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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 2019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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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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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9-09-24 16:24 조회 7,293 댓글 0
 

삭발



삭발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물론 오래 전에 남자들의 경우에는 초중고교 시절 내내 삭발하고 학교에 다니던 때가 없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며칠 전에 여성 국회의원 한 사람이 국회 본관 앞에서 삭발을 하였다. 그가 삭발을 한 이유는 최근에 몹시 실망스럽게 전개되어 가는 국정(國政)을 염려하며 국가의 올바른 장래를 바라는 충정심의 표현이라고 여겨진다.

 

성경에도 삭발한 인물의 일화가 나온다. 사도 바울이 그 주인공이다. 고린도 지역 전도를 마친 사도 바울은 배를 타고 수리아로 떠나 안디옥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 선교 여정 중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동행하고 있었다. 바울은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 이는 일찍이 서원하였던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었다.

 

서원(誓願)이란 하나님 앞에서 하는 신앙적인 맹세(盟誓)를 의미한다. 사도 바울이 겐그리아에서 머리를 깎은 것은 그동안 하나님께 서원한 선교 여정을 잘 마친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일 것이다. 바울은 2차 선교여행을 떠나면서 불붙는 선교 의지를 갖고 결심을 하며 하나님 앞에 서원했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고린도에서 복음 전파를 안전하게 마무리하고 안디옥으로 향하는 것은 제 2차 선교 사역을 마무리 하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이제 다시 곧 새롭게 시작될 제 3차 선교사역을 준비하고 출발하려는 의지를 새롭게 하며 머리를 깎았을 것이다. 삭발이란 그 행위가 종교적인 것이든 세상적인 것이든 각오를 굳건하게 하는 의지적 결단의 외적 표현이 아닌가.

 

기독교 역사에서 삭발은 로마 가톨릭 교회나 동방정교회에서 하나님에게 엄숙한 봉헌의식의 하나로 행해졌다. 가톨릭에서 교황 요한네스 파울루스 6세에 의해서 삭발을 폐지 한 것은 1973년의 일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삭발 의식은 어떤 사람이 성직에 들어서거나 성직자로 임명될 자격을 얻을 때 반드시 거행되었다.

 

동방정교회에서는 성경을 읽는 사람을 임명할 때에까지도 삭발하게 하였다. 일부 동방교회에서는 수도원 생활을 원하는 사람을 수도원에 받아들이는 입회 의식의 일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역사학자들의 연구와 주장에 의하면 기독교의 삭발은 고대 그리스 금욕주의자들이 머리카락의 일부를 잘라 헌신의 상징으로 그것을 신에게 바쳤던 그리스인과 셈족의 고대 종교관행을 모방했을 것으로 본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 기독교에서는 대체로 세 가지 모양의 삭발이 행해져 왔다. 베드로식이라고 말하는 로마식 삭발은 가시관을 상징하듯 머리 가장자리를 뺀 머리 전체나 아니면 머리 정수리의 둥근 부분을 미는 방법이었다. 동방교회식 혹은 바울식이라고 말하는 그리스식 삭발은 머리 전체를 미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동방교회에서는 머리가 짧으면 그것을 삭발로 간주한다. 또 하나는 요한식이라고 말하는 켈트식 삭발인데 이는 한쪽 귀에서 시작하여 머리 꼭대기를 넘어 다른 쪽 귀까지를 잇는 선 앞쪽의 모든 머리카락을 미는 방식이다.

 

불교나 힌두교와 같은 타 종교에도 삭발식이 있다. 불교의 경우에는 초심자(初心者)가 되거나 수도승(修道僧)이 될 때 삭발을 한다. 이때부터 수도승은 늘 머리와 얼굴의 털을 정결하게 깎아야 한다. 미얀마나 태국 등에 사는 대부분의 남자 아이들은 8살 이상이 되면 프라브라야라는 의식을 치르고 삭발한 후에 절에서 며칠 혹은 몇 달을 보낸다.

 

자이나교(Jainism)수도승들도 세속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수도생활에 들어가는 상징으로 삭발을 하는데 전통적으로 그들은 머리카락을 한 올씩 뽑는다. 자이나교도와 불교도들의 관습은 모두 이론적으로 영원한 생활을 위해 세속을 떠나 출가(出家)할 때 삭발을 한다. 자이나교도들은 불교의 싯다르타와 거의 동시대의 인물인 마하비라(Mahavira, BC 599-527)를 조사(祖師)로 받든다. 그들은 일체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불살생’(不殺生)을 준수하며 철저한 고행과 금욕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이나교는 2,500여년의 오랜 기간에 걸쳐서 인도 문화의 여러 방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도 수는 많지 않지만 오늘날에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어떠한 생물도 해치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지키려 하고 있다. 자이나교도는 늙고 병든 동물을 위해 피난처와 쉴 집을 마련해서 그곳에서 자연사할 때까지 돌보아 준다. 그들은 진실한 신앙, 진실한 지식, 진실한 행동을 이상적 실천목표로 정하고 따르려 한다.

 

힌두교에서는 흔히 남자 아이가 두 살 정도 되었을 때 삭발식을 거행한다. 힌두교의 삭발식에서는 머리 정수리 부분의 머리카락 다발은 남겨둔다. 대부분 힌두교의 금욕주의적인 수도회에 들어갈 때는 입회식의 일부로 머리 전체를 삭발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스스로 삭발하는 것은 결연한 의지적 결단의 단면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강제로 삭발을 당하는 것은 수치스럽고 욕된 일이 아닐 수 없다.

 

독일 히틀러의 나치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 독일 점령군에게 부역한 여성들이 강제로 삭발을 당하고 모욕적인 처벌을 받은 적이 있다. 이는 전설적인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1954)의 사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남긴 사진 중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랑스가 해방된 후의 모습을 담은 장면이 있다. 나치에게 부역한 혐의가 있는 한 여성이 삭발을 당한 채 나치와 동침하여 낳은 아기를 안고 거리에서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는 모습이다. 1943년부터 3년여 간에 15살 이상의 프랑스 여성 약 2만 명이 삭발을 당했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독일군과의 관계를 강요당한 프랑스 파리 여성들이 스스로 삭발해 저항의 뜻을 내보인 사건이 오버랩 되어 있다.

 

구약 성경, 민수기 6장에 의하면 나실인은 평생토록 머리카락에 삭도를 대지 않아야 했다. 나실인을 뜻하는 히브리 단어 나지르(נזיר)"거룩하게 되다. 분리되다.”란 의미이다. 나실인의 삶을 살아가던 사사 삼손의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는 장면은 수치스러움의 극치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는 불의(不義)한 시대에 삭발하는 한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 볼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부끄러운 일상을 살아가다가 수치스럽게 삭발을 당하는가 아니면 불의한 역사 앞에서 스스로 삭발하며 정의를 위하여 항거할 것인가는 용기 있는 결단과 선택의 문제이다.

 

사도행전 1818절에 보면 이런 기록을 대하게 된다.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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