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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지성래목사  | 칼럼
하나 2014.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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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8-22 06:29 조회 13,708 댓글 0
 
하나
 
 
하나는 모든 것의 시작이다. 세상 창조의 시작도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 부터였다. 몰론 그 분 안에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만 말이다.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땅이 혼돈과 공허 가운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에 한 분이신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고 계셨다. 어둠을 삼키는 빛의 창조로부터 엿새 동안의 우주 삼라만상의 창조가 이루어 졌다. 죄는 하나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죄가 들어오면 분리되고 나뉘게 되어 있다. 에덴동산의 사탄인 뱀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으로부터 나누이게 했다. 인간의 마음속에 불순종의 죄가 들어오면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누이게 된다. 어둠은 빛으로부터 나누이고 악은 선으로부터, 거짓은 진실로부터 나누이고 만다. 죄가 들어오면 사랑하던 부부라도 나누이게 된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노아 시대 이후에 다시 번성해 가던 인간들이 동방으로 이주하며 살기 시작하였다. 그 때까지 인류의 언어는 하나였다. 그런데 시날 평지에 모여든 인간들이 벽돌을 굽고 역청을 준비해서 성읍을 건설하고 탑을 쌓기 시작하였다. 저들은 그 탑을 하늘 꼭대기 까지 쌓으려는 의욕을 보였다. 인간은 단합된 힘을 보이며 저들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인간의 소행을 곱게 여기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저들이 쌓던 탑 공사를 곤란하게 막으셨고 저들이 지면에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살아가도록 하셨다. 그 날 이후로 인간의 언어는 각기 다른 언어로 혼잡해져 가기 시작했다. 오늘 날 인류가 사용하는 언어의 수는 6,528개라고 한다. 이는 바벨 탑 사건 이후로 인간이 겪는 분리의 심판이요 소통의 한계로 인한 형벌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는 사도행전 2장의 성령 강림과 방언을 바벨탑 이후의 하나 되는 언어 소통의 장으로 해석한다. 저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고,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 됨과 나누임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다. 세상에는 하등 종교에 붙잡힌 이들도 많고 무신론자도 있고 진화론을 신봉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피조물에 신적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저들 나름대로의 일정한 신앙 체계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화권에 따라서는 어떤 이들은 소나 뱀이나 코끼리나 개구리나 호랑이나 원숭이와 같은 동물을 숭배하기도 한다. 바다나 산이나 거대한 고목이나 큰 바위에 신앙적 의미를 부여 하고 그걸 그대로 믿고 사는 이들도 있다. 혹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면 전부이고 현세 중심의 삶을 살아가면서 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진화론을 믿는 이들은 영국의 찰스 R.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의 이론을 따른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1703-1791)가 1791년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갔으니 찰스 다윈이 어느 시대 쯤 인물인지 비교하기에 어렵지 않다.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는 노예제도를 반대하던 진보 성향의 박물학자였고 그의 아버지는 의사였다. 그가 8살 때에 어머니가 죽자 세 누이들의 손길에 의해서 성장했다. 당시의 영국은 종교 개혁기를 거친 이후였다. 그러나 그는 영국의 전통을 갖고 있는 성공회 안에서 자라났고 그의 여섯 남매인 형제자매들은 모두 성공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박물, 식물, 조개, 광물 수집에 취미가 많았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대를 이어 의사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곤충을 채집하거나 동물을 관찰하는 데 더 큰 흥미를 갖고 있었다. 16살에 의학 공부를 시작하였으나 점점 의학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그런 그를 그의 아버지는 성공회 신부가 되도록 권유하였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18살에 캠브리지 대학교의 신학과에 입학하였다. 