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얼굴 모습
사람의 얼굴은 그 자신을 상징한다. 사람은 얼굴을 중심으로 이목구비가 형성되어 있다. 겉으로는 눈과 코와 입과 귀로 구분하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정교하고 복잡하게 창조된 것이 인간인가.
예수는 유대인의 혈통에서 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천 년 전에 이 땅을 다녀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외모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 미술가들의 작품은 역사 속에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라도 예수의 얼굴을 제대로 그릴 수는 없다. 역사에 전해 오는 그 수많은 성화들의 예수 모습들은 모두가 다 상상력에 근거한 것들일 뿐이다. 그동안은 한결같이 유럽 남성의 모습으로 그려져 왔다. 치렁치렁한 갈색 머릿결과 턱을 거의 다 덮는 수염과 푸르고 크고 깊은 눈과 높고 오똑한 코와 흰 피부색 등으로 말이다. 그러나 예수는 유대인의 혈통을 타고 태어나셨다. 맨체스터대학 교수였던 영국의 법의학자이며 인류학자인 리처드 니브는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이 갈릴리 호수 주변에서 발굴한 예수와 같은 시기에 살았던 3개의 셈족 두개골에 컴퓨터 단층촬영과 디지털 3D 기법을 활용해 예수의 얼굴을 복원했다.
리처드 니브 교수가 재현한 예수의 얼굴은 담갈색 눈에 수염을 길렀으며 짧은 곱슬머리와 까무잡잡한 아시아인의 피부를 지녔다. 예수가 당시의 유대인 전통에 따라 수염은 길렀을 것이지만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해 볼때에 긴 머리카락을 지니고 활동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리처드 니브 전 교수팀은 셈족 유골 분석을 통해 예수의 키가 약 150cm로 작았고 몸무게는 50㎏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예수가 30세가 될 때까지 나사렛의 목수로 생활하였기 때문에 검붉은 피부의 근육질 몸매였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리처드 니브 교수는 재현한 예수의 얼굴이 예수가 살았던 시기와 유대 지역의 성인 남자의 보편적인 모습이라고 설명하였다.
성경의 복음서들은 예수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기록하고 있지 않다. 단지 후대의 미술가들만이 갈색의 수염과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지닌 유럽인의 모습으로 예수의 얼굴 모습을 묘사하였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화가 중의 한 사람이며 장인이고 판화제작자였던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는 그 관찰이 달랐다. 17세기 중엽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화실에서 렘브란트와 그의 제자들은 최소한 8개의 예수의 얼굴을 주제로 한 일련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는 전례에 없던 일로서 그 당시 미술계의 큰 관심을 끌었다. 렘브란트의 화실은 유대인 거주자가 많았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구역에 위치해 있었다. 역사에 전해 오는 렘브란트의 예수 얼굴 그림 여섯 작품은 모두가 다 그 지역에 살던 한 젊은 유대인 남성을 모델로 하였다고 전해진다.
우리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예수의 모습을 그려 볼 수 밖에는 없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예수를 공박할 때에 예수의 제자들에게 하는 말은 “왜 너의 선생은 늘 세리나 창기들과 먹고 마시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성경의 내용을 생각해 보면 예수는 세상에서 버림 받고 소외되고 손가락질받는 이들 곁에 끼어 앉으셔서 저들이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시며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시고, 때로는 한숨도 지으셨을 것이다. 때로는 박장대소(拍掌大笑)하며 큰소리로 웃기도 하셨을 것이고, 때로는 답답하여 침묵하신 채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셨을 것이다. 베다니의 친구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신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던 것처럼 말이다.
예수께서는 삼십 세에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사십일 간의 광야 금식을 마치신 후에 열두 제자들을 부르신 것으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셨다. 그 후 삼년 여 만에 붙잡히셔서 극심한 고난과 수치를 당하시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끌려 가서 죽임당하셨다. 예수의 얼굴은 삼십 살의 한창나이 때의 모습이었으니 검붉게 탄 건강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예수의 모습이란 어떤 것들이 있나.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 강보에 싸인 아기 예수, 아마도 나귀였겠지만 요셉이 모는 짐승에 탄 엄마 마리아의 품에 안겨서 애굽으로 피신하던 아기 예수, 예루살렘 성전에서 시므온과 안나를 만나 축하받고 축복받던 어린 아기 예수의 모습, 한 해 한 해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나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시던 어린 예수의 모습, 열 두 살 때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유월절을 마치고 고향으로 가는 동네 사람들 틈에 없었던 예수, 사흘 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요셉과 마리아가 되찾은 아들 예수의 모습 등을 마음속에 그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시던 예수의 모습, 예루살렘 성전을 청소하시며 성전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으로 회복되기를 원하셨던 예수의 모습,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 음식을 잡수시던 예수의 모습,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던 예수의 모습, 식탁 맞은편에서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던 제자 가롯 유다를 바라보시던 예수의 모습, 밤새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의 모습,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제자 베드로를 바라다보시던 예수의 표정 등이 우리의 묵상 가운데 있다.
옷을 벗겨 제비 뽑는 로마의 병정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며 골고다 언덕까지 넘어지며 쓰러지며 십자가를 지고 끌려가시던 예수의 고통스러운 모습, 양손과 양발이 큰 못에 박혀 십자가에 높이 매어 달리시던 예수의 모습, “내가 목마르다”하고 말씀하시며 극한의 고통을 참아 내시던 주님의 모습, “다 이루었다”하고 선언하시며 운명하시던 주님의 모습 속에 우리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의 모습과 표정을 일일이 상상하며 읽게 된다.
예수가 장사 지낸 바 되신지 사흘 후 새벽, 하나님은 예수를 무덤에서 부활시키셨다. 무덤 문을 막고 있던 큰 돌은 나뒹굴어 져 있었고 예수의 시신을 눕혔던 그곳에는 번개 같은 형상의 눈같이 흰옷을 입은 천사가 있었다. 화가들이 그려 낸 예수의 얼굴표정 중에서 가장 빛나고 가장 화려하고 가장 경외스러운 표정은 아마도 부활하신 후의 얼굴 모습일 것이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 이렇게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위 찬송가 85장의 가사를 쓴 이는 시테오 수도원의 원장 베르나드(Bernard, 1091-1153)이다. 900년 전 인물인 그는 귀족 가문의 아들이었으며 학문이 많은 사람이었다. 한때 세상에서 방황하다가 30명과 함께 수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수도원 암자에서 견습 기간에 명상과 기도와 깊은 생각으로 영성을 닦았다. 마치 농부처럼 일하고 피곤에 지친 채로 제복을 입은 채 잠들고는 하였다. 베르나르가 주님을 뵙고 싶어 하였듯이 모든 기독교 신자들의 마음가짐은 한결같을 것이다. 주님은 요한복음 14장 3절에서 이렇게 교훈하셨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