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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아 있는 것으로 2014.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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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10-27 00:40 조회 13,965 댓글 0
 
내게 남아 있는 것으로
 
 
금번에 폐막된 인천 장애인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아내는 금메달을 따고 남편은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배혜심, 장동신 부부는 서로 한 쪽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다. 아내(44살)는 네 살 때에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었고, 남편(38살)은 20대 중반에 마찬가지로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무릎 위로 잘라 내야 했다. 그런 저들 부부는 펜싱 선수 생활 중에 만나서 정이 들고 부부가 되었다. 저들 부부는 발 크기가 250mm로 똑 같다. 그래서 펜싱화도 한 켤레만 사서 한 짝 씩 나누어 신는다. 그러나 여섯 살 연하인 남편의 연습량이 아내보다 훨씬 많아서 남편의 오른 쪽 펜싱화가 훨씬 빨리 닳는다. 남편인 장씨는 펜싱을 하면서 강원도청 아이스슬레지하키팀의 선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에 배우기 시작해 올 봄 소치패럴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이겨서 7위를 했다. 그 당시에 결승골을 넣으며 2-0으로 승리를 이끈 게 바로 남편 장씨였다. 한 쪽 다리가 없는 불편을 생각해 보라. 물론 하반신 전체가 마비된 중중 장애인도 있지만 말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 당시에 그의 곁에 스스로 찾아 왔거나 누군가가 데리고 온 수많은 병자들 중에는 못 보는 이들이나 못 듣고 말 못하는 이들이나 걷지 못하거나 손 마른 자들이 적지 않았다. 사지를 못 쓰던 심각한 상태의 중풍병자도 깨끗하게 나아서 돌아갔다. 심지어는 나병(癩病)도 나았고 귀신도 떠나갔고 죽은 자를 살려 주시기도 하였다. 기독교는 회복의 종교요 기적의 종교다. 육신적인 질병을 고침 받거나 정신적으로 건강해 지고 귀신이 떠나가고 안정을 되찾은 이들의 수많은 이야기는 언제 대하여도 기분 좋고 신 나는 간증들이다. 병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약하게 만든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고와 질병과 사건과 재난 중에서라도 ‘내게 남아 있는 것으로’ 새롭게 시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 아닌가. 사람이 하루를 살아가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다는 것이 그 얼마나 엄청난 생의 신비인가. 창세기 9장에 보면 홍수 사건 후에 노아와 그의 8명의 가족들은 방주 안에 남아 있던 동물들과 더불어 물이 감하여 지고 뭍이 들어난 땅에서 포도 농사를 지으며 새로운 문명을 일구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창세기 9장 20절에 보면,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신 것이 아니다. 나이 많은 노아가 세 아들들과 더불어 홍수 후에 농사를 다시 시작했고 포도나무도 다시 심어서 가꾸기 시작하였다. 홍수의 폐허 후에 그들에게 남겨 주신 것으로 다시 시작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나이 많고 경수가 끊긴지 오래 된 아내 사라가 아닌 그녀의 젊은 몸종인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의 제안을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 들였고 그 일이 오늘 날까지 사천년 동안이나 역사의 분쟁과 불화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처럼 사라가 아니면 하갈이고 하갈이 아니면 또 다른 그 어떤 누구라는 견해를 가진 분이 아니셨다. 하나님은 오직 아브라함 그의 곁에서 평생 아내의 자리를 지켜 온 그의 나이 많은 부인 사라의 89세 된 태에 아들 이삭을 허락하셨다. 이는 인간에게 남아 있는 것으로 일하시는 전적인 하나님의 영역이다. 하나님은 없는 것으로부터도 얼마든지 있게 하시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창조주이시다. 사라가 이삭을 낳은 지 2천년이 지난 어느 날 나사렛의 동정녀 마리아에게 천사를 보내신 하나님께서 요셉과 정혼한 어린 마리아의 태를 빌려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탄생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공식은 인간의 공식과 다르고 하나님의 산수는 인간의 산수와 너무나도 다르다. 나이 팔십 때에 모세는 어느 날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면서 광야 서쪽에 위치한 호렙 산자락으로 이동 중이었다.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모세가 보고 있던 떨기나무에는 불이 붙은 듯한데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질 않았다. 불에 타질 않더란 말이다. 