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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는 마음 2014.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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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8-09 23:14 조회 15,017 댓글 0
 
나무를 심는 마음
 
 
지난 월요일에 장태산 휴양림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장태산은 대전 근교에 위치한 해발 186미터의 나지막한 산이다. 야산에 불과하던 그 곳을 오늘 날 20여만 그루의 메타세콰이어가 울창하게 들어선 명산으로 가꾼 이가 있다. 송파 임창봉 선생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1922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계룡산 자락의 신도안에서 자라났다. 14살 때에 서울에 와서 경성전기학교에서 3년간 공부하였다. 해방 이후 청년 시절에는 윤보선 대통령을 지지하며 그가 주도하던 전국청년운동협의회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런 인연으로 건국청년단 논산지역대장직을 맡아 일하기도 하였다. 6.25전쟁이 나자 자원입대하여 육군소대장으로 최전선에서 전투에 참가하였다. 전쟁 후에는 토목기술허가를 받아 주로 관급공사를 맡아 하게 되었다. 그 때에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러나 사회의 부패상에 염증을 느낀 그는 그 후로 나무를 심는 일에 마음을 쏟기 시작하였다. 그가 장태산에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1973년, 그의 나이 오십에 들어서서였다. 그는 지금은 대전시가 인수하여 관리하고 있는 장태산의 26만평을 앞마당의 정원 가꾸듯이 가꾸어 온 독림가(篤林家)이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를 나무 박사라고 불렀다. 해마다 목표를 갖고 심어 오기 시작한 메타세콰이어가 30-40년이 지난 오늘 날은 아름드리나무 숲을 이루었다. 20-30미터씩 하늘을 가리고 쭉쭉 뻗어 오른 한 아름이 넘는 나무 숲 사이에 들어서면 자연의 위용과 심은 자의 수고와 그 마음이 느껴져서 엄숙한 생각이 든다. 도시 가까운 곳 그 어디에서 이렇게 피톤치드(phytoncide) 가득한 맑고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가 있을까. 그 외에도 밤나무, 잣나무, 소나무, 주목, 은행나무, 단풍나무, 낙엽송, 오동나무와 히말리야 시다 등 무려 30여 종의 정성을 다하여 심어 가꾼 나무들이 온 산자락을 울창하게 뒤 덥고 있다. 세상의 거짓과 위선에 마음이 점점 상해가던 그가 나무를 심기로 결심한 것은 후대에 땅 한 뼘이라도 아름답게 가꾸어 누군가에게 풍요한 삶을 전해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도착하던 날 오후에는 잔뜩 흐리고 빗방울도 간혹 떨어졌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산꼭대기 정상에 올라갔을 때에도 안개와 구름에 가리어서 멀리까지 바라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 산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산허리를 적당하게 끊어 내고 일일이 자연석으로 쌓아 올려 축대를 만들고 거의 정상에 이르기까지 도로를 포장한 그 수고가 어찌 하루 이틀 동안에 가능한 일이었겠는가. 장태산의 휴양림이 오늘 날을 맞기까지 그는 고생도 엄청나게 많이 하였다. 그는 산 속에서 살았다. 나무를 심기 위한 첫 작업으로 가시덤불을 정리하고 칡넝쿨을 끊어 내는 데만 3년이 걸렸다. 묘목을 실어 나를만한 길을 내는 일도 직접 나서서 해야만 했다. 끝이 없이 일손은 딸리고 당장은 수입도 생기지 않는 일에 온 가족이 나서서 힘을 보탰다. 부인 허옥 여사는 물론 큰 아들 재문 씨와 중학교 교편생활을 접고 아버지의 일을 돕기 위해 나선 재길 씨의 수고도 큼 힘이 되었다. 산자락에 농원을 만들고 사슴 30마리를 키웠다. 표고버섯 1만 본을 재배하여 벌어들이는 수입 모두를 나무 심는 일에 쏟아 부었다. 보고 배울 만한 아름다운 숲이 있다면 중국과 일본 할 것 없이 찾아 다녔다. 제주도에만도 7번이나 답사 차 다녀왔다. 오늘 날이야 보기 좋은 숲이 우거져 있지만 그 나무 한 그루마다 수 십 번씩 손길이 갔다. 나무도 생명이 있기에 다 안다고 했다. 이쪽 나무만 만져주고 저쪽 나무를 제대도 돌아보지 않으면 서운해 하고 삐진다고 했다. 그의 지론은 나무가 말만 못 할 뿐 사람의 말을 다 알아 듣는다고 하였다. 그는 나무를 심는 정성보다 가꾸는 정성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마치도 어린 아기를 키우는 듯한 사랑을 쏟았다. 그가 한창 조림에 심혈을 기울이던 어느 날 젊은 부부가 애기를 태우고 새 차를 몰고 산 구경을 왔다. 운전이 서툴렀던 운전자는 차를 후진하다 말고 나무를 들이 받았다. 