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치라
‘외치라’는 말씀은 크게 말하라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못 듣는 사람이 없도록 골고루 전해지게 계속하여 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사야의 예언을 따라 이 땅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 보냄을 받은 분이 있었다. 그는 세례 요한이다. 각 복음서의 서두에서 세례 요한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 장면에 인용된 구약의 말씀이 이사야 40장 3절의 ‘외치는 자의 소리’이다. 맞다. 세례 요한은 신구약 중간기의 침묵을 깨고 ‘외치는 자의 소리’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구약 시대 마지막 선지자이다. 그는 예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다. 장성한 그는 광야에서 생활하였다. 유다와 예루살렘과 요단강 주변의 사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생활하는 세례 요한을 찾아 나섰다. 세례 요한은 그 모든 무리들에게 “죄사함을 위한 회개를 선포하고 천국에 대하여”(마3:6) 선포하였다. 세례 요한의 외치는 복음을 들은 백성들이 자기들의 죄를 자복(自服)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소문을 들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요한을 찾아갔다. 그때 저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3:7)고 책망하였다.
세례 요한의 외치는 내용은 거침이 없었다. 마태복음 3장 8절부터 12절에 보면 그 내용이 소상하게 전해진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은 이 돌들로도 능히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더져질 것이다.
너는 너희가 회개하게 하려고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다.
나는 그의 신을 드는 것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거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 것이다.
그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실 것이다.
그는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기 800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말씀은 외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면 무엇을 외치라고 하신 것일까.
첫째, 하나님의 대로를 예비하고 평탄케 하라고 외쳐야 한다.
광야나 사막은 황량하고 길이 없는 곳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광야와 같은 세상과 사막과 같은 세상에 여호와께서 찾아오신다고 외치라고 하셨다. 광야와 같고 사막과 같은 세상에 하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고 여호와의 오실 큰 길을 닦으라고 하셨다.
4절에서 말씀하는 ‘골짜기, 산, 언덕, 고르지 않은 곳, 험한 곳’이란 타락한 인간의 마음을 상징하는 표현들이다. 골짜기란 모나고 사납고 거친 인간의 모습을 상징한다. 산과 언덕은 교만하고 거만한 인간성을 말한다. 고르지 않고 험한 곳이란 죄에 빠져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 살아가는 인간의 죄악상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나.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인간상이란 거칠고 사납고 이기적이고 온갖 탐욕 속에서 배를 신처럼 섬기며 자기 교만 가운데 자기를 자랑하며 살아간다.
사도바울 로마서 1장에서 그런 인간의 특징을 낱낱이 고발하였다. 그렇지 않나. 세상에는 그런 자들이 득세하고 큰소리를 치며 권력을 장악하고 그 힘을 오래도록 유지하려고 별의별 편법을 다 동원하려고 한다. 그런 악한 세상과 인간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열어서‘외치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모세의 언약을 통해서도 다 이루실 수 없던 인류 구원의 대업을 위해서 친히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큰소리로 외쳐서 전할 자를 하나님은 계획하셨다. 그가 세례 요한이다.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을 말라기 3장 1절과 이사야 40장 3절에서 인용하고 있다. 그렇지 않나. 마가복음 1장 3절에 보면 오늘 본문인 이사야 40장 3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곧 이어서 광야에서 죄사함에 이르는 회개의 복음을 큰 소리로 외쳐 증거하던 세례 요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의 내용이 무엇이었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이 말씀을 큰 소리를 계속하여 외쳐 전하라고 하였다. 디모데 후서 4장 2절에도 보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하였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나면 광야나 사막의 골짜기아 같은 거칠고 사나운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한다. 산과 언덕과 같던 교만하고 잘난 척하고 남을 무시하고 거만 떨던 사람이 겸손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으로 바뀐다. 광야와 사막의 거친 곳과 같던 죄덩어리의 인생이 죄와 악을 용서받은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렇지 않나.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출신인 바이킹(viking)은 AD 9~11세기에 유럽의 광범위한 지역을 습격하였다. 주변 나라들에 쳐들어가서 약탈 행동을 일삼아 식민지로 만들었다. A.D. 865년 잉글랜드를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했다. 북유럽 서해에는 바이킹의 침략의 말발굽이 미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다. 바이킹은 아일랜드까지 점령하려고 끊임없이 침략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니까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의 나라가 신사 나라들이 되지 않았나. 노벨상을 수여하는 나라가 되지 않았나. 이는 개인도, 가정도, 나라도, 민족도 마찬가지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외쳐 전하게 하시는 은혜의 말씀이 받아들여질 때에 개인과 가정과 나라와 민족의 역사는 바뀌게 되어 있다.
