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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동행 2021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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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1-29 15:19 조회 5,052 댓글 0
 

기도의 동행

 

 

 

예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왜 늘 그렇게 기도생활에 집중하셨을까. 예수는 밤에도 기도하시고 새벽에도 기도하셨다. 예수는 평생 기도하셨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그 전날도 밤새도록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꼬박 새워가며 기도하셨다. “이 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하고 기도하셨다. 예수는 새벽까지 밤을 새워가며 이마의 땀방울에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기도하시던 중에 붙잡히셨고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로 끌려 가셨다. 예수는 기도로 그의 생을 마감하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가 무엇인가.“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고 처절하게 절규하는 기도를 하신 것이다.

 

예수는 부활하신 후에도 기도하셨다. 예수는 언제 어디서나 말씀을 증거하셨고 항상 기도하셨다. 예수는 승천하시면서도 제자들에게 성령 받기를 기도하라고 분부하셨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그 날, 수많은 무리들을 불러 모으시고 거창한 부활 기념 축제를 벌이시지 않으셨다. 예수는 부활하신 날 오후 시간을 두 명의 제자들에게 집중하셨다. 글로바와 또 한 명의 제자가 그 영광의 주인공이다. 저들이 엠마오 마을에 도착할 즈음에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예수는 아직 갈 길이 남은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글로바와 또 한 제자가 이제 곧 어두워질 텐데 엠마오 마을의 한 집에 가서 묵어가시라고 권하였다. 저들의 청을 받아들이신 예수께서 저들과 함께 한집에 들어가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글로바와 또 한 제자는 그분이 부활하신 예수이신 것을 몰라보고 있었다. 저들을 맞아들인 그 집 주인도 저들이 누구인지 그 셋 중의 한 분이 부활 예수인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와 저들 두 제자는 그 집에서 차려주는 저녁 식탁에 둘러앉았다. 그때 예수께서는 감사 기도하길 청하셨다. 다 같이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 것이다. 성경에 축사’(祝謝)하시고 라는 표현은 ‘gave thanks’ 즉 감사 기도를 드렸다는 뜻이다. 한문 성경인 <중국어성경>에 보면 축사료’(祝謝了)라고 했다.

 

축복하는 감사 기도를 하시고 예수께서 떡을 떼어 글로바와 또 한 제자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 때에 저들 두 제자의 눈이 밝아졌다. 그제야 식탁의 맞은편에 앉아 계신 그분이 부활하신 예수이신 것을 알아보게 되었다.

 

눈이 밝아지는 것은 영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글로바와 또 한 제자는 예수와 엠마오를 향하여 가던 길에 예수의 말씀을 듣던 중에 마음이 뜨거워진 것을 알았다. 예수의 감사기도 가운데 눈이 밝아진 저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알아보게 되었다. 우리가 늘 대하는 익숙한 말씀이라 그러하지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사건이고 얼마나 감격스러운 체험인가.

 

그러나 저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알아 보는 그 순간에 예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함께 계시지 않았다. 글로바와 또 다른 한 제자는 거기서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이 다시 그 밤에 예루살렘을 향하여 갔다. 베드로를 비롯한 열한 제자와 몇몇이 함께 숨어 있는 곳을 찾아갔다. “예수께서 과연 살아나셨다.”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실을 전하였다. 예수께서 엠마오의 식탁에 마주 앉아 두 제자에게 기도하지 하시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신 그 기도 시간을 우리는 알수 없다. 무슨 내용의 기도를 드리셨는지도 알 수 없다. 성경은 그 내용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일 분 정도 짧게 기도하셨는지 십 분이 지나도록 길게 기도하셨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감사 기도 후에 글로바와 또 한 제자는 눈이 밝아져서 그 분이 부활하신 예수이신 것을 알아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이 밝아진 저들이 한 일은 예수가 과연 살아나셨다고 증언하는 일이었다.

 

