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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이 되게 하리니.......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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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9-04-23 22:11 조회 8,394 댓글 0
 

기둥이 되게 하리니.......

 

 

예수의 제자들이 헤롯 성전을 바라다보며 그 웅장함에 경탄해 하는 말을 나누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아니하고 다 무너트려 지리라.”(24:2)는 경고성 예언의 말씀을 해 주셨다.

 

그 후에 어느 날 제자들과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올라가 앉았을 때에 세상 끝 날의 징조에 대하여 대화하신 적이 있다. 그 때 언급하신 네 가지 중요한 현상이 영적 미혹과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다. 이 네 가지는 과거나 오늘 날이나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이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24:4)

 

이는 영적 세계를 분별하여 구원 받는 자의 삶을 살아가라는 종말적인 초청의 말씀이다. 이 같은 영적 추구는 역사 속에 계속되어 왔다. 그래서 철학이 발전하고 유사 사이비 종교가 변형과 변질을 계속해 온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진리이지 논리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다. 철학은 진리를 논리 속으로 끌고 들어가서 자기 혼란과 자기 변증에 빠져 들게 하는 언어의 유희가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신학의 세계는 진리(眞理)를 진리(眞理) 되게 하는 명쾌함이 있어서 좋다. 필자도 철학의 뒤안길에서 오래도록 헤매지 않고 신학에 입문하여 젊어서부터 그 분을 믿는 믿음으로 여기까지 살아 온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물론 지식 세계의 심오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식의 세계가 귀하고 지성(知性)의 금자탑을 쌓아 가는 수고와 노력이 쉽지 않지만 영성(靈性)의 세계는 그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니 지성의 세계가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

 

일찍이 삼천년 전의 지성인이요 지혜의 왕이었던 솔로몬도 이런 부분을 명쾌하게 언급한 바 있다.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12:12) 그 이전에 전도자는 진리에 관하여 이렇게 언급해 주었다.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12:11) 그리고 나서 지성과 비교할 수 없는 영성의 삶이 얼마나 귀한 가를 실감나게 체험한 한 생애를 살았던 전도자는 권면한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12:13) 이와 같은 깨달음을 가진 사람들은 진리를 아는 기둥과 같은 인생이라 할 것이다.

 

또 하나가 전쟁에 관한 예언이다. 전쟁이란 평화와 안정이 깨져 버리는 난리(亂離)가 아닌가? 우리가 집안이나 주변의 일상생활 중에서도 복잡하고 예기치 않는 일들이 심란하게 벌어지거나 계속되면, “아니, 이게 웬 난리냐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버나드 로 몽고메리(Bernard Law Mont, 1887-1976) 장군의 책, <전쟁의 역사>에 보면 지난 9,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인간의 전쟁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전쟁의 방법과 무기의 발달, 전략과 전술과 전쟁 지도자들의 지도력 등에 대하여 수많은 전쟁을 경험했던 자신의 지난날을 바탕으로 기술하였다.

 

오늘 날도 계속하여 지구 여러 곳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전쟁의 뿌리는 미움과 시기로 인한 싸움이며 분규이다. 에덴을 떠나야 했던 아담의 가정에서 일어난 장남 가인의 차남 아벨 살해 사건은 가정에서 벌어진 전쟁의 한 사례가 아닌가.

 

전쟁을 이기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평화의 삶을 서로가 가꾸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의 기둥 같은 인생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세상 끝 날의 또 한 가지 징조가 기근(饑饉)이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못 먹어 굶어 죽어가는 인간이 얼마나 많은가. 분배의 문제인 것 같지만 그렇게 간단히 치부할 수 없는 복잡한 숙제가 바로 기근의 문제이다. 예수의 비유 중에도 부자 집 대문 밖에서 개가 헌데를 핥는 불쌍한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온다. 세상 끝 날까지 계속하여 풀어가야 하는 과제가 소유와 분깃을 서로 더불어 나누면서 살아가는 돌봄과 섬김의 기둥 같은 삶이다. 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는 이런 면에서 기둥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10:1-48)

 

또 하나가 지진(地震)이다. 우리나라도 경미한 지진이 계속되는 환경 속에 살아가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지진현상은 어디나 계속된다. 문제는 대처하는 공학이다. 그러나 예수는 지진을 세상이 끝나가는 재난의 시작일 뿐이라고 경고해 주었다.(24:7-8) 지진 전문 학자들은 사람을 죽이는 건 지진이 아니라 건물이다.”라고 말한다. 최근에 있었던 아이티와 대만과 칠레의 지진을 보라. 아이티의 지진 피해는 삼백만 명을 넘어섰다. 그 중에 사망자가 이십만 명이 넘는다. 아이티의 수도인 포르토프랭스의 건물들은 70%가 붕괴되었다. 그런데 규모와 범위에 있어서 아이티의 백배 가까운 큰 지진을 겪은 칠레의 지진 피해는 훨씬 적었다. 그 요인 중의 하나가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이다. 막상 지진이 일어난다고 하면 그 순간에 안전하게 피할 인생이 몇이나 되겠는가. 요한 계시록 312절에 보면,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고 했다. 이 말씀은 영적 지각변동이 일어나도 건물 밖으로 피신할 필요가 없는 굳건한 믿음에 대한 강조이다. 시험과 환란을 믿음으로 이기는 기둥 같은 인생을 언급하신 것이다. 이런 자들에게는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는 기둥 같은 인생이 되게 하리라고 했다.

 

제자들이 놀라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에 의해서 46년간 지어진 소위 3 성전’(聖殿)이다. 그 성전이 주후 칠십년에 로마의 티토 장군에 의해서 모두 무너졌고 오늘 날은 한쪽 편의 통곡의 벽만 역사의 잔해처럼 남아 있다. 이겨야 기둥이 되는 것이고 끝까지 견디는 자라야 구원을 얻게 된다.(24:13)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3:12)

 

-위 칼럼은 2010. 3. 14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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