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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 2014.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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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9-14 00:31 조회 13,619 댓글 0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
 
 
우리말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참으로 오랜 만에 그런 장면을 목격하였다. 둘레길 산책 중에 옆 동네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누군가가 잘생긴 진돗개를 데리고 산책 중이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앙앙 거리며 요란하게 짖어 대는 강아지 소리가 났다. 길 맞은편에 중년의 아낙 두 사람이 작은 마르치스 종의 애완견을 줄에 매어서 데리고 개인 주택 울타리 밖의 화단가에 쭈그리고 앉아서 한담(閑談) 중이었다. 그 때에 길 건너편에 품위 있게 주인과 함께 산책 중이던 그 진돗개를 보고 그 어린 애완견이 그렇게 앙앙거리며 짖어 댄 것이다. 그야말로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짖어 대는 장면을 생생하게 목격한 것이다. 마침 그 상황에서 진돗개를 눈 여겨 보았다. 그 진돗개는 짖어 대는 애완견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면서 가소롭고 귀엽다는 듯이 전혀 표정에 변화나 행동에 동요가 없이 잠시 가던 길을 멈추어 서서 길 건너편에서 짖어 대는 강아지를 응시하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주인과 함께 여유롭게 어디론가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세상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범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래서는 앙앙거리고 짖어 대거나 멍멍거리고 짖어 대면 세상이 다 자기의 큰 소리 앞에 잠잠해 지리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사실은 자기 자신은 범이 아니라 하룻강아지일 뿐이면서도 말이다. 다윗 때에 이스라엘에 쳐들어 왔던 블레셋의 골리앗이 그런 장수였다. 엘라 골짜기에 나타난 소년 다윗이 손에 물매와 막대기를 들고 블레셋 진영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었다. 그 때에 다윗의 주머니에는 시내에서 주운 매끄러운 물매 용 돌 다섯 개가 있었다. 다윗을 바라보던 골리앗이 그를 업신여기며 말했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 왔느냐” 그리고는 저주의 말을 쏟아 내기 시작하였다. 다윗을 위협하는 골리앗의 목소리는 컸고 우렁찼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에게 주리라.” 이 장면에 보면 골리앗은 스스로를 다윗 앞에서 ‘개’로 비유하였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느냐”고 말했다. 골리앗은 다윗이 던진 물매 돌에 맞아 죽고 말았다. 골리앗은 키가 엄청나게 큰 거인이었다. 거인이라도 죽을 땐 죽는다. 그는 스스로 ‘개’ 운운하던 그 모습으로 죽었다. 골리앗을 향한 다윗의 말은 이랬다. “너는 칼과 창으로 나아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간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은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하다.” 골리앗의 곁에 다가간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그의 칼집에서 빼내어 그의 목을 베어 가지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 왔다. 전쟁은 끝났다. 이 날 이후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역사에 다윗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전해졌다. 그리고 삼천 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도 우리는 성경 속에서 다윗의 이야기를 대한다. 자신이 범이라고 착각하며 “왜 나를 개로 여기느냐”고 반문하던 골리앗, 그는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나아갔던 다윗 앞에는 여전히 하룻강아지에 불과하였다. 인간은 절대로 범이 아니다. 인간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요 생각하는 갈대이다. 거대한 문명을 발전 시켜 온 인간의 잠재력이 대단하지만 그래도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다. 예수는 인간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라고 규정하고 그에게로 초청하였다. 그 분에게로 돌아가야 안식이 있고 진정한 쉼이 있다.