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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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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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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3-03-02 20:16 조회 17,701 댓글 0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 누가 언제 쓴 시편인지 기록이 없는 시편 기자는 아마도 이스라엘의 헐몬산이나 그 어떤 산을 바라다보면서 이와 같은 고백을 남겼을 것이다. 나라마다 그러하지만 산은 인생에게 참으로 다양한 유익을 준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산을 바라다보면서 산을 숭배하지 않고 인간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산과 바다와 해와 달과 별을 지으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니 그 창조주의 섭리와 손길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은 마땅히 옳고 바른 태도가 아닌가. 다른 나라에도 멋있는 산과 높은 산들이 적지 않지만 우리나라에도 나름대로 동서남북에 아름다운 명산들이 적지 않다. 어려서 초등학교 시절에는 남북한의 산과 강과 섬들의 이름을 줄줄이 외우던 기억이 새롭다. 제주도의 한라산과 북한의 백두산은 남한과 북한을 대표하는 산들 중의 하나이다. 금번에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남한에 산재한 산을 중심으로 국립공원 20곳의 가치를 평가하여 발표하였다. 그 값어치가 103조 4,000억이라고 한다. 그 평가 기준은 동물과 식물과 경관을 보존하기 위해서 한 가구가 일 년 간 지불하기를 원하는 보존가치와 개인이 공원을 방문했을 때에 얻어지는 가치 등을 금액으로 계량화 한 것이라고 한다. 그 중의 으뜸이 북한산으로 그 경제적인 가치가 9조 2천 억 원이라고 한다. 재미있고 흥미 있는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살아가는 일상의 주변에 너무 좋은 것들이 널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값어치와 소중함을 별로 잘 못 느끼고 살아가는 때가 적지 않다. 아침과 낮과 저녁의 시간대를 따라서 분위기가 변하는 사계절의 아름다운 하늘과 상쾌하고 맑은 공기와 해와 달과 별들과 각종 새들과 나비들과 잠자리와 벌들이 날아다니는 자연의 축복된 하늘 공간과 흙과 돌과 이끼와 풀과 꽃과 나무와 이름조차 다 모를 각종 열매들과 냇물과 강과 바다와 물고기들과 산과 그 곳에 야생하는 들짐승들의 그 생태계가 얼마나 오묘하고 조화로운가 말이다. 산들 중에는 북한산 말고도 지리산과 설악산과 속리산과 치악산 등의 평가 가치가 차례대로 언급되었다. 누구나 다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등정해 볼 기회를 갖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 대단하고 유명한 산이 아닐 지라도 고향 마을 뒷산 만 하여도 얼마나 아름답고 정겨운가.
 
몇 해 전에 네팔의 현지인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한 적이 있다. 몇몇 교우들이 선교단으로 동행하였다. 인도에서까지 소식을 듣고 기차를 타고 멀고 먼 길을 와서 세미나에 참석하는 목회자들의 열의가 대단한 모습을 보았다. 일주일 동안 에베소서 전체를 강해하고 돌아 왔다. 돌아오기 전날에 저 멀리 에베레스트산이 바라다 보이는 경치 좋은 깊은 산길을 찾아 가서 눈이 덮인 에베레스트 산맥의 웅장함과 해 돋는 이른 아침의 그 신비한 비경을 먼발치에서나마 감상한 기억이 요즘도 새롭다. 산은 어느 곳이나 인간에게 친근감을 주고 엄숙한 마음까지 갖게 해 주는 신비감이 서려 있다. 참으로 오랜 만에 충남 공주시에 위치한 계룡산 자락에 오를 기회를 가졌다. 물론 등산 준비를 제대로 하고 간 것은 아니었지만 삼월 첫 날의 춥지 않게 느껴지는 산행의 기회가 주어져서 너무나 좋았다. 일상의 곁에서 언제나 가까이 오를 수 있는 뒷산을 등정하는 것도 맛이지만 이처럼 낯 설은 산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산언덕에 오르는 경험은 언제라도 좋고 기대가 된다. 우리나라에도 처처에 아름다운 산들이 적지 않지만 계절마다 멋이 제 각기 다른 그 풍광 좋은 산들을 자주 찾아 가 볼 기회를 별로 갖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아쉽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가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이 부쩍 늘었다. 물론 그들 중에는 생각보다 일찍이 사회생활 일선에서 퇴직한 후에 길고 무료한 나날을 산행으로 마음 달래는 이들도 없지는 않다고 하지만 여하튼 산행은 즐겁고 기대가 되는 것이다.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산도 좋고 물도 좋다는 뜻이다.
 
