 양편에서 함께 손 잡고 기도하였다. 세 사람의 서로 맞잡은 손은 해가 지도록 내려 오지 않았다. 종일토록 기도한 것이다. 그 날 여호수아가 앞장선 이스라엘 군대는 넉넉히 아말렉과 싸워 이겼다. 하나님은 그 날의 일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출애굽기 17장 14절에 보면 아말렉과 싸워 이긴 싸움은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과 훌과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편이 되어 주셔서 이기게 하신 전쟁이라고 하셨다. 모세는 그 곳에 제단을 쌓았고 ‘여호와 닛시’라고 이름하였다. 여호와가 승리하게 하셨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편이 되어 주신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신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귀를 기울여 주신다. 하나님은 부르짖어 간구하는 믿음의 사람의 편이 되어 주신다. 

 

사울왕도 하나님이 세우셨고 다윗 왕도 하나님이 세우셨다. 그러나 두 왕의 차이가 무엇인가. 사울 왕은 말년에 하나님에게서 떠났다. 사울 왕은 점점 어리석고 교만해져만 갔다. 사울 왕은 선지자 사무엘을 무시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려 하지 않았다. 나중에 하나님은 사울 왕을 버리셨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우리가 아는대로 다윗도 죄와 흠이 많았다. 간음도 했고 살인도 했다. 다윗은 한 때 하나님 앞과 백성들 앞에서 사악하고 크나큰 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다윗은 진심으로 회개하고 베개를 눈물로 적시며 통회하였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셨다. 다윗의 평생으로 보면 하나님은 다윗의 편이 되어 주셨다. 하나님은 다윗을 존귀하게 붙들어 주셨다. 다윗은 다급한 순간마다 자신의 편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였다. 다윗은 위기의 순간마다 자신의 편에서 돌보시고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생생하게 체험하고는 하였다.

 

 

찬송을 받으시는 하나님.

다윗은 노여움에 가득찬 원수들이 먹잇감을 물어 찢으려하는 맹수처럼 맹렬하게 달려 들는 위협의 순간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 새들이 사냥꾼의 올무에 걸리면 빠져 나갈 길이란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새를 잡는 사냥꾼의 올무가 끊어지게 하셔서 새들이 자유롭게 창공으로 날아가듯이 다윗을 보호해 주셨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에 젖어 있고 하나님의 언약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해 주셨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하나님이 편이 되어 주시지 않았다면 넘치는 물이 휩쓸고 지나가듯이 삼켜 버릴 죽음의 위기와 멸망의 순간에 건져 주셨고 살려 주셨다. 

 

6절을 보자. “우리를 내 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라고 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쓰는 섬찟한 표현 중에 “씹어 먹어 버리겠다”는 사납고 공격적인 표현이 있다. 다윗은 그런 위험에 노출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때 그 때마다 다윗의 편이 되어 주셨고 다윗을 위기에서 보호해 주셨다. 블레셋의 칼과 앗수르의 창으로부터 막아 주셨다. 사울 왕의 미움과 대적으로 부터도 보호해 주셨다. 

 

다윗은 620장 찬송의 가사처럼 “시험을 당할 때도 함께 계심을 믿었다, 때로는 넘어져도 최후 승리를 믿었다, 어려움 이겨내고 주님 더욱 찬양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윗은 찬양의 사람이었다. 우리가 다윗의 고백 중에 하나인 시편 23편에 곡을 붙여서 찬양하지 않나. 다윗은 체험의 사람이요 간증의 사람이요 찬송의 사람이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은 교만하지 않았다. 다윗은 어리석지 않았다. 다윗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사울처럼 어리석게 자신을 추앙하는 송덕비를 세우려 하지 않았다. 언제나 다윗의 마음에는 하나님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시편 18편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찬송하였다.

 

“나의 힘이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는 나의 반석이시며 나의 요새시라

 

주는 나를 건지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는 나의 여호와 나의 구세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는 나의 여호와 나의 구세주”

 

신앙생활은 찬송하는 생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신앙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매 순간 찬양하며 살아간다. 성도는 건강할 때도 찬송하고 병들었을 때도 찬송한다. 잔치 자리에 모여서도 찬송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도 찬송한다. 성공했을 때도 찬송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찬송하다. 형통할 때에도 찬송하고 답답하고 속이 상할 때에도 찬송하다. 기쁠 때도 찬송하고 슬플 때에도 찬송한다. 찬송 생활은 성도의 호흡과도 같은 것이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도와 주시는 하나님.

다윗은 간증할 일이 많았다. 다윗은 날마다 하루하루가 새로웠다. 다윗은 일찍이 부모를 떠나서 지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외롭지 않았다. 블레셋의 골리앗을 이긴 후로 그는 점점 유명해졌다. 한 동안 사울 왕의 총애를 받기도 하였다. 사울 왕의 사위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날들이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사울 왕은 다윗을 죽여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버린 적이 없었다. 사울은 다윗의 보는 앞에서 단창을 던져서 다윗을 죽이려고도 하였다. 나중에는 3천명의 정예 부대를 풀어서 다윗을 잡아 오라고 파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 왕의 편이 아니셨다. 하나님은 그 때 그 때마다 다윗의 편이셨다. 하나님은 매 순간 다윗을 도와 주셨다. 그래서 다윗은 이스라엘 민족 앞에서 이런 시를 고백한 것이다. 그는 시편 124편에서“만약에 여호와가 우리의 편이 아니셨다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되었겠는가”라고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 알에 공개적으로 질문하고 있다.

 

그리고 8절에서 스스로 대답하고 있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그렇다.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이시다. 우주 삼라 만상과 이 땅의 모든 인류가 그 분의 손 안에 있다. 하나님은 땅끝에도 계시고 바다 속 깊은 데도 계신다.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을 귀하게 여겼다. 그래서 다윗은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라고 고백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70장 찬송가 <피난처 있으니>의 3절 가사를 보라.

 

“만유 주 하나님 우리를 도우니 피난처요

세상의 난리를 그치게 하시니 세상의 창검이 쓸데없네”

 

영국 사람들은 이 찬송, 찬송가 70장의 곡에 가사를 넣어서 영국 국가로 사용하고 있다. 맞다. 피난처는 하나님 뿐이시다. 하나님은 그를 믿는 성도들의 영원한 피난처이시다. 하나님은 피할 바위이시며 견고한 요새이시다.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의 견고한 산성이시며 구원의 뿔이시며 방패이시다. 하나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하나님을 자기 도우심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는 백성이다. 하나님을 자기 도우심으로 삼고 살아가는 가정은 복된 가정이다. 하나님을 자기 도움으로 삼는 나라는 복된 나라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그의 형 아론에게 명하여 이렇게 축복하는 기도를 하라고 하셨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화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수기 6장 24-26절의 이 말씀은 모세 시대에 주신 하나님의 축복 기도이다. 믿는 자의 영원한 도움이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경배하고 찬송하며 예배하며 살아가는 중에 날마다 새로운 간증이 넘쳐 나는 개인과 가정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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