둘째,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을 보라고 외쳐야 한다.
5절의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라는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70년 바벨론 포로기가 끝나고 살아남은 유다 백성들과 그 후손들이 포로의 땅에서 풀려나서 유다 땅과 예루살렘 성으로 되돌아오는 회복의 날을 예언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떠났던 여호와의 영광이 다시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 영광을 함께 볼 것이라고 외치라고 하셨다. 이는 바벨론에서의 포로 생활이 끝나는 것을 예언적으로 말씀하신 것일 뿐만 아니라 장차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보게 될 하나님의 그 찬란하고 영원한 영광을 말씀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1장 14절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말씀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사야 40장 5절 끝에“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하신 말씀을 반드시 때가 되어 이루신다. 이루실 뿐만 아니라 그 하신 말씀을 통하여 스스로 영광을 받으신다.
그렇지 않나. 우리가 개인이든 그 어떤 가정이든 하나님을 잘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영접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3-4대만 살아 보아라. 그 개인과 그 가정의 가족들과 후손들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충만하게 열매 맺게 하실 것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고난 중에서도 그러하였던 것처럼 말이다.
셋째,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고 외치라.
우리는 그 무엇도 자랑하면 안 된다. 내게 솔로몬의 영광과 같은 그 무엇이 있다고 하여도 자랑하면 안된다. 그렇지 않나. 모든 육체는 풀이다.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다. 때가 되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7절에 보면 “이 백성은 실로 풀이다.”라고 말씀 하셨다. 그렇지 않나. 이 세상에 영원한 풀이 있나. 영원한 꽃이 있나. 아라비아 사막에 불어오는‘시록코’(sirocco)라는 동풍은 온 들판에 끝없이 피어있던 그 아름다운 꽃들을 순식간에 시들어 말라 버리고 사라져 버리게 한다.
시로코와 같은 바람이 불면 바벨론의 영광도 별것이 아니다. 메대나 바사의 영광도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고 만다. 헬라와 로마 시대가 옛날이야기가 되고 만다. 그렇지 않나. 동서양의 그 영웅호걸(英雄豪傑)들과 절세가인(絶世佳人)들이 다 어디로 갔나. 저들이 천년을 살았나. 만년을 살았나. 예수께서는 “공중의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솔로몬의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6:26-29)고 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어떤 자세와 태도로 살아가야 할까. 예수께서는,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고 교훈하셨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사40:8)
그렇지 않나.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나. 젊음, 건강, 미모,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시계, 명품 가방, 명품 옷, 금과 은과 보석 그 무얼 자랑할 것이 있나.
다니엘서에 보면 메대의 벨사살 왕이 1,000명의 고관대작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술잔치 벌렸다. 그 밤에 그 잔치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하나님이 벽에 손가락으로 큰 글씨를 쓰셨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루신” 무슨 뜻인가 “재어보고 달아 보니 부족하여 나누어 버리셨다”는 뜻이다. 누구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날이 있다. 천국도 있고 지옥도 있다. 천국의 상급도 있고 지옥의 심판도 있다. 천국도 영원하고 지옥도 영원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모든 것들이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것이다. 불의 공력 앞에서도 불타지 않는 금, 은, 보석보다 더 귀한 믿음의 승리자들이 다 되어야 할 것이다.
-위 내용은 2020, 12. 6. 주일 설교문을 요약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