자동차의 범퍼가 찌그러지지 않았나하고 들여다보던 그 현장을 목격한 임창봉 선생이 그에게 다가갔고 불호령이 떨어졌다. “자네는 차가 상한 데만 관심이 있고 이 나무 상한 것에는 관심이 없나. 차 한 대 생산하는데 돈이 얼마나 들고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모르지만 이 나무 한 그루가 여기까지 자라나는 데는 12년이 걸렸어 이 사람아.” 너무나 무안해 진 그 젊은 운전자는 어색한 표정으로 제대로 사과도 하지 못한 채로 급하게 그 현장을 벗어나고 말았다. 그가 평소에 늘 아쉬워 한 것은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하여 산에 접근할 수 있는 임도 비율이 너무나 낮다는 점이었다. 그는 늘 말했다. “길이 없는 데 묘목을 무슨 수로 운반합니까. 미국이 ㏊당 임도가 40m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00분의 1인 0.4m가 고작입니다.” 그렇다. 나무 한 그루를 심어 가꾸어 잘 자라게 하고 쓸 만한 나무가 되게 하기까지에는 세월과 정성과 수고와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사도 바울도 그런 말을 했다. 자신은 심는 자였고 아볼로는 물을 주는 자라고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보면 자라나게 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그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시다.(고전3:6) 바울은 이런 말도 했다.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한 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3:8) 하나님은 아벨, 에녹, 노아를 그런 시대적인 나무와 같은 인생으로 붙들어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에게도 그런 동산지기의 정성을 쏟으셨다. 심고 가꾸는 자의 수고가 없이 아름다운 나무숲이 불가능하듯이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과 연단이 아니었다면 어찌 그와 같은 역사적인 믿음의 사람들과 영성가들이 탄생할 수 있었겠는가. 이는 모세나 여호수아, 기드온과 사무엘, 드보라와 에스더, 다윗과 솔로몬 때에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농부 없는 포도나무는 야생 들 포도나무로 전락하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배후에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어찌 이사야나 다니엘 그리고 엘리야나 엘리사의 시대와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시대가 가능하였겠는가. 정치, 경제, 외교, 교육, 군대, 문화, 체육, 예술, 교통, 행정, 입법, 사법부 등등 썩어 가는 악취가 코를 찌르는 이 시대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 가꾸는 독림가(篤林家)의 마음을 분야마다 배워야 하지 않을까. 나무는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셨다.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7:17-18) 예수는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 예수의 반복되는 나무 교훈의 나중은 이렇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 1592년, 임진왜란 때에 왜침을 막은 시대적인 영웅 이순신(李舜臣,1545-1598) 장군은 그 시대가 낸 큰 나무 즉 거목(巨木)인생이었다. 이순신은 영웅이 아닌 성웅(聖雄)이라 이름 할 만하지 않나. 온갖 모함과 박해와 억울함 속에서도 그의 판단과 전략은 탁월하였으며 그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은 대신할 자가 없었다. 6.25 때의 더글러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말이다. 거목 인생은 역시 다르다. 사사로운 이기심에 얽매이지 않고 대의(大義)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시대적인 사람들의 모습 말이다. 안중근, 이준, 유관순과 같은 인물들의 이름 뒤에 의사(義士) 혹은 열사(烈士)라는 칭호를 후대가 추서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그냥 한 시대를 살면서 눈이 오면 눈 맞고 비가 내리면 비를 맞다가 고목되어 썩어 가는 나무인생이 아니라 역사 속에 꽃도 피고 열매도 맺는 그런 좋은 나무인생 말이다. 17세기 네델란드의 스피노자는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다 하지 않나. 이 여름이 가기 전에 쉘 실버스타인의 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어 보면 어떨까. “주목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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