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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병실에 누운 두 부부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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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1-05-07 23:59 조회 15,577 댓글 0
 
지난 주 화요일 아내가 서울대학교 병원 35병동 19호실에 입원하였다. 몇 해 만에 건강검진을 한 결과 부인과에 이상이 보여서 수술을 요청 받게 된 것이다. 직경 30mm 정도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이었다. 2인실에 먼저 입원해 있던 사십대 초반 쯤 되어 보이는 창백하고 초췌한 모습의 젊은 부인은 암 수술을 하고 머리가 다 빠진 채 두건으로 머리를 가리고 입원 항암치료 중이었다. 그녀는 밤 11시가 넘어 퇴근한 남편에게 짜증을 쏟아 놓았다. “나도 365일 쉬는 날이 없이 열심히 살아 왔단 말이야...........”하면서 투정을 부리는 것을 보니 아마도 최근까지 전문직에서 종사하며 사회생활을 하던 맹렬 여성 같아 보였다. “나는 이 시간 까지 놀다가 온 것이 아닌데 내게 짜증을 내면 어찌하느냐”는 식의 달갑지 않은 반응의 대답이 남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캄캄하고 좁은 병실의 중간을 가로 막은 커튼 저 쪽에서 들려오는 부부의 이런 숨이 콱 막히는 대화가 병실의 분위기를 금방 더욱 침울하게 만들었다. 밤 12시가 다 되도록 T. V를 끌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금식하고 관장을 마친 아내는 내일 일찍 수술실에 들어가야 하겠기에 한 잠의 잠을 청해야 하겠건만 좀처럼 병실은 쉴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질 않았다. 나 또한 새벽 4시경이면 일어나서 준비하고 새벽 기도회에 다녀와야 하겠지만 잠을 잘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이 있을 수술을 준비하느라 체온을 다시 재고, 만약의 경우 수혈 준비를 위한 검사를 위해서 채혈을 다시 하고 이러 저러한 검사를 위해 병실을 드나드는 간호사의 발걸음이 새벽 한 시까지 이어졌다. 아내는 환자 침대에 눕고 나는 그 곁의 바닥에 따로 놓인 보호자 침대를 사용하였다. 나 자신의 질병이든 가족들의 질병이든 누구에게 있어서나 병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고 만다. 성경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고 했다. 피아노를 전공한 나의 아내는 나를 만난 지 5년 만에 결혼하였다. 이십대 중반부터 시작된 청년 부부의 목회 사역은 오늘날까지 28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목회자의 아내란 자리는 늘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의 오우가(五友歌)에 나오는 대나무(竹) 예찬론과 같다 하겠다.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곳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는다. 뎌러코 四時(사시)예 프르니 그를 됴하하노라.” 내가 늘 생각하는 아내의 모습은 이와 같다.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니지만 사철 푸르고 속 썩을 일 많이 겪어 속이 비어 있는 대나무와 같은 인생 말이다. 그런 아내에게 목회자요 남편인 나는 늘 마음 한 구석에 미안한 생각이 언제나 가득하다. 사역자의 아내의 가는 길이란 언제나 그런 길이긴 하지만 말이다. 한 병실 옆 침대의 주인공인 낯 설은 젊은 부인이 암과 투병 생활하며  잠시 복도에 산책을 나간 후 그의 침대의 흩어진 이브자리 위에 ‘19분’이란 소설책이 놓여 있었다. 마치도 예측할 수 없는 젊은 자신의 장래를 말하기라도 하는 분위기의 그런 소설 책 제목이었다. ‘19’분이란 소설은 몇 해 전에 미국 뉴햄프셔 주의 스털링이란 조용하고 평범한 시골 마을의 고등학교에서 일어났던 총기 난사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 진 소설이다. 그 사건으로 순식간에 열 명이 죽고 열아홉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범인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17살의 피터 호턴이란 학생이었다. 작가인 조디 피콜트는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을 소설 형식으로 접근해 들어갔다. 여성 작가인 조디 피콜트는 프린스턴에서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공부한 인지도가 있는 작가이다. 그는 이미 2003년도에 뉴잉글랜드 북어워드 상을 수상할 정도로 주목받아 온 작가이다. 