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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심의 끝 2014. 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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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7-27 19:13 조회 14,954 댓글 0
 
탐심의 끝
 
 
지난 4월 16일 아침,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침몰하였다. 인천항을 떠나 제주도를 향해 가고 있던 여객선이었다. 온 백성이 슬픔과 충격과 분노 가운데 착잡한 마음으로 봄을 다 보냈고 여름을 맞았다. 산자와 죽은 자의 수를 헤아리는 것이 저들 유족 앞에 다시 또 결례가 될 것 같아서 언급하기조차 조심스럽다. 백일이 지난 아직도 10명의 시신을 수습하지조차 못한 상태이다. 올해의 부활절은 그 마음을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심경으로 보내야만 했다. 부활을 믿는 이들 중의 한 사람이지만 당장 당하고 있는 슬픔은 한 두 마디의 신학적인 해석으로 그 대답을 찾기 어려웠다. 세월호를 운행하던 청해진 해운의 그 배후에 주목 받던 인물이 전 세모그룹의 회장이었던 유병언이다. 그 유병언이란 이가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올해 나이가 73살이다. 그는 한 시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던 기독교에서 파생된 이단(異端)인 구원파의 권신찬의 사위이며 구원파의 중심에서 평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경찰과 검찰의 추격을 받기 시작했고 나라 안에 숨을 곳이 없게 되자 밀항설이 나돌고 있었다. 연일 수 천명의 경찰 인력이 검문검색을 벌였으나 헛수고였다. 그런 그가 전남 순천의 어느 야산 자락, 매실 밭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날짜는 지난 6월 12일의 아침 시간이라고 발표되었다. 신고가 접수 된 후로 시체를 확인, 보관, 검사, 확정 발표하기 까지 사십여 일이나 지났다. 국민들은 각종 의혹에 휩싸인 말들을 서로 옮겨 가고 있다. 이와 관련된 국회 법사위의 유병언 수사 관련 현안 보고 석상에서는 ‘시체 바꿔 치기’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발표조차 불신한다면 몰라도 죽음은 죽음이 아닌가. 이 세상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생명이 탄생하고 적지 않은 이들이 죽음의 순간을 맞는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에도 생명 탄생의 이야기와 한 인간의 죽음을 다루는 일화들로 가득하다. 노아의 할아버지 무드셀라는 자그마치 969세를 살았다.(창5:27) 그런가 하면 예수께서 탄생하시던 당시의 베들레헴 근동의 유대 땅에서 태어난 두 살 미만의 남자 아이들은 헤롯왕의 명령에 의하여 모두 다 살해당하고 말았다.(마2:16)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은 생로병사의 과정이다. 그 어떤 생명이든 영원한 젊음이란 없다. 때가 되면 늙고 병들고 죽음의 순간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권력자라도, 그 어떤 세계적인 재벌이라도, 그 어떤 미인이라도 피하여 갈 위인이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인간답게 살다가 인간답게 죽음을 맞이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인간은 탐심으로 인하여 그 나중이 비참해지고 초라해 지고 만다. 홍수 심판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 안에 들어 간 사람은 노아와 그의 아내와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과 세 자부들 뿐이었다. 단 여덟 명 만이 그 방주 안에 들어 간 것이다. 사십 주야로 쏟아진 비는 온 땅을 물로 덮어 버렸다. 지금의 인류는 그 노아의 가족들이 이 세상에서 다시 번창한 후손이다. 노아 자신도 홍수 사건 이후에 350년을 더 살았고 950살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갔다. 창세기 10장은 노아의 세 아들이 홍수 심판 후에 자손을 낳아 번성해 간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벨 탑을 쌓기 이전 까지는 온 땅의 언어와 말이 하나였다.(창11:1) 그런 이후에 등장하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의 이야기가 성경 신구약의 줄기를 이룬다. 아브라함은 셈의 후손이다. 셈은 홍수가 끝 난지 이년 후에 아르박삿이란 이름의 아들을 낳았다. 셈의 9대 후손 중에 데라가 있다. 아브라함은 데라가 낳은 세 아들 중의 장남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자녀가 없던 상태에서의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날 때에 아내와 함께 출발한 또 한 명의 가족이 있었다. 