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 범이 되려고만 하지 말고 영원한 반석이요 요새요 피할 바위요 산성이신 전능자의 품 안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분의 손길 안에서 살아가야 범의 위협이라도 당황해 하지 않는 ‘신(神)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구원은 그 분의 자녀가 되는 권세이니까 말이다. “영접 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라고 하였다. 세상에는 왕이 되었으니 자신이 범이라고 여기고, 권력 꽤나 가졌으니 자신이 범이라고 착각하며 사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또 어떤 이는 굉장한 부를 이루고 국가적인 경제의 거성이 되었으니 자신은 하룻강아지가 아니라 범이라고 자부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창세기에 보면 요셉의 배 다른 열 명의 형들이 한 때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았었다. 가나안에서 아버지 야곱의 곁에서 포근한 양털을 깔고 지내던 요셉의 형들은 오래도록 자신들이 범이라도 된 듯이 오만한 처세를 하며 지냈으나 타국에 노예로 팔려 갔던 요셉은 그 동안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요셉은 30살에 총리가 되어 110살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때까지 애굽의 총리였다. 그에게는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그 자신도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하는 나날을 살아가려고 마음 속 깊은 곳에 ‘하나님 의식’ 즉 ‘신 의식’(神 意識)을 벗어나지 않고 살아갔다. 요셉은 평생을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살아간 ‘신전의식’(神前意識)의 표본인생이었다. 동서고금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항상 범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왔는가. 모세 때의 바로 임금이 그랬고,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는 길을 막아섰던 아말렉이 그러하였다. 선지자 엘리사 때의 아합 왕과 이세벨이 그러하였다. 열왕기 하 9장 이하에 보면 기름 부음을 받은 예후는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의 왕 아하시야를 차례대로 처치하였다. 예후는 자기 앞에서 도망하던 요람의 뒤에서 활을 당겼고 그 활은 요람 왕의 잔등에서 그의 염통을 관통하였다. 요람은 병거 가운데 엎드러지고 말았다. 예후의 공격을 우습게 여기며 눈 화장을 짙게 하고 머리를 꾸미고 창가에 앉아 있던 이세벨에게 죽음의 순간이 찾아 왔다. 그녀 곁에 있던 두어 내시들은 예후를 보는 순간에 “그를 내려 던지라.”는 명령을 듣기가 무섭게 이세벨을 들어서 창밖으로 던졌다. 이세벨은 두골과 발과 손 이외에는 찾기조차 어렵도록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 성경은 연이어 선지자 엘리야의 예언을 인용하며 역사를 설명하였다.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으리라.”(왕하9:36) 한 시대 불의(不義)의 대명사였던 아합에게는 칠십 명의 왕자들이 있었다. 저들은 한 시대 자신들은 범이라고 여기며 세상을 활보하던 자들이었다. 그런 저들이 하루 한 자리에서 붙잡혀 죽임을 당했고 저들의 머리는 광주리에 담겨 이스르엘 예후에게로 보내졌다. 이 세상에 영원히 큰 소리 칠 수 있는 범이란 없다. 그러므로 자신을 범이라고 착각하며 만용과 교만 가운데 살아가면 안 된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5권인 <로마 세계의 종언>에 보면 기원전 753년에 시작되어 1,229년간의 역사를 이어 가던 로마가 주후 476년에 멸망하였다는 사료를 자세하게 언급하며 역사를 풀어 간다. 저자의 강조는 이렇다. “로마는 망한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서서히 사라지고 말았다.” 애굽의 바로나 바벨론의 느브갓네살도 대단한 범은 못되었다. 천명의 귀족과 더불어 술잔치를 벌이며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간 금 그릇까지 가져 오라 해서 주흥을 즐기던 벨사살 왕도 영원한 범은 아니었다. 그 밤에 벽에 나타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란 글씨를 보며 충격을 받은 것을 끝으로 벨사살은 그 밤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한다. 다니엘은 이 진리를 알았다. 그래서 감히 왕에게 충고하였다. “성전 그릇으로 술 마시고 우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단5:23) 헬라의 알렉산더도 로마의 시이저도 영원한 범은 못되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범도 다루시고 하룻강아지도 아신다. 그 분은 실로 모든 것을 아신다. 사실은 그 분이 무서운 분이시다. 시편 2편에 보면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복이 있도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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