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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 Ⅰ(시19:7-14) 202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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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2-06 22:10 조회 5,871 댓글 0
 

          여호와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 Ⅰ(시19:7-14)           2022. 2. 6

 

 

“태도는 사실보다 더 중요하다”

(Attitude is more important than fact.)

 

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건 혹은 어떤 일의 내용보다 그것을 대하는 각 사람의 자세와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교훈하는 말이다. 그렇지 않나. 똑 같은 사건과 사실 앞에서도 한 사람은 검다고 우기고 다른 한 사람은 희다고 우기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진영 논리라고 한다. 진실도 거짓으로 뒤집어씌우면 거짓이 되고 거짓도 위선으로 가리면 거짓이 아닌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세상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지난 두 주에 나누어서 다윗이 깨닫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와 그 소중함에 대하여 묵상하였다. 시편 19편 8절 이하에서는 그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일상생활 중에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다. 

 

 

순금(純金)보다 더 사모(思慕)하고 송이꿀보다 더 달게 여겨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를 순금과 송이꿀을 대하는 것으로 비유해서 교훈하였다. 금의 가치는 고대 사회는 오늘 날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중에서도 순도 99.9%인 순금의 가치는 어느 나라나 어느 시대나 그 무엇과 비교할 수가 없다. 세계의 200여개가 넘는 나라들 중에서 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무려 8,133톤이다. 우리나라는 104톤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에서 32위이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18배, 일본은 우리나라의 8배, 대만도 우리나라의 4배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에서 금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나라는 독일로 3,400여톤을 보유하고 있다.

 

18세기 이후로 나라마다 화폐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금의 시세를 중심으로 환율을 조정하는 금 본위제가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5년 전인 1997년 말에 겪은 국가 부도 위기인 IMF 극복을 위해 전 국민이 집안에 가지고 있던 금을 내어놓아 전국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에 앞장섰던 적이 있다. 집 안에 있던 어린 아기 돌 반지와 목걸이까지 모으기 시작하였다. 운 동선수의 금메달, 장군이나 퇴직 공무원이 선물로 받은 황금 열쇠에 이르기 까지 너도 나도 앞장 서서 금을 모으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에 금 모으기 운동에 전 국민이 발 벗고 나섰다. 국가적인 부도 위기의 경제 난국을 극복해 나가던 대한민국 국민의 모습은 세계의 뉴스 시간마다 화젯거리였다. 나라의 위기 때 똘똘 뭉치는 대한민국 국민의 협동 정신 앞에 세계 각국이 감동하고 감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25년 세월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강국으로 자리매김해 오고 있다. 

 

금을 싫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금은 금 본위 경제 구조 속에 살아가는 이 시대에 금은 좋은 것이고 귀한 것이다. 잠 자고 나면 값이 치 솟는 아파트를 보유하는 것도 좋고, 경쟁력 있는 우량 주를 많이 갖고 있는 것도 좋지만 금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오늘날로부터 3,000년 전인 다윗 왕 때에도 금은 귀하고 좋은 것이었다. 금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은 국가의 힘이었고 왕의 자랑이었다. 열왕기상 10장 14절 이하에 보면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 때에는 황금 방패가 있을 정도였다. 큰 방패가 200개, 작은 방패가 300개였다. 상인들과 무역하는 객상들과 아라비아의 모든 왕들과 이웃 나라의 고관들이 줄을 서서 솔로몬에게 황금을 갖다 바쳤다. 솔로몬 때에 세입금이 666달란트라고 했다. 다윗 때와 솔로몬의 때에 왕궁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이 넘쳐 났다. 열왕기상 10장 14절의 ‘세입금’이 무엇인가. 조세, 공물, 항해 중인 선박세, 무역 상의 통행 관세 등을 모두 합친 것을 ‘세입금’이라고 하였다. 그 당시 금 한 달란트로 노예 1,500명을 사들일 수 있었다고 하니까 666달란트의 금의 가치는 999,000명의 노예를 사들일 수 있는 가치였다. 

 

이처럼 금의 가치가 높던 당시에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달리 비교할 길이 없어서 “금 곧 많은 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라고 교훈한 것이다. 다윗은 금이 생길 때마다 여호와의 집에 봉헌하기를 즐겨 하였다. 다윗 때의 여호와의 집이란 성막이다. 아들 솔로몬의 때에 성전이 건축 되기 이전이니 말이다. 사무엘하 8장에 보면 다윗 왕이 블레셋과 모압과 소바와 다메섹의 아람 등 주변 국가들을 연전 연승 점령하고 싸워 이겼다. 사무엘하 8장 6절에 보면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고 하였다. 다윗의 위세와 명성 앞에 주변 국가들은 조공을 바치고 바빴다. 금 그릇, 은 그릇, 놋 그릇을 있는대로 모조리 갖다 바쳤다. 11절에 보니까 다윗은 그것을  모두 다 여호와의 집에 갖다 바쳤다. 사무엘하 8장 14절에 보면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는 말씀이 나온다. 6절에는 “이기게 하시니라”, 14절에서는 “이기게 하셨더라”하고 시제가 바뀌는 것을 본다. 

