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살짜리가 받은 교통 위반 벌금 4불
국제 뉴스에 따르면 지난 9일(현지시간, 2014. 3. 9) 미국의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어린이용 고급 자동차를 몰던 2살 난 여자 아이 자다리야 미샤가 경찰에게 교통위반 딱지를 발부받았다. 미샤는 이날 어린이용 고급 자가용을 몰고 가족들과 함께 산책을 나섰다가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지역 잭슨빌 경찰이 싸이렌을 울리며 경광등을 켜고 아이를 쫓아왔다. 경찰은 검문 후에 우리 돈 4,200원 정도인 4달러짜리 교통위반증을 발급했다. 경찰관 크리스찬 벨라스코는 “동료와 함께 지역을 순찰하다 한 어린 아이가 자동차를 과속하는 것을 봤다”면서 “자신을 잡아보라고 장난을 치며 도망가기에 교통 위반 범칙금을 발부했다”며 웃었다. 마침 이 장면을 지켜보며 촬영한 미샤의 삼촌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경찰과 이야기 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어린 조카 미샤는 예외이었고 정말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실제로 미샤는 엄마에게 요청해서 벌금 4달러를 해당 교통국에 납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마약, 총기 소지 문제 등 국가적으로도 쉽게 해결 하지 못하는 심각한 난제難題들을 안고 있는 미국이란 나라의 엄정한 법의 힘과 질서 의식을 보게 하는 한 장면이 아닌가. 물론 미국도 건국 초기와 발전기에 흑인 노예 문제 등 반 인륜적인 복잡한 문제들 앞에서 팽팽한 이견異見을 갖고 씨름한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히 오늘 날의 미국 사회는 과거와는 다르지 않나. 사람이 이처럼 어려서부터 자신의 행위에 따르는 상賞과 벌罰의 가치를 잘 깨달아 구별하고 알도록 가르치고 교육하는 것은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국가적으로 0.1%에 속하는 자리에서 활동하는 정치, 법률, 경제, 의료, 교육, 문화, 체육, 예술, 군사, 외교 등 각 분야의 유명한 지도층 인사들 중에서 간 혹 반인륜적인 범과나 자기 관리의 실패로 추락하는 이들을 보라. 자신이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망신을 당하고 가문이 수치를 당하는 사건들을 볼 때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단편적인 존재인 가를 깨닫게 된다. 더군다나 죄 앞에서 무너져 버리는 인간의 부족함을 대할 때에 더욱 그런 마음이 든다. 성경의 인물 들 중에서도 그런 일화는 넘쳐 난다. 에덴동산에 창조 받은 아담과 하와 부부를 보라. 아내 하와가 사탄인 뱀의 유혹 앞에 무너지고 남편 아담이 따라서 무너져 가는 장면 말이다. 그들을 통해서 태어난 첫째 아들 가인과 동생 아벨의 사이에 형이 동생을 죽여 버리는 살인의 장면을 보라.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창조의 원 모습과 원 기대는 죄와 악 앞에서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인격의 창조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이는 인간에게 부여 된 자유 의지와 지정의知情意의 건덕한 관리라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고 어려운 것인가를 교훈 삼게 하는 장면들인가. 홍수 시대를 예비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그 긴긴 세월 동안 묵묵하게 산꼭대기에 방주를 건설하던 때의 노아의 모습을 보면 그 시대에 그 만한 위인이 없었다. 그런 노아가 홍수 후에 포도 농사를 지었고 그 포도주에 만취해서 하체를 드러내 놓고 잠이 들어 버린 장면은 쉽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빛이 오면 어둠이 사라지지만 어둠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그 어둠이 빛을 싫어하여 숨기 때문에 스스로 어두워지고 죄에 속하고 만다. 이는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에서 증거한 복음서의 말씀이 아닌가. 요한복음 9장에 보면 맹인에게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서 그의 눈에 발라 주시면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시자 그 말씀에 순종한 그 맹인이 가서 씻고 눈이 밝아져서 예수를 찾아 왔다. 그 치유의 기적 바로 직전에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9:5)는 말씀을 하셨다. 예수께서 계신 곳, 예수께서 계신 동안에 그 분이 세상의 빛이란 말씀을 하신 것이다. 우리는 대개가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잘 알고 암송하기도 한다. 그러나 곧 이어서 하신 말씀의 내용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로 보내신 그의 아들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그의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세상을 구원하려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 ‘정죄’定罪란 이런 것이다.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함으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다.”(요3:19) 부모는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각종 학문을 접하게 하고 공부 많이 하게 해서 사회생활의 각 분야에 우수하고 뛰어난 인재들로 자라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성공 혹은 출세에 혈안이 된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위험하다. 미샤 같은 두 살짜리 어린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 든 교통 위반 범칙금 4불. 그것도 중요한 인생 경험이긴 하지만 평생을 살아가면서 지켜야 하는 법질서와 규약과 제도와 법도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나면 더욱 더 그리하다. 2살짜리 미샤 스스로는 자신의 경제력이나 능력으로 4불의 벌금을 해결한 힘이 없다. 엄마가 해결해 주니 해결 된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2-15)고 하셨다. <기독교의 기본 진리>리는 존 스토트의 책에 보면 ‘죄의 실상과 성격’이란 주제의 묵상 중에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리고 그가 인류를 위하여 하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정리하면서 나중에는 십계명에 관한 묵상에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가서 19세기 영국의 그 유명하였던 설교가 스펄전이 14 살 때에 깨달았던 신앙의 면모를 소개하였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위엄과 나의 추악함’이란 그의 어렸을 적의 글에서 공포와 참회의 심경을 기록하였다. “나는 불성실하고 부정직하고 욕 잘하는 다른 소년들과 같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율법 즉 십계명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났다. 나는 십계명의 말씀을 대하는 동안에 그것들은 모두 함께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나를 정죄하는 것 같이 보였다.” 그렇다. 교통경찰이 다가오면 나의 교통 법규 위반 행위를 지적하듯이 높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의 수많은 죄를 깨닫게 해 준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은 내 스스로 해결 할 수 없는 죄의 무게를 2살짜리 어린 미샤의 엄마처럼 다가와서 해결해 주신다. 이것이 죄 사함이요, 이것이 복음이요, 이것이 구원이 아닌가.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신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선언 안에 죄 사함과 영생의 길이 활짝 열려지며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의 휘장이 둘로 찢기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기독교의 경전이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이와 같은 교훈을 말씀하는 내용들이 적지 않다. 가령 모세를 통한 율례와 법도와 규례와 계명의 그 모든 바탕은 ‘하라’ 혹은 ‘하지 말라’는 두 가지의 큰 틀 안에서 인간의 삶의 바탕을 교훈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들로 가득하다.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되어 있는 십계명의 교훈이 강조하는 바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우상을 만들거나 우상에게 절하거나 섬기면 삼사 대에 이르도록 그 죄의 값을 묻겠다고 하셨다. 반면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사랑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구원 받은 자의 축복과 영생의 시작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