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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지성래목사  | 칼럼
아름다운 동행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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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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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2-12-22 22:30 조회 17,808 댓글 0
 
부흥회(復興會)란 영어로‘revival'이라고 한다. 그 사전적인 의미는‘소생, 회복, 재생, 부흥, 재기, 부활’등을 뜻하며 기독교적인 의미로는‘신앙 부흥 운동’혹은‘신앙부흥 전도 집회’를 뜻한다. 금번 부흥회는 다른 강사들에 비하여 매우 길게 집회를 인도하는 강사의 성경 말씀 선포와 삶의 주변 잡기들을 해석해 나가는 해학과 위트와 유머에 숨겨진 생활의 지혜와 교훈 그리고 자신이 살아오며 겪은 경험담 속에 담겨진 눈높이를 다양화한 집회 인도였다. 조금 촌스럽기까지 하게 걸러내지 않은 원색적인 강단 언어와 지나 치리만큼의 보기에 부담스러운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 몸짓 언어)로 인해서 어떤 순간에는 받아들이기 힘이 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열정을 다하여 무엇을 전하려는가를 이해하고 들으면 그러한 해학적인 동작들과 원색적인 언어 표현에 숨겨진 시대적인 교훈이 깨달아지기에 도전이 되었다. 자신의 성장 환경과 살아온 날들의 뒤안길에 숨겨진 우울하고 침통하고 가난했던 섬 소년의 어린 시절과 꿈을 잃은 바닷사람이었던 아버지가 늘 술에 취해 살아가시던 이야기는 듣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짠하게 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어려서 함께 어우러져 자라난 형이 청년 시절에 심장 질환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어머니와 가족들 보는 앞에서 일찍이 숨을 거둔 이야기와 26년간을 엄마 아빠의 얼굴을 몰라보며 한번도‘엄마’혹은‘아빠’라고 불러주지도 못하는 상태의 중중 장애를 가진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을 때에는 숨이 콱 막히는 숙연함을 참기가 어려웠다.
 
어렸을 적 나의 고향 마을에도 술주정뱅이 아저씨가 있었다. 나는 그 마을 아저씨가 술에서 깨어나 맑은 정신으로 생활하던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우리 집에서 교회까지 가는 중간에 그의 집이 있었는데 오가며 마주치는 그의 모습은 언제나 술에 만취한 상태였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는 마을에 살던 같은 집안의 부모와 여러 형제들 보는 앞에서 술 때문에 일찍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술이란 것이 그의 인생을 그렇게 망친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같은 성씨의 한 집안 사람이면서 대대로 하나님을 잘 믿던 그의 친척의 가정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고향의 마을 교회를 지키며 부자간에 장로의 신앙으로 자리매김하였고 그 집안의 손자는 감리교의 목사요 캄보디아의 선교사가 되어서 활력이 넘치는 선교 사역의 일선에서 존귀하게 쓰임 받고 있다. 며칠간 함께 머무는 집회 기간에“본인은 누구를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이 초등학교 시절에 신장기능이 약하여 몸이 달덩이처럼 부어오르고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닐 적이 있었다고 했다. 몸이 아파서 학교를 자주 빠지는 그를 섬 마을의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배려해 주어서 5년 만에 졸업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초등학교 시절에 멀리에 있는 이웃 마을로 교회를 다니시는 한 마을의 이웃 집 아저씨인 어느 집사님께서 간증집을 선물해 주었다. 그는 그 책을 애독하며 치유에 대한 꿈을 가지고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오늘 날은 고향의 섬 마을을 지키며 노년기를 지내시는 80대 중반의 권사님이 되신 노모님과 흩어져 살아가는 육남매 모두가 내외간에 골고루 예수를 영접하는 가족 구원의 시작이 되었노라고 했다. 그는 신장병 치료와 위암으로부터 고침 받고 살아 온 자신의 지난날이 주님의 은혜요 축복이요 약하고 약한 자신에게 함께 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고백하였다.
 
