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하신 일
주님은 하루가 천 년 같고 천년이 하루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지내놓고 보면 모든 일들은 그 분의 손길 안에 있다. 영어로 역사를 ‘HISTORY’라고 한다. 이는 ‘HIS'와 'STORY'를 합한 단어라고 한다. 그렇지 않나. 연극이 배우의 작품이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의 작품인 것처럼 말이다. 영국의 에드워드 H. 카(Edward Hallett Carr, 1892-1982)는 그의 책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라는 정의를 내렸다.
교회가 설립 된지 10년이 되었다. 십년 전인 2009년 11월 29일은 우리 공동체가 첫 주일 예배를 드린 날이다. ‘1129일’은 6.25전쟁의 기간이다. 새로운 꿈의 공동체 예수사랑교회는 전쟁의 총소리가 멈추던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던 그 날처럼 그렇게 탄생되었다. 설명하기 복잡하게 소용돌이치던 격변의 현장에서 하나님은 어미 독수리가 보금자리를 흩듯이 하셔서 그 당시에 새로운 일을 행해 가고 계셨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말한다. 요즘은 십년씩 갈 것도 없다. 매 순간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그 변화의 속도를 다 따라 갈수도 없고 그 변화의 내용을 다 알 수도 없다. 이제는 그야말로 다변화(多變化)되어 가는 시대이다. 요즘은 각 분야의 전문성이 점점 세분화 되어 가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같은 농사법으로 농사하며 지내던 시절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인지 이런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 중에는 교회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교회는 변해야 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성경의 기초 위에서 그 진리를 든든하게 사수해 가야하는 곳이다. 물론 사역의 다양화가 필요하고 요구되지만 복음의 본질은 변하면 안 된다. 복음은 변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의 본질이 변하는 것이 이단이고 다른 복음을 전해보려고 모방하는 것이 사이비이다. 천지가 변해도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의 약속에는 변함이 없다. 성령의 역사는 구약시대에도 있었고 예수의 잉태와 탄생과 이 땅에서의 삶 전체에 늘 함께 하셨다. 부활하신 예수의 몇 마디 말씀 중의 하나가 “성령을 받으라”는 교훈이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성령 안에 있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가 다 죄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아니고는 죄 사함을 받을 다른 길이란 없다. 요즘 날마다 요한 계시록을 다시 묵상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면 큰 붉은 용과 짐승으로 묘사되는 사탄마귀의 조롱을 받는 불행한 영혼이 되고 만다. 사탄에게 사로잡히면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고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장막인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는”(계13:6) 불행에 빠지고 만다.
하나님은 한 여인을 통해서 탄생하게 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탄의 권세를 괴멸하시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승리를 선물로 주셨다. 그러므로 믿음의 눈으로 보면 크고 작은 모든 세상만사는 주님의 손길 안에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때에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창15:13)라는 예언의 말씀을 해 주셨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언약 백성인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다. 말이 종이지 노예생활을 한 것이다. 그런 저들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출애굽이 가능하게 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모세는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에 쓰임 받은 자일 뿐이다. 모세는 오래도록 만날 수 없던 형 아론을 만났고 둘이 바로 왕 앞에 나섰다. 동족의 출애굽을 요구하는 모세와 아론에 대하여 바로 왕은 완강하였고 점점 강퍅해져만 갔다.
열 가지 재앙 후에 출애굽이 가능하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돌보심이었다. 출애굽기를 차근차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출애굽의 이유에 대한 모세의 설명이 나온다. 이것이 출애굽의 목적이다. 바로 왕을 만난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출5:1)라고 말했다. 그 때에 바로 왕은 “나는 여호와가 누구인지 모르며 나는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내 보내는 일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점점 더 심한 학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던 바로 왕의 학정으로부터 출애굽을 이루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출애굽의 목적이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키는 민족을 삼으시려는 것이라고 하였다. 절기를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 중심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민족으로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이시다. 맞다. 감사 신앙이 신앙생활의 기본이고 바탕이다. 감사가 떠난 신앙생활이란 상상하기 어렵다. 양이나 염소나 송아지나 비둘기를 제물로 드리고 곡물로 소제를 드리는 바탕은 감사 신앙이다. 모세의 때나 오늘 날이다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모세 때에 성막 생활과 솔로몬 때의 성전 생활을 중심으로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손이 되길 원하셨다. 그러나 광야 생활 중에는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절하며 섬겼고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바알과 앗세라를 섬겼다. 우상을 숭배하였단 말이다.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고 남 왕국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한 이유는 군사력이 부족하고 외교력이 열악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우상 숭배의 결과로 하나님의 책망을 받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막과 성전 중심의 민족으로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살아가는 말씀 민족이요 계약 민족으로 살아가길 기대하셨다. 그러나 택함 받은 저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고 떠났다. 그 결과는 가시채로 치시고 막대기로 때리셔서 돌이키려 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신약 교회는 구약 시대의 성막과 성전의 기능을 계속하는 곳이다. 예수께서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고 선언하셨다. 맞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예수는 몸된 성도들의 머리이시다. 에베소서의 교훈대로 예수는 만유(萬有) 가운데 계시고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는 만유의 주인이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유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와 영광을 드러내신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권력도 명예도 인기도 재물도 인기도 젊음도 그 어떤 자랑과 영광도 영원하지 않다. 오직 영원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 한 분 뿐이시며 주께서 이 땅의 인생들에게 선물로 주신 주의 말씀만이 영원한 것이다.
교회는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진리의 전당이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이 진리의 말씀을 깨닫는 순간이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더 추운 겨울이 다가 오기 전에 진리 안에서 예배와 감사와 기도와 섬김과 전도 생활의 활력을 회복하여야 할 것이다. 학개서 2장 9절의 말씀처럼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지난날의 영광보다 점점 더 커가기를 소망하며 첫 사랑을 회복하는 성도들의 거룩한 연합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