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밴드에 공유
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칼럼    |  지성래목사  | 칼럼
내게 남아 있는 것으로 2014. 3. 16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으로 보내기
  • 밴드로 보내기
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3-16 00:26 조회 13,894 댓글 0
 
내게 남아 있는 것으로
 
 
소치 동계 올림픽이 끝나고 요즘은 패럴림픽(2014. 3. 7-16) 기간이다. 패럴림픽Paralympic은 신체와 감각 등에 장애가 있는 운동선수가 참가하는 올림픽이다. 장애인 올림픽이라고도 한다. 대회 초기에는 별도의 장소에서 개최되었으나 1988년의 대회 이후부터는 매 4년마다 올림픽이 끝나고 난 후 같은 도시에서 개최된다. 본래 패럴림픽은 척수장애자인 양하지마비자들의 경기로 시작되었기 때문 하반신마비를 의미하는 패러플리지아paraplegic과 올림픽Olympic의 합성어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하반신 마비 이외의 다른 각양의 장애가 있는 선수들도 참여하게 되면서 현재는 그리스어의 전치사 ‘para’(옆의, 나란히)를 사용하여 올림픽과 나란히 개최되는 경기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하계대회는 종목이 다양하다. 반면에 동계 대회에서는 알파인스키,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 아이스슬레지하키, 휠체어컬링 등의 경기가 열린다. 패럴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척수장애, 절단 및 기타 장애, 뇌성마비, 시각장애인 등이다. 우리나라의 알파인스키 참가 선수인 박종석은 올해 47살이다. 지난 2000년에 추락 사고를 하반신을 크게 다친 후에 좌식알파인스키 경기에 도전하여 세계 랭킹 12위의 성적을 보이고 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 2017년에는 51살이 되지만 “최선의 노력과 자기관리로 반드시 참석하여 좋은 성적을 내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세계의 참가 선수들 중에는 두 다리가 없는 상태에서 썰매에 몸을 묶어 싣고 아이스슬레지하키를 하는 선수도 눈에 띈다. 한쪽 다리와 한쪽 팔이 없는 몸으로 균형을 잡고 알파인스키를 타는 이도 있다. 매우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을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 감사하며 사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좌절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야곱은 형님 몰래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 기도를 먼저 받았다. 야곱은 형 에서의 미움을 사서 더 이상 아버지의 집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형 에서가 동생을 죽이겠다고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야곱은 아버지의 집에서 도망 친 후에 루스 들판에서 고단하게 잠을 청하다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였다. 베개가 없음으로 돌덩이를 끌어다 베고 깜빡 잠이 들었다. 그 밤에 환상을 본 것이다. 하늘 문이 열리고 사닥다리가 땅에 닿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였다. 저 하늘 꼭대기에서 하나님의 하시는 말씀도 들었다. 그 날 이후로 야곱에게 남아 있는 것은 자신의 몸뚱이 하나뿐이었다. 더 이상 아버지의 집에서 분깃을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다. 루스 광야에 누운 한 밤 중의 야곱에게 남아 있는 것은 그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인 ‘언약의 말씀’ 뿐이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의 전부였다. 물론 젊었고 건강하였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붙드는 불붙는 정열이 남아 있었다. 야곱은 그 남아 있는 것으로 일어선 것이다. 그러나 야곱의 처가살이 20년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런 야곱은 노련한 족장이며 양과 염소와 소와 약대를 치는 목축의 대가인 장인 라반의 온갖 살림살이를 위하여 20년을 한 결 같이 지내야 하였다. 라헬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칠년을 수일같이 지낼 정도의 야곱이었으니 그에게 남아 있던 그 기질, 그 태도, 그 성품, 그 마음가짐을 당할 자가 없었다. 세월은 지났고 야곱은 레아와 동생 라헬 그리고 저들의 두 몸종들을 통하여 자그마치 12아들과 외동딸 ‘디나’까지 13남매를 낳아 키울 수 있었다. 야곱은 얍복강의 고독한 기도를 통하여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도 받았다. 그 아들 중의 요셉을 보라. 꿈이 많았을 뿐 배 다른 10명의 형들 틈바구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그가 결국은 양 치는 들판에 형들 면회 갔다가 붙들려서 빨가벗겨진 채로 애굽의 노예 시장에 팔리어 가야 했다. 그 순간 요셉에게 남아 있는 것은 그의 몸뚱이 하나 밖에 없었다. 애굽으로 팔리어 가던 노예 소년 요셉에게 남아 있는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과 그가 아버지의 집에서 꾸었던 꿈이었다. 