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두려움
강원도에서 적지 않은 면적의 아름다운 산과 들이 불에 탔다. 이번 산불은 지난 4월 4일 오후 7시가 넘은 시간에 강원도 고성군 야산에서 발생했다. 도로변의 변압기에서 튄 불꽃이 원인이라고 한다. 산불은 여덟 시간 정도 만에 고성, 속초, 강릉, 인제 등 서울 여의도 크기에 가까운 250ha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 불길은 주택을 비롯한 건물 130채를 불태웠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새카맣게 불타 버린 산야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으려면 앞으로 얼마나 긴긴 세월이 흘러가야만 할까. 정든 삶의 터전을 잃고 집이 불타 버린 이재민들의 충격과 아픔 또한 얼마나 클까. 1명이 숨지고 10여명이 다쳤다. 이재민의 수만도 4,00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물의 두려움도 크지만 이 세상에 불처럼 무섭고 두려운 것이란 없다.
우리 삼형제가 어렸을 적에 증조할머니께서 늘 타이르시던 말씀 중의 하나가 “불조심하라”는 것이었다. “얘들아. 불조심해라. 도둑은 물건만 훔쳐 가지만 불은 모든 것을 태우고 만단다.”고 설명하시고는 하였다. “자나 깨나 불조심”,“꺼진 불도 다시 보자”와 같은 불조심 포스터가 여기 저기 붙어 있고는 하였다. 불을 사용하지 않는 생활이란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것이지만 반면에 언제 어디서나 불처럼 무섭고 두려운 것도 없을 것이다.
지난 2013년 6월에 미국 애리조나에서 발생한 불은 서울 면적의 세배가 넘는 지역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는 축구장 1100여개의 면적이라고 한다. 그 불길을 잡으려고 사투를 벌이던 소방관 19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산불에 맞서는 최정예 엘리트 소방관들을 ‘핫샷'(Hotshots)이라고 한다. 그들의 영웅적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Only the Brave)가 제작되기도 하였다. 이 영화는 지난 해 우리나라에도 상영된 바 있다. 저들은 땅을 파고 나무를 잘라 경계선을 만든 뒤 맞불을 놓아 불을 끄거나 바람의 방향을 이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전문적인 진화작업을 한다. 현재 미국 전역에는 약 2,000여 명이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평소에 산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체력을 강인하게 단련하고 지나가는 불길 속에서도 버틸 수 있게 순식간에 안전 막 속으로 대피하는 훈련을 수시로 반복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을 불의 심판으로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성도는 ‘하나님을 위하여 함께 일하는 일꾼’이고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건물’이라고 말하였다.(고전3:9) 사도 바울은 이방 지역을 넘나드는 복음 전도자였던 자신을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으로 건축의 기초를 놓는 건축가라고 하였다. 그 복음의 기초를 받아들인 성도들은 나름대로 그 기초 위에 집을 지으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하였다. 그가 말하는 건물의 기초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이외의 그 어떤 다른 기초를 놓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은 그 기초 위에 각자 자기의 형편과 기호를 따라서 나름대로 집을 짓는다. 집을 짓는 재료는 ‘금과 은과 보석과 나무와 풀과 짚’등 다양하다.
그런데 문제는‘심판의 날’이 왔을 때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심판의 날이 오면 모든 것이 드러나서 각자가 한 일이 명백하게 될 것입니다. 심판의 날은 불을 몰고 오겠고 그 불은 각자(各自)의 업적(業績)을 시험(試驗)하여 그 진가(眞價)를 가려줄 것입니다. 만일 그 기초 위에 세운 집이 그 불을 견디어내면 그 집을 지은 사람은 상(賞)을 받고 만일 그 집이 불에 타버리면 그는 낭패(狼狽)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불 속에서 살아 나오는 사람같이 구원(救援)을 받습니다.”(고전3:13-15, 공동번역)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불을 견디어 낼 수 있는 집’이란 ‘어떤 믿음’을 말하는 것일까. 불을 견디어 낼 수 있는 집을 지은 사람은 상(賞)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반면에 지은 집이 불에 타 버리면 그는 낭패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바울은 불에 견딜만한 집을 지어 상을 받는 그 사람을 구원(救援) 받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맞다.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이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구원과 영생에 대하여 설명하시면서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높이 치켜들었던 광야의 사건을 예로 들었다.
민수기 21장 4절부터 나오는 내용이다. 광야 길을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험한 길로 인해서 마음이 몹시 상하였다. 백성들은 일제히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다. 원망의 내용은“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고 언제 까지 이런 하찮은 음식을 먹으며 지내야 한단 말인가.”하는 것이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셔서 백성들이 물려 죽게 하셨다. 많은 백성들이 죽어 가기 시작하였다. 다급해진 백성들은 모세에게 중보하는 기도를 간청하였다.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처방으로 알려 주신 것이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어 달고 ‘바라보면 살리라’는 것이었다. 믿고 바라 본 자는 살아남았고 의심하고 바라다보지 않은 자들은 불뱀의 독에 죽어 갔다. 성경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민21:9)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구원이 무엇이며 영생이 무엇인가를 설명하시면서 이 사건을 예로 드신 것이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이것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4-17)
예수께서 설명해 주신 구원과 영생의 길은 단순하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된다고 하셨다. 그러면 믿음이란 무엇인가. 이것이 기독교의 신비이다. 부활절이 다가 오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의 약속 가운데 복된 소식 즉 복음이 담겨 있다. 이 복음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아 영생하고 믿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게 된다고 하였다.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은 이런 믿음을 통해서 구원 받고 예수의 선조가 되는 은총을 누리게 되었다. 맞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믿는 믿음이 구원과 영생의 시작이다. 예수를 기초로 하여 불에 타지 않는 믿음의 집을 건축하고 살아가면 구원 받고 영생할 뿐만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 받고 상을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