그가 마지막 시간에 남기고 떠난 한 마디는‘아름다운 동행(同行)’이었다. 그가 떠나간 후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동행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사람들은 대개 외적이고 물리적인 환경으로부터 행복과 만족을 얻으려고 한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나은 환경과 더 나은 경제 여건과 더 나은 사회적인 지위와 더 나은 그 무엇인가를 계속하여 추구하려고 한다. 물론 그와 같은 태도에서 문화가 발전하고 문명이 발전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지극히 이기적이고 배타적이며 자기중심적인 모습으로 변질되고 말지 않았는가.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므로 가정이 소중하고 가족이 소중한 것이다. 가족이 혈연 공동체라면 교회는 신앙 공동체이다. 한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주의 자녀들이 한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된 믿음의 공동체가 교회인 것이다. 성경적인 의미의‘에클레시아’라는 의미 자체가‘무엇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공동체’를 의미하듯이 성도들로 구성된 교회는 나그네 된 세상길에서 서로 한 믿음과 한 소망 가운데서 만나 더불어 살아가면서 신앙의 한 공동체를 이룩하며 서로 더불어 서로를 통해서 위로와 격려와 배려와 사랑과 우정과‘섬기고 나누고 돌보고 베푸는’(serving, sharing, caring and giving) 삶을 지속적으로 계속해 나가는 천국 생활의 모형을 이룩하는 것이다. 이것은 말씀의 힘이며 복음의 능력이다. 에녹은 주의 말씀을 따라서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노아는 주의 분부하신 말씀을 따라서 산꼭대기 위에 방주를 짓는 오랜 세월과의 씨름을 하며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아브라함은 75살 되던 어느 날 그에게 찾아 오셔서 분부하시는 여호와의 부르심 앞에 반응하고 그 날 이후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100년을 더 살아갔다. 그러는 동안에 그에게는 아들 이삭과 자부 리브가와 쌍둥이 손자 에서와 야곱으로 가족이 늘어났다. 물론 아브라함의 집 안에는 그의 양과 염소와 소와 약대와 나귀를 지키고 돌보는 수 없이 많은 종들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의 몸종이었고 자기를 통하여 낳은 아들 이스마엘과 그를 아브라함 곁에 낳아 준 하갈도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동행인이었다. 나와 마음이 맞고 뜻이 통하는 이들과 동행(同行)하는 일은 참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나와 뜻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지향하는 바가 다른 이들과 함께 가는 길은 동행이라기보다는 고행(苦行)일 수 있다. 아름다운 동행이란 행복한 동행이요 기쁘고 즐거운 동행이요 서로에게 격려와 위로와 힘과 소망을 함께 나누는 활력이 넘치는 동행이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언약 안에 부르심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신33:29)라고 하였다. 이어서 주신 말씀이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라고 하였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은 잘 살게는 되었으나 행복하지 못하고 성공도 하고 출세도 하였으나 참 행복의 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행복한 나라 부탄의 지혜>라는 책이 있다. 일본의 사이토 도시야와 오하라 미치요 이 두 사람의 공동 저술이다. 저들이 탐구한 나라‘부탄’은‘국민 총행복위원회’를 정부 기관으로 조직하여 왕이 나서서 국민들의 행복한 삶을 책임지려 하는 국가이다. 실제로 지구상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부탄은 생활수준, 생태학적 다양성 및 회복력, 공동체 활력도, 좋은 국가 행정, 문화적 다양성 및 회복력, 교육, 시간사용, 건강, 심리적 웰빙 등의 9가지 지표들을 종합해 GNH(국민 총 행복)지수를 측정하고 있다. 저들이 지향하는 것은 잘 사는 나라가 아니라 온 국민이 행복하게 사는 나라이다. 교육비와 병원비가 무료이며 어린이들이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고 노숙자가 단 한명도 없는 나라가 부탄이다. 땅이 없는 국민에게는 땅을 나누어 주고 첫 눈이 내리는 날을 휴일로 정하는 낭만이 있는 나라이다. 자연 보존을 위하여 매년 외국인 관광객 수를 7,5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런 가정, 그런 교회, 그런 세상을 가꾸어 가며 서로 더불어 아름답게 동행하는 그런 동행자가 그립지 않은가.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가 환상 중에 보았던“이리와 어린이가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는”(사64:25) 그런 아름다운 세상살이 말이다. 요한에 보았던 계시록의 환상처럼“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가에서 열두 가지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으며 하나님과 어린 양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는”(계22:1-5) 그런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동행’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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