그는 아브라함의 작은 아우 하란이 낳은 조카 롯이다. 아브라함은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한 부유한 족장이었다. 그의 조카 롯도 양과 소가 넘쳐 나는 족장 중의 한 사람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저들 서로의 짐승 떼를 다루는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생겼다. 연세 많은 아브라함의 제안으로 조카 롯이 먼저 선택한 땅이 요단 지역의 소알까지 물이 좋고 초장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성경은 그 곳을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13:10)고 했다. 그 곳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다. 이미 원주민들이 정착하여 살아가던 그 곳, 소돔과 고모라는 악이 번성하던 곳이었다. 성경은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창13:13)고 했다. 결국 세월은 흘러갔고 탐욕과 탐심과 음란의 도성이었던 소돔과 고모라에 여호와께서는 유황과 불을 비 같이 내리시는 심판을 행하셨다. 그 성과 들에 거주하는 모든 인생과 생명은 다 죽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뒤를 돌아 다 본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다.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롯이 두 딸과 함께 그 심판 받던 도성 소돔과 고모라를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베푸신 은총이라고 했다.(창19:29) 두 천사의 방문과 심판의 경고를 무시하고 장인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기며 농담으로 흘려듣고 말았던 롯의 딸들과 결혼할 두 사위들은 그 심판의 자리를 피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창19:14) 세상살이에 대한 집착과 탐심은 이처럼 인생을 불행하게 하고 만다. 아이 성의 아간이 그랬고,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그랬지 않나. 스승을 팔아 버리는 일을 감행하던 예수의 제자 가롯 유다는 이성을 잃었고 마귀에게 마음을 빼앗긴 채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은 삼십 량에 팔아 버리는 악행을 자행하고 불행한 죽음을 맞고 말았다. 성령의 강림을 알리는 사도행전 2장의 장면은 장엄하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탐심에 눈이 가리어서 불행한 길을 자초한 제자 가롯 유다의 마지막 운명을 상세하게 성경 안에 먼저 기록해 놓고 있다. 말로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표현이지만 글로 옮기는 것이니 전문을 옮겨 보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행1:18-19) 성경을 아는 이들은 유병언의 죽음의 소식을 들으면서 아합의 죽음이나 이세벨의 죽음 그리고 배반자 가롯 유다의 최후 장면을 떠 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성경은 가롯 유다를 “그는 도둑이라”(요12:6)고 고발했다. 종교를 악용하여 선량한 백성들을 어리석은 길로 미혹하여 들이고 자신의 탐욕의 배 만을 불리어 오던 사이비 이단의 괴수가 온 국민을 우롱하고 수많은 순교자들의 거룩한 피가 배어 있는 복음의 땅을 가시덤불처럼, 엉겅퀴처럼, 붉은 용처럼 휘젓다 말고 죽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로마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무지(無知)가 가장 큰 죄라고 했다. 불교에서는 탐욕(貪慾)을, 유교에서는 불효(不孝)를 가장 큰 죄로 여긴다. 공자는 죄 중에 가장 악한 죄는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희랍사람들은 ‘교만’(驕慢)이 큰 죄라고 했다. C. S. 루이스의 책, <순전한 기독교>에 보면 가장 큰 악은 ‘교만’(Pride), 혹은 ‘자만’(自慢)(Self-Conceit)이라고 했다. 교만은 성적 부정, 분노, 탐욕, 술 취함 같은 모습으로 번져간다. 천사도 바로 이 교만 때문에 사탄이 되었다. 교만은 온갖 다른 악으로 이이지며 하나님을 대적하게 한다. 교만과 탐심과 탐식과 우상 숭배의 뿌리는 하나다. 어리석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자라도, 온 천지를 소유한 재벌이라도, 끼니마다 세상의 산해진미를 차려 먹는 미식가라도 이 진리를 모르면 악마적이다. 탐심의 끝은 최악의 불행을 부르고 만다. 성경은 분명히 경고하였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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