그가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인 이유는 신부가 되면 미사를 집전하고 성경과 신학을 연구하며 교구의 회중을 돌아보는 틈틈이 박물학을 연구하는데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신학의 권위자인 윌리엄 패일리의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을 읽으며 모든 생물은 하나님이 천지창조의 시점에서 완벽한 형태로 창조했다고 하는 설을 납득하고 믿었다. 4년 후 그는 최고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런 그가 진화론에 탐닉하게 된 계기가 왔다. 그가 22살 때인 1831년에 5년간의 일정으로 ‘비글호’라는 탐사선을 탔다. 남미와 태평양을 거쳐 뉴질랜드와 호주를 경위하고 아프리카 남단을 둘러서 다시 대서양을 통해 브라질로 갔다가 영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이 기간의 경험과 지구 곳곳의 탐사가 그를 신학교를 졸업한 신학도에서 진화론자로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갔고 1859년, 그가 쓴 책인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은 영국과 유럽의 학계의 큰 파문을 일으켰다. 런던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는 “인간은 원숭이에게서 진화되었다”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지지하는 파와 그에 맞서는 창조론에 바탕을 둔 기독교 지도자들 간에 논쟁이 팽팽하였다. 기독교계의 성공회 대표로 참석하였던 윌버포스는 진화론 지지자들을 향하여 “그렇다면 당신들의 할아버지의 선조가 원숭이이며 당신들의 할머니들의 선조가 원숭이란 말이냐”며 반격하였다. 진리는 상대적인 비진리의 목소리가 커지면 나누이게 된다. 과거나 오늘 날이나 적지 않은 사람들은 다수가 주장하는 비 진리 앞에서 진리의 편에 서지 못하는 혼돈과 방황을 계속한다. 25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로마 가톨릭의 프란체스코 교황의 방문으로 온 나라의 언론이 뜨겁다. 그는 도착한 다음 날인 지난 15일 대전의 월드컵 경기장에서 수 만 명의 가톨릭 신도들과 더불어 ‘성모승천대축일’미사를 집전하였다. 그 미사의 이름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동정녀 마리아가 나중에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하였다고 여기고 그런 미사를 드리고 있다. 십자가의 예수는 제자 요한이며 이종 사촌인 젊은 사도 요한에게 어머니의 여생을 부탁하였다. 요한은 순교하지 않고 장수한 유일한 예수의 제자이며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여생을 끝까지 모셨다. 그런 사도 요한조차도 복음서인 요한복음이나 요한 1, 2, 3서나 계시록에서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나중을 승천설로 포장해서 ‘성모승천축일’을 정한 것은 참으로 비 성경적이며 비 신학적인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이는 1950년 11월 1일 당시의 교황이었던 피우스 12세(Pius XII)가 가톨릭 교리로 선포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1517년 가톨릭 안에서 사제였던 마틴 루터(Martin Luther,1483-1546)가 너무나 성경에서 멀어져 버린 당시의 교회 상을 보고 안타깝게 여겨서 95 조항의 개혁문을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내어 건 것이 종교 개혁의 시작이 아닌가. 그 개혁문을 읽어 보면 한 마디로 ‘성경적인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지적이다. 그렇다. 본질로 돌아가야 하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에베소서 4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성령과 주와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몸과 부르심과 소망과 믿음과 세례도 하나’라고 선언하였다. 빛의 삼원색과 색의 삼원색이 있으므로 아름답지만 그 모든 출발도 하나로 부터이다. 희고 밝고 맑고 곱고 흠도 티도 없는 하나, 그 한 분이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모든 만물이 창조되고 유지되고 보존되는 것이다. 그 분은 만유(萬有, ALL)의 아버지시다. 그 분은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6)는 선언은 그 얼마나 분명한 신앙고백인가. 인간은 다 죄인이다. 의인(義人)은 단 한 사람도 없다.(롬3:10) 그가 거대한 제국의 임금이든 세계 제일의 재벌이든 천하를 통일하려던 그 누구일지라도 인간은 다 죄인이다. 인간을 신격화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인간은 오직 그 분 안에 구원 받아야 할 십자가를 통한 대속의 은총을 기다리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하나 됨의 근원은 오직 그 분, 하나님 아버지뿐이시다. 예수도 말씀하셨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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