성경의 인물들도 산과 무척 상관이 깊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의 동산에서 살다가 뱀의 유혹으로 죄를 범한 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 동산을 떠나야 했다.(창세기 3장) 노아가 100년 동안 방주를 만들던 곳도 산의 꼭대기였고 사십일의 홍수 심판 후에 물 위를 떠다니던 방주가 머무르게 된 곳도 아라랏 산이란 곳이었다.(창8:4)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려던 곳은 모리아산이었다.(창22:2) 모세가 양떼를 치던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체험한 산인 호렙산과 그 산의 다른 이름인 시내산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의 말씀과 율법을 받은 산이다.(출애굽기 19장)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점령과 분배의 동역자였던 갈렙이 85살에 점령해 가던 곳은 헤브론의 산악지대였다.(수14:12)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하여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며 그를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피신하던 산은 감람산이었다.(삼하15:30)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영적 대결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심을 불로 응답하여 드러내신 산은 갈멜산이었다.(왕상18:25-40) 엘리야는 이 영적 승리 이후에 우상인 바알을 신으로 섬기던 선지자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기손 시냇가에서 모두 다 죽였다. 예수님이 즐겨 찾던 기도의 산이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도 기도하시던 그 산은‘기름을 짜는 틀’을 의미하는 겟세마네(Gethsemane)라고 불리는 감람산이었다.(마26:36-46) 이처럼 산은 동서고금에 인간의 삶과 깊은 연관이 있다. 성경의 인물들이 그러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산은 동서고금에 인간에게 자연의 풍요로움을 선물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요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게 하는 기도의 처소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체험하게 하는 영험한 은혜의 장소였다. 양떼를 치던 연세 80의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체험한 곳도 바로 ‘호렙’이란 산이었지 않은가.(출애굽기 3장) 시편 133편 3절에 보면 시편 기자는 형제자매들이 사랑 안에서 연합하고 동거하며 생활하는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헐몬산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고 묘사하였다. 그렇다. 이스라엘 북부에 위치한 헐몬산은 만년설에 뒤 덮여 있는 2,769 미터의 높은 산이다. 그 곳에서 부는 바람과 기후의 변화로 인하여 형성되는 헐몬산의 이슬은 웬만한 곳의 강수량을 대신할 만한 날마다 내리는 하나님의 축복이요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은택처럼 이어지는 일상적인 자연의 혜택이 아닐 수 없다. 헐몬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갈릴리 호수를 형성하고 요단강을 거쳐서 흘러내린다.

지금은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국경을 이루는 헐몬산의 물 근원은 크게 네 줄기로 나뉘어서 사방으로 흘러내린다. 바다가 없는 대륙이 존재 할 수 없듯이 산이 없는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척박할 것인가. 하나님은 이 땅에 산과 바다와 강과 들과 숲과 나무와 각종 열매 맺는 과실나무들을 통하여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누리며 살아가도록 에덴과 같은 축복을 처처에 내려 주신다. 물론 아직도 인간의 최소한의 의식주의 문제도 제대로 해결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아프리카의 여러 곳의 불쌍하고 안타까운 지구촌 이웃들의 소식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아프리카에도 탄자니아 동북부에 위치한 킬리만자로 산은 그 높이만도 5,895미터나 된다. 거대한 빅토리아 호수 곁에 위치한 휴화산인 이 산의 이름은 스와힐리어로 ‘번쩍이는 산’이란 뜻이다. 온갖 동식물과 광석의 보고인 킬리만자로 산의 주변 강수량은 1,778mm에 이른다. 이 산을 중심으로 하는 주변 들판과 산자락에는 커피, 보리, 밀, 설탕, 바나나, 옥수수, 콩, 목화, 감자 등의 농사가 잘되는 지역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주변의 건조한 지역의 강수량은 생활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편 기자의 고백을 다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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