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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넝쿨 그늘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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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1-03-26 17:59 조회 15,099 댓글 0
 
어렸을 적 옛날 시골 마을에서는 초가집 지붕에 박 넝쿨이 우거지게 덥힌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 박 넝쿨 이파리는 꽤나 크다. 우산이나 양산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아쉬운 대로 급하게 박 넝쿨 이파리 몇 장으로 비를 가리거나 해를 가리던 시절이 있었다. 구약 요나서에 보면 니느웨 성의 멸망을 예언하며 다니던 선지자 요나가 성 밖의 동쪽 언덕 자락에 초막을 짓고 앉아서 장차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나 하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니느웨 성은 아직 어려서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만도  십이만 명이나 살던 꽤나 큰 도성이었다. 처음부터 선지자의 별 사명이 없이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던 요나였다. 그런 그가 큰 물고기 뱃속에 던져진 채 사경을 헤매며 회개의 기도를 드린 후에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다. 성경은 분명하게 증언한다. 여호와께서 물고기에게 말씀하셔서 요나를 육지에 토하여 내게 하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믿는 하나님은 자연을 향해서도 말씀하시고, 공중에 나는 새들과 물속의 물고기들을 향해서도 말씀하실 수 있는 전능자이시다. 하나님은 천신만고 끝에 다시 살게 된 요나에게 똑 같은 사명을 분부하셨다. 니느웨 성민들에게 가서 회개를 촉구하라는 것이다. 니느웨는 사흘 길을 걸어야 할 정도 규모의 작지 않은 성이었다. 요나는 하루 종일 그 성 안을 돌아다니며 외쳤다.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욘3:4)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였다. 기원 전 11세기부터 9세기경 까지 번성하던 그 곳의 인구는 약 60만 명이었다. 저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사납고 악한 민족이었다.(욘1:2) 하나님은 그런 저들에게 요나를 통해서 다가 올 심판을 경고하고 회개를 촉구하신 것이다. 요나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제 13대 임금이었던 여로보암 2세(BC 793-753)때에 활동하던 선지자였다.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을 피하여 도망치던 요나는 제비 뽑혀 바다 속에 던져졌고 큰 물고기의 배 속을 거쳐서 다시 살아난 후에 재차 선지자의 역할을 강요받게 되었다. 마음속으로는 못 마땅하지만 마지못해 니느웨 성민들에게 하나님의 심판하실 내용을 경고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악독하던 니느웨의 왕과 대신들과 온 성 안의 백성들은 짐승들까지 금식하며 물도 마시지 않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며 기도하며 매어 달리기 시작하였다. 이 사건으로 하나님은 심판을 포기하셨고 재앙을 거두어 들이셨다. 문제는 요나 자신이었다. 하나님이 니느웨 성민들을 용서하신 것이 영 못마땅하였던 것이다. 요나는 잔뜩 화가 나서 퉁명스럽게 반응하였다. 그리고 고작 자기 자신의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였다. 요나는 그 못되고 악한 니느웨 성민들이 저렇게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며 잘 사는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자기가 죽어 저들이 번성하는 꼴을 안 보는 것이 더 났겠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께 덤벼들었던 것이다. 오히려 초조해지신 하나님은 “아니,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화를 내느냐”(욘4:4, 공동번역)고 말씀하시면서 요나를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선지자 요나의 생각과 태도는 전혀 바뀌질 않았다. 그리고는 성문 밖으로 나가서 동쪽 자락 언덕에 초막을 짓고 장차 이 도시가 어떻게 되나 보자는 심산으로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 지역은 뜨거운 동풍이 불기 시작하면 무더운 열풍이 숨을 콱콱 막히게 하는 더운 바람과 먼지와 모래의 도시였다. 하나님은 사사건건 하나님께 못마땅해 하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이의를 제기하던 요나를 위하여 급하게 박 넝쿨을 예비하셔서 그늘을 만들어 주셨다. 실로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신”(욘4:2) 하나님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다. 요나는 그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이용이라도 하듯이 퉁명하고 못마땅한 반응을 계속하며 한편 감사한 마음과 크게 기쁜 생각으로 그 박 넝쿨 아래서 더위를 피하며 니느웨 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원래 요나는 선지자로 부름을 받기 전부터 이스라엘이 잘 사는 것으로 만족해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악독하게 살아가며 이스라엘에게도 늘 위협이 되는 앗수르와 니느웨 성민들이 잘 사는 것에 대하여는 못마땅한 마음을 잔뜩 갖고 지내던 장본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기독교 심리학에서 말하는 소위 ‘요나 신드롬’(Jonah Syndrome)이란 것이다. 지금 당장 나 자신이나 우리 가족들이나 우리 직장이나 사업이나 내가 속한 교회나 나라가 안정되고 행복하고 잘 되어 가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마음가짐이다. 나 잘되면 그것으로 족하지 남이야 회개하든지 말든지 벌을 받든지 말든지 잘되든지 말든지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 말이다. 오히려 선하지 못한 이웃이나 이웃 나라나 다른 민족이 번성하고 발전하는 것에 대하여 은근히 못마땅해 하는 그런 신드롬 말이다. 이는 자칫 영적 침체나 아집과 교만과 자기 우월감과 남에 대한 배타심과 증오심으로 발전하게 된다. 또한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축복의 여건들로 인하여 교만하게 행동하고 남을 무시하거나 깔보며 자신을 향한 우월감 속에 살아가는 영적 질병에 빠져 들고 말수도 있다. 요나의 머리 위에 박 넝쿨을 마련하셔서 그늘지게 해 주신 분은 분명 하나님이시다. 그것은 어찌 보면 자기가 이룬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학력이나 학위나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이나 사회적인 지위나 권력이나 명예나 그 어떤 공명심에 사로잡힌 여건들일 수 있다. 그런 박 넝쿨 그늘로 인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교만한 인간의 착각 말이다. 그 박 넝쿨의 그늘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에 벌레가 갉아 먹으면 금방 말라 버릴지 모른다. 실로 요나는 박 넝쿨의 그늘 하나로도 자신의 괴로움이 떠나가고 큰 기쁨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이른 새벽녘에 보니 그 박 넝쿨이란 것이 그렇게 만족스럽게 의지할 만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뜨거운 태양 볕이 비추기 시작하고 뜨겁고 숨이 막히는 동풍이 불어오기 시작하자 금방 혼미하여 죽을 것만 같았다. 요즘 정치와 외교계를 비롯한 기독교계의 주요 인사들에서 이런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하나님은 또 다시 화를 내며 죽고 싶어 하는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그렇게 악독한 성읍, 니느웨의 십이만 명이 넘는 어리고 어린 아기들과 가축까지라도 사랑하신다고 말이다. 나에게 박 넝쿨로 그늘을 마련해 주시는 그 분이 바로 우리를 향하여 길이 참고 용서하시며 기다리시는 사랑의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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