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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였던 말 한 마리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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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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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3-07-13 18:06 조회 16,212 댓글 0
 
동족간의 전쟁이 일어났던 1950년 6. 25 당시에 지금의 서울 숲은 신설동 경마장이었다. 그 곳의 경주마들 중에서 소년 김흑문이 소유하고 있던 ‘아침 해’라는 이름의 암컷인 몽골 경주마가 미 해병 제 1사단 에릭 페터슨 중위에게 250불에 팔렸다. 전쟁 중에 지뢰를 밟아서 장애인이 된 누나에게 의족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 가족처럼 사랑하던 말을 미 해병대에 팔게 된 것이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0월 26일에 ‘아침 해’는 전투용 탄약 수송의 임무를 띠고 전투요원으로 정식 임명을 받고 입대하게 되었다. 약 140여cm의 체고(體高)에 408kg의 무게였던 ‘아침 해’는 말 치고는 별로 크지 않은 체구였다. ‘아침 해’는 전쟁터에서 탄약을 실어 나르기도 하고, 부상병들을 싣고 돌아오기도 하였다. 치열한 전투 현장에서 51번 이상에 걸쳐서 무려 5톤가량의 탄약을 계속하여 실어 나르기도 하였다. 분당 500여발의 포탄이 쏟아져 내리는 전장에서 논밭은 물론 45도 이상 경사의 가파른 산악지대로 끝없이 탄약을 실어 날랐다. 도중에 두 차례 부상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런 ‘아침 해’의 용감하고 대범한 전쟁 참가 모습에 감동한 해병대 전우들은 ‘아침 해’에게 무모한 막무가내라는 뜻의 ‘RECKLESS’라는 별명을 붙여 불렀다.

 ‘아침 해’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던 해병 전우들은 쉬는 시간이면 말에게 맥주도 마시게 해 주었고 에그 스크램블도 만들어 주고는 하였다. 1953년 정전협정으로 전쟁이 멈추자 ‘아침 해’는 미 해병동지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고 ‘아침 해’의 용맹한 참전 일화는 미 해병 1사단장에게까지 보고되었다. ‘아침 해’는 미국 정부가 참전 중에 부상당한 군인에게 하사하는 퍼플 하트라는 훈장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미국 대통령 표창, 미 국방부 종군기장, 유엔 종군기장,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과 각종 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1959년 하사로 진급하고 다음 해에 전역하였다. 1968년에 ‘아침 해’가 죽자 미 해군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camp 영역 안에 매장하였고 평소 생활하던 마구간 곁에다가 기념비를 세워 주었다. 종전 60주년을 맞은 올 2013년 5월 말에 경기도 양주군에 위치한 육군 25사단 사령부에서는 네바다 전초 전투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 전투는 ‘아침 해’가 참전하였던 전투로 1953년 3월 26일부터 나흘 동안의 미 해병대와 중공군의 전투 중에 중공군은 1,300여명의 사상자를 냈고 미 해병대만도 118명이 죽고 98명이 실종되고 801명이 부상을 당했다. 오는 7월 26일에 미국 캘리포니아 미 해병 국립 박물관에서는 ‘아침 해’인 ‘RECKLESS’의 동상의 헌정식을 거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성경에도 짐승 이야기가 간혹 등장한다. 오늘 날과 같은 자동차가 발명되어 통용되기 이전에는 말이나 나귀나 약대 등이 이동 혹은 수송 수단으로 요긴하게 사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가령 창세기 12장 4절에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아브람이 75살의 나이에 고향과 본토와 아비 집을 떠나 갈 때에 걸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창세기 37장에는 아브라함의 증손자 요셉이 배 다른 열 명의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애굽으로 팔려 가는 장면이 나온다. 요셉은 이스마엘 장사꾼들에게 팔렸다. 저들은 약대들에다가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국경을 넘어 다니며 장사하던 이들이었다. 아마도 요셉은 저들에게 팔린 채 낙타 등에 실려서 애굽의 노예 시장에 팔리어 갔을 것이다. 세월은 지났고 요셉은 애굽의 바로 왕의 꿈 해몽을 한 연유로 인해서 애굽의 총리로 등극하게 되었다. 그 날 왕이 요셉을 버금 수레에 태워서 애굽 전국을 다스리게 하였다. 그 버금 수레는 여러 마리의 말들이 끄는 휘황찬란하고 위용과 품격이 뛰어난 왕을 모시는 교통수단이었다. 낙타 잔등에 실려 불안한 마음으로 초조하게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애굽의 노예 시장으로 팔리어 갔던 17살 소년 요셉이 13년 후에 왕의 버금 수레를 타는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이다. 요셉은 종살이하던 보디발의 집에서나, 주인마님에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지내던 시절이나, 임금 바로에게 등용되어 국가를 치리하던 때에는 한결같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세밀하게 믿고 따르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그를 낙타의 잔등에 실려 팔려가던 노예 소년의 신분에서 버금수레를 타는 애굽의 제 이인자로 높여 주신 것이다.