모세는 신비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모세는 혼자말로 말했다.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그 때에 떨기나무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다가서고 있는 모세를 하나님이 보셨다. 하나님은 그 불 붓는 듯한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다. “모세야 모세야”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더 이상 떨기나무 가까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명령하셨고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고 하셨다. 모세는 그 날 이후로 그에게 남아 있는 것들 즉 자신은 알 수 없는 장래의 시간들과 자신 속에 팔십년 동안 감추어져 남아 있던 하나님의 임재의 능력에 붙잡히기 시작하였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당시에 모세는 자기 소유가 없었다. 양떼도 장인의 소유였다.(출3:1)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딸에게 장가들어 40년간을 처가살이로 살아 온 신세였다. 그런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손 때 뭍은 지팡이 하나뿐이었다. 물론 아내도 있었고 두 아들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여 있던 모세는 그를 애굽으로 보내시고 동족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성공적으로 이룩할 지도자로 쓰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선택에 대하여 반신반의(半信半疑)하고 있었다. 모세는 애굽에 가서 만나게 될 동족들이 자신을 믿어 주지도 않고 그의 말을 듣지도 않고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고 위협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질문하였다. 하나님은 모세의 질문을 들으시고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출4:2)고 물으셨다. 모세는 “지팡이니이다”하고 대답하였다. 하나님은 그 지팡이를 땅에 던지게 하셔서 뱀으로 변하게 하셨고 그 꼬리를 잡게 하셔서 다시 지팡이가 되게 하는 기적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모세의 손을 품에 넣었다가 꺼내 보게 하니 나병이 생기게 하셨다. 다시 품에 넣었다가 꺼내 보게 하니 깨끗하게 치료된 기적도 보여 주셨다. 그렇다. 인생은 내게 남아 있는 그것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살아가야 인생다워 지는 것이다. 189억의 국내 사상 초유의 로또 당첨금을 받아 들고도 5년 만에 사기범으로 붙잡혀 들어가는 졸부의 뒷이야기가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무엇인가. 사람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가운데서 살아가면 분명히 초라하게 되고 반드시 망하고 만다. 이 시대 최고의 영성가 중의 한 사람인 리처드 포스터는 이것을 <돈, 섹스, 권력>이란 그의 책에서 극명하게 풀어 나갔다. 사람은 너무 많이 가지기 시작하면 기울고 만다. 오히려 반대로 내게 남아 있는 것으로 삼가며 겸손히 살아가야 기적의 생이 되는 것이다. 모세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고 자책하고 있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사람의 입을 지은 분이 누구시냐고 모세를 나무라셨다. 그리고 “누가 말 못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출4:11)고 다그치셨다. 이는 장애 가운데 태어나는 것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말씀이 아닌가. 하나님은 모세의 그 지팡이를 홍해가 갈라지는 현장에서도 사용하셨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출14:16) 하나님도 모세의 손에 남아 있던 지팡이를 이처럼 정겹게 사용하셨다. 우리나라는 19세기말 미국인 선교사인 로제타 셔우드 홀(R. S. Hall) 여사를 통해 점자가 처음 도입되었다. 그녀는 평양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 서구 의술 전수에 공헌한 인물이다.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송암 박두성(1888-1963) 선생은 홀 여사가 만든 4점형 점자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6점형 한글점자 발명에 평생을 바쳤다. 맹인이던 그는 한글점자의 신기원을 이룩한 훈맹정음(訓盲正音)의 창시자이다. 그는 그에게 남아 있는 것으로 같은 처지의 맹인들의 답답하고 슬픈 역사를 바꾸어 놓은 선각자였다. 내게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이 그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가 생각하여 보라. 그는 말했다. “몸이 어둡다고 마음까지 우울해서는 안 된다. 몸은 모자라도 마음은 명랑해야 한다. 배우지 않으면 마음조차 어두울 테니 반드시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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