예수의 부활 사실을 전하고 있던 그 시간에 예수께서 그 자리에 나타나셨다. 예수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하고 문안하셨다. 저들은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면서 예수가 영으로 나타나셨나 하고 의심하면서 놀라워하고 무서워하였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24:38-39)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셨다. 숨어 있던 제자들이 기뻐하고 놀라워했다. 누가복음 2441절에 보면 그러나 아직도 믿지 못하고라고 하였다. 오늘날 나는 어떤가. 남들이 예수 부활을 믿는다고 하는데 나만 안 믿어진다고 하면 나만 믿음 없는 사람 같아 보일까 봐 말꼬리를 흐르며 나도 믿긴 믿는다고 우물쭈물 작은 소리로 대답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때에 예수께서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고 먹을거리를 찾으셨다. 그때에 누군가가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렸다. 예수께서는 다 식은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받으셔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잡수셨다. 이는 예수의 부활하신 부활이 영의 부활이 아닌 몸의 부활인 것을 확인시켜 주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말씀으로 마음이 뜨거워져야 하고, 기도로 영의 눈이 활짝 열려야 한다. 육의 눈이 보이지 않으면 세상의 아름다운 것이 보이질 않는다. 육의 눈이 어두우면 이 아름다운 삼라만상과 해와 달과 별들의 낮과 밤의 하늘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영의 눈이 열리지 않은 상태란 그런 것이다. 우리는 영의 눈이 닫혀 있는 상태에서 영의 눈이 환하게 떠지길 기도해야 한다.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안과 질환 중에 색맹’(色盲, color blindness)이란 것이 있다. 선천적으로 전혀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은 밝고 어두운 명암과 형태밖에는 볼 수가 없다. 이런 의학 상식을 접하다 보면 영의 세계도 마찬가지인 것을 쉽게 깨닫게 한다. 영의 눈이 뜨이지 않으면 영의 세계를 보지 못한다. 영의 세계에 대한 체험이 없는 이들은 영의 세계에 대하여 전혀 이해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과 타락 이후로 영의 눈이 어두어진 불행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가 누구신지 몰라 보게 되었다. 글로바와 또 한 제자의 눈이 밝아져서 부활 예수를 알아 보았다. 그들은 평생 예수의 부활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영의 세계를 깨달았다는 의미이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사흘동안 눈에 비늘 같은 것이 가려져서 보지 못하고 지내던 사울에 대한 기록이 있다. 사울은 사흘동안 못보는 상태였다. 못 보게 된 사흘동안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지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선지자 아나니아를 그에게 보내셔서 안수하게 하셨다. 그 순간에 눈의 비늘같은 것이 벗겨졌고 다시 보게 되었다. 이것이 영적인 사건이다. 영적 체험이다. 사도행전 919절의 다시 보게 된지라라는 이것은 사울에게 있어서 이전의 사울과 이후의 사울로 운명을 가르는 영적 사건이 되었다. 그 순간 이후로 사울은 이방 복은 전도자 바울로 바뀌는 순간이 찾아 왔다. 그 순간 이후로 사울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며 다녔다. 부활 예수를 전하는 사울로 인해서 그를 알고 있던 유대인들마다 당혹스러워했다. 그렇지 않았 겠나. 철저한 율법주의자였던 사울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예수 믿는 이들을 곳곳마다 찾아가서 색출해다가 처단하려 하던 혈기 등등한 유대주의자가 아니었나. 여기서 언급하는 다시 보게 되었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영의 세계를 보는 새사람이 되었다는 선언이다.

 

성경은 그 어디를 찾아 보아도 글로바와 또 다른 한 제자의 나중 행적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지 않다. 분명한 것은 부활 예수의 말씀 해석으로 마음이 뜨거워졌다는 사실이다. 예수의 감사 기도 해주시던 엠마오의 저녁 식탁 앞에서 눈이 밝아졌다는 분명한 체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 예수를 알아 보게 된 저들의 나중 생애가 어떠하였을지는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마가복음 1장은 마태, 누가복음과 다르게 예수의 그런 기도의 일상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예수는 안식일에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셨다. 회당에서 나온 예수는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의 집을 방문하였다. 그 곳에는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다. 예수는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 깨끗이 나은 베드로의 장모는 음식을 준비해서 예수와 제자들에게 대접하였다. 예수는 그 날도 제자들과 함께 베드로의 장모가 차려주는 음식을 맛있게 잡수셨다.

 

마가복음 132절에 저물어 해질 때에환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거기 저물어 해 질 때에라는 말씀은 안식일이 끝났다는 말이다. 유대인들은 그 시간이 하루의 새로운 시작이다. 예수는 그 저녁 시간에 시작해서 밤이 깊도록 모든 병자, 귀신 들린 자를 고쳐 주었다. 온 동네의 환자들이 그 집 앞에 모여 들었다. 마가복음 135절에 보면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하였다. 그 때 시몬 베드로와 몇몇의 제자들이 그 새벽에 예수의 뒤를 따라가서 말했다.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른 새벽인데 벌써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려고 몰려 온 것이다. 예수는 그런 중에서도 기도하고 또 기도하셨다. 그리고 만나는 각색병자들을 고치셨다. 귀신 들린 자의 귀신을 내어 쫓으셨다. 그리고 예수는 기도하고 또 기도하셨다. 기도의 일상을 살아가며 예수와 동행하는 기도의 아름다운 동행이 계속되기를 소원하자.

 

 

-위 내용은 2021. 1. 17. 주일 설교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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