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이 그 젖 먹는 자식을 혹시 잊을지라도.....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출발지로 회향하는 경우란 극히 드물다. 출발한 여객기에 기술적 결함이 발견되거나 비행 중에 해결 할 수 없는 승객의 건강 문제 이외의 사유로 회항하거나 방향을 바꾸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런데 최근에 사우디아라비아 제다공항을 출발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가던 사우디항공 여객기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였다. 한 여성 승객이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공항 터미널에 아이를 두고 혼자 비행기를 탄 것이다. 출발 후에야 혼자인 것을 알게 된 이 여성은 승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 즉시 승무원은 조종사에게 그러한 사실을 알렸고 조종사는 공항의 관제탑에서 근무하는 관제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회항할 수 있는지의 가능성 여부를 물었다. 안타까운 상황을 설명들은 관제사는 조종사의 문의에 "오케이, 공항으로 회항하라. 이런 일은 진짜 처음 겪는 일이다.”라고 그 당시의 심정을 밝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이가 딸인지 아들인지 혹은 몇 살인지는 전해지지 않았으나 어린 아이를 공항 터미널에 홀로 남겨 두고 혼자 비행기에 탑승한 엄마의 이야기는 쉽게 이해되는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그런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사야서를 읽다보면 49장에서 그런 내용의 말씀을 접하게 된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하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의 내용은 유모가 젖을 먹는 제 자식을 잊는 경우란 그리 흔하지 않다고 하셨다. 만약에 그런 경우가 있더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택한 백성들을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다.
최근에 일일이 다시 묵상하고 있는 히브리서 6장 10절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어보면 이렇다. “하나님은 공정하셔서 여러분이 이미 성도를 도왔고 지금도 계속 도우면서 보여 준 여러분의 행위와 사랑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맞다. 하나님은 인간의 그 어떤 크고 작은 일들이라도 결코 잊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반면에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악을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용서하시고 기억조차 하지 아니하시는 분이시기도 하다.
창세기 30장에는 야곱의 사랑 받던 아내 라헬이 아들 요셉을 낳는 장면이 소개되어 있다. 라헬은 자신의 언니 레아가 야곱을 통하여 여섯 명의 아들들을 낳고 딸 디나를 낳기까지 자신은 아들이든 딸이든 단 한명의 자식도 낳지 못했다. 그리고 긴긴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 답답한 나날을 살아가던 라헬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가. 그러던 라헬이 훗날 아들을 낳아서 그의 이름을 ‘요셉’이라고 지었다. 그 장면에 보면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창30:22)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서 ‘생각하셨다’는 뜻은 “잊지 않고 기억하여 돌아보아 주셨다.”는 뜻이다. 그렇다. 인생이 스스로 힘쓰고 노력하여 할 수 있는 일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 할 수 없는 것이 아들딸을 낳는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해 주신 것이다. 라헬은 하나님에게서 잊혀져가는 여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억하고 잊지 않으시고 돌보아 주신 여인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후한 은택을 덧입은 여인 라헬을 통해서 태어난 아들 요셉이 나중에 아버지 야곱과 형제들과 온 집안 식구 칠 십 여명을 먹여 살렸다. 열 명의 배 다른 형들은 항상 요셉을 못 마땅하게 여겼다. 그 이유는 어느 날 요셉이 꾼 꿈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였다. 요셉의 꿈 내용은 존귀한 자가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아버지 야곱은 언제나 요셉에게 화려하고 좋은 비단 옷만 입혔다. 그러한 아버지의 편애 또한 다른 아들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다. 결국 미움을 받던 요셉은 애굽에 팔려 갔고 노예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애굽의 바로 왕의 친위대장인 보디발의 집에 팔려 간 요셉은 그의 집 살림살이를 맡아 하는 가운데 주인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나중에 요셉은 보디발의 집안 온갖 살림을 전담하는 총무가 되었다. 노예 치고는 꽤 역량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런 그가 여주인의 성적 유혹을 뿌리친 죄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요셉은 옥에 갇힌 지 이태 후에 왕 바로의 꿈을 푸는 해석자로 발탁 되었다. 왕의 마음에 들게 된 요셉은 그 날로 애굽의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총리대신이 되었다. 왕 바로는 어인(御印)을 빼어 요셉의 손가락에 끼워 줄 정도였다.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게 된 요셉은 칠년간의 풍년과 그 후에 이어 닥칠 칠년간의 흉년을 예견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움을 받고 존귀하게 쓰임 받았다.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생각해 주신 라헬을 통해 태어난 아들 요셉은 애굽의 백성들을 흉년 중에서 먹여 살린 지도자요 아버지와 집안을 극심한 기근에서 구해낸 능력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 시작은 어머니 라헬에게서 부터였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에게 합당한 사람들을 택하셔서 잊지 않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게 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예수의 비유 가운데“하나님은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조차도 잊어버리지 않으시는 분이시다.”는 내용이 있다. 이사야서 49장에 보면,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시며 잊으셨다고 항변하며 섭섭한 심정을 아뢴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대답하신 말씀 중에 “내가 너를 손바닥에 새겼고”(사49:16)라는 말씀이 있다. 그렇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을 하나님의 손바닥에 문신하듯이 새기시고 살아가신다. 다른 곳도 아닌 하나님의 손바닥에 말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이며 특권이며 복인가. 하나님이 나의 나됨을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 두셨다니 말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준 것을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셨다가 상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마10:42)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시9:12)라는 말씀도 하셨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모습을 잘 알고 충성되게 주를 섬겼던 느헤미야는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느13:31)라고 기도하였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이달리야의 백부장이었던 고넬료에게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가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행10:4)라고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고넬료에게 전하였다.
맞다. 하나님은 크고 작은 범사를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며 기억하시는 전능자이시다. 이 세상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 같은 연약한 자를 잊지 않으시고 매 순간마다 기억하시며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사랑을 덧입고 살아가는 것이 자녀의 권세요 은총이며 특권이다.
다윗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시17:8)라고 고백하였다. 그렇지 않나. 유모는 젖 먹이는 아기를 잠시 잊을 지라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택하신 백성들을 언제 어디서나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자상하신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우리는 그러하신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보호하심 아래서 하루하루 온갖 은혜와 기적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