그는 ‘19분’이란 책에서 그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19분’ 동안의 총기 난사 사건이 한 마을의 평화를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사회학적이고 심리적인 접근을 통해서 사건의 이면에 있는 뒤 이야기들을 추적하고 있다.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피터 호턴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17살의 남학생이었다. 그가 유치원에 처음으로 가던 날 아침 자기보다 나이 많은 남자 아이가 그의 엄마가 정성스럽게 싸준 도시락을 빼앗아서 버스 창문 밖으로 내동댕이치는 굴욕스럽고 당황스런 경험을 겪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그의 유치원과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은 결코 평탄하질 못했다. 이런 현상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주변 아이들은 그를 호모라고 놀리고 때리고 장난치고 모욕을 주는 일을 떡 먹듯이 하였다. 그에게는 어려서부터 한 동네에서 자라난 조지 코미어라는 여자 소꿉동무가 유일한 친구였다. 그런 그녀마저도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는 피터를 늘 괴롭혀 오던 아이들과 어울리며 피터를 멀리하기 시작하였다. 세월이 지나고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조지 코미어는 교내의 하키 선수인 매슈 로이스턴과 커플이 되어 지내며 공공연하게 사귀기 시작하였다. 마음 앓이를 하며 지내던 피터가 결심을 하고 마음을 담아 조지에게 보낸 이 메일이 전교생에게 공개되는 사건이 생기면서 피터는 몸 둘 바를 모르는 잔인한 청소년기의 운명의 늪에 빠져 들기 시작하였다. 피터는 어려서부터 평범한 가정에서 일상적인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다. 어항에 키우는 물고기가 불쌍하게 여겨지자 먼 바다로 흘려보내서 자유를 주고 싶다는 어린 소원으로 변기에 물고기 모두를 쏟아 부은 적도 있었다. 그런 순진했던 피터의 학교생활은 어려서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늘 최소한 하루에 여덟 시간을 그를 가두어 두는 감옥과 같은 곳이었다. 작가인 조디 피콜트는 사건의 주인공인 피터의 지난날을 그의 책 ‘19분’에서 이렇게 추적해 놓았다. “등교 첫날, 피터의 어머니는 신상품인 슈퍼맨 도시락통과 함께 그를 유치원 버스에 태웠습니다. 버스가 유치원에 도착할 즈음 그 도시락 통은 창밖으로 던져졌습니다. 자, 우리 모두는 어린 시절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대다수는 그 기억들을 떨쳐낼 수 있지만, 피터 호턴의 삶은 그런 일들이 어쩌다 몇 번 일어나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유치원에 가는 그 첫날부터 피터는 조롱, 시달림, 고문, 위협, 따돌림의 폭격을 매일같이 경험했습니다. 피터 호턴은 라커에 갇히고, 변기에 머리를 처박히고, 발에 걸려 넘어지고, 구타당하고, 걷어차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이메일이 학교 전체에 스팸 메일로 퍼지기도 했습니다. 카페테리아 한가운데서 바지가 끌어 내려지는 수모도 당했습니다. 피터 호턴의 현실은, 그가 무엇을 하든 항상 피해자가 되어야 했던 세상이었습니다.” ‘19분!’ 만약 나에게 단지 19분 만의 시간이 남아 있다면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을 더 할 수 있을 것인가. 작가는 그 시간을 “앞뜰의 잔디를 깎고, 머리를 염색하고, 하키 경기 3분의 1을 관람할 수 있다. 치과에서 이를 하나 넣거나 다섯 식구의 빨래를 갤 수 있다. 19분이면, 당신은 세상을 멈추게 하거나, 세상에 공격을 개시할 수 있다. 19분이면, 당신은 복수를 당할 수 있다.”고 풀어 간다. 그렇다.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짧은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하며, 아주 사소한 행동을 주변에 함부로 하지 않는 그런 아이들로 키워 내는 것은 가정을 지키고 이웃의 행복을 이어가고 사람 살만한 세상을 건설해 나가는 매우 중요한 시작이다. 어린 피터의 슈퍼맨 도시락을 낚아채서 버스 창문 밖으로 내어 던지는 그런 공격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아이로만 자라나도 세상은 피터 호턴의 손에서 총을 내려놓게 하고 얼굴에 웃음과 미소를 되찾아 줄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남편도 아내도 부모도 아들딸의 일상도 다 마찬가지가 아닐까........“여보(如寶)! 고생했어요. 그리고.......사랑해요.” 어른이든 아이이든 서로 서로가 그렇게 말하고 또한 그렇게 살아가는 그런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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