자기의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절하던 꿈,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절하던 꿈 말이다. <돈키호테 희망을 잡다>라는 책이 세간의 화제다. 저자인 이정한(1957-)은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생활해야 했던 가난과 불행을 딛고 이일 저일 끝에 40이 넘은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그런 행동을 무모하다고 비웃으며 ‘돈키호테’라고 했다. 그런 미국 생활을 열심히 노력해서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유펜, 컬럼비아 같은 명문 대학에서 경영, 미술, 교육학 등 3개의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서 박사 학위도 받았다. 그러는 동안에 13년 세월이 흘러갔고 나이도 많이 먹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미국 뉴저지 주립대학인 스탁튼 대학의 미술대학인 비주얼 아트 스쿨의 정식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시내의 벽화도 그렸다. 어려서부터 꿈이었던 미술 작업을 계속하여 개인전 10회, 단체전 100회 이상의 작품 출품도 하였다. 그는 어려서 고아원에서 지낼 때에 밖에 나가서 바가지에 먹을거리를 얻어 왔다. 그 때는 그것이 고아원 생들의 일과였다. 추운 겨울 바가지 안에 보리밥이 김치와 뒤범벅이 된 채로 꽁꽁 얼어 있었다. 그나마 다 먹어 버리면 다음 날 아침에 먹을 것이 없으니 조금 남겨서 숨겨 두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면 누군가가 밤에 훔쳐 먹어 버리고 빈 바가지뿐이었다. 그의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의 유학 생활도 만만치는 않았다. 주일 날 한인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한인 교포들 사이에 끼어 앉아서 먹는 한국 음식 맛이 꿀맛이었다. 그의 도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사십이 넘은 나이에 미국 대학 강의실에 들어가 앉았으나 영어가 들리지 않아서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던 그가 오늘 날 그처럼 성공한 비결은 바로 그의 넘치는 절대 긍정 에너지였다. “하나님 안에서 매사가 잘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모든 일은 결국 이루어진다.” 이것은 그의 신앙이었다. 마치도 “내게 능력 주시는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는 말씀을 현실로 보는 듯하다. 또한 그에게는 남다른 친화력이 있었다.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친구로 만들어버리는 능력 말이다.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겨서 한번 맺은 인연은 끝까지 이어가는 탁월함이 있었다. 그는 그런 추진력으로 몸담고 있는 스탁튼대학에 항공대를 설치하기 위해 보잉사의 협력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남미 페루에 제2의 한국 건설을 목표로 페루의 5개 시(市)와 M. O. U를 맺기도 했다. 이제 그는 세계를 뛰는 국제적 리더를 꿈꾼다. 그의 책의 부제는 이렇다. <고아 소년 미국대학교수 되다> 역사학자 헤겔은 “역사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내게 주어진 분깃, 내게 남아 있는 나만의 그 무엇을 갈고 닦으면 돌도 옥이 된다. 이에는 남녀의 구별이 없다. 에스더는 부모를 일찍 잃고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의 도움 가운데 성장하였다. 저들 남매는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쳐들어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끌어 갈 당시에 함께 사로 잡혀 갔던 이스라엘의 젊은이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불안한 운명 가운데 던져진 저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하는 믿음 하나뿐이었다. 그런 환경 가운데 성장한 에스더가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지난주일 오후에 농인교회의 창립 감사예배에 참석하여 말씀을 전하였다. 그런 환경에서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 같은 인물이 역사 속에 이 땅을 살다 간 것은 가히 놀라운 일이며 큰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위대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것이 그녀에게 남아 있는 것의 힘이었다. 하나님은 그녀를 붙들어 쓰신 것이다. 아니, 그녀는 절망적인 환경 가운데서 그 남아 있는 것들로 하나님을 꼭 붙들고 살아간 것이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지성래목사
담임목사소개
설교문
세미나글
사역일지
출판도서소개
언론관련 글과 영상
활동사진
동영상
상담코너
사역동향

교회소개

교회연혁

주일설교

성가대찬양

교회앨범

이달의행사

행사동영상

선교지현황

섬기는분들
전체 최신글
꿈 꾸는 것 같은 날..최고관리자
"너 축복 하시려고"최고관리자
"꿈꾸는 것 같은 날..최고관리자
"내 주 예수 주신 ..최고관리자
"내 주 예수 주신 ..최고관리자
염려와 감사(마6:2..최고관리자
"감사해"최고관리자
"바울의 소식"최고관리자
"염려와 감사"최고관리자
"누군가 널 위해 기..최고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