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꽃 하나가...
지난 10월 7일 오전에 가까운 곳에서 큰 화재가 있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저유소의 저장 탱크 하나가 전소되었다. 주유소 140여개를 채울 수 있는 량인 440만 리터의 휘발유가 불에 탔다. 보험으로 보상이 된다지만 40억 상당의 가치가 있는 재산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고 말았다.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17시간여 만에 겨우 진화되었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허망하게 공중에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풍등(風燈) 날리기 행사에 참가했던 스리랑카 청년이 날린 풍등이 화재 현장 가까이에 떨어져서 잔디밭에 불이 옮겨 붙은 것으로 전해졌다. 불은 제대로 사용하면 좋은 것이나 잘 못 사용되거나 잘못 옮겨 붙으면 그 결과가 참담하다.
인류의 역사는 불의 역사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은 빛의 창조로부터 천지만물을 지으셨다. 빛의 창조가 무엇인가. 빛이란 곧 열인 불의 창조라고 하여도 그 설명에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빛과 열은 하나이니 말이다. 빛의 창조와 더불어 우주 공간 안에는 해와 달과 은하계의 별들로 가득 차 있다. 우주는 태양을 중심으로 한 태양계로 구성되어 있다. 태양이 무엇인가. 그것은 곧 빛이며 불이다. 태양이 빛과 열을 잃으면 이 땅의 모든 생명체는 죽고 말 것이다. 인류 문명의 발전은 인간이 불을 지펴서 사용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인류는 그 신비한 태양을 오래전부터 숭배해 왔다. 기독교의 성탄절은 태양을 숭배하던 이들의 태양절을 가져다가 예수의 탄생일로 정한 것이라고 한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곳은 베들레헴이다. 예수께서 어느 해에 태어났는지는 알 수 있다. 그러나 성경 어딜 찾아보아도 예수께서 태어나신 날이 언제인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마태복음을 비롯한 복음서는 예수의 탄생보다도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수난과 부활에 관하여 더 많은 비중을 두어 기록하고 있다.
기원전부터 로마와 이집트 등에서는 태양을 숭배하는 신화(神話)에 따라 12월 25일을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 축일로 기념해 왔다. 이는 해가 가장 짧은 동지(冬至) 이후부터 날마다 해가 조금씩 길어지기 때문에 어둠이 물러나고 빛이 힘을 얻어 만물이 소생해 나가는 계절이 다시 다가 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로마교회 대주교 율리우스 1세(Iulius I, 재위 337-352)가 그 날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선포한 AD350년부터 이 축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축제의 날로 인정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성탄절은 죄와 어둠이 가득찬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며 축하하는 날이다. 복음은 그 빛을 마음에 받아 가슴에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는 선교의 사람들을 통하여 전파되어 왔다.
우리는 이번 화재를 통하여 불의 위력을 경험하였다. 불을 잘못 사용하면 재난이 되지만 불을 선용하면 그처럼 좋은 것도 없다.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가 다 불과 관련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단(壇)을 쌓았다. 그 절정은 모리아 산 정상에서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던 장면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치켜 든 칼을 멈추게 하셨고 이삭을 살려 내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순종하는 믿음을 확인하신 것이다. 이삭은 결박된 제단의 제물의 자리에서 풀려 난 후에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철저히 체험하는 언약(言約) 백성의 길을 걸어갔다. 모세는 호렙산의 떨기나무에 불이 붙는 환상을 목격하던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노예 민족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날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다. 그리고 그 잡은 양을 가족들과 함께 불에 구워 나누어 먹고 홍해를 건넜다. 이것이 출애굽이다. 광야 생활 40년 동안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성막을 건설하고 그 안에서 양과 소와 염소를 잡아 번제(燔祭)로 드리는 제사 민족으로 늘 불을 가까이 하며 살았다. 뿐만 아니라 성소 안에는 밤마다 등잔대에 일곱 개의 불을 밝혔다. 하나님은 저들의 광야 생활 40년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해 주셨다. 성막의 불은 죄를 태우고 어둠을 밝히는 상징이었다.
사사기6-7장에 보면 사사 기드온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 하나님은 미디안의 침략을 막을 용사를 모집하게 하셨다. 32,000명이 모병되었다. 전쟁을 두려워하는 자들과 준비되지 못한 자들을 돌려 보내고 300명이 뽑혔다. 저들은 전방을 주시하며 개처럼 손으로 물을 움켜 입에 대고 핥은 자들이었다. 하나님은 기드온과 저들 300명을 세 대로 나누게 하셨다. 그리고 저들의 손에 나팔과 빈항아리를 들게 하셨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셨다. 기드온은 300명의 뽑힌 용사들에게 말하였다.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삿7:18) 미디안의 진영 가까이에 한 밤중에 접근한 기드온과 그의 군대는 동시에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 손에 나팔을 불며 외쳤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하나님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저들을 통하여 미디안을 섬멸하게 하셨다.
드보라, 사무엘, 다윗, 이사야, 에스겔, 엘리야, 엘리사, 느헤미야, 에스더, 세례 요한, 12제자, 사도 바울과 그 곁의 사람들을 비롯한 신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 가슴에 성령의 불이 임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다. 이는 지난 이천년의 기독교 역사도 마찬가지이고 오늘날도 그러하다.
불이 임해야 한다. 불을 받아야 한다. 가슴이 뜨거워져야 한다. 식은 가슴과 냉랭한 마음가짐으로는 역사에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다. 열정이 없이, 정열이 없이, 그 가슴에 불타오르는 사명감이 없이 역사에 쓰임 받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예수께서는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눅12:49)라는 말씀을 하신 바 있다. 이 불은 불화(不和)를 통하여 참된 평화(平和)의 가치를 깨달게 하시는 복음(福音)의 불이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듯이”라는 찬양이 있다. 복음의 불, 성령의 불, 사명의 불이 내 가슴에 옮겨 붙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 시대마다 가슴에 부르심을 따라 꺼지지 않는 사명의 불이 활활 타오르는 이들을 통하여 주의 복음이 이 땅에 편만해져 가게 하신다. 주께서는 누군가의 가슴에 꺼진 불이 다시 활활 타오르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성탄절에 장식으로 세상을 밝히는 그 불빛 말고 나 자신이 이 세상의 불꽃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폴란드의 피아니스트 파데레브스키( Paderewski, 1860-1941)는 첫 레슨을 받던 날 선생으로부터 “네 손은 조막손이니 아예 그만두는 게 좋겠다.”라는 말을 극복하였다. 성악가 테너 카루소(Enrico Caru'so, 1873-1921)는 처음 노래를 부르던 날“구멍 뚫린 문풍지에서 나는 소리 같다.”는 혹평을 뛰어 넘었다. 미키마우스의 창안자 월트 디즈니(Walt Disney, 1901-1966)는 처음 만화(漫畫)원고를 들고 신문사를 찾았을 때‘수준 이하’라는 말과 함께 거절당하였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는 첫 자동차를 만든 후 후진 기어를 안 달았다는 것을 뒤 늦게야 깨달았다. 대답은 불이다. 가슴에 불이 붙는 사람은 그 어떤 분야에서이든지 무언가 역할을 하고 공헌을 할 수 있게 된다. 불이 임해야 한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