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생긴 외모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외모가 매우 뛰어났던 것 같다. 70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애굽의 왕실에까지 소문이 나고 바로 왕 앞에 불려 나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성경은 사라를 처음 보는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창12:14)라고 기록해 놓을 정도였다. 그처럼 우여곡절 많던 사라를 하나님은 이삭을 낳아 키우는 믿음의 여인이 되게 하셨다.
창세기 39장에 보면 노예의 신분으로 보디발의 집에 팔려 가서 지내던 요셉의 외모를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창39:6)고 하였다. 아마도 요셉은 증조할머니 사라의 외모를 닮았던 것 같다. 그러나 요셉은 빼어난 외모를 갖고 꼴값하지 않았고 오래도록 하나님께 존귀하게 쓰임 받는 거룩한 생을 살았다.
에스더서의 주인공인 에스더는 페르시아의 왕 아하수에로의 왕비로 간택될 정도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였다.(에2:7) 그런 에스더는 외모에 집착하지 않고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신앙으로 동족을 구원하는데 앞장섰다.
그러나 압살롬은 어떤가. 그는 다윗 왕의 셋째 왕자로 태어났다. 사무엘하 14장에 보면 압살롬은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그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을 받는 자였다.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었다. 그의 머리털이 무거워서 연말마다 깎아야 할 정도였다.
압살롬은 그의 누이 다말이 배 다른 왕자요 다윗의 장남인 암논에 의해서 성적으로 수치를 당한 사건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침묵하며 지내던 압살롬은 이년 후에 양털을 깎는 자리에 여러 왕자 형제들을 골고루 초청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종들에게 왕자 암논이 술에 만취되거든 그를 죽이라고 명령해 두었다. 압살롬은 종들을 통해서 암논을 죽인 후에 그술 왕 암미훌의 아들 달매에게로 도망가서 지냈다.
아버지 다윗은 살아남은 왕자들을 만나 신하들과 서로 심히 통곡하였다. 다윗 왕은 그 사건 이후 삼 년간을 날마다 슬퍼하며 지내야했다. 어느 날 다윗은 요압에게 부탁하여 그술 땅에서 지내던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여전히 압살롬을 가까이 만나려 하지 않았다. 이년 세월이 지나도록 다윗을 뵈올 기회가 주어지지 않자 압살롬은 요압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전달하고 싶어 하였다. 그러나 요압조차도 압살롬을 상대하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압살롬은 종들을 시켜서 자기의 보리 밭 곁에 있는 요압의 보리밭에 불을 지르게 하였다. 이 사건으로 요압은 압살롬을 만나기 위해 나섰다. 그 때 압살롬은 지난 이년 동안 답답하고 초조한 세월을 보낸 자신의 심경을 털어 놓았다. 설령 아버지 다윗이 자신을 만나 자기를 죽일지라도 아버지 다윗 왕을 뵙고 싶다는 압살롬의 뜻이 요압에게 전달되었다. 오년 만에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가까이에서 뵐 기회가 찾아 왔다. 압살롬은 다윗 앞에서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절하자 다윗이 압살롬에게 입을 맞추었다.
얼마 후에 압살롬은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웠다. 압살롬은 외모가 뛰어나고 지혜도 명석하고 인기도 대단하였다. 어느 날부터 압살롬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전국의 각 고을에서 억울한 송사나 재판할 일을 가지고 왕을 만나기 원해서 예루살렘에 올라온 이들을 중간에서 직접 만나 해결해 주었다. 압살롬의 이런 일들은 백성들 가운데 소문이 났고 압살롬은 점점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하였다. 성경은 그런 압살롬의 모습을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삼하15:6)고 하였다.
사년 세월이 흘러갔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잠깐 만난 후에 헤브론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전국의 각 지파마다 정탐꾼들을 보내었다. 압살롬은 자기 곁에 이백 명의 측근들을 불러 모았다. 뿐만 아니라 압살롬은 다윗 왕의 모사였던 아히도벨로 하여금 자기를 돕도록 회유하였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반역할 계획을 주변에 전하였고 백성들 중에서 압살롬을 지지하는 백성들의 수가 점점 많아졌다.
드디어 압살롬이 원하던 날이 찾아 왔다. 다윗 왕의 전령 한 명이 왕에게 찾아 가서 압살롬이 아버지를 반역한 사실을 전달하였다. 다윗은 전령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삼하 15:13)는 말을 듣고는 왕궁을 비워두고 도망갈 길을 택하였다. 왕의 결정을 알게 된 신하들 중에 왕의 마음을 돌이키려는 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성경을 읽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 지는 장면이 나온다.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 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삼하15:30)
왕궁을 벗어나 도망하게 된 다윗 왕의 나날은 초라하고 참담했고 장래를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루하루 시간은 흘러갔고 전열을 다듬은 다윗의 군대가 압살롬의 모반 세력과 싸우기 시작하였다. 에브라임 수풀에서 마주한 그 날의 싸움은 치열하였고 그 날 거기서 죽은 자만도 이만여명에 이르렀다. 양편의 군대는 수풀 속에서 뒤엉켜서 싸움을 계속하였고 칼에 죽은 자들보다 더 많은 자들이 수풀 속에서 뒤 엉켜서 죽어 갔다. 드디어 다윗의 부하들은 압살롬과 마주치게 되었다. 노새를 타고 있던 압살롬이 황급하게 상수리나무 아래로 피신하려 하는데 그의 휘날리던 머리카락이 번성한 상수리나무 가지에 걸리고 말았다. 압살롬이 타고 있던 노새는 주인을 상수리나무에 매어 단채로 앞으로 달려 나가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을 전달 받은 요압 장군은 손에 작은 창 세 자루를 챙겨 가지고 압살롬이 매어 달려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로 달려갔다. 요압 장군이 던진 창 한 자루가 공중에 매어 달린 압살롬의 심장을 관통하였다. 그러자 요압의 무기를 든 청년 열 명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그를 쳐 죽였다. 요압의 군대는 압살롬의 시체를 옮겨다가 수풀 가운데 있는 큰 구멍에 던져 넣었다. 압살롬의 죽음의 소식을 전해들은 다윗 왕은 아들 압살롬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며 슬퍼하고 또 슬퍼하였다.
그렇게 잘 생겼던 압살롬.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던 반역의 중심인물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매어 달린 채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압살롬의 반역과 죽음은 아버지 다윗 왕에게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충격과 슬픔이 되었다. 그 후에도 하나님은 반역자 불량배 세바를 벧마아가 아벨 지역의 지혜로운 여인이 손을 통하여 해결하셨다. 얼마 후에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이스라엘에 쳐들어 왔고 다윗은 친히 부하들과 전쟁의 일선에 까지 나가 싸웠다. 연세 들어가던 다윗은 그 전쟁 중에 피곤을 크게 느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능욕으로부터 건져 주셨다.
사무엘하서가 끝나가는 23장에 보면 다윗의 이런 마지막 고백이 실려 있다.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여 그는 돋는 해의 이침 빛 같고...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벼려질 가시나무 같으니...”(삼하23:3-6)
시대가 점점 어지러워져 가고 있다. 겉으로만 웃고 있는 거짓된 무리들과 잘 생긴 외모를 뽐내며 추하고 사악한 이념에 사로잡힌 권력자 몇몇의 위선이 온 나라를 혼란의 수렁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시대가 아무리 흉용해도 우린 이걸 알아야 한다. 역사의 물줄기는 공의로 다스리시는 그 분의 손길 안에서 흘러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