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북경의 자금성에서 열리고 있는 현대 공예품 전시회의 전시물 7점을 도난 당한지 58시간 만에 범인이 검거 되었다. 특별 전시 중이던 현대 공예품 중에서 도난당한 전시물은 시가 1,500억 상당이었다고 한다. 모양이 훼손된 2 점은 가까운 곳의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었다. 용의자로 검거된 범인은 자그마한 키의 28살 남자 청년이었다. 어느 P. C 방에서 붙들린 범인은 ‘돈이 궁해서’라고 범행 이유를 밝혔다. 상근 교대하는 경비원만도 240명이었고 절도 경보기 1,600개, 감시 카메라 400개가 정상 작동 중이었다는데 전시물이 도난 된 점을 당국도 의아하게 여기고 있다고 한다. 또한 중국의 언론들은 전시장의 감시카메라 등 보안시설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자동경보는 왜 울리지 않았는지, 혐의자를 발견했으면서도 왜 도망가도록 놔뒀는지, 범인은 어떻게 자금성을 빠져나갔는지, 어떻게 다음 날 도둑당한 걸 알았는지, 범인이 자금성의 입체 보안 시스템을 뚫고 어떻게 전시물을 빼낼 수 있었는지 등 일곱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보물이란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국가에서 지정하는 국보 제 1호였던 숭례문이 불탔고 현재 복원 공사 중이다. 나라나 기업이나 가정이나 개인이나 보물처럼 여기는 것들이 있다. 그 평가 기준이야 다양할 것이다. ‘보물’(寶物)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는 “썩 드물고 귀한 가치가 있는 보배로운 물건이나 예로부터 대대로 전해내려 오는 귀중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 국보 다음가는 중요 유형 문화재”등을 일컫는다. 나라의 보물을 국보(國寶), 가정의 보물을 가보(家寶)라고 하지 않는가. 보물이란 그 물건이나 대상의 희귀성, 역사성, 문화적 보존성에 따라서 그 가치를 평가하고 보존과 관리의 의미를 부여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들딸이나 손자 손녀들을 일컬을 때에 ‘우리 집 보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소중한 것을 말할 때에 보물이라고 표현하고는 한다. 성경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19-21)는 말씀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재물관과 가치관에 대하여 교훈 하신 바가 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도서가 오늘 145년 만에 겨우 우리나라로 되돌아 왔다. 그것도 반환이 아닌 대여 형식으로 말이다. 병인양요(丙寅洋擾)는 1866년(고종 3년)에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삼아 외교적 보호(diplomatic protection)를 명분으로 하여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침범한 제국주의적인 전쟁이다. 병인양요는 두 달 만에 끝났지만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돼 있던 귀중도서와 은괴 19상자 등을 약탈당하고 말았다.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보물이란 것이 그런 것이다. 개인에 따라서는 자신의 건강이나 학력이나 무슨 실력이나 가문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재력을 보물처럼 여기면서 살아간다. 물론 일정한 기간 동안 그런 것들이 위안도 되고 자랑스러운 힘도 되고 위로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다. 풀이 마르고 꽃이 시들듯이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이사야 선지자의 선언이 아닌가.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사40:6-7) 그렇다. 아무리 귀하게 자랑하는 보물과 같은 권력과 명예와 젊음과 미모와 실력과 재물이라도 다 덧없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사야의 선언은 그 다음이 멋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사408)고 했다. 120살의 늙은 모세가 임종 직전에 열두지파를 축복하는 유언을 겸한 축복기도에 보면 요셉의 후손에 대하여 “원하건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계시던 이의 은혜로 말미암아 복이.......그의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신33:13)라고 축복한 내용이 나온다. 모세는 이슬을 하늘의 보물이라고 말했다. 보물은 하늘에서 임하는 것이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아침 햇볕에 사라지는 이슬이 날마다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의 원천인 것이다. 그 이슬을 머금은 오곡백과가 자라서 결실하고 그 이슬을 머금고 자라난 들판의 풀을 뜯어 먹은 양과 소떼가 번성하는 것이니 말이다. 인간의 지혜도 그렇게 임하는 것이요 주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셨다. 땅에는 좀과 동록이 먹고 도둑이 구멍을 뚫는 것이니 말이다. 사도 바울은 신자의 마음속에 간직된 하나님 신앙과 예수의 생명이 곧 보물이라고 선포하였다.(고후4:7-15) 일단 이 보물을 간직하고 나면 이 세상의 그 어떤 우겨 싸임이나 답답한 일이나 박해나 거꾸러트림을 당할지라도 염려할 것이 없노라고 했다. 이것이 생명의 신비요 주의 은혜를 아는 자의 영광스러움이다. 성령 받은 사도들이 일찍이 예수 그리스도의 분부하심을 따라서 순교자의 길을 걸어갔고 이천년 교회 역사에 거룩한 전도자와 섬김의 사람들이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가령 한국의 현대사와 교회의 역사에 주기철, 손양원, 길선주, 이기풍, 김구, 안창호, 이상재, 이승훈, 유관순, 김활란, 한경직, 장기려 등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물은 이 땅 어딘가에 쌓아 두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그 가치를 깨닫고 녹이 슬기 전에 젊음을 바쳐서 그 숭고한 삶의 의미를 위하여 닳아 없어지는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 자체이다. 침략이 아닌 섬김과 점령이 아닌 돌봄과 소유가 아닌 사랑의 실천이 있어야만 진정으로 가치 있고 영원한 보물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알고 믿기로는 골고다 언덕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보혈의 피만이 인생을 영원으로 이르게 하는 진리를 가르쳐 주는 진정한 보물인 것이다.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의 저자로도 잘 알려진 평생 동안 인도에서 선교한 선교사 스탠리 존스(E. Stanley Jones, 1884-1972)같은 그런 생애가 말해주는 그런 보물다운 삶의 원천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보물이란 유형의 물질이 아니라 그 분의 십자가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눈물과 땀과 피 흘림 가운데 끝이 없는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사명자의 삶 그 자체인 것이 아니겠는가.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25:21. 23)라고 말씀하시는 그 분 앞에 가기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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