 

올 한해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벌여야 하는 녹녹치 않은 한 해의 시작이지만 분야마다 삶의 전쟁에서 이기게 하시는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덧 입고 날마다 범사에 승리하는 복된 나날이 되기를 축원한다. 

 

다윗은 은이나 금을 사랑한 임금이 아니다. 다윗은 은과 금과 놋이 생길 때마다 여호와께 바쳤다. 그리고 다윗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였든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모습을 비유할 길이 없어서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라고 고백하고 권면하고 있다. 

 

다윗은 실로 금을 사모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금보다 다 사모하고 기뻐하고 감사히 여겼던 말씀의 사람이었다. 잠언에 보면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잠8:10)라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게 여겼다. 꿀이 무엇인가. 설탕이 달지만 천연으로 얻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단 것이 꿀이다. 그 중에서도 송이꿀이란 천연에서 얻을 수 있는 꿀 중에 최고의 것이다. 우리나라의 천연꿀도 좋지만 세계 여러 나라에 좋은 꿀을 자랑하는 나라가 많다. 네팔의 산악지대에서 채취한 석청이 우리나라에서 1kg에 100만원에도 팔린다도 한다. 식약청에서는 네팔산 야생 꿀은 독성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수입 금지 품목으로 정해 놓았지만 여전히 밀수되어 판매된다고 한다. 

 

잠언에 보면 “내 아들이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잠24:13)라고 하였다. 에스겔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었다.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겔3:3)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이 말씀의 두루마리를 입에 넣는 순간 그 달기가 꿀과 같았다. 오늘 날 우리는 어떤가. 나는 어떤가. 요즘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는 것이 따분하지는 않은가. 지루하지는 않은가. 별 관심이 없지는 않은가. 하나님의 말씀을 비중 있게 여기지 않아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전혀 불편이 없지는 않은가. 

 

다윗은 달랐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게 여겼다.”올 한해 의지를 갖고 기도하며 날마다 일정한 분량의 말씀의 은혜를 계속 사모해 나가는 말씀의 동행이 계속되기를 축원한다.

 

 

경고(警告)를 받고 지켜서 큰 상(賞)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고를 받을 줄 알아야 한다. 경고가 무엇인가. 오랜지색 신호이다. 교통 신호등은 세 가지 색이 아니나. 녹색 불은 가라는 신호이다. 오랜지색은 곧 멈추라는 신호이다. 빨강색은 절대 지나가지 말고 반드시 멈추어 기다리라는 신호이다. 우리 인생이 그러하지 않나.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 세 가지 신호에 익숙해져야 한다. 제대로 반응하는 법을 숙지해야 한다. 오랜지 색 즉 주황색 신호를 무시하면 대형사고를 부르고 만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된다.”, “호미를 막을 것 가래로 막게 된다. ”사람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고 바르게 살아가려면 반드시 해야 할 것과 절대로 해서는 않될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계명도 두 가지이다. 가령 십계명도 하라는 계명 두 가지와 하지 말라는 계명 여덟 가지로 되어 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하라고 하신 말씀은 경솔히 여기고 하지 말라고 경고하신 말씀을 함부로 취급해서 범죄에 빠지고 만다. 

 

다윗은 이 시편 19편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기 전에 고백했는지 그 이후에 정신 차리고 나서 고백했는지는 시대적으로 알길이 없다. 그러나 여하튼 다윗은 분명히 알았다. 주의 종인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고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므로 장차 큰 상을 받게 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지 않나. 상(賞)의 반대는 벌(罰)이다.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사업가이든 그 누구는 누가 벌 받기를 원하겠는가. 

