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들의 거짓
성경, 시편 119편 161절에 보면 “고관(高官)들이 거짓으로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거짓말이란 “속임수의 일종으로 진실이 아닌 말을 하는 것 즉,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사실인 것처럼 말하는 것.”을 일컫는다. 정직한 에이브라는 별명을 평생토록 달고 살았던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을 지낸 에이브러햄 링컨은 “당신은 어떤 사람들을 계속해서 속일 수 있을 것이고, 모든 사람들을 잠시 동안 속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을 계속해서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요즘 모든 언론과 온 국민들이 상대방과의 이야깃거리로 삼는 것이 ‘고관들의 거짓’에 관한 내용이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이며 어디까지가 거짓의 실체인지 분별할 수가 없다. 최고 권력자마저 나서서 거짓을 감싸고 도는 것이 분명하다. 어찌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오래도록 관행처럼 살아오던 고위층의 화인 맞은 양심과 같은 거짓의 실상이 세상에 드러난 것뿐일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는 민주당과 낸시 팰로시 하원 의장이 나서서 공식적인 탄핵 조사를 개시하겠다고 그의 거짓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를 위해 결정한‘5주간 의회 정회' 조처를 둘러싸고 영국 대법원에서 치열한 법정 공방이 진행되고 있다. 대법원 심리 중에 보리스 존슨 총리는‘거짓말의 아버지’(father of lies)라는 거친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길거리에서 좌판에 상추나 들깻잎을 비롯한 채소 몇 잎을 다듬어 펼쳐 놓고 팔면서 값을 깎아 달라는 손님에게“그렇게 싸게 팔면 내가 손해 보고 파는 거다.”라고 말하는 정도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심각한 것은 고관들의 거짓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고관이란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자 행세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 아닌가. 법조계에서 위증이나 증거인멸의 죄를 가볍지 않게 다루는 이유는 그 뿌리가 거짓이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고의로 거짓 진술을 하면 위증죄(僞證罪)라는 중범죄가 성립된다. 이는 어느 나라의 경우나 마찬가지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피고와 원고의 위치가 바뀌게 될 수도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정치 생명을 완전히 끊어버리게 만든 것도 도청 사실 자체보다는 그의 거짓 진술이 결정타였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 인턴 직원이었던 모니카 루인스키와의 성적 스캔들이 탄핵 문제로까지 비화 된 것도 현직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이 위증(僞證)을 했다는 논란 때문이었다.
성경에 소개된 고관의 거짓 중의 대표적인 사건은 아마도 사울 왕의 경우일 것이다. 사무엘 상 15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사울 왕의 할 일에 대하여 명령하셨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삼상15:3)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이런 내용을 전해 들은 왕 사울은 백성을 들라임 지역으로 소집하였다. 그 수는 보병이 이십만 명인데 유다 사람만 만 명이었다. 사울은 저들을 아말렉 성에 이르게 해서 복병시켰다. 사울은 아말렉 왕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과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그 때에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한다. 그가 나를 따르지 아니하고 내 명령을 행하지 않았다.” 사무엘은 근심하면서 밤새도록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사무엘은 다음 날 아침 일찍이 왕 사울을 만나러 나섰다. 그 즈음에 사울은 자신을 위하여 갈멜에 기념비를 세웠다. 사무엘이 왕의 곁에 가까이 가자 양과 소 떼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사무엘이 “이게 무슨 소리인가”하고 묻자 사울 왕은 “무리가 양과 소의 좋은 것들을 하나님께 제사드리려고 아말렉 진영에서 끌어온 것들이라.”고 대답하였다. 사무엘은 지난밤에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 대하여 책망하신 말씀의 내용을 전달하였다.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이 말을 들은 사울 왕은 구구한 거짓말과 변명을 늘어놓았다. 사무엘은 사울 왕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완고한 태도에 대하여 책망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3)
하나님은 거짓을 미워하신다. 거짓은 심각한 죄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여 타락한 인간 안에는 거짓이 자리 잡고 있다. 거짓말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게 되고 모른다고 사실을 부인하게 된다. 아담이 그랬고 가인도 그랬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도 그랬다. 열왕기 하 5장에 보면 나병에 걸렸던 나아만 장군에 대한 일화가 실려 있다. 그는 아람 왕의 군대 장관이었다.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의 말대로 순종하여 나병으로부터 고침을 받았다. 성경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였다. 나병으로 죽어 가던 나아만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처방하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크게 화를 냈다. 집 밖에 내다 보지도 않고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라고 했으니 그 누가 기분이 좋겠는가. 나아만의 생각을 돌이킨 것을 그를 수행했던 종들이었다. 종들은 주인 나아만에게 “나병에서 고침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일인들 못 할 것이 무엇이겠는가”하고 적극적으로 권면하였다. 나아만은 순종하고 요단강물에 일곱 번 몸을 잠갔을 때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깨끗해 졌다. 그 후에 엘리사에게 다시 찾아가서 선물을 건네려고 하였으나 그는 극구 거절하였다. 나아만은 노새 두 마리에다가 흙을 잔뜩 싣고 제 나라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그동안 믿고 섬기던 우상인 림몬 신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와 희생 제사를 드리겠다는 결심을 하고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뒤를 헐레벌떡 쫓아 온 자가 있었으니 엘리사의 종 게하시였다. 게하시는 “주인이 생각이 바뀌어 선지자의 제자들 두 사람에게 건네줄 선물로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원하신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나아만 장군은 기쁜 마음으로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주고 옷 두 벌도 챙겨 주었다. 게하시는 동행했던 두 사환에게서 그 모든 것들을 건네 받아들고 자기 집에 감추어 두었다.
그리고 주인 엘리사 곁으로 가자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네가 어디서 오느냐”고 물었다. 당황한 게하시는 침착한 척 표정을 고쳐 가며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하고 시치미를 떼며 거짓말을 하였다. 앉은 자리에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손바닥 읽듯 하던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게하시를 책망하였다.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엘리사는 나아만이 고생하던 나병이 게하시에게 들어갈 것을 명하였다. 책망을 들은 게하시가 선지자 엘리사 앞에서 물러 나가자 나병이 그의 몸에 발했고 그의 온몸은 눈같이 되고 말았다.
거짓말이 짙은 안개처럼 온 나라를 뒤덮고 있는 이 혼미한 때에 게하시를 책망하던 엘리사의 책망이 어느 고관인가의 귀에 들릴 뿐만 아니라 그 무딘 양심을 벗어 버리고 진실한 자의 편으로 돌이키는 고관의 수가 늘어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일본에는 “한 마리의 개가 거짓으로 짖으니 만 마리의 개들이 사실인 듯 짖어 댄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 일본 사람들은 한일 관계의 역사조차 사사건건 왜곡해서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까지도 거짓되고 뻔뻔하게 가르치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거짓말의 위험에 대하여 이렇게 교훈하였다.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이 가면 믿어 주는체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그는 담대해져서 훨씬 심한 거짓말을 하게 될 것이고 결국은 정체를 폭로하게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