베들레헴 들판에서 아버지 이새의 양떼를 치던 소년 다윗은 나중에 전쟁에 능한 장수가 되고 사울 왕의 대를 잇는 임금이 되었다. 그러나 다윗은 언제나 백마가 이끄는 임금의 수레만을 타던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허리에서 태어난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맨발로 예루살렘의 왕궁을 벗어나서 기드론 시내를 지나 감람산 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로 울며 피신하던 가슴 떨리는 시절이 있었다. 말은커녕 나귀 한 마리 타지 못한 채 피신하던 임금 다윗은 신하들과 함께 바후림 지역에 은신하고 있었다. 그 때에 사울 왕의 친족인 시므이란 자가 나타나서 “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하며 저주하였다. 세월이 흐르며 다윗의 부하들은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의 지휘 아래 세 편대로 나누어 압살롬의 세력을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압살롬이 에브라임 수풀 한 가운데서 다윗의 군대를 만났을 때에 그는 노새를 타고 있었다. 압살롬이 이 전쟁을 우습게 여긴 단적인 증거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장면이다. 전쟁은 말을 타고 하는 것이 아닌가. 노새는 짐을 실어 나르는 짐승일 뿐이다. 사무엘하 18장에 보면 결국 압살롬은 노새를 탄 채로 다윗의 세력의 칼과 창을 피하여 수풀 속을 달리던 중에 그의 풍성한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며 큰 상수리나무의 가지에 걸려서 공중에 매 달렸고 노새는 주인을 버린 채 달려가고 말았다. 다윗의 장수 요압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손에 작은 창 세 자루를 들고 다가가서 압살롬의 심장을 찔렀다. 요압의 곁을 따르던 무기를 든 청년 열 명은 연 이어서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서 죽였다. “삼가 누구든지 젊은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명령하였던 아버지 다윗의 명령에 순복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에브라임 동산의 수풀 사이의 큰 구덩이에 압살롬의 시체가 던져졌다. 요압의 세력들은 그 구덩이 위에 큰 돌 무더기를 쌓았다. 아들을 잃은 큰 슬픔에 휩싸이게 된 다윗의 마음을 사로잡는 고백은 언제나 이것이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 하시는도다.”(시23:1-2) 그렇다. 다윗은 갈기를 휘날리는 백마를 타는 순간보다는 자기 자신이 한 마리의 어린 양처럼 되어 목자 이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순간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던 믿음의 사람이었다. 다윗은 남다른 인생의 희로애락을 골고루 겪은 난세(亂世)의 왕(王)이었다.

천년 세월이 흐르고 다윗의 허리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다. 그 예수님은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나자마자 헤롯 왕의 살해 위협을 받고 육신의 아버지 요셉과 그를 낳은 어머니 마리아의 품에 안긴 채 나귀를 타고 애굽으로 피신하여야 하는 고단한 생애가 시작되었다. 그 주님이 공생애 세 번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다. 벳바게 맞은 편 마을에서 주인의 허락을 받고 끌어 온 새끼 나귀는 사람을 한 번도 태워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예수님은 물론이지만 그 새끼 나귀도 보고 싶다. 이천년 전에 예수님을 잔등에 모시고 종려나무 가지를 베어다가 길에 깔고 양손에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21:9)하고 환호하던 그 수많은 무리들 가운데로 예수님을 잔등에 모시고 가던 그 새끼 나귀 말이다. 꿈처럼 완성되어 가는 새 성전 시대에 예수님을 잔등에 모셨던 새끼 나귀와 같은 그런 겸허함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기도하게 된다. 전쟁터의 산언덕을 뛰어 오르던 ‘아침 해’, ‘RECKLESS’의 충직함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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