 

우리가 이력서를 쓰다 보면 뒷 부분에 상벌 부분을 기록하는 난이 있다. 상 받은 기록이야 자랑스럽게 하겠지만 벌 받은 경력이 있다면 어찌 떳떳하게 기록할 수 있겠는가. 소위 호적이 붉은 줄이 그어 지는 것을 누가 원하겠는가. 우리가 세상을 잘 못 살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다윗이 고백하는 바는 그런 정도의 차원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태도로 받아 들이며 살아갈 때에 장차 상을 받게 되겠느냐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하였다. 올 한해 그리고 앞으로 평생토록 하나님 앞에 상 받기를 사모하는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벨은 형 가인에게 죽임을 당했으나 그는 하나님께 상 받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에녹은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히11:4)라고 하였다. 에녹도 여호와께 상 받은 인생이다. “믿음으로 에녹은....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11:5)라고 하였다. 노아도 여호와께 큰 상을 받은 주인공이다. 노아는 자신 뿐만 아니라 그의 여덟 가족 모두를 주 앞에서 상 받는 주인공으로 지켜 간 믿음의 가장이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警告)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히11:7) 라고 하였다. 여기에 ‘경고’라는 표현이 나온다. 노아는 홍수 시대 심판에 대한 경고를 미리 경고로 받아 들리고 심판의 날을 준비하며 방주를 건설하였다. 

 

생각하여 보라. 히브리서 11장의 수 많은 믿음의 조상들은 한결 같이 하나님께 상(賞) 받은 믿음의 주인공들이었다. 하나님께 상을 받는 주인공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나님의 말씀의 경고를 매순간마다 경홀히 여기지 않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2-14)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상들이 있다. 나라에서 주는 훈장이나 상도 있다. 세계적으로는 노벨 상이나 템플턴 상이 귀하다. 그러나 이처럼 세상을 살아가며 상을 받는 것도 귀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상 받기를 사모하여야 한다. 세상에서는 성공하고 출세하고 명예를 누리고 권력을 휘두르고 힘과 재력을 자랑했는데 하나님께는 받을 상이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 인생인가. 세례 요한의 목을 쳐서 쟁반에 담아 내오게 했던 헤롯이 하나님께 상을 받았겠나. 12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예수를 배반하고 팔아 버린 가롯 유다가 하나님께 상을 받았겠나. 예수를 십자자 처형장으로 몰아 낸 대제사장 안나스나 그의 사위 가야바가 하나님께 상을 받았겠나. 예수께 어리석게도 사형 언도를 내린 본디오 빌라도 총독이 하나님께 상을 받았겠나. 사도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떠나간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하나님께 상을 받았겠나. 이렇게 묵상해 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이왕 예수 믿으며 살아가는 것 겨우 천국 백성 되는 것으로 만족해 하지 말고 장차 하나님 앞에서 큰 상을 받는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하다.

 

요한 계시록 22장 12절에 보면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라고 하였다. 

 

요한 계시록에는 일곱 번의 복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첫째,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의 복이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둘째, 대환난 때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의 복이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14:13)

 

셋째,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자의 복이다.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계16:15)

넷째, 어린양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자의 복이다. 

“천사가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계19:9)

 

다섯째,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의 복이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계20:6)

 

여섯째,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의 복이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계22:7)

 

일곱 번째,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의 복이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계22:14)

 

큰 상을 받는 복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축원한다. 

 


허물을 깨닫고 자기 허물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경은 죄와 허물에 대하여 말씀한다. 먼저 허물(愆=건)이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것”이다. 계명에는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365가지의 내용이 있다. 이것을 범하는 것이 허물이다. 즉 선을 행하지 아니하고 악을 행하는 것이다. 성경적인 의미는 “하나님이 정하신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반대로 죄(罪)란 “해야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선을 행치 않는 것이 죄다. 성경적인 어원은 “화살이 표적을 맞추지 못하고 과녁에서 빗 나가는 것이다.”계명에는 248가지의 죄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있다. 사람의 뼈마디 숫자와 동일하다. 

구약 제사 중에서 속죄제는 주로 하나님께 대한 계명을 어겼을 때에 드리는 제사이다. 반대로 속건제는 사람과의 사이에 지은 죄로 인하여 드리는 제사이다. 속죄제는 하나님께 대한 죄에 대한 것이고 속건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허물에 관한 제사이다. 그 차이가 애매한 경우가 많아 나중에는 속죄제와 속건제를 함께 드렸다고 한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허물이 없는 인간이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죄와 허물이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그 한 인생을 결박하고 있다. 그 죄와 허물의 결박을 끊는 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권세 밖에는 없다. 다윗은“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 그 다음 절을 계속 묵상해 보면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시32:2-5)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허물이 없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죄와 허물투성이다. 그 죄와 허물을 십자가의 단번 희생 제물로 돌아가신 예수께서 대속해 주신 것이다. 이것을 깨달아 알고 주를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다. 이것이 거듭나는 길이며 중생의 길이다. 이것이 죄 사함을 받은 영생의 길이다. 이것이 천국 백성이 되는 시작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에 머물지 말고 생활 속에 적용하고 실천해서 “잘 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 받고